일본군 '위안부' 그 역사의 진실 - 일본군 위안부 제도란 무엇인가? 교양인을 위한 역사 강좌 1
요시미 요시아키 지음, 남상구 옮김 / 역사공간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불가역적 합의라는 명목 하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한일간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이 발표 직후 발표문에 없던 이야기들이 양국에서 떠돌고,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철거한다는 말이 있어서 대학생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두 달여를 소녀상 앞에서 노숙을 하면서 지킨 일이 있다.

 

물론 이 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 합의를 바탕으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역사적 사실은 이미 끝난 일이라는 식으로, 또 자신들의 잘못은 없다는 식으로 연일 언론에 터뜨리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합의가 되는 것인지 모를 지경인데... 정작 당사자인 우리나라 정부는 별 대응이 없는 듯하다.

 

일본의 주장이 잘못 되었음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고, 일본에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주권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역사전쟁"이란 책에서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책에 바로 이 책이 소개되었다.

 

적어도 역사적 사실들에 관해서는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망발이라고 폄훼하면서 넘어가기보다는, 왜 그것이 망발인지를 구체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반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반박이 일본 학자에 의해서 나온 것이 한 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가해 국가의 국민이 진실을 외치는 장면에서, 피해 국가의 정부는 이보다 더 구체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주권 국가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일본이 미국의 신문에 기고한 광고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이 반박은 사실에 기초해서, 일본 광고가 사실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일본 정부의 각료들이 내세우고 있는 일본군의 책임이 아니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담박 알 수 있다.

 

일본 광고는 크게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다섯 가지가 있다.

 

1. 강제는 없었다.

2. 조선총독부는 업자에 의한 유괴를 단속했다.

3. 군에 의한 강제는 예외적이었다.

4. 군 '위안부' 생존자의 증언은 신뢰할 수 없다.

5. 여성들에 대한 대우는 좋았다.

--- http://www.ianfu.net/facts/facts.html  참조

 

그러나 이 책에 의하면 이것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이들이 주장한 논리대로 따라가도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아주 작은 책자이기 때문에 빨리 읽을 수 있는데... 이 다섯 가지 '사실'이라고 하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고, 단순한 '주장'임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일본 학자도 이렇게 이미 구체적인 '사실'들을 중심으로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반박했는데, 국민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이보다 더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결국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조선총독부는 업자에 의한 유괴가 있더라도 군의 명령을 수행하는 업자는 단속하지 않았으며, 군에 의한 강제는 예외적이 아니라 일반적이었고, 군 '위안부'들은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어서 신뢰성이 높으며, 이들에 대한 대우는 명목상 화폐의 액수가 아니라 물가상승과 비교를 하면, 너무도 형편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국가(의 군대)에 의한 폭력이며, 인권유린이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범죄이기 때문에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지며, 피해자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일본의 '고노 담화'는 이런 길로 가는 징검다리였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일본 정부는 이런 징검다리를 치우고 있으니, 이것은 인간으로서도, 세계의 구성원인 한 국가로서도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 책, 읽자. 그리고 '사실'에 기반에 비판을 하자. 국민들이, 시민들이 이렇게 한다면 주권국가로서도 더 책임있는 교섭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귀향'. 그러한 씻김굿, 살풀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진실이 규명되고 책임질 대상이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 다음에 용서가 따르고, 해원이 된다. 그 길로 가는데 이 책, 좋은 디딤돌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토 나들이 4

                  - 질서

  

  아주 오래 전 우리나라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질서를 다룬 이경규가 사회를 보던 예능 프로그램, 우리나라와 일본의 교통질서를 비교하는 프로, 정지선을 지킵시다였던가, 정지선이 있음에도 차머리를 들이미는 우리나라, 밤중이 되면 신호를 신경 쓰지 않는 우리나라, 횡단보도를 막고 서 있는 자동차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우리나라, 반대로 정지선 앞에 칼같이 서던 일본인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신호를 철저히 지키던 일본인들, 도저히 교통 신호를 무시한다는 생각을 못하던 일본인들의 모습은 충격이었는데...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차가 적지 않은 교토 시내인데

신호 한 번에 웬만하면 다 통과.

사람들이 완전히 내릴 때까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버스.

이러니 정지선은 기본.

도처에 보행자를 배려해

보행자가 직접 누르게 하는 신호등들.

과연 질서의 왕국.

여기에 더하여

거리는 너무도 깨끗.

어디 보자 하고 눈을 씻고 찾아도

거리에서 쓰레기를 찾기가 힘들고.

이틀 거리를 걸었는데,

담배 꽁초 하나, 둘 정도를 본 것이 전부.

너무도 깨끗한 거리에

소름이 돋을 정도.

이들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를까 하는 생각에

가끔 무단횡단 하는 사람을 보면

쾌감이 인다.

이들도 사람이구나.

이들에게도 따뜻한 피가 있구나.

사흘째 골목에 들어서니

소변금지라는 글자도 보이고,

이들도 실수를 하는군.

역시 사람은 똑같군.

다만 더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선

함께 살아야 함을 지키려

노력할 뿐.


   겨우 세 걸음 거리의 길에 신호등이 있다. 차도 별로 없는데, 굳이 신호등을 설치한 이유는, 그래도 여기가 네거리라서? 하지만 이런 신호를 지킨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기계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넌다. 난 외국인이니까. 그러다 생각한다. 여기에 신호등이 있는 이유는 어쩌면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사람의 안전을 생각해서라고, 차는 신호를 꼭 지켜야 하지만, 사람은 알아서 건너가라고, 그런 의미에서 설치하지 않았을까, 이게 바로 함께 삶 아닐까 하는 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치와 상상력 - 문학 속 연대의 감수성
고영직.오창은.이명원 지음 / 우리교육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

 

그것도 개인의 상상력이 아니라 집단의, 사회의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다. 어쩌면 우리는 상상력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 경제 분야에서는 상상력이라든지, 자치라든지 하는 말들이 사용되기 힘든 상황이고, 하다못해 문화 분야에서도 획일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생물 분야에서 종의 다양성이 생물의 생존율을 높인다고 하면서도 정치에서도 단일 품종으로 가려고 하고 (여권이든 야권이든, 이들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다. 특히 요즘 하는 일들을 보면)

 

경제 분야에서도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소품종 대량생산의 경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제조업 분야만이 아니다. 자영업에서도 보라. 얼마나 비슷한 업종이 많은가. 그래서 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주 작은 영역까지 대기업이 들어와 표준화, 획일화 시키고 있는 현실에서 소강기업이라는 말은 남 나라 말일 뿐이다. 경제 생태계 역시 정치 생태계만큼이나 단일 품종이다.)

 

문화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들과 방향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아예 싹을 없애버리려 하고 있지 않은지... 유명한 국제영화제 건만 보더라도, 도대체 다양한 문화라는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이럴 때 정말로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하나로 귀결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다양함으로 뻗어나가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상력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문학에서다. 문화 분야도 단일화 되어 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문학도 그런 경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문학이라는 예술 자체가 다양성을 생명으로 한다.

 

다름이 없으면 문학으로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인데.. 이런 다름이 다양성을 낳고, 이런 다양성을 뒷받침 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이 책은 문학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어떤 것인지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문학에 나타난 사회의 모습을 알려주는 것 외에, 그 문학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상상은 머리 속에만 있어서는 안된다. 특정한 개인의 머리 속에 있는 상상은 공상에 불과하다. 이 상상이 특정한 사람의 머리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과 공유될 때 그 때 상상은 현실이 된다. 현실이 될 수 있다.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만드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문학 속 연대의 감수성'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게 해주고 있다.

 

물론 이것은 단지 상상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상상력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명령이 아니라 밑에서부터, 함께 하는 자치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런 자치가 없는 새로운 사회는 모래 위에 쌓은 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많은 작품들, 최근의 작품부터 오래 된 작품들, 우리나라 작품들에서 외국 작품들까지 다양하게 나오는데... 읽어 본 작품이라면 그 작품에서 이런 점을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고, 아직 읽어보지 않은 작품이라면 (나 역시 읽지 않은 작품이 꽤 많았는데...) 읽을 때 이런 점에 주목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이 책을 읽어나가면 된다.

 

또한 이 책은 책을 디딤돌로 삼아 더 나은 사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고, 그 상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서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참여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 책이다.

 

 

더불어 좋은 문학 작품이 무엇인지, 또 좋은 문학 작품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 책이기도 하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6-03-0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자율과 연대라는 사회 써클을 만들어 활동한 적 있었는데, 그 때는 꿈이 많든 시절이었죠. ;^^

kinye91 2016-03-08 16:14   좋아요 0 | URL
자율, 연대, 참 좋은 말인 것 같아요. 어쩌면 나이 들어가면서 이런 활동에 대해 상상력이 줄어들고, 실천도 줄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네요. 그렇지만 아직도 문학을 통해서 자율, 연대를 느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매진 주빌리 - 오늘을 위한 사회적 상상, 희년
양희송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주빌리(jubilee)은행이라는 말을 최근에 듣고, 이런 말도 있고, 이런 은행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주빌리'라는 말을 '희년(禧年)'이라는 말로 이야기하는데, 기독교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49년이나 50년에 한 번 원상태로 돌리는 일이라고 한다.

 

어려운 말로 할 것 없이 '희년'은 빚으로 몰락한 사람이나 노예 상태가 된 사람을 본래대로 되돌리는 사상이라고 하면 된다.

 

즉 없는 사람들이 없기 전의 상태로 돌려주는 해, 그것이 희년이고, 이것이 희년의 사상이다. 이런 희년 사상은 역사를 통해서도 실천되기도 했는데... (이 책의 2,3장 희년 사상I,II 참조)

 

특히 지금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희년의 사상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에서 희년 사상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희년 사상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다루고 있으며, 그 공동체는 빚이나 노예나 토지의 독점이 영구적인 것으로 용납되지 않고 주기적인 회복과 해방을 근간으로 하는 생활체제를 지향한다는 이상을 담고 있다.' (191쪽)   

 

그럼에도 지금과 같이 사유재산이 보장이 되고 개인의 자유가 극도로 보장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재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런 희년 사상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이것은 그저 공상에 불과하지 않은가 라는 질문도 나올 수 있다.

 

이 책에서도 이런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나라처럼 개인의 사유재산을 보장하고 있는 나라에서, 공유재가 점점 없어지고 공공부문까지도 민간 차원으로, 즉 사적인 이윤 쪽으로 내몰고 있는 나라에서 이런 희년 사상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있다.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은데... 그럼에도 이런 희년 사상을 소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3의 법칙이다. 무언가에 미친 사람이 한 명이 있다면, 그는 그것에 미쳤기에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혼자만 미친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희년 사상도 마찬가지다. 나만 좋다고 알고만 있으면 그걸로 끝이다.

 

여기에 동조자가 필요하다. 즉 두 번째 사람이다. 이 사람은 가만히 지켜보다 처음 미친 사람의 행동이 좋다고, 옳다고 생각해서 참여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렇게 두 번째 사람이 나오면 세 번째 확산자가 나온다. 이 확산자는 처음과 두 번째 사람의 주장을 널리 퍼지게 한다. 더 많은 동조자가 나오게 한다. 이게 바로 3의 법칙이다.

 

희년 사상에 대해서 미친 듯이 주장하는 사람,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 여기에 확산하는 사람이 나오면 세상은 변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적 상상력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이 변해있기 때문이다. 생각 너머 상상, 상상 너머 변화인 것이다.

 

바로 이 책의 작가는 이런 변화를 바란다. 그래서 주빌리라는 개념, 희년 사상을 소개한다. 다른 사람들이 알기 쉽게,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수 있게...

 

이 책에 쓰인 주빌리 개념을 이해하면, 우리 사회에 대두한 '기본 소득' 논의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정치를 바꾸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깨달음이 실천으로 나아간다면, 희년 사상은 상상을 넘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상, 희년을 상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적 상상이 바뀌고, 미래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유토피아(utopia)는 헬라어로 '장소(topia)'란 단어 앞에 접두사 '오우(ou)' 혹은 '에우(eu)'가 붙어 만들어진 단어다. '부정'을 뜻하는 '오우'로 읽으면 '어디에도 없는 곳(outopia, no-where)'이 되는 것이고, '좋다'는 의미의 '에우'로 읽으면 '좋은 곳(eutopia, good place)'으로 새길 수 있다.  (31-32쪽)

 

이 말을 적용하면 우리가 희년을 상상할 때 유토피아는 없는 곳에서 좋은 곳으로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희년을 상상하자.

 

이게 지금 헬조선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사회적 상상까지, 그 너머까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 이 책 작지만 참 큰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한 공간을 찾아 그 속에 머물고 싶다면... 현실적으로 생계에 목이 매여 어쩔 수 없을 때, 물질 세계를 떠나지 않고 정신 속에 침잠하고 싶을 때...

 

그럴 때 시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시 속에서 절대 침묵을 만나고, 절대 고요를 만나고, 그 속에서 부단한 움직임을 만나고, 섬광처럼 지나가는 깨달음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게도 된다.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 그 말들이 온통 세상을 까맣게 덮고만 있을 때 고요한 공간 속에 우리들의 말을 놓아둘 필요가 있다.

 

우리들의 귀를 막을 필요가 있다. 귀도 쉬어야 한다. 그런 때 한 편의 시를 읽자. 그리고 그 시 속에 잠겨 고요히 나를 찾는 연습을 하자.

 

고요함이 넘쳐나는 시 한 편... 그냥 조용히 읽으며 그 장면을 상상하며,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해도 좋다.

 

전동균의 시집 "우리처럼 낯선"에 실려 있는 시 중에 '침묵 피정'이다. 그냥 읽으며 나를 이 시 속에 넣어두면 된다. 그러면 된다. 이 시끄러운 세상에.

 

 

  침묵 피정

 

빈 촛대가 놓여 있을 뿐이다

 

서리들이 언 발 비비며 지나가도

어둠이 마른 입술 적시며 쌓여도

홀로 앉아 바닥만 비추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몸에 더운 피가 흐른다는 게

차라리 슬픔인 밤

 

촛대에 불을 밝히면

삶이 제 것이 아님을 알아버린 자들,

한평생 무덤을 찾아 떠도는 짐승 발자국들이

낡은 성의(聖衣) 자락처럼 펄럭이고

그러면 또 내 몸은 쩍쩍 금이 지는 것이다

 

제 뼈를 깎아 피리를 부는 노인의 입술인지 모른다

폭풍의 하늘로 솟구쳐 사라지는 수리매 날개인지 모른다

 

너무 작아

책 한권 놓으면 꽉 차고

너무 커서 온 세상 울음을 다 쏟아내도 남을

 

앉은뱅이책상 하나

 

전동균, 우리처럼 낯선, 창비. 2014년 초판. 50-5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