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 / 교양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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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행을 가고 싶어하는 나라 중의 하나. 축구로 유명한 나라. 어쩌면 축구보다도 투우나 또는 토마토 축제로 유명한 나라. 아니면 산티아고 길로 유명한 (이 길을 벤치마킹해서 우리나라 제주 올레길이 생겼다나 뭐라나) 이 나라.

 

열정적이고 직설적이고 여러 문화가 섞여 있고, 가우디라는 건축가로 유명하기도 하고, 또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하기도 한 나라.

 

그런 나라다. 우리는 스페인을 유럽에 있는 나라니, 이 나라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민주주의가 오래 전부터 실시되어 온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전혀 아니다. 스페인은 1975년까지 독재 국가였다. 그것도 심한 파시즘 국가. 파시즘 하면 독일과 이탈리아 등을 떠올리지만, 이 스페인은 1939년부터 1975년까지 한 사람에 의해 지배당한 독재국가, 전체주의구가, 피시즘 국가였다.

 

그가 죽은 뒤 그의 망령을 씻어내어 지금은 우리가 가고 싶어하는 나라가 되었지만... 이런 스페인에 대해서,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우리 역시 스페인과 비슷한 역사적 상황을 겪지 않았는가. 스페인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 것이 우리나라 현대사이기는 하지만, 비극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약 3년 동안 스페인은 극심한 내전에 휩쓸린다. 인민연합이라고 하는 공화들이 선거에서 승리하자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군부가 쿠테타를 일으키는데, 이것이 쿠테타에 머무르지 않고 공화파와 국민파로 나뉘어 내전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 주변 국가들이 개입하게 되고, 주변 국가에서 의용군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전하기도 한다. 수십만 명이 죽어간 내전은 단지 공화파와 보수파의 싸움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관점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이념에다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아나키즘 대 가톨릭 보수파와 지주, 군부들이 한 편이 된 사람들의 갈등. 여기에다 중앙집권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자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갈등. 노동자, 농민과 지주, 자본가의 갈등에다가 히틀러 무솔리니의 파시즘 국가들과 이들 국가를 견제하려는 소련과 또 영국 프랑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일어난 것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라고 한다.

 

따라서 스페인 내전은 딱 이거다라고 정리할 수가 없다. 너무도 많은 일들이 중첩되거 있기 때문인데...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서술한 책들이 나와 자신들의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이 책은 다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이 객관적으로란 말이 참 어려운 말이다. 역사는 사실의 기술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저자의 관점에서 취사선택한 자료들일 뿐이니. 이 사실들이 모여 개관이 아닌 주관을 형성할 때가 많다) 서술하려고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내전의 시작부터 경과 그리고 그 후의 일까지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스페인 내전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스페인 내전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는데... 작가의 관점에서 자신의 주장도 내세우기는 하지만, 역사가로서 분석한 다음 주장을 도출해낼 수도 있으니 그 정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 책이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스페인 내전은 복잡하다. 그 복잡함이 스페인 내전을 보수와 진보의 갈등만으로 정리할 수 없게 한다.

 

어떤 일이든 몇 가지 요소들만으로 결정이 될 수 없음을, 참으로 복잡한 우연들이 모여 필연이 되는 과정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더 알 수 있는 것들은 내전이라고 해도 그 나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내전이지만 국제전의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는 것. 무엇보다도 내전은 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다는 것.

 

덧글

 

이 책을 읽은 다음 여러 책들을 함께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아나키즘의 입장에서 서술한 이 책들.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이미지 프레임(길찾기)

한스 마구누스 엔첸스베르거,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 실천문학사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또하나 국민파라는 말이 참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이 국민파들이 또 국민군으로 나오는데... 이들이 바로 독재자인 프랑코의 군대라는 사실... 참, 독재자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포장을 잘한다. 이 명칭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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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보기 좋은 날 - 내 가방 속 아주 특별한 미술관
이소영 지음 / 슬로래빗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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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록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내가 사는 세상이 당장에 바뀌지는 않아요. 하지만 기록을 하고 또 하다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내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합니다. 제가 쓴 이 글들이 누군가가 볼 때는 '명화에 대한 기록'에 불과할지라도, 저에게는 전부였던 기록들입니다. 누군가가 볼 때는 그저 그림에 불과할지라도 화가들에게는 전부였던 기록들이 이 책 안에 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그림을 통해서 자신을 만나는 과정을 이 책을 통해서 볼 수가 있다. 명화와 관련된 글이 바로 저자의 삶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처럼 '명화 보기 좋은 날'은 없다. 오히려 모든 날이 '명화 보기 좋은 날'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 책의 뒷표지에도 쓰여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날들이 명화 보기 좋은 날이다"

 

따라서 명화를 보는 날은 정해져 있지 않다. 명화 보기 좋은 날이란 없다는 말이다. 그냥 하루하루 모든 날들을 우리는 명화와 함께 지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명화라고 하여 교과서에나 나오는 유명한 그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명화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기에게 울림을 준 그림이라면 그것이 바로 명화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헤르만 헤세의 그림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명화란 말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냥 그림일 뿐이다. 수많은 그림 중에 내 마음에 꽂힌 그림들, 그것이 바로 명화다.

 

어느 그림이라도 좋다. 그냥 아무 때 아무 그림을 봤는데 그 그림이 내 마음에 어떤 울림을 주었다면 그것이 바로 명화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에 관해 자신이 느낀 점을 기록해 둔 모음집이기는 하지만, 이런 기록을 통해 그림과 만난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명화를 만난 날은 자신을 만난 날이다. 다른 사람을 만난 날이다. 명화를 통해서 사람을 만나고 삶을 만나고,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7개 부분으로 나누어 명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굳이 이런 분류에 따라 읽을 필요는 없다. 즉 이 책은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냥 아무 부분이나 펼치고 읽어도 된다.

 

어느 부분이든 그림이 있고, 그림과 얽힌 저자의 삶이 있고, 그것을 보는 우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명화와 관련된 기록을 통해서 다시 우리의 기록을 만들어가게 된다. 비록 종이 위에 쓰여지지는 않았지만 읽으면서 자신의 머리 속에, 마음 속에 또 하나의 기록을 하게 된다.

 

하여 그림과 글을 만나면서 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수많은 나, 다양한 나, 나도 모르는 나를 명화들을 통하여 다시 만날 수가 있다.

 

이런 만남을 미리 한 작가가 그것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좀더 편안하게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나를 기록해 갈 수 있다. 명화에 얽힌 이야기들이 결코 길지 않기에 짧은 시간이라도 읽을 수가 있다. 읽고 느끼고 생각할 수가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참 많은 그림들이 나온다. 그 그림들을 비록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도판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 그런 만남을 통해 다시 나를 만나게 되는 일.

 

'명화 보기 좋은 날' 이 날은 바로 나를 만나는 날이다. 그런 날은 모든 날이다. 우리는 언제든 명화를 보고 나를 만나야 한다. 그런 만남을 이렇게 기록해 두면 더욱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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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지킨 사람들 - 교과서가 들려주지 않는
김형민 지음 / 다른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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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들려주지 않는 "양심을 지킨 사람들"이다. 이상하다. 교과서는 학생들 교육용으로 제작한 책인데... 학생들 교육용이라면 양심을 지킨 사람들 이야기가 당연히 실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공교육이 지배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이바지 한다면, 지배권력에 틈을 내는 이런 양심을 지킨 사람들 얘기를 교과서에서 빼려고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불감사회"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공익제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공익제보, 다른 말로 하면 내부고발자라고 하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피해를 입었다.

 

피해를 입을 줄 알면서도 그들이 공익제보에 나선 이유는 사회를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가 잘못된 길로 가는데, 다른 사람들이 침묵하는데... 자신도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나섰던 사람들.

 

비록 고통받고 불이익 받고, 심지어는 자신의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피해를 보지만 그럼에도 양심을 더이상 속일 수 없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름을 보자.

 

검군, 김처선, 황진, 곽재우, 김성기, 이준, 강상호, 남자현, 장준하, 이섭진, 조영래, 박종철 외, 이문옥, 이지문, 한준수

 

신라시대부터 최근에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역사 속에서 그리고 현대사에서 일어났던 일이기에 낯익은 이름들이 제법 있다. 이들이 어떻게 양심을 지켰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 알면 된다.)

 

왜 이들이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했는지... 그것은 불의를 용납할 수 없었던 성격도 있겠지만, 자신마저도 양심을 지키지 않으면 사회가 어떻게 될지, 또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이 어떤 피해를 당할지 뻔히 알기 때문이다.

 

양심을 지키지 않으면 자신은 순간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원히 자신의 마음이 불편하고 잘 살 수 없으리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남을 속이기는 쉽지만 자신을 속이기는 어렵다고, 아무리 잘못된 행동을 내 책임이 아냐, 난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야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었의라.

 

외적으로 피해를 보았겠지만 그들은 내적으로 승리한 사람들이고, 자신의 인생을 잘 산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그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살아남아 우리들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있게 되는 것이다.

 

교과서가 정말로 학생들을 바른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자료라면 이런 사람들 이야기 반드시 실어야 한다. 그래서 '교과서가 들려주지 않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게 해야 한다.

 

공익제보자들, 또는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 사회는 더 민주화된 사회, 더 평등한 사회, 더 정의로운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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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피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다. 좋은 일만 나에게 일어났으면 하는데, 어디 인생이 그렇던가.

 

인생에서 안 좋은 일, 정말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이 어쩔 수 없이 내게 다가올 때 그 일이 나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던가.

 

고통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먹어도 고통은 나를 더욱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한다. 나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만다.

 

그런 고통, 겪지 않으면 좋으련만 세상이 어디 내 뜻대로만 되던가. 내 뜻대로만 되면 세상이 과연 살 만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변화가 없는 삶, 예측이 늘 가능한 삶이란 너무도 단조로워 인생의 재미를 잃게 할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살 만하다. 도대체 예측할 수 없으므로. 오늘의 행복이 지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오늘의 불행이 지속되지도 않으니...

 

인생은 어떻게 하든 내게 다가오는데... 불현듯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생각났다. 참 쉽게 하는 말이지만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말.

 

그런 말을 이 시에서 느꼈다. 이수명의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자신을 찍으려는 도끼가 왔을 때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도끼로부터 도망가다가 도끼를 삼켰다.

 

폭풍우 몰아치던 밤

나무는 번개를 삼켰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더 깊이 찔리는 번개를 삼켰다.

 

이수명, 붉은 담장의 커브, 민음사. 2001년. 41쪽.

 

나무 역시 도망가고 싶었으리라. 도끼가 다가오는데, 그 도끼를 순순히 받아들일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변개가 치는데 그 번개를 온몸으로 맞고 싶은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어쩔 수가 없다. 나무는 도망쳐도 도끼를 벗어날 수가 없다. 번개를 피할 수가 없다. 그럴 때 나무가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도끼를 삼키는 일. 번개를 삼키는 일.

 

그래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일.

 

이 시를 읽으며 '벽조목'이 생각났다. 번개 맞은 대추나무. 그래서 잡귀를 물리친다는 나무. 그렇다. 도끼를 삼키고 번개를 삼킨 나무는 잡귀 정도는 물리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나무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 곁에서 늘 우리와 함께 우리를 지켜주는 그런 나무로. 그것이 바로 도끼와 번개를 피할 수 없었던 나무가 한 일 아니겠는가.

 

피할 수 없으면, 그것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 그래서 그 속에서 다른 존재로 태어나야 하는 존재.

 

인생이 바로 그러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 우리 인생도 이런 나무와 같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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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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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란 영화가 나오기 전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역사소설 쯤에 해당할텐데, 윤동주의 삶을 중심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장면들을 상상력을 통하여 채워놓았다고 보면 된다.

 

어린 시절 이야기는 생략하고 동주가 연희전문에 오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이 때부터 우리가 아는 시인/동주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연희전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의 시도 꽃을 피우게 되는데, 졸업을 하고도 딱히 갈 곳이 없는 동주가 일본으로 유학 가 감옥에서 죽기까지 그 동안 만난 사람들과 동주의 내면세계, 그리고 그의 시를 중심으로 이 책이 전개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묘미는 우선 책의 내용에 맞는 동주의 시들을 볼 수 있다는 점, 시들이 그 상황에 꼭 맞게 인용이 되어 시의 울림이 더 크게 느껴지게 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구절,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윤동주의 삶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비교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우리이기에 더 마음을 울리는지도 모르겠지만.

 

  동주 자신은 조선 민족의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 볼 엄두는 못 내었고, 일본군에 맞서 싸우는 항일 독립군 부대를 찾아가지도 못했다. 그저 억압받는 민족의 한 사람으로 가까운 벗들과 울분을 나누고, 혼자라도 민족의 말과 글을 잊지 않으려 하며 시를 써왔다.  268-269쪽

 

 

이것이다. 일제시대를 견디는 일. 사람마다 다 다를테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일제시대를 견뎌내는 일일텐데... 윤동주에게 그것은 바로 시를 쓰는 일이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같은 시인이라도 일제에 영합하는 시를 쓴 사람도 있고, 조선어를 포기하고 일본어로 시를 쓴 사람도 있으니, 그 시대에 우리말을 지키고 우리말로 시를 썼다는 것 자체도 커다란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윤동주의 시는 단지 우리말로 썼다는 것을 넘어서 우리말로 우리들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 지금 읽어도 우리 마음에 울림을 준다는 것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동주의 내면세계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소설은 그 인물에 대해서 더욱 친근하게 또 그 인물의 고민에 더 가깝게 다가가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윤동주의 삶과 윤동주의 시가 잘 어울리면서 우리에게 일제시대를 살아간 순정한 한 사람, 자신의 양심에 충실하려 했던 한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

 

여기에 윤동주에 의해 가려져 있지만 송몽규 역시 치열하게 일제시대를 살아간 사람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으니...

 

영화 "동주"와 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시인/동주"는 함께 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윤동주는 우리 문학에서 지워질 수 없는 이름이 되었으니... 그를 좀더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 이 책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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