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 아이들 책으로 만나다 - 스물여덟 명의 아이들과 함께 쓴 희망교육에세이
고정원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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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교육전문가라는 직업이 있다. 지역과 학교가 하나가 되어 아이들 교육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생긴 직업이기도 하다.

 

학교에 근무하면서 아이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상담하고 풀어가는 사람들인데... 상담과 교육 역할을 모두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 책에 나오는 지역사회교육전문가는 책으로 아이들을 만나다.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책을 매개로 아이들과 좀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아이들의 행동변화를 유도한 이야기이다.

 

변화는 아이들 스스로 했겠지만 아이들이 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결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아이들이 자신들의 내면을 드러내고, 내면을 보고, 그것을 고쳐나갈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역시 교육은 학교, 특히 교실 내에서만 이루어질 수 없고 교실 밖, 학교 전체와 지역사회, 가정이 함께 할 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학교에도 있었고, 위기대응센터에도 있어 학생들을 늘 만나왔다. 그리고 그 만남에는 책이 있었다. 책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과 좀더 가까워질 수 있었으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줄 수 있었다.

 

그것이 모두 성공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런 일들이 모두 성공했다고 했다면 이 책은 그다지 신빙성이 높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가감없이 자신이 실패한 내용도 이 책에 담았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결국 죽음으로 세상을 뜬 아이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아이에게는 결국 책 한 권 권하지도 함께 읽지도 못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이 아이 전화에 저자의 전화번호가 남아 있었으니, 아이는 비록 책을 읽지 않았고 죽음에 이르렀지만 그 사이에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준 사람이 있었음을 온몸으로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인생에서 자신을 믿어주고 자신과 함께 해준 사람이 있다는 기억, 그 기억을 선물해준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복지실에 책을 갖다놓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했다고 했는데...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도 자신들의 처지에 맞는 책을 읽고 있더라는, 마치 책이 아이들을 찾아가는 것 같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는데...

 

책이 아이들을 찾아가기도 했겠지만, 책이 아이들을 찾아갈 수 있게끔 아이들 상황에 맞는 많은 책들을 갖춰놓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한 저자의 노력, 또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책의 내용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본 마음을 터놓을 수 있도록 한 저자의 노력이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공부에 찌들어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그나마 숨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런 환경에서 책은 비로소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학교에서 쓰고 있는 많은 예산들 중에 이렇게 아이들이 편하게 찾아가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데 좀더 신경을 써서 편성을 하고, 이런 환경을 이끌 사람을 학교에 보내는 제도를 갖춘다면 아이들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행이다. 이 말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나온 말이다. 왜냐하면 학교 참 답답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답답한 공간에서, 특히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집에서도 숨쉬기 힘든 아이들이었으니, 그런 아이들이 편하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덧글

 

아쉬운 점은...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책에 내용이 나올 때는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116쪽, 엄마가 보듬어 주지 못하는 성아의 아픔이라는 글에서 성아 이야기를 하면서 책으로 "유진과 유진"을 들고 있는데... 설명에서 작은 유진과 큰 유진에 대한 설명이 바뀌었다.

 

'동명이인인 두 유진이 똑같이 성폭력을 당했는데 '큰 유진' 엄마는 아이에게 잊을 것을 강요한 반면, '작은 유진' 엄마는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사과를 하고 그 상처를 이겨내려는 노력을 했다' 고 되어 있는데... 바뀌었다. '큰 유진' 엄마는 상처를 이겨내려 노력했고, '작은 유진' 엄마는 잊을 것을 강요했다.  내 기억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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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아니다 - 프란츠 파농 평전
패트릭 엘렌 지음, 곽명단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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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제리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잘못 알고 있을 수 있었지 싶을 정도로 파농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약력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그가 알제리 독립 투쟁에 참여했고, 흑인의 입장에서 백인을 비판한 것만이 아니라, 백인을 따라하려는 흑인도 비판했다는 사실에, 당연히 알제리 사람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가 프랑스 식민지였던 곳에서 태어났고, 알제리 독립 투쟁에 참여도 했지만, 그는 본토 출신도 아니고 알제리 출신도 아닌 서인도제도의 마르티니크라는 섬에서 태어났다. 섬나라라고 하면 되나?

 

아니 섬나라가 아니라 프랑스의 한 주라고 하니, 우리나라 제주도쯤 된다고 보면 되겠다. 흑인인 아버지와 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파농.

 

형제들 중에서 유난히 까만 피부색을 지녔다고 하고,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생각을 남 앞에서 굴하지 않고 펼쳤다고 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지녔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비시정권에 영합하는 해군들이 마르티니크 섬에서 인종차별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만, 자신이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의 자유를 위해 의용군으로 참전한다.

 

하지만 그가 의용군으로 참전하면서 느낀 것은 자신은 흑인도 백인도 아니라는 사실. 프랑스에서 그들은 프랑스 군인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우고 훈장도 받았지만, 오히려 이탈리아 포로들보다도 더 못한 대우를 프랑스 여인들에게 받게 된다.

 

그들은 검둥이일 뿐이다. 이 검둥이들이 출신지에 따라서 또 차별을 받고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또 차별을 하니 그야말로 그의 책 이름대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인 셈이다.

 

이런 차별을 전쟁이 끝난 뒤 마르티니크 섬에 도착한 뒤 고향의 사람들에게서 겪게 된다. 그는 ㅍ프랑스에서는 검둥이에 불과했지만, 이 섬에서는 또다른 귀족계층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백인인가? 흑인인가? 파농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흑인이자, 백인이라고.

 

결국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의사가 되지만 역시 그에게는 차별이 그치지 않는다. 그가 택한 길은 알제리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것.

 

정신과 의사로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독립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불행하게도 젊은 나이에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뜨고 만다. 그의 나이 겨우 36세.

 

한창 일할 나이다. 한창 저술할 나이다. 그가 남긴 책들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식민지 해방 투쟁은 물론이고 인종 차별에 관해서도, 또 약자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관해서도 그의 저서는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자신의 경험이 그의 책에 잘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표면적으로 식민지들은 거의 사라렸다. 대부분이 독립국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것은 표면적인 독립일 뿐이다. 이들 독립국들이 내면적으로 얼마나 식민화 되었는지... 비록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을지 모르지만, 문화나 다른 제도면에서 아직도 식민모국을 답습하고, 그것을 추종하고 있는 모습이 많지 않은가.

 

짧은 생애, 그러나 지대한 영향, 이것이 바로 파농의 삶이었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그를 어느 특정한 인종이라고 국한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이 책의 제목인 '나는 내가 아니다'로 붙였을테고.

 

다만, 파농의 사상에는 동감이 되지만 그의 태도에는 동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파농은 자신의 생각을 밀고나갈 생각을 했지,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을 잘 하지 않았나 싶다.

 

정신병원을 개조하는 일에서 그렇다. 그는 막무가내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밀어붙인다. 그가 옳더라도 그 옳음을 설득하는 조금은 긴 과정을 거쳤다면 아마도 더 좋지 않았을까? 옳다고 언제까지나 자기 혼자 갈 수는 없고, 소수의 동조자들과만 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함께 하는 일에는 이런 태도를 보여 적들도 많았지만, 그와 반대로 그를 절대적으로 지지해주는 친구가 많았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이런 태도가 글로 나타나서는 세계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거리와 실천하려는 욕망을 자극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파농의 삶을 간략하고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있어서, 우리가 그의 다른 저서들을 읽을 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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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집들이


그가 이사를 했다.

내가 알고 나서 두 번째 이사다.

첫 이사 때

그는 우리 모두를 자신의 집으로 끌었다.

우리는 눈물과 술로 그의 새로운 집을 채웠다.

이승 집을 떠나 자리 잡은 저승 집.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내라 말하고

자주 오겠다 했지만

이승에 묶인 우리들과 저승의 거리는 너무도 멀었다.

그의 집에는 간간히 들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친구들이 보고 싶었는지

한 해 조금 넘게 지냈던 집을 떠나

새로운 이웃들 곁으로 갔다.

이사 갔으니 새집에 놀러 오라는 듯이.

같은 동네지만

그를 보려면 허리를 숙여야 했던 저층에서

허리를 숙이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중간층으로

가족, 벗들에게 조금 더 좋은 환경으로

좀 자주 보자고 말하는 듯이.

그것은 아파트였다

평수가 넓지는 않은 임대아파트지만

우리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할 수 있는

그만의 보금자리였다.

비록 누구처럼 살아선 넓은 집

죽어서도 넓디넓은 공간을 가지진 못했지만,

살아서 이웃과 더불어 살다가

죽어서도 이웃이 많은 아파트로 가는 인생

이것이 중산층의 일생이라지만,

이웃들과 친구들이 있는

그의 집.

오래 머물며 왁자하지는 못해도

그를 만나 옛추억을 곱씹는,

잊지 않고 그의 집에 들르겠다는 그런

친구의 집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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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읽는 세계사 - 문화의 눈으로 역사의 진실을 읽는다, 개정증보판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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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과거 속에 일어난 사건을 안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이 당시의 사회 속에서 지니는 의미를 파악해야 하고,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미래의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 공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는 하나로 귀결될 수가 없고, 다양한 관점들이 제시되어야 하며, 다양한 관점들 사이에서 자신의 관점을 확립하려는 태도를 지녀야만 역사 공부를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우선 학교에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들어 다른 생각, 다른 관점을 원천봉쇄하려고 하고 있기도 하고, 또 학교 공부라는 것이 시험을 위한 공부이지 역사를 자기 삶에 가져오기 위한 공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점점 역사 공부에서 학생들이 멀어져 가고 있고, 일반 어른들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참으로 반가운 책이다. 단지 과거의 특정한 사실, 문화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사실이나 문화, 인물이 지니는 의미를 이야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역사를 배우다 보면 역사를 고정된 무엇으로 보지 않게 된다. 역사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유연성 속에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고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의 정설이 다른 가설에 의해 뒤집히고, 또다른 유물이나 유적에 의해 다른 해석이 등장하는 그런 절대불변의 세계가 아닌, 우리의 노력에 따라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학문.

 

이 책은 세계사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사는 나오지 않는다. 동양의 역사는 지나치듯이 나오고, 세계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서양사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우리가 흔히 세계사 하면 주로 서양사를 공부하듯이,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례들도 서양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기존에 알고 있는 사실들에 더하여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을 추가하고, 통설과는 다른 저자의 관점도 보여주고 있다.

 

한 번에 세계의 역사를 모두 알려고 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세계를 움직이는 강한 힘은 서양에서 온 것이 맞으니, 서양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서양의 관점에서 역사를 풀어가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만의 관점, 특히 동서양 어디에도 치우지지 않는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으로 이 책을 서술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이 책의 33장 '노예'에서 잘 볼 수 있다. 근대화가 진보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억압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점, 그렇다고 '노예'를 비참함으로만 보면 오히려 그들을 당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보게 된다는 점.

 

그들 역시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했다는 점을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어떤 역사적 사건을 파악하려는 저자의 관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디즈니까지 다루고 있는 이 책은 한 장 한 장 읽기에 무리가 없다.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듯이 일반인이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책이라니, 역사의 흐름을 문화를 통해 익힐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하나의 사물이나 문화, 인물을 역사 속에서 파악하는 자세를 보고 익힐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끝없이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지금 내가 있는 자리는 어디이며, 나는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주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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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짤막한, 어쩌면 요즘 세태에 딱 들어맞는 시들인지도 모른다.

 

시가 본래 짧지만, 이 시들은 더 짧다.

 

SNS를 이용해 널리 퍼진 시들이라는 점에서 그 특성을 백분 잘 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잠시 스쳐지나가듯 읽을 수 있는 시들.

 

시라고 하기보다는 우리의 감성을 건드리는 글들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특별이 깊은 울림을 준다기보다는 '아, 그렇지, 이랬지, 이럴 수도 있지, 나도 그랬어, 나와 비슷하네' 하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들이다.

 

그래서 서울 시는 특별 시고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동 시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것들을 이 시들이 깨우쳐 주고 있다. 우리 각자는 특별한 존재이지만 또 모두가 특별한 존재라는 점에서 공감을 할 수 있다고.

 

더 말이 필요 없는 책이다. 마음이 우울할 때, 나만 그런가 할 때 이 시집을 펼쳐보자. 그러면 나만 그러지 않음을, 나만이 '특별'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 사는 천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 특별하기에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시들. 그런 글들. 그런 글들 속에서 '군중 속의 고독'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군중들과의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오가며, 또는 버스를 타고 오가며, 아니면 자동차 안에서도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임을 느낄 수 있는 글들.

 

스마트폰으로 더더욱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스마트폰으로 서로가 공감하는 글들을 공유할 수 있음을...

 

우리는 다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함도 너무도 많음을,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이렇게 서로 공감하고 있음을 이 시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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