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고흐가 자신의 삶으로 인해 더 유명해졌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이중섭이 삶으로 인해 그림이 더 유명해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가족과 헤어지고, 온갖 고생을 하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만 화가. 생전보다는 사후에 더 많은 인정을 받은 화가, 그가 바로 이중섭 아니던가.

 

유명한 그림 중에서도 아이들 낙서 같은 그림이 얼마나 많은가. 그 그림들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절절하게 담겨 있는가.

 

그런 이중섭에 대한 전시회가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렸다. 서울의 덕수궁 안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다른 매체에서 보았던 유명한 그림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그동안 알고 있었던 이중섭의 그림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감상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주말이라 그런지 역시 사람들은 많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이리도 높았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 손바닥만한 이중섭의 그림, 특히 은박지에 그린 그림(은지화라고 한다)을 볼 때는 몸이, 특히 눈이 피로하기도 했다.

 

그 작은 그림에, 은박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 조명을 강하게 비추었으니, 눈이 피로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어떤 형태로든 그림을 남겼던 이중섭의 치열한 모습을 느낄 수도 있었다.

 

여기에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들... 그의 친필 편지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더욱 그의 가족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눈이 피로할 즈음 만나게 되는 그의 '황소' 그림들. 박력있는 황소들에게서 어떤 힘을 느끼기도 했다.

 

책에서 본 그림들을 전시회에서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고나 할까. 예전에 읽었던 책이 이번 전시회를 관람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니... 좀더 이중섭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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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한 스케치 여행, 개정증보판
이장희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을 보면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로 되어 있다. 시간을 그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서울의 시간을 그린다는 의미는, 그림을 통해 서울의 역사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낸다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즉, 공간을 지금의 시간에 보이는 대로 평면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 존재하기 위해 겪어왔던 풍상들까지 그림에 나타내 보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전우용의 '서울은 깊다'라는 책이 있다던데 이 책에서도 '서울은 깊다'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지금까지 존재해온 건축물들에 역사가 담겨 있으니, 건축물을 공간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그런 건축물을 지니고 있는 서울은 깊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다. 서울은 깊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있어도 서울은 참으로 길고 긴 역사를 지닌 도시이다. 아무리 막개발, 난개발로 예전 역사가 사라져 가고 있다지만, 한 순간에 그 깊은 역사를 모두 없앨 수는 없는 일.

 

우리에게 남겨진 일은 그런 역사를 찾아 기억하고 보존하게 하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 책의 저자가 한 일은 의미가 있다. 사진으로 찍어 책으로 내어도 될 것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스케치를 해서 그 건축물의 역사와 현재의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다.

 

서울이 깊은 만큼 그 서울을 대하는 태도가 가벼울 수가 없다. 그만큼 서울에 대해 설명할 때도, 또 알아갈 때도 시간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에 대충 알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들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것들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느끼며, 자신이 직접 스케치하는 과정을 통해서 서울의 깊이를 더욱 더 잘 느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느낌을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을테고, 이는 사진으로 제시하는 것보다 자신의 그림과 함께 제시하는, 그때 그때의 심정도 함께 만화처럼 표현해 내는 방법이 더욱 더 친근감있게, 그리고 깊이있게 다가온다.

 

내가 아는 서울은 겉모습뿐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저자는 자세하게 서울을 안내해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들고 이 책에 나와 있는 장소를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직접 발로 찾아가 눈으로 보며, 이 책과 비교해 보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한다. 지금껏 그냥 스치듯 지나쳤던 많은 곳들을 다시 한 번 가보고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금은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문화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세상에 도로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 문화재가 한둘이 아님을,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지금도 혹 그러지 않을까 생각하게 해주고도 있으니...

 

서울 관광 안내서라고 해도 이 정도로 서울의 깊이를 담고 있지는 않겠다는 생각. 사실, 서울에서 관광안내서를 받아들면, 다른 어느 곳과도 차이가 없는 거의 똑같은 안내서만 보게 되지 않던가.

 

이 점에서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서울의 역사, 서울의 깊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찾지 못했던 곳을 찾을 수 있게도 해주고 있으니.

 

서울의 깊이를 느껴보고 싶으면 이 책을 읽고, 이 책을 들고 서울의 거리를 천천히 걸어보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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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순례. 습관적으로 헌책방에 가게 된다. 가고 싶어진다. 가서 어떤 책들이 다른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지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헌책방에 가게 된다. 다른 여러 곳의 헌책방을 다녔으면 좋겠지만, 인간의 습관이란 왜 이리 무서운지 늘 가던 곳으로만 가게 된다.

 

길이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계속 반복해서 밟으면서 다녀서 생기게 되었듯이, 헌책방도 자주 가는 헌책방으로만 가게 된다.

 

무엇보다 펀하기 때문이다. 책이 꽂혀있는 위치를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습관이 때로는 더 다른 책, 평소에 관심이 없었지만 갑자기 내 맘으로 들어오는 책을 만나기 어렵게 한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도 좋은 걸. 그렇게 해서 만난 책이 바로 이 시집이다. 현대문학상 48회 수상시집.

 

나희덕이 수상을 했다. 나희덕 시집도 두세 권 있으므로, 아마 이 수상시집에 있는 시들도 어느 시집에선가 보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 다른 시인들도 있으니... 사고 본다. 그리고 펼쳐든다.

 

꼼꼼하게 한 편 한 편 읽기도 하지만, 한 번 훅 훑어보기도 한다. 훑어보다가 마음에 콕 박히는 시가 있으면 됐다. 그 시집은 그 시 한 편으로 제 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읽는데, 엉뚱하게도 이번에는 첫시에서 멈췄다. '마른 물고기처럼'이라니. 마른 물고기란 자기가 살던 곳에서 쫒겨난 물고기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는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으로 시끄럽지 않은가. 해운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반도국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조선업은 사양산업이 되었고, 이상하게도 자본가들은 망해도 살아갈 길을 다 마련한 반면에...

 

그때까지 정말 밤낮없이 일한 노동자들은 이렇게 '마른 물고기'가 되어 버렸지 않은가. 그들은 서로에게 수분을 주기 위해 침을 뱉지만, 택도 없는 일. 구조조정이라는 밥상에 올라버리고 만다.

 

이래서야 되갰는가. 왜 이 시가 지금부터 13년 전에 수상한 이 시에서 지금 조선업계를 떠올리게 되는지... 왜 우리 노동자들은 아직도 이렇게 '마른 물고기'가 되고 말았는지... 그래서 자본의 밥상 위에 올라버리고 마는지.

 

그래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이 두려움에 쌓여 살아가도록 하면 안 된다. 노동자들은 풍부한 물 속에서 서로서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그들은 절대로 '마른 물고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을 퍼내 버린 자본가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물이 없어 결국 말라 죽어가야 하는, 반찬이 되어버리는 노동자들의 모습. 떠올리기 싫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시를 읽으며 지금 조선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강렬한 태양빛 아래 온몸이 말라가는 물고기처럼.

 

마른 물고기처럼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벼야 하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

밖이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 빛이 물처럼

흘러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낡은 밥상 위에 놓여진 마른 황어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황어는 겨울밤 남대천 상류의 얼음 위에 앉아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꺾이고 그 빛나던눈도 비늘도 다 시들어버렸다.

낡은 밥상 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들은 말이 없다.

 

2003년 제 48 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2002년 초판 1쇄. 1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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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안 풍경 전집 - 김기찬 사진집
김기찬 지음 / 눈빛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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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골목이 중심이다. 삶이 있는 골목. 여기에는 사람들이 있고, 동물들이 있고, 풍경들이 있고, 그리고 우리 역사가 있다.

 

골목은 마을 사람들이 만나 함께 하는 골목이었고, 아이들을 공동으로 키우는 장소였으며, 아이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뛰어노는 공간이었다.

 

삶이 온전히 녹아 있는 장소, 그곳이 바로 골목이었는데... 이런 골목을 전문적으로 찍은 사진가가 김기찬이다.

 

그는 서울의 골목길을 평생 자신의 사진 작업 대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의 골목 사진을 보면 서울의 변천사를 알 수 있다.

 

서울의 변천사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골목이 있는가? 

 

아니다. 골목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골목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의 북촌이나 또는 몇몇 거리들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그곳은 이미 삶이 사라져 버린, 관광지가 되어버린 곳이다.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장소가 되지 못한다. 그냥 골목의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골목이 어떤 모습일지를 알고 싶으면 이 사진집을 보면 된다.

 

그의 사후 전집 형식으로 (골목을 중심으로 찍은 사진들을 모은 책이다) 펴낸 책이다. 숱한 골목들이 나오고, 골목 안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러한 어우러짐, 이것이 바로 골목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주로 흑백으로 골목을 사진찍었는데, 흑백사진이 골목사진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2집인가에 칼라가 나오는데, 왠지 낯설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사진집을 펼치다 사람들의 표정, 함께 하는 모습, 어린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모습이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데...

 

그러다 마음 한 구석을 아프게 찌르는 사진들이 나온다. 골목들이 다 허물어져 폐허가 되어가는 마을의 모습. 콘크리트, 벽돌, 나무들의 잔해들 위로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

 

허물어진 마을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아파트들... 이 아파트들로 인해 우리는 수평적 삶에서 수직적 삶으로, 함께 하는 삶에서 홀로 하는 삶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그런 변화를 보여주는 사진이 마음 아프게 다가왔는데...

 

이 사진집에서 예전 골목에서 이루어졌던 삶들을 볼 수 있고, 우리의 따뜻했던 과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과거에 나왔던 사람들을 다시 찾아 찍은 사진...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짠하기도 했다.

 

삶의 역동적인 모습이 느껴지는 골목 사진들... 김기찬의 사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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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3 -부흐링의 말


과식하지 말자

하나를 먹더라도

제대로

먹자

먹어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자

완전히 소화시켜

내가 될 수 있도록

잘 먹자

많이, 무조건 먹어

되는 대로 싸지

말자

많이 먹어

남에게 해를 끼치면

차라리

책 속에 갇혀

영원히 

사는 것이 낫다.

 

지식인이란

잘 먹을 줄

아는

부흐링,

그 부흐링 족임을

명심하자.

 

1)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나오는 책을 읽는 것이 식사가 된다는 종족 이름

2)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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