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미술관 - 그림, 한눈에 역사를 통찰하다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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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기독교에서 교회나 성당에 그려 붙였던, 또는 천장에 그렸던 수많은 성서화들.

 

또 하나는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역사화라 불리는 그림이 없을까 하는 생각.

 

첫번째 생각은 이 책에서 소개하고 그림들이 대부분 신화시대 또는 성서에 기반한 그림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뒤에 보면 역사적 사실들, 인물들을 그린 그림도 있지만, 기본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서양 사람들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영광을 그림으로 그려왔고, 또 성서에 나타나는 내용들을 그림으로 많이 그려왔다.

 

특히 교회에서 그림을 그렸던 것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에 의해 그림이 파괴된 적도, 성상이 파괴된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성화나 성상이 우상이 아니라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미술품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런 그림들은 그림 자체의 훌륭함도 있겠지만 신의 권능을 잘 드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감화를 받게 하는데도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들이 살아남았는데... 이 그림들이 지금은 우리들에게 감명을 주고, 또 고대나 중세의 역사를 보는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그림들 역시 이런 서양의 역사,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그림들이 많다. 따라서 이 그림들을 통해 당시 서양의 문화, 역사를 알 수 있게 되는데, 반대로 서양의 문화, 역사를 더 잘 알고 있다면 이 그림들에서 또다른 풍성한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게 된다.

 

그림과 역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그림이 존재했듯이,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그림이 역사를 알아보게 하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림에 대한 소개가 끝나면 각 장마다 간략하게 역사에 대한 서술을 하고 있어 어렵지 않게 역사를 접할 수 있다.

 

문맹이 많았던 고대나 중세에 그들에게 성서의 내용을 알려주려는 또 하나의 목적으로 성화나 성상들이 제작되었듯이, 너무도 세분화된 역사에 질식될 것 같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그림을 통해 역사를 만나게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또 이 책은 역사를 어렵지 않게 친근하게 즐겁게 접근할 수 있어서 이런 식의 책들이 역사와 미술이 융합하는데 나름 도움을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두번째 생각은 그럼에도 우리나라 그림들은? 하는 생각이다. 서양의 역사만큼이나 우리나라 역사도 굴곡이 많았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역사화나 종교화가 별로 없을까?

 

별로 없을 정도가 아니라 우리나라 화가의 역사는 매우 짧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옛사람들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그림은 삶의 일부였을 뿐이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기(餘技)라고 하여 공부하다, 또 일하다 남으면 하는 일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좀 아쉬운 생각이 들기는 한다. 우리나라도 서양처럼 이렇게 그림들이 많이 그려지고 남아 있었다면 우리 역사를 좀더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우리 조상들도 윤리를 가르치지 위해서 그림을 활용했는데,(그 유명한 삼강행실도를 보라)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림을 활용한 경우는 적으니, 집에서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고자 했기에 격동적인 역사적 장면들보다는 관조적이고 사색적인 자연에 대한 그림에 더 중점을 두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격동적인 70-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민중미술이 활발하게 창작되었으니, 나중에는 이런 그림들과 우리 역사가 결합한 이와 같은 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이 책은 서양화를 통해서 서양의 역사를 만나게 되는 데는 문제가 없으니, 서양의 역사를 그림과 함께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유용한 역할을 하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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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8-06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kinye91님 글을 읽다보니, 같은 의문이 드네요.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서양보다 책의 보급이 보다 대중적이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군이 놀란 것이 가난한 초가집마다 서적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지요.. 거의 같은 시기에 기독교가 전래되었기에 예술작품을 통한 전교 필요성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듭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kinye91 2016-08-06 11:49   좋아요 1 | URL
여러 가지 원인 중에 책의 보급이 대중적이었다는 겨울호랑이님의 말씀도 타당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 있고 싶은 남자 - 말 못 한 상처와 숨겨둔 본심에 관한 심리학
선안남 지음 / 시공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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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고 싶은 남자'

 

이런 사람이 있을까? 너무도 뻔한 말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데... 혼자 있다는 것은 고립되어 있단 말이고, 사람들에게 고립이란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일텐데.

 

결국 혼자 있고 싶다는 이야기는 이해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하다는 말로 읽힌다. 그만큼 남자들이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성역할이 명백했던 전통시대에는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하고, 소소한 일에는 남자는 간섭하지 않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면 되고... 이런 등등의 역할 분담이 있었다.

 

그 역할에만 충실하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가?

 

지금은 남녀의 성역할이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은 별로 없고, 남성ㅡ여성의 영역이 아니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여기다 여성들의 사회진출로 인하여 해마다 뽑는 공무원 시험에서는 여성들의 합격률이 남성들을 웃돌고 있으며, 대학 진학률 또한 마찬가지고, 맞벌이 가정이 다수라고 할 정도로 사회가 변했다.

 

그런데, 이런 사회의 변화를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도 전통적인 남성의 성역할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 그 사람들 중에 특히 남성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사회의 변화가 남성의 지위 추락(?)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남성의 지위 하락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서도 발휘하고 있을 뿐인데, 상대적으로 남성들이 자신들의 지위가 추락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럴 때 자신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하는 남성들, 사회에서도 점점 고립되고, 가정에서도 고립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를 원망하고 가족들을 원망하고, 그 원망 속에서 자신을 고립시키고 점점 망가뜨려가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남성들에게 위안을 주는 책이다. 일본 교사가 쓴 책,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라는 책이 있듯이, 이 책은 제목을 "혼자 잇고 싶은 남자"로 했지만, 사실 남자들이 함께 있어야 함을, 또 함께 있고 싶어함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지만 미처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점을 바로보게 해주고 있다. 그렇다. 어쩌면 남자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잃고 또 닫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능사가 아님을, 표현할 것은 표현해야 하고, 변화는 변화대로 인정해야 함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표현하지 못해서 그렇지 남자들도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책인데... 남자의 성장 단계라고 보면 된다.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꼭 이렇게 맞아 떨어지지 않지만, 태어나서 늙어가는 내내 남자들이 겪어야 하는 심리적 불안들, 증세들, 그리고 그것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무엇보다 읽으면서 같은 남자인 내가 위안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은 책이다. 그래, 이렇게 된 것, 우리 남자들만의 잘못은 아니야. 충분히 고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해. 그것이 서로 행복해지는 길이야.

 

이 책은 이렇게 남성들뿐만이 아니라 그런 남성들을 이해 못하는 여성들에게 도움이 된다. 도대체 저 남자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자기 존재감을 얻는 두 개의 관계 판이 모두 필요하다. 하나는 친밀감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사적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역할과 권한 부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공적 조직이다.  (316쪽)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두 관계에 변화가 생겼고, 어느 정도 이 변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때에 접어들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남성도 가정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지녀야 한다.

 

남성과 여성이 가정과 사회에서 각자 할 수 있는 만큼의 역할들을 맡아 해야지만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고, 우울증이나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줄어드는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 남성의 역할이 자꾸만 축소되고 남성의 힘이 점점 없어진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역시 세상은 남자만으로도 또 여자만으로도 굴러가지 않는다는 점. 서로 공존하며 관계를 잘 맺는 것... 동성과도 또 이성과도. 고맙다. 마음에 위안을 받으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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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 책


날 투명하게 만드는

칠흑같은 어두움.

그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존재가

묻힌다는 두려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내 곁에 다가와 길을

알려준 밝음.

하나, 둘, 천, 만 ……

별을 보며 갈 수가 있던˚

행복한 나날들.

어둠도 두려움도

밝음에 안겨 날

가득 채웠던 기꺼움.

이 기꺼움 속에 빛을

양보하고 내 곁을 떠난

첫사랑 별들.

내 곁을 떠나도 누군가의

두려움을 기꺼움으로

바꾸어 놓을 영원한 빛

내 책들.

 

--------------

˚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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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기 알베르 카뮈 전집 1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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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왜 떠나는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서, 새로운 문화를 맛보기 위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아니면 낯선 곳에 자신을 떨어뜨려 놓아 낯설어진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 이도 아니면 낯설어진 자신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자신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혹 놓치고 있는 자신을 찾기 위해서.

 

결국 여행은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한다. 그것이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든 어쨌든 최종 귀결은 바로 '나'이다.

 

그래서 여행은 현재까지의 '나'에다가 여행을 통해 얻은 새로운 '나'를 더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여행의 묘미가 있다.

 

내 여행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여행을 엿보는 것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경험을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가본 곳에 간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어보면 자신이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찾을 수 있어서 더 좋을텐데...

 

불행하게도 나는 카뮈가 여행하고 나서 일기를 쓴 이 나라들을 가보지 못했다. 아직도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다. 그럼에도 이 나라들에 대해서는 지구촌화 시대답게 텔레비전이나 책을 통해서 많이도 접했으니 그리 낯설지도 않다.

 

이 낯설지 않음을 토대로 카뮈의 여행일기를 읽어가려 했다. 물론 터무니 없는 생각이었음을 몇 장을 넘기지 않아 깨닫게 되었지만.   

 

카뮈가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필요한 경우에는 여행을 했고, 그 여행의 경험을 자신의 작품 속에 남기곤 했다고 하는데...

 

이 여행일기는 독특하게도 작가수첩에도 들어가지 않고 그렇다고 특별하게 어떤 작품으로 체화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물론 남미의 여행은 그의 작품 속에 남아 있기도 하지만, 이 여행일기가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독자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직은 어떤 것으로 변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일기.

 

그래서 그는 이 책에 실린 두 곳, 미국과 남미를 여행하면서 주로 사실에 중심을 두면서 일기를 썼다. 나중에 어떻게 작품을 쓰겠다는 작가수첩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만난 사람들, 그 곳의 풍습과 자연, 그리고 자신의 건강 등을 구체적으로 쓰고 있어서 여행을 하면서 카뮈가 어떤 상태였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구체적인 면... 가령 이 책의 33쪽에는,

 

  흑인 문제. 우리는 마르티니크 출신의 한 흑인을 이곳에 파견시킨 적이 있다. 그는 할렘에 숙소를 정했다. 그 사람은 다른 프랑스 동료들과 자신이 같은 인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그와는 반대되는 관찰. 버스 속에서 내 앞에 앉았던 평범한 백인이 일어서서 늙은 흑인 부인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프랑스에서도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아 흑인들을 차별한 경우도 있었고, 파농의 경우처럼 마르티니크 출신의 프랑스인들 역시 차별을 받았는데... 그것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서술한 다음, 미국의 특징으로 백인이 흑인에게 자리를 양보한 일을 나열한다.

 

이런 일화를 통해 흑백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며, 인종차별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을 은연 중에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상한 점은, 아무리 남부와 북부가 달랐다고 해도, 카뮈는 주로 뉴욕 쪽에 있었을테니 북부에서만 흑백의 인종차별이 많이 완화되었음을, 그러나 남부에서는 1960년대까지도 흑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백인이라는 개념은 찾을 수 없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결국 카뮈가 본 미국식 민주주의도 일부에 불과했음을 지금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미국에 대한 카뮈의 인상 또 하나... 36쪽에..

 

  철학과 관련된 도서 카드들을 찾아본다. W. 제임스, 그게 다였다.

 

유럽에 비해서 미국의 철학이 빈곤함을, 철학이라고 해봐야 겨우 실용주의 하나임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면 될테고...

 

이런 식으로 여행을 통하여 세계와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느낌을 정리하는데... 그가 미국과 남미 여행을 할 때는 유럽에서 주로 배를 타고 갔으니, 배를 타고 가며 바다에 대해 느낀 점.

 

이것은 카뮈의 바다에 대한 욕망이자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라고 할 수 있어서, 우리가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바다를 무척 사랑했다. - 이 고요한 무한을, 이 다시 덮이는 물길을, 이 매끄러운 길들을. 처음으로 수평선이 인간의 호흡과 맞먹는 크기를, 인간의 대담함만 한 넓이를 갖는다. 나는 늘, 인간들에 대한 강한 관심과 부산하게 움직이고 싶은 허영, 그리고 이 망각의 바다에도 손색이 없고 죽음의 환희와도 같은 이 무한한 침묵에도 손색이 없는 나 자신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찢어져 있었다. 나는 이 세상과 나의 동류들과 얼굴들에 대한 허영에 마음이 끌린디. 그러나 이 세기의 곁에서 나는 나만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바다, 바다와 닮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바로 그것이다.  54쪽.

 

이런 구절이 바로 여행일기에서 미국 여행을 마치게 되는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그리고 다음은 남미 여행인데... 이 여행은 미국 여행보다 힘들어 카뮈를 매우 힘들게 한다. 그러나 광대한 자연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에게서 희망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카뮈의 여행일기를 읽으면서 곧 카뮈가 여행한 곳의 풍습이나 문화를 엿볼 생각을 멈춘다. 그리고 카뮈의 여행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이런 카뮈라는 낯선 존재에게서 '나'를 찾으려 노력한다. 이것이 카뮈의 여행일기를 읽는 또 하나의 목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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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지문 -하
그레이엄 핸콕 / 까치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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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에 이어 하권은 이집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나라. 가보지 않아도 참 많이도 듣고 보게 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아니던가.

 

피라미드 하면 그냥 파라오(왕)의 무덤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물론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이긴 하지만 가장 거대하게 남아 있는 일명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군(세 개의 피라미드가 있다고 한다)은 결코 무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피라미드 속에서 왕의 시신부터 어떤 기록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이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이 아니라 천체를 지구에 옮겨 놓은 어떤 상징, 어떤 기록이라는 것이다.

 

무려 1만 년 전에 만들어졌을 거라고 추측하는데... 이 추측은 피라미드의 배열과 오리온자리의 가운데 세 별의 배열이 일치하는 년도를 중심으로 추측을 했다고 한다.

 

이 추측은 학계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것을 정설로 받아들이면 인류 문명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고도로 발전된 문명 이후에 인간들이 다시 석기시대의 삶을 살았다니... 이것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데... 피라미드군이 오래되었다는 증거를 저자는 다시 스핑크스에서 찾는다. 스핑크스는 사자라고 하고, 아마도 당시에는 사자의 머리였을 것인데... 후대 이집트 왕조에서 사람의 얼굴로 바꾸었을 것이라고.

 

왜 사자일까? 이것은 바로 황도와 관련이 있다. 춘분과 추분을 기점으로 한다면 춘분이 시작하는 별자라기 몇첫 년을 기점으로 바뀌어가는데... 1만 년 전이라면 이때 춘분점의 별자리는 사자자리라는 것이다.

 

이때의 년도와 피라미드의 건설 년도가 거의 일치하기에... 이런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들었는가?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라진 대륙에 살던 사람들이 멸망에 즈음해서 자신들의 역사를 남기려는 방편으로 이런 건축물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마찬가지고.

 

참 놀라운 주장이다. 책만 따라가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 정설과는 다른 주장을 펼친 학자들의 주장을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말미에 인류 멸망의 예언, 즉 이들이 이렇게 커다란 건축물을 만든 이유는 몇만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이것을 해독할 현명한 후손들을 기다린 것이라고 하는데... 그리고 마야의 달력이나 또 다른 예언서들을 종합하여 2000년대 초반이면 다시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하는데...

 

우선 마야 달력이 제시한 2012년은 지나갔고... 그렇지만, 책에서는 불로 멸망할 거라는.. 그런 불길한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인류가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니... 참...

 

아마도 시간이 좀더 지나면 이 저자의 주장이 맞는지... 우리가 배운 진화론을 새롭게 바꿔야 할지도 모를 주장을 하고 있으니...

 

게다가 대륙이동설이야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지만 지각변동설은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상이변과 지진 등을 이것과 연결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의 논리를 따라가도 이해 못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그토록 고도의 문명을 지닌 이들이 모두 실패해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누구도 후손에게 또는 다른 종족에게 자신들의 문명을 제대로 전수해주지 못했다는 것...

 

세계 모든 곳에서? 이게 가능할까? 어느 한 군데는 성공해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어야 하지 않나? 단지 우리가 이 지구에 살고 있었다라는 것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또 너희들도 위험하다, 지구는 예측가능하다고 한다면, 사람들을 교육시켰을 것이지 않나.

 

우리 인류의 먼 과거에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지만 서로 다르게 살아왔고,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다고 하지만, 지금과 거의 비슷한 천문지식, 수학능력, 그리고 어쩌면 더 뛰어난 건축술을 지닌 그들이 어떤 종족에게도 제대로 문명을 전수 못했다는 것은 좀더 해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뭐, 이것저것 다 떠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인류는 확실히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 어떻게든 우리는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

 

이 책에서 보여준 길을 걷지 않으려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 그 점을 생각하게 됐다. 상권과 하권을 이어서 읽으면 사라진 문명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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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69 2016-08-03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ㅡ읽어 보았는데 감회가 틀리네요.
다시 읽어 봐야 할 것 같네요

kinye91 2016-08-03 11:00   좋아요 0 | URL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은 것이 밝혀져 더욱 새로워질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든, 반대되는 사실이 나타나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