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묵의 건축 - 한국전통의 명건축 24선, 개정판 김개천 교수의 명건축 산책 1
김개천 지음, 관조 사진 / 안그라픽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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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24선에 안 들었다고 명건축이 아니란 얘기는 아니다. 어차피 책이란 지면에는 한계가 있으니 좋은 건축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건축을 선별한 건축가의 눈, 건축가의 마음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이런 책을 읽는 방법이다.

 

그가 왜 이 건축을 명건축이라고 했는가? 하고많은 건축 중에 왜 이 건축을 선택했는가? 그는 이 건축에서 무엇을 보는가?

 

이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가면 그가 선정한 24선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말하고 싶고, 이렇게 말해야만 하는데...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에게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 책은 분명 실패한 책이다. 이 책에서 그런 경탄을 자아내는 것은 너무도 아름답게 잡아낸 사진 뿐이다. 글로는 이런 경탄을 자아낼 수가 없다. 오히려 우리를 더 혼돈 상태에 빠뜨린다.

 

그냥 책에서 건축을 찍은 사진을 보면서 감탄을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멋있게 사진이 잘 나왔다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사진을 보고 그곳을 찾아갔을 때 우리는 결코 사진에 나온 장면과 같은 건축을 찾을 수 없다. 우리 눈에는 더 추레해 보이는 건축만이 존재할 뿐이다.

 

사진으로 봤을 때 너무도 선명하고 아름다운 단풍을 직접 산에 가서 보라. 사진 속의 일관된 선명성, 아름다움들이 곳곳에 얼룩이 진 단풍들과 다른 요소들에 의해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다.

 

마찬가지다. 건축도. 사진으로만 보며 감탄을 자아내던 그 건축이 막상 가서 보면  애걔 겨우 이거야 할 때가 많다.

 

결국 건축은 사진으로 보면 안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기가막히게 잘 찍은 사진을 보며 감탄하지만 사진은 카메라의 시선에 담긴 건축만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고 사진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진을 찍은 관조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으로 우리나라 건축을 남겨주신 것에 대해... 다만, 사진에 건축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직접 보아야 한다. 직접 보면서 느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느끼지? 건축의 멋을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리 멋진 건축을 보여줘도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일부만 보고, 일부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 점을 보완해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을 쓴 저자의 글이다. 저자의 글은 건축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게 하고 전체적으로 보게 한다.

 

건축만 보게 하지 않고 주변과 함께 보게 한다. 또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않게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게 한다.

 

외형에 담겨 있는 정신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건축에 관한 책이긴 하지만 동양사상에 관한 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우리나라 건축이 자연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존재했다는 사실, 그렇게 지어졌다는 사실, 그것은 바로 자연융화의 사상을 생활에서 실천하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이 표현되었다는 것.

 

건축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은 어렵다. 마치 어려운 동양 경전을 읽는 듯하다. 뭔 내용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 같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그렇지, 그렇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런데도 그 건축의 정신이 쏙 들어오지는 않는다. 동양경전을 한 번 읽고 이해할 수 없듯이, 이해는 커녕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고 지나기 일쑤인 그 글들과 같이 이 책에서 건축을 설명한 글들도 만만치 않다.

 

다만, 우리 건축이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만만치 않은 존재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제목도 '명묵의 건축'이다. 밝음과 침묵이 함께 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무엇 하나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짝이 있다. 상대적이다. 그러니 '명묵(明默)'이다. 우리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과 함께 존재한다. 건축이라는 외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조상들의 사상이라는 정신과 함께 존재한다.

 

그 점을 알라고 이 책의 글은 이렇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진으로 감탄하고, 글로 무언가 모를 분위기에서 헤매면서 우리 건축이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딱 이거다 라고 정리하지 못함, 거기서 우리 건축의 멋, 위대함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 소개된 건축, 대부분은 내가 보았던 건축이다. 저자와 전혀 다르게 느꼈던, 어떨 때는 전혀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그 건축에서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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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리면 낫는 9궁 통기법 오렌지북스 43
고정환 외 지음 / 건강다이제스트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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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각자의 사연을 지닌 아픈 사람들이 의사의 처방에 따라 입원을 하게 되면 환자가 된다. 각자의 사연, 특성은 고려할 요소가 아니고 오로지 의사의 처방과 지시만이 고려할 대상이 된다.

 

누구누구라는 고유성은 환자복 앞에서는 그냥 환자가 된다. 그에게는 치료만이 필요할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예외도 없다. 아무리 고관대작이라도 의사 앞에서는 환자일 뿐이다.

 

질병을 지니고 있는, 따라서 그 질병을 의사가 처방한 대로 따라서 치료해야 하는 환자. 그런 환자들에게 주체성이란 없다. 오로지 의사의 지시와 처방만 있을 뿐이다.

 

가끔 병원에 가면 이런 것이 너무도 답답했다. '나'란 사람은 사라져 버리고 오직 '환자'만 남아 있는 꼴. 여기에 내 의지나 의견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작용을 하니...

 

그러다 이런 건강에 관련된 책을 읽어보면 마은 한 켠이 뻥 뚫린 듯한 느낌. 내 건강을 내가 주체가 되어 챙길 수 있단 느낌을 받아서 좋다

 

이 책은 '기'에 관한 책이다. 몸을 두드려서 기를 통하게 해서 질병을 치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물론 '기'에 대해서는 비과학적이라는 둥 미신이라는 둥 말이 있기도 하지만, '기'를 과학적으로 해명하려는 노력이 꽤 오랫동안 있어왔고, 그것이 서양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기치료사'라는 직업이 있으니, '기'를 과거의 미신이라든지, 또는 마음을 속이는 방법이라고만 치부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책의 앞부분에 '기'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많은 것은 그동안 서양의학에 눌려 '기'가 비과학적, 비의학적인 처방으로 생각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기'에 관한 치료방법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동양철학과 관련하여, 자연, 우주와 관련하여 인간이 균형을 이룬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앞부분이라면, 중간 부분부터는 구체적인 '기치료'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물론 동영상 CD가 제공되어 있지 않아 책에 나온 사진만을 보고 따라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이 책의 취지에 공감한다면 좀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기'가 얼마나 우리 몸에 중요한지를 이야기하고 있고, 그 '기'가 자연의 삶과 조화를 이룰 때 잘 흐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자연과 조화된 삶이란 편한 마음, 바른 자세와 바른 먹을거리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병원에서처럼 의사에게 자신의 질병을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선 마음을 다스리고 음식을 골라 잘 섭취하며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산다면, 그것이 바로 '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는 삶이라고 하는 것.

 

이 책이 주장하는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책에서 제시한 몸을 두드리는 방법, 명상하는 방법 등을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를테지만, 그래도 마음 편하게, 좋은 음식을 먹고, 바른 자세로 살아간다면 건강유지는 자연스레 될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할 것이다.

 

아직 이 책에 제시된 방법을 따라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흉내는 내보고 싶다는, 내 건강의 주체는 바로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음식에 관해서도, 질병에 관해서도 다른 방향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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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텔레비전에서 가정용 전기세 누진제로 말이 많았다. 산업용보다 가정용이 많이 쓰면 쓸수록 요금 폭탄을 받게 되는 구조.

 

산업화를 이루려고 했던 시기, 대규모 공장들이 원활하게 운영되게 하기 위해서 산업용 전기 요금은 많이 낮추었지만, 반대로 절약을 강조하면서 가정용 전기 요금은 단계를 나눠 최고 요율이 무려 11.7배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런데 올해처럼 무더위가 계속된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각 가정에서 덥다 덥다 하면서도 전기세가 두려워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고 하는데...

 

노약자가 있는 집안에서 에어컨 없이 하루하루를 견디기는 너무나 힘든 요즈음인데... 그것도 며칠 더위가 지속되다가 선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근 몇십 일째 무더위가 계속되고,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으니, 사람들이 가정용 전기 누진세에 불만을 가질 만도 하다.

 

게다가 가정용 누진세가 폐지된다고 해도 전력 수급에 그리 큰 지장을 주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까지 있으니, 이래저래 누진제는 문제가 많다는 중론이다.

 

어떤 사람들은 누진제를 없애면 부자감세가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 아니냐고 하던데... 누진제가 되어도 부자들은 그렇게 전기를 썼을테니, 그들에게는 전시세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나마 전기세로 세금이 조금 감면이 된다고 해도 없는 사람들이 좀더 편하게 여름더위를 나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기도 하는데...

 

우선은 전기세 누진제를 개편해야 한다. 지금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20% 감액이라는 한시적인 당근 말고 말이다.

 

당장 더위로 쓰러져가는 사람들, 더이상 고통받지 않게...지금도 늦은 감이 있지만... 그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해줘야 한다. 정부가 못하면 국회라도 - 정말로 국민을 대변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면 - 나서줘야 한다. 절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이건 미봉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장은 전기세 요금 개편부터 해야 하지만, 적어도 한 나라를 책임진 정부와 국회라면, 그리고 에너지 정책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들, 또 이런 더위를 지속적으로 겪고 싶지 않은 국민이라면 좀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에 나가보면 실내에서 느끼는 더위보다 더 덥다. 그리고 기상청 발표 온도보다 바깥의 온도는 훨씬 높다. 왜냐하면 태양의 열기에 더해지는 열기가 기본적으로 두 개가 더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열기...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좀 많은가.

 

천만 대가 넘는 자동차가 한 여름에 태양과 경쟁하듯이 열기를 내뿜어 대고 있으니...

더 더울 수밖에.

 

또 하나는 에어컨 송풍기에서 나오는 열기다. 지금은 개선되어 그 송풍기의 바람이 직접 앞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위로 나오게 덧씌웠지만, 그렇다고 열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안에서 시원하기 위해 바깥으로 뽑아내는 열기가 바깥의 열기를 더해주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결국 우리의 생활을 바꾸지 않으면 우린 이런 더위를 해마다 겪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촌 곳곳에서 여러 환경 재난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어쩌면 우리 인간들이 초래한 재난일지 모른다는 생각.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워야 하고, 그 해결책을 위해 지구촌 사람들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는 생각.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위기로 나타나고, 지구가 못살겠다고 -러브록의 이론에 의하면 지구는 생명체다. 가이아다. 그 가이아가 견디지 못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 발작을 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까?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우리의 생활을 바꾸어가려는 노력도 해야겠고, 정책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 에너지 - 여름에 태양열에 더해주는 열기들을 내뿜지 않는, 또는 아주 덜 내뿜는 - 를 사용하도록 해야 하고, 친환경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올해, 정말로 견디기 힘든 무더위, 가정용 전기세 누진제 문제로만 그치지 말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정말로, 우리가 지구와 공생하면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에너지 정책, 환경 정책. 그런 정책을 이제는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따님(사실은 '따'자가 아래 아 (、)자 였다) 이라는 출판사가 있었다. 이 출판사에서 환경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왔고, 몇 권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 적이 많았다.

 

90년대에, 지금으로부터 무려 20년 전에 환경에 경각심을 불어넣어준 출판사였는데... 지금도 책을 내고 있는지, 여러모로 생각할 것이 많은 책들을 냈었는데... 앞에 나온 책들은 그 중의 일부다.

 

박석순, 지구촌 환경재난, 1997년 2쇄.

앨런 테인 더닝, 소비사회의 극복. 1997년 2쇄.

스키타 사토시, 자동차, 문명의 이기인가 파괴자인가.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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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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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 보라.

 

마치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된 것처럼 이곳저곳을 살피며 천천히 자연의 흐름처럼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시골길을 걷는다면 오산이다. 시골길을 걸으며 낭만을 즐긴다는 생각이 너무도 잘못한 생각임을 조금만 걷다 보면 알게 된다.

 

아주 좁은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길을 빼고는 모든 길들을 차들이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골길일수록 무슨 심사인지 '접도구역'이라고 해서 사람이 마음 놓고 걸을 길을 마련해 놓고 있지 않다.

 

걷는 통한 씽씽 쌩쌩 달리는 차들에 움찔움찔 놀리기 일쑤인데... 한적한 시골길마저 이럴진대, 도심의 길들은 어떤가.

 

도심의 길들은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다. 차들을 위한 길이다. 심지어는 사람이 걸어다니라고 구획해 놓은 보도까지 차들이 침범해 마치 자기 자리인양 떡허니 서 있다. 보도변 주차장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도를 침범해야만 한다. (이 책, [서울 강남의 보도. 사람은 남고 자동차는 가라]는 장에 잘 나와 있다) 

 

이래저래 보행자들이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도로가 없다. 여기에 더하여 사람을 위해 만들어 놓았다는 광장을 생각해 보자. 특히 서울 중심가에 있는 광화문 광장.

 

그 광장의 좌우로 차들이 달리고 있다. 광장에는 차들이 들어오지 못하지만 광장에 가기 위해서는 차들을 통과해야 하고, 기껏 통과해서 광장에 도착했다고 해도 보이는 것은 좌우의 차들이다. 물론 앞쪽으로 광화문이 보이고, 그 차들의 홍수 속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위안이 되지 않는다.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 속에서 사람들은 광장이랍시고 광화문 광장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사람을 위한 도로는 없다. 아니, 도로라는 말 자체에 이미 차들을 위한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로지 통과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 그것은 도로다. 우리가 생각하는 과는 다르다. 은 목적지에 가기 위한 통과지점이라는 의미보다는 그 과정이 바로 목적이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길은 사람을 위한 장소다. 이 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만들어 간다.

 

이 길을 거리로 바꾼다. 이 책은 이런 길, 거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의 거리는 과연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여러 도시의 거리들을 살피면서 얼마나 사람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때론 한탄하면서 때론 분개하면서 보여주고 있다.

 

(단지 차도와 보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거리를 중심으로 들어서 있는 건물들, 그리고 그 건물들의 이름표라고 할 수 있는 간판들 모두를 다루고 있다)

 

거리가 살아 있으려면 사람들이 걸어다녀야 한다. 그것도 마음 놓고. 이것저것을 보며 이곳저곳을 들를 수 있으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때론 걸으며 때론 앉아서 쉬며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곳, 그곳이 바로 거리가 되어야 한다.

 

이런 거리가 많을수록 우리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의 거리들은 이미 차들에게 점령당했다. 사람이 아닌 차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차들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거리는 머무는 곳도, 과정을 수행하는 곳도 아닌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나쳐야만 하는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차만이 아니라 거대한 건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에게도 점령당했다. 사람들을 너무도 왜소하게 만들어버리는 몰개성적인 그 건물들...)

 

이런 변화가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아니라고 한다. 우리의 행복은 거리를 사람들이 돌려받을 때 돌아올 수 있다.

 

이 책이 나온 때가 1999년이니 이미 한참 지난 때의 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 책이 나오고 근 20년이 되어가는데도 이 책에서 비판한 내용들이 아직도 우리에게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거리는 아직도 우리 사람보다는 자동차들이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다. 많은 도시에서 차 없는 거리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는 한시적이다. 주인공들에게 조연들도, 엑스트라들도 좀 배려하라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본말전도다. 주인공은 분명 사람이어야 한다. 거리의 주인공은 사람, 조연과 엑스트라는 차들과 건물이 차지해야 한다)

 

이 점이 안타깝다. 아마 저자도 이 점을 가장 안타깝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누군가 해주기만 해서는 안된다. 저자도 말한다. 거리를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지내게 하는 장소가 되게 하는 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많았다. 좋은 말이고 옳은 말이라고... 더 시민의식이 깨어난 지금 시대에 우리는 이 책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거리를 우리 사람들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 책이기도 한다.

 

많이 좋아지고 있으니, 이 책에서 한 주장을 받아들이고 사람 중심의 도시, 사람 중심의 장소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면을 생각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의 거리, 아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생각하게 한 책이다.

 

덧글

 

이 책을 검색해보면 절판이라고 나온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이 책에서 말한 것들이 과거의 일로 되어버린 것들도 많다. 그렇다면 절판이 타당할 수도 있다. 다만, 이 책에서 말한 것들이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 개정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때 개정판은 절판된 이 내용을 그대로 싣되, 변한 것을 그 내용 다음에 실어서 비교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이건 순전히 내 바람이다.

 

가령 청계천 같은 경우, 이 책이 나올 당시는 복개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복개가 되어 있다. 이 변화를 건축가의 눈으로 다시 설명해 주는 것도 좋을 듯하니, 이런 식으로 세월을 반영한 변화를 이 책도 반영해서 다시금 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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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해달 2025-01-17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매우 좋아하는 책이예요. 서현 건축가님도 너무 좋아하구요.

kinye91 2025-01-18 11:00   좋아요 0 | URL
한 때 건축에 관한 책 읽을 때 서현 건축가 님의 책 좋게 저도 좋게 읽었어요.
 
빵의 쟁취
표트르 알렉세이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여연.강도은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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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을 해보니 이 책의 번역본이 두 개다. 아무 생각도 없이 이 책을 골랐는데, 그렇다고 두 책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크로포트킨의 책은 다 읽고 싶어한다)

 

번역본이 어떤 책이든 두 책 모두 크로포트킨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잘 전달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은 예전에, 아주 오래 전에 우리 말로 번역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나키스트가 바로 크로포트킨이고, 이 책은 크로포트킨의 책들 중에서 "상호부조론'과 더불어 잘 알려진 책이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도 아나키즘이 우리나라에서 많이 공부됐고 또 그를 자신의 사상으로 삼은 사람도 많았다고 하는데, 해방이 되고 나서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아나키즘은 서서히 사라져 가고 말았다. 그러다 최근에 들어서 다시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고 있는데... (아나키즘에 관한 책이 다시금 나오기 시작한 것, 재번역되는 것은 이런 추세를 반영하는 것일 것이다)

 

이는 우리가 경쟁과 배제를 통해서 앞만 보고 달리며 주위 사람들을 내친 지난 날들이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이제는 경쟁과 배제보다는 포용과 협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으로 우리는 이 지구라는 섬에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갈수록 자연환경이 나빠지고 있으며, (올해의 이 기록적인 더위를 보라. 이것이 올 한 해로 끝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온갖 종교들이 극심한 갈등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이 때에 '자치, 자율, 협동(상호연대)'을 주장하는 아나키즘이 다시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치, 자율, 협동(상호연대)'는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인류에 대한 사랑이 아나키즘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제목은 과격하다고 할 수 있는 "빵의 쟁취"를 읽으면서 '쟁치'란 말 밑에 깔려 있는 사랑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크로포트킨이 아나키즘을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인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인류가 그 신뢰를 다시 살려 함께 잘 살아가려면 '사적 소유'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는 바로 인류에 대한 사랑을 강하게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게 하면 누가 일을 하겠는가? 라는 반론에 대해서 크로포트킨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의미 있는 삶을 살려는 욕구가 있고, 그 욕구를 누구의 간섭 또 지배를 받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펼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이런 반론들에 대한 크로포트킨의 주장은 '반론들'이란 장에 잘 나타나 있다. 꼭 그 장이 아니더라도 이 책 내내 크로포트킨은 이런 반론에 대한 재반박을 하고 있다. 인류에 대한 믿음,그리고 지금의 현조건에서도 인류는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 아나키즘의 기본 사상은 바로 사랑이다. 인류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 모두가 좋은 삶을 살 권리가 있음을, 그리고 충분히 가능함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상이다.

 

결코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가능함을 이 책에서는 공업, 농업 등 구체적인 경제적인 요소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물론 과학기술에 대해서 크로포트킨은 그 부작용을 심각하게 겪지 않은 시대에 살아서 지금보다는 낙관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다. 농업 부분에서 기술을 적용하는 문제도 그렇다. 그러나 이런 한계른 시대적인 한계이고, 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나키스트의 자세일테니... 오히려 지금의 현실과 그의 주장을 비교하면서 읽으면 더 좋은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구체적인 사항들이야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 현실과 비교하면서 읽으면 되지만, 이 한 가지는 꼭 명심해야겠다.

 

크로포트킨이 이 책에서, 아니 그의 삶에서 주장한 것 바로, 이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가 아닐까 한다.

 

"모든 것이 모두에게 속한다! 남자와 여자가 일을 공평하게 분담해서 한다면, 그들은 함께 생산한 것을 공정하게 나눌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나눈 것들은 그들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주기에 충분하다. 더 이상 '일할 권리' 혹은 '각자는 자신이 일한 결과물들을 모두 가져간다'와 같은 애매한 문구들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선언하는 것은 '좋은 삶을 살 권리'이다. '모두가 좋은 삶을 살 권리!'이다."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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