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풀꽃도 꽃이다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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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이름만으로도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이 읽게 만들 수 있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조정래일 것이다.

 

어떤 프로그램에 나와 그는 말했다. 자신은 아직도 원고지에 손으로 글을 써서 넘긴다고. 이름 없는 작가들이 이렇게 했다간 원고를 퇴짜 맞을 가능성이 아주 많지만, 자신에게는 어쩔 수 없다고. 작가로서의 자부심과 조정래라는 작가가 우리나라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잘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대형작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이름보다는 우리나라 현실을 소설 속에서 재현해내고, 그것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한 작가, 어쩌면 그는 예전의 작품인 "태백산맥"의 작가로 단번에 그 자리를 차지했고, 그 이후의 소설들을 통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그가, 일제시대, 6.25, 독재시절 개발시대 등을 소설에 담아 내었다면, 다음 소설은 자연스레 교육 문제일 수밖에 없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교육 문제에 관심을 지니지 않을 수 없을테고, 교육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지금 경제 문제와 더불어 너무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망국론이 나온 지 오래고, 그렇지만 변하려는 몸부림이 도처에서 있었지만 변한 것이 잘 보이지 않는 교육. 교육의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고 참으로 더디게 나타난다고 해도, 대안학교 붐이 일었던 것이 1997년 정도부터이니 대안 교육도 이미 20여년이 되어 가는데, 그 때 대안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제는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일할 때가 되었음에도 어떤 변화가 보이지 않으니...

 

교육은 이렇게 20년이 되어도 그 변화를 잘 포착하지 못하는데, 해방 이후 공고화된 교육 문제가 어떻게 몇 년 내로 싹 해결되겠는가,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해결이 아니라 더 안 좋은 쪽으로 심화되었다는 것이 조정래의 생각이 아니던가.

 

이 소설을 읽어보면 참, 암담하다. 도대체 희망이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라면 이 나라 도대체 가능성이 있는 나란지 참담한 마음만 들 뿐이다.

 

이게 소설 속 상상의 세계에서나 그렇다면 괜찮겠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의 현실이 그대로 느껴지니 더 문제다. 그러니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불편해진다.

 

현실은 그대로인데,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결말이 없다. 그냥 진행형이다. 가장 암담한 순간을 제시해 놓고 소설은 끝나버린다. 이게 현실이라고, 똑바로 보라고, 지금 대치동에 가 보라고? 이렇게 하고 있다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소설 속에 긍정적인 인물들도 나온다. 모두 전교조 교사들이라는 짐작이 가게 만드는 그런 교사들인데, 이들에 공감하기가 참 힘들다. 특히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강교민". (그는 말했다. 이 이름은 자기가 포기할 수 없는 이름이라고. 자기의 의도가 담긴 이름이라고. 교육민주화의 줄임말) 이토록 완벽한 교사가 있을까?

 

교장에게서도 무시당하지 않고, 동료교사들에게도 인정을 받으며 학생들에게는 짱이라는 소리를 듣고 수업도 잘하고 생각도 바른데, 여기에 자기 자식 교육까지 완벽하게 잘 시킨 사람... 이상적이어도 너무 이상적이다. 이런 사람이...

 

이 사람의 아내는 교사였는데, 아이가 혼자 밥 먹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해서 학교를 그만두고 전업주부 생활을 한다. 그리고 아이가 알아서 공부할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하고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혀 강요는 없다. 아이는 알아서 자기주도 학습을 한다.

 

그런데 좋아보이지 않는다. 이 완벽한 가정의 모습, 가정과 학교의 생활을 일치시킨 강교민 선생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심보인지 반발감이 막 생긴다. 도대체 뭐야, 이 사람? 하는 마음이 든다.

 

그가 해결 못 할 일은 없다. 아니 있다. 그것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편법, 개인의 힘이 작동할 수 없는 함법을 가장한 편법은 그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이것 빼면 나머지는 모두 '수퍼맨'이다. 그는 교육계의 '수퍼맨'이다.

 

하지만 그런 교사는 없다. 그리고 그의 가정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다. 그의 아내는 아이가 혼자 밥 먹는 것 못 보겠다고 학교 그만두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다른 맞벌이 가정들은? 자신의 인생은? 그녀 역시 자신의 인생을 가정 또는 자식에 건 것 아니겠는가?

 

이런 점에서 주인공이 우선 감정이입을 하는데 거리를 두게 만든다. 문제적 시대에 문제적 개인이 등장하는 것이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건 너무도 완벽한 중세의 영웅이 소설이 나와 버린 것이다.

 

그런 그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범속한 사람들일 뿐이다. 영웅 앞에서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인물들. 이것이 소설에 마음을 주기 힘들게 한다.

 

게다가 이 땅의 어머니들은 다들 왜 이리 못됐는지... 자신의 인생을 오로지 아들의 인생에 건다. 아들이 무슨 자신의 아바타라도 되는 줄 아는지. 그러나 특정 엄마들은 이럴지 몰라도,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렇지 않다.

 

아들과 자신의 인생을 구분할 줄 아는 엄마들이 더 많다. 그리고 그런 엄마들 때문에 이런 지옥같은 교육현실에서도 살아남는 아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 점이 아쉽다. 소설에서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지만 자식과 자신의 삶을 구분할 수 있는 엄마들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전혀 나오지 않기에 이건 너무 과장이 심한 것 아냐, 그냥 다른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기가 쉬어진다. 감정이 이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설을 읽으며 아이들의 불행에 두 손을 꽉 쥔다든지, 눈물을 머금는다든지, 화가 나 두 손이 부르르 떨린다든지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소설은 내 마음 바깥에서 그냥 사건을 전개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등장인물에게도 마음이 다가가지 않는다. 도대체 왜 다들 이렇게 나쁜 쪽 인물들과 성공한 인물들만 나오는지...

 

작가가 너무 위에서 교육 현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 현실은 위에서 그리고 바깥에서 보면 진실을 알 수 없다. 그 복잡함을 알 수 없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얽히고 설켜 있는 그 복잡함을 무슨 알렉산더라고 단 칼에 잘라버릴 수는 없다.

 

단 칼에 잘라버리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냥 통쾌할 뿐이지, 그 어려움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은 강교민이나 다른 인물들처럼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실에 처절하게 실패해 가는 보통 사람이 나와야 한다.

 

교사라면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학교 권력자인 교장과 교감, 교육 당국에 끼어서 고뇌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야 한다. 그런 사람, 결코 이 소설의 주인공인 강교민처럼 학생들에게까지 짱으로 불리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학교에서 하겠는가. 얼마나 많은 실패를 수업에서 하겠는가.

 

마찬가지다. 엄마들도... 엄마들을 이렇게 모두 악마로 만들어 버리면 엄마들의 모습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서 무조선 좋은 대학, 좋은 성적, 이것은 엄마들이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 중 일부일 뿐이다.

 

그들의 고뇌는 나오지 않고 오로지 결과만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고전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처럼 악인은 그냥 그냥 악인일 뿐이다. 변화가 없는. 다만, 힘에 의해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누를 뿐인.

 

성적지상주의, 학교폭력, 왕따 문제, 영어만능주의 등 많은 것들을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데, 어느 하나도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지 않다. 그 점은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교육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되갰는가. 그것은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 소설의 장점을 이 점에서 찾는다. 조정래라는 문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가 교육 문제를 소설로 다뤘다는 것. 교육 문제를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졌다는 것.

 

이제 이 화두를 풀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누가 대신 풀어주지 않는다. 누가 대신 풀어주길 기대해선 안 된다. 자, 화두는 나왔다.

 

그 화두를 중심으로 궁리하고 고민하자. 짧은 시간에 깨달으려고 하지 말자. 돈오점수(頓悟漸修)가 아니라, 점수돈오(漸修頓悟)다. 천천히 천천히 고민하고 실천하고 하는 과정에서 해결책은 하나하나 나오기 마련이니.  

 

덧글

 

여성주의자들 입장에서 이 소설을 읽으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 이 나라 교육 문제는 사회 구조에서 비롯됐는데, 마치 여성들이, 특히 엄마들이 일으킨 것처럼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극성스런 교육열은 사실 교육 문제의 일각에 불과하다. 더한 것은 제대로 살기 힘든 우리나라 사회 구조 아니겠는가. 그 점이 이 소설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았으니, 여성들, 특히 자녀를 둔 여성들에서 이 소설은 많이 거슬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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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와 왕국 알베르 카뮈 전집 8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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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제목을 단 작품을 찾으면 없다. 이 제목은 이 소설집의 전체적인 주제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니까 각각 다른 제목을 달고 독립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단편을 하나의 주제로 꿰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제목이다. 그러니 제목에 해당하는 소설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말 것.

 

또다시 카뮈다. 무언가 몽롱한 환상상태로 나를 빠뜨린다. 무어라 딱 정리할 수 없는, 그러나 자꾸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소설들. 이야기들. 카뮈의 이번 소설을 읽으며 자꾸만 카프카의 소설들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도대체 이 몽환적인 분위기는 뭐지.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이런 분위기로 소설이 전개되고 있는데, 카프카 소설에서 느끼는 그런, 어두움 속에서 헤매게 하는 그런 분위기를 또 느끼고 있으니...

 

그래도 이 작품집에는 내용이 명확한 것도 있다. 그냥 어둠 속에서 꿈속을 헤매듯 두손을 허우적 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되는 소설, 그러나 읽고 난 뒤 뭔가 생각하려면 또다시 헤매야 하는 그런 소설들.

 

제목에서 이 점을 너무도 잘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적지와 왕국" 번역자가 지금으로부터는 조금 먼 과거에 활약했던 분이라서 제목이 한자어로 되어 있는데, '적지'는 적의 영토가 아니라 유배지, 추방지 정도라고 하면 될 듯하다.

 

즉, 자신이 살고는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장소는 아닌 곳, 그곳이 바로 '적지'다. 그렇다면 '왕국'은? 바로 '적지'의 상대어다. 자신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살고 싶은 곳, 이상향, 유토피아 정도가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왕국'이다.

 

그렇다면 제목인 '적지와 왕국'은 비루한 현실에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이상 세계를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뜻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서문에 이런 뜻이 잘 나와 있다. 서문을 직접 보자.

 

  이 단편집은 다음과 같은 6편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간부>, <배교자>, <말없는 사람들>, <손님>, <요나>, <자라나는 돌>이 그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주제, 즉 '적지'의 문제가 내적독백에서부터 사실주의적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여섯 가지의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사실 이 여섯 개의 이야기들은 비록 나중에 따로따로 다시 손질하고 다듬긴 했지만 원래는 단숨에 연이어 쓴 것들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또한 문제시되고 있는 '왕국'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들이 마침내 새로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되찾아야 할 자유롭고 벌거벗은 삶 같은 것과 일치한다. '적지'는 그것 나름대로 우리들에게 그런 삶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준다. 물론 우리가 그 '적지'에서 예속과 동시에 소유를 거부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지만.

(서문에서. 9-10쪽)    

 

'적지'에 대해서 절절히 느낄 수 있는 소설로는 아마도 첫번째 소설인 <간부>가 될 것 같고, 간부라고 해서 불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과연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래서 자신의 평범한 결혼생활이 '왕국'이 아니고 '적지'임을 생각하게 하는, 사막 한 복판에서 깨닫게 되는 그런 내용... 물론 명확이 내용이 잡히지는 않지만.

 

여기에 비하면 적지와 왕국이 함께 나오지만 결국 적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모습을 표현한 소설이 <손님>이 아닐까 싶은데...

 

인종차별을 거부하는 모습에서, 또 권력에 종속되어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모습에서 '적지'에서 '왕국'을 추구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지만, 그가 놓아준 사람이 결국 사람들이 정한 길로 가는 것을 보고서는 '적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닫게 하는 그런 소설. 마찬가지로 <요나>도 그렇다. 세속적인 성공? 이것이 바로 '적지' 아닐까 하게 하는, 카뮈 소설치고는 참 쉽게 읽히는 그런 소설.

 

이 중에서 내 마음에 가장 아프게 들어온 소설은 <말없는 사람들>이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생각 차이, 입장 차이가 얼마나 큰지, 그들에게 과연 소통이 있는지... 왜 노동자들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생각하게 하는. 우리의 지금 현실과 비교해도 결코 달라지지 않은, 그런 노동자들의 현실. 그러나 여기서 노동자들은 말없이 자본가에게 대항이라도 했지, 지금은 그도 불가능한 상태 아닌가 하는, 그런.

 

이런저런 이유로 여섯 편의 단편이 '지금-여기'의 삶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리라'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카뮈의 말처럼 그냥 현실에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무언가 "찍"소리라도 내야 한다.

 

밟았는데 꿈틀거리지도 않는 지렁이는 너무 세게 밟혀 이미 죽었거나 아니면 그 고통을 당연스레 받아들이는 자기 의지가 없는 지렁이일 뿐이다. 꿈틀거려야 한다. 그래야 '적지'에서 '왕국'을 꿈꿀 수가 있고, '왕국'을 '적지'로 가져올 수가 있다.

 

그 점을 생각하게 한 소설들이다. 카뮈, 읽을수록 잘 모르겠지만, 읽을수록 왠지 매력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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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9-08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책 저도 처음이네요! 저장해둬야겠어요~^^

kinye91 2016-09-08 08:27   좋아요 1 | URL
저도 요즘 책세상에서 나온 김화영 번역의 카뮈 전집을 읽고 있어서 읽게 됐어요. 카뮈 작품으로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인데, 저는 좋게 읽었어요.

[그장소] 2016-09-08 09:08   좋아요 0 | URL
책세상 에서 나온 카뮈는 대부분 다 본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병원은 고문이다 1

             - 들어가며


인간이라는 말엔 사이가 있다


사이에서 함께 살아가면 공동체

사이에 가두어 놓으면 수용소가 된다.

오래 전부터 사이도 공동체였는데

근대 산업화 이후 개인주의 시대

사이는 수용소가 되었다.

군인, 학생, 환자

근대들어 군대, 학교, 병원에 갇혀

고문을 당하게 된 존재들

군대는 격리를 통해 공동체에 편입하는

개성을 빼앗긴 사회 부속품을 조달하고

학교는 교육을 통해 공동체에 군림하는

사람들을 낮춰보는 특권층을 만들어내고

병원은 수용을 통해 공동체에서 격리하는

따로 관리하고 치료해야 할 존재로 격하하니,

공동체가 수용소가 되어 버렸다.


인간이라는 말엔 사이가 있다.

그 사이에 우리는 수용소를 두고

사람들을 고문하고 있다.

사람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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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 도시의 시인들 - 삶의 진부함에 맞서는 15개의 다른 시선, 다른 태도
김도언 지음, 이흥렬 사진 / 로고폴리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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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15명에 대한 인터뷰집이다. 어떤 시인들이 나오는지 먼저 보자.

 

김정환, 황인숙, 이문재, 김요일, 성윤석, 이수명, 허  연, 류  근, 권혁웅, 김이듬, 문태준, 안현미, 김경주, 서효인, 황인찬

 

대놓고 말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시인들을 만났다고. 그리고 소설가이자 시인이고 출판업에 종사하는 저자가 자기가 그 시인의 작품을 어떻게 만났는지, 또 얼마나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고백하고 있다.

 

인터뷰어로서 인터뷰이에 대해서 많이 알고 갈수록 얻어낼 것이 많을수도 있지만, 자기의 인식틀에 갇혀 새로운 무엇을 얻어내지도 못하는 일도 있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그 점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궁금증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시인들이 참 다른 사람들인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우리와 같은 세속 도시에 살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이 책에 나온 시인들, 이미 읽어서 알고 있는 시인도 있지만 처음 이름을 들어본 시인도 있는데, 그들의 시집을 읽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딱히 어떤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말을 하기는 힘들지만 첫 시작을 한 김정환 시인에게서는 집안의 자유로움을, 즉 자식이 무엇을 하든 부모의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허용해주는 그런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함을 기억했고,

 

황인숙 시인에게서는 언어적 감각이 매우 뛰어난 시인이라고, 달랑 두 권의 시집밖에는 읽지 못했지만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데, 그가 길고양이들을 위해 먹이를 날마다 가져다 주고 있다는 삶에서도 생명에 대한 결이 참으로 부드러운,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이라는 구절이 기억이 나고, 

 

이문재 시인은 최근에 내가 좋아해 그의 시를 많이 읽는 시인이었는데, 시대가 점점 더 엉망으로 흐트러져 가는 것에 대한 분노가 인터뷰 내내 묻어나와서 그에 동감하고 있기도 했고,

 

김요일, 성윤석, 이수명, 허연, 류근, 김이듬, 김경주, 황인찬 시인의 작품은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들 역시 나름대로 자신의 시세계를 개척하고 유지해 나가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한 번은 이들의 시도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권혁웅 시인의 작품에서 '독수리 오형제'를 계속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있었는데, 그가 젊은 시인들에게 '미래파'라는 이름을 붙여 기존 평단의 문학권력들로부터 새로운 감수성을 인정하자는 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것은 그가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열고 시를, 세상을 본다는 얘기라고 생각해 그의 시를 더 좋아하게 됐고, 

 

문태준, 안현미, 서효인 시인의 작품들은 최근에 한 번 정도 읽어봤는데, 괜찮은 시도 있었고, 이해하기 힘든 시도 있었는데. 특히 문태준 시인의 작품은 우리의 토속적 정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기서 그것을 확인하는 기쁨 뭐 이런 것들...

 

단지 시인이 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면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재미없는 책일 수밖에 없겠지만, 이 책에서는 작가의 이력도 나와 있고, 또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고 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세상, 일명 세속 도시...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시인은 무슨 사회와는 초현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무슨 탈속적 존재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전혀 아님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시인도 사람이라는 것, 우리와 같이 세속 도시에 살고 있다는 점,, 그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어려움들을 함께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 다만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시로 표현해내고 있다는 것, 그것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많은 시인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후속 편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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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의 기획기사는 "청소의 대발견"이다.

 

교육에 관한 잡지라면 청소에 대해서는 한 번 다뤄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청소 문제가 나왔다.

 

지금 교육현장에서 청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뭐, 생각할 것도 없다. 학생들이 한다. 학교 대부분의 공간을. 그래도 지금은 나아져서 화장실은 용역을 고용하여 청소를 하게 하지만, 각종 특별실부터 교사들이 사용하는 공간까지 학생들이 청소를 한다.

 

그렇다면 청소가 잘 될까? 그럴 리가 없다. 학생들 자신들이 주로 생활하는 교실 청소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청소를 하라고 하면 빗자루를 들고 비질을 하는 시늉만 하거나, 또는 빗자루로 칼싸움을 하거나, 대걸레로 교실을 한 번 밀라고 하면 물을 묻혀와서 - 묻혀와서다, 빨아서가 아니라 - 대충 쓱 훑고 마는 게 끝이다.

 

자기들이 주로 지내는, 주로 자신들이 어지럽힌 공간을 청소하는 것도 이런데, 다른 곳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청소 못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문명의 발달에서 찾기도 하는데, 기계들이 속속 나와 제대로 청소를 해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집에서 청소를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와 있다.

 

이번 호에도 나와 있지만 집에서 청소를 하는 문제로 가정에서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으니, 대부분 아이들 있는 집에서 아이들 방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 부모들이 많을텐데...

 

그렇다고 청소를 대신해줄 수만은 없는 일. 최소한 자신이 어지럽힌 것은 자신이 치워야 한다는 원칙은 확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습관이 되지 않았을 때 어지럽히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인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재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래서 청소는 중요하다. 정말로 자신이 조금만 귀찮아지면 청소가 그리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의 기본은 있는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일이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가장 기본적인 것만 청소한다면 청소가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교육으로써 청소는 반드시 필요하다. 어떻게 하느냐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내가 주로 생활하는 공간은 내가 치워야 한다는 원칙만은 지켰으면 좋겠다. 이 원칙을 지키는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할테고.

 

이런 청소가 생활습관이 되면, 사회의 여러 면으로 이것들이 확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사실 우리 사회에 청소가 필요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니.

 

이번 호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전자조작식품 문제도 역시 우리 식탁에서 청소가 필요한 문제고 (류외향, 자연주의 밥상 한 끼가 지구를 살린다), 청년수당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 그것을 좀더 확대한 기본소득 논의도 우리 사회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어떻게 청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나아가지 않을까 한다.

 

사실, 청소는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청소 말고도 내 건강을 위해서 내 몸 청소를 해야 하는 문제부터 크게는 사회 청소, 지구 청소, 우주 청소까지 나갈 수 있으니, "청소"를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도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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