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막힌 표현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인이란 자고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따스한 마음을 품고 대상을 대할 수 있는 시인이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차가움의 대명사인 얼음을 따뜻하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그 따뜻하다는 표현이 엉뚱하지가 않고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다, 얼음은 이렇게 따뜻하다. 그 표면만을 보고 얼음을 차가움의 대명사로 여기고 있었다니.

 

 어떤 대상이든 한 면만 있지 않다는 사실, 다른 면도 있으니 다른 면도 보아줄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

 

 그러다 이런 눈을 지닌 사람이 시인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겨울을 대표하는 '눈' 역시 차가움 보다는 따스함이라고 노래한 시인들도 있지 않은가.

 

윤동주는 눈을 추위를 덮어주려는 이불에 비유했었고, (윤동주의 '눈') 안도현은 눈 중에서도 '함박눈이 되자'고 했었다. 함박눈이 되어 '편지'가 되고 '새 살'이 되자고...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여기에 몇 해 전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 '겨울왕국'을 생각해 보자. 겨울왕국의 또다른 주인공은 '엘사'는 모든 것을 얼리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엘사는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이것은 통상 우리가 얼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엘사도 나중에는 자신의 능력이 사람들을 위해서 쓰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이 즐거워할 수 있게 자신의 능력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힘으로 가능해졌다.

 

얼음이 차가움, 두려움에서 따스함, 즐거움, 사랑으로 변해 가는 과정, 그것이 주인공 엘사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고 보는데...

 

시인 박남준은 '따뜻한 얼음'이라는 시에서 얼음의 따스한 면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아, 정말, 이렇구나, 무릎을 탁 칠 정도다.

 

 따뜻한 얼음

 

옷을 껴입듯 한겹 또 한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박남준, 적막, 창비. 2006년 초판 5쇄. 14-15쪽.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아 주는 얼음, 얼음은 그 차가움으로 인해 다른 존재들이 작고 약한 것들을 더이상 괴롭히지 못하게 막아주고 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이제는 자신의 역할이 끝나야 함도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얼음이 따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이 된다. 봄이 왔는데도 녹지 않고 버티고 있으면, 얼음은 자신이 사랑하고 보호해주려 했던 것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라고 행복하게 사는데 장애가 될 뿐이다.

 

얼음은 그것을 안다. 보호해야 할 때와 가야할 때. 그래서 얼음은 '맑고 반짝이는' 것이다. 차가운 겨울에 밖의 차가움을 자신이 다 받아들여 자신도 차가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더 작은 것들을 보호해주고 있는, 따스한 봄이 오면 자신을 녹여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주고야 마는 얼음.

 

그런 얼음을 어찌 따스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얼음은 그래서 '따뜻한 얼음'이다.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온다. 매서운 추위가 닥칠 것이다. 이미 계절 말고도 혹한의 겨울을 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사회가 겨울에 접어든 지가 꽤 오래 되었다. 

 

우리 사회에도 얼음이 많이 있다. 얼음 속에서 우리는 간신히 숨을 쉬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봄이 왔는데도 얼음이 봄을 거부하고 계속 존재한다면, 그래서 봄을 늦춘다면 그것은 '따뜻한 얼음'이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는 '차가운 얼음'일 뿐이다.

 

우린 충분히 얼음을 경험했다. 이제는 그 얼음을 녹여야 할 때다. 얼음이 '차가움'의 대명사가 아니라 '따뜻함'을 뜻할 수도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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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 광복을 염원한 사람들, 기회를 좇은 사람들
선안나 지음 / 피플파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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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들이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였으면 이런 책도 나오지 않았으리라. 이렇게 역사에서 책임을 묻는 일을 끊이지 않고 하지도 않았으리라.

 

이들에게 자꾸 과거의 행적을 떠올리게 하고, 역사에 기록을 남기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도 청소년들로 하여금 계속 읽게 하는 이유는, 이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회의 지도층, 주도층, 또 지식인의 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하기 위해서다. 그냥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이들에게는 보통사람들에게 거는 기대보다 더한 기대를 하고, 책임을 묻게 된다.

 

그만큼 이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이들이 사회에서 받은 혜택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그것은 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룬 것이지, 사회에 기댄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자기 혼자 이룬 것은 없다. 모두 다른 사람과 또 사회적 환경과 관련이 되어 있다. 따라서 사회 지도층, 주도층, 지식인이 되었다 함은 그만큼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때 자기 이익이 아니라 어떤 것이 사회를 바람직한 쪽으로 이끌어 가는가를 우선시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생일대의 선택 상황, 갈림길에 처할 때가 있다. 그것도 자신이 출세해서 잘 사느냐 아니면 자신을 희생해서 사회 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냐 하는 갈림길.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갈림길이 몇 번 나오고, 그 갈림길에서 많은 이들이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갈림길이 바로 일제강점기라고 할 수 있다.

 

30여 년을 식민지 지배에서 살아가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독립을 위한 활동을 하느냐 (이 길은 얼핏 생각해도 험난한 길이다. 갈림길에서 보면 가시밭길이다) 아니면 식민지배에 협력하느냐 (이 길은 평탄한 길이다. 출세를 향한 탄탄대로, 잘 포장된 길이다)의 선택에 처하게 된다.

 

특히 사회 지도층, 주도층, 지식인들에게는 이 선택의 길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들의 선택은 개인의 선택으로 묻히지 않고 역사라는 책에 선명히 기록되고, 지워지지 않게 된다.

 

이 책은 일제시대라는 갈림길을 다시 세분한다. 명문가, 부자, 여성, 문인, 언론, 여성지도자, 독립군과 토벌군으로.

 

각 갈림길에서 두 명씩을 배치해 상반된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어느 길이 올바른 길이었는지 우리에게는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다만, 그 시대에는 그 답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 말도 어폐가 있다. 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아마 답을 보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는 분명 알았을 것이다. 다만, 옳은 길이 늘 자신의 행복을 담보해주는 길이 아니라는 사실, 옳음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우선으로 한 선택을 한 경우가 많았으리라)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약간 편파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한 길은 비록 험난한 길이지만 칭송받는 길이고,  한 길은 편안한 길이지만 대대로 욕을 먹는 길이기 때문이다. 서술에서도 한 편은 존경으로, 한 편은 아쉬움과 비판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읽으면 답은 너무도 명확하다.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했어야 했다. 딱 정해져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정해진 길을 가기는 정말 힘들다. 당위와 현실은 거리가 너무도 멀기 때문이다. 이 먼 거리를 좁혀 당위를 현실로 끌어와 행한 사람들, 그래서 이들이 더 위대하고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누구누구가 나오는지 보자. 우선 조선시대에 명문이라는 소리를 드는 집안에서는 이회영 집안과 이근택 집안이 나온다. 부자에서는 안희제와 김갑순, 여성에서는 남자현과 배정자, 문인에서는 이육사와 현영섭, 언론에서는 안재홍과 방응모, 여성지도자에서는 김마리아와 김활란, 독립군과 토벌군에서는 장준하와 백선엽.

 

많은 사람들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친일파로 분류된 사람들 중에서 자신들은 친일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많고, 그 후손들도 조상의 친일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그들의 행위가 친일 행위였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역사에 사실로 남아 있는 친일 행위를 그토록 부정하고도 여전히 사회주도층으로 살아남은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 역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무리 부정해도 그들의 행위는 역사를 통해 기억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과거의 사실만을 알기 위해서, 또 친일 행위를 단죄하기 위해서 이 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사실을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는 것이다.

 

좋지 않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역사는 기록을 남기고, 우리는 그 역사를 배우는 것이니까.

 

일제강점기라는 갈림길 앞에서 상반된 선택을 한 사람들... 역사가 누구를 더 칭송하는지, 누구를 오욕의 역사로 기억하는지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썼다는 것,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많은 청소년들이 읽고 아직도 왜곡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속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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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망각
김용진.박중석.심인보 지음 / 다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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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제목을 아마도 '친일과 기억'이라고 붙였겠지. 친일을 기억해야 한다고. 그런데 '친일과 망각'이라고 제목을 붙였으니, 아마도 그 의미는 친일의 주체들이 (이들 중 살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미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기억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반성이나 책임을 질 수도 없게 되었다) 또는 그 후손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망각' 쪽에 서 있지 않나 하는 마음이 작동했으리라.

 

우리 사회에서 반발을 일으키는 말들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두 단어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친일'이고 하나는 '빨갱이'(종북이니 좌파니 다 같은 의미로 이 말에 포함시킨다)다.

 

'친일'이라는 말이 주로 보수 쪽의 반발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말이라면, '빨갱이'라는 말은 주로 진보 쪽의 반발을 많이 불러일으킨다. 아마 상대방을 비방하는데 이 말들보다 좋은 말은 없을 터. 또한 그들이 처한 위치가 그만큼 다르다는 말도 될 것이고.

 

그런데 과연 이 말들이 실체가 있느냐 하면 그게 참 모호하다. 실체 없는 말들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기도 한다. 또 한 때 이 말들이 막 나왔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쏙 들어가 버리고 만다.

 

'친일'은 분명 실체가 있는 말이어야 하는데.... 당사자들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고, 이제는 자식 정도가 아니라 2대, 3대 후손들을 대상으로 너희 조상이 친일을 했다고 해야 하니, 조상의 잘못을 후손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식으로, 왜 나에게? 난 아무 상관도 없는데? (지금 자신의 자리를 잘 돌아보면, 아무 상관도 없는데... 라는 말이 얼마나 잘못된 말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텐데)라는 반응이 나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후손들 가운데 조상의 친일을 인정하는 사람도 드무니... 법적 소송을 통해서 자신의 조상이 친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려는 일까지도 하고 있으니... '친일'이라는 말이 정확한 실체로 다가오지 않고 상대를 비방하는 말로 전이되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빨갱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건 아예 상대방을 찍어누르려고 쓰는 말이니, '친일'이라는 말과 같은 위상에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말이다. 실체를 찾기 힘든 말.

 

그러니 책 제목에서 친일과 관련된 사람들의 관점이 '망각'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잊고 싶고, 다시 언급되지 않았으면 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는 '친일'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다. '기억'을 하고 있어야 '용서'를 할 수 있다. '망각' 속에 함께 빠져 있다가는 '용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망각' 속에서 허우적 댈 뿐이다.

 

이 책은 해방 70년을 맞이하여 친일 문제를 다룬 방송에서 '취재한 내용 중 핵심적인 사실과 다큐멘터리에서 제대로 담지 못한 내용, 취재 뒷얘기 등을 엮어서' (9쪽) 낸 것이다. 따라서 <친일과 망각>이라는 방송을 본 사람들에게는 그 방송을 더 풍부하게 하는 책이 될 것이고, 방송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친일의 잔재들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는 책일 될 것이다.

 

친일파 후손들을 추적하여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업, 교육 수준, 경제적 조건 등을 살펴보고 있다. 결과는 우리가 추측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면도 있기는 하지만 - 이는 책에도 나오는데, 친일파들의 후손들이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권력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들 후손이 가장 많이 택한 직업이 의사, 교수 등이라는 사실 - 대체로 우리의 추측과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직업들이 대체로 좋으며,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고, 경제적 수준 역시 상류층에 해당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 이것은 그들이 직접 친일을 한 조상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더라도 그가 물려준 사회, 경제,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는 쉽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독립운동가들의 자손들은? 이들과 거의 대칭이 되는 삶을 산다고 보면 된다. 직업도 변변찮고, 교육 수준도 낮으며 - 하다못해 대학 중퇴 수준의 학력이 높은 편에 속한다 - 경제적으로도 빈곤 수준에 가깝다는 사실.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출발점이 후손들의 삶을 결정해 주는 주요 요소로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이건 문제다. 출발점이 다르면, 그 출발점을 고쳐주는 역할을 국가가 해야 했음에도, 하지 못 했음을 - 안 했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 듯, 그래서 '친일'을 직접 친일을 한 당사자들과 그 후손들이 '망각' 했지만, 이것을 바로잡아야 할 나라도 '망각' 했음을, 그것도 '의도적으로 망각' 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게 이 책이 지닌 의미다. 친일파들의 후손들에게 무슨 연좌제를 씌워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출발은 이미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그것을 기억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가 되어야 '용서'가 나오고, '화해'가 된다. 바람직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처음이 시작도 안 되고 있는데... 이 <친일과 망각>이라는 방송을 통해서, 또 이런 책을 통해서 그 처음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망각' 속에 완전히 빠지지 않았음을... 그래서 '친일'이라는 말이 보수층을 겨냥하는 화살로 아직도 작동하고 있음을, 이것이 화살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정'이 우선되어야 함을... 최소한 '기억'해야 함을.

 

특히 후손들은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접한 조상들의 모습과 사회적으로 판단되는 조상들의 모습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적인 자리에서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던 조상이, 공적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았을 수도 있음을 먼저 생각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다음이 시작될 수 있다.

 

여전히 친일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무슨무슨 위원회들 해체된 상태고, 아직도 정확히 '기억'으로 남지 않았으니...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친일'은 실체가 있는 활동이었으니... 그 실체를 기록으로 남겨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 '망각'의 반대 편에 서 있어야 하는 존재들, 바로 '기억'의 편에 서 있어야 할 존재는 바로 우리들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상기시켜준다.

 

덧글

 

의문 1. 153쪽. 친일파 정교원에 대한 설명 중 ... 그는 1944년 3월 중일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제로부터 1940년 4월 29일자로 욱일중수장을 받았다.  -> 년도가 앞뒤가 안 맞는다. 반민규명위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를 볼 수 없는 나로서는 앞뒤 년도 중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의문 2. 227쪽. 일제 강점기 시기, 누군가는 일제에 종속적으로 협력했고, 또 누군가는 일제에 저항했으며, 어떤 이들은 반일도 극일도 아닌 '회식지대'에서 살아가기도 했다. -> 이건 누가 봐도 오타겠지. 회식지대... 회색지대

 

아쉬운 점. 책에 부록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 (줄여서 반민규명위)에서 발표한 1006명의 명단을 실어줬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활동을 요약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분야별 명단만이라도.  

 

마음을 울리는, 너무도 슬픈 사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시... '아들에게' (189쪽) 독립운동으로 평생을 바친 분이 이승만에게 쫒겨나고... 그 아들 둘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죽고, 셋째 아들이 자동차 운전으로 부친을 부양하는 모습. 그 아들에게 준 당당한 시. 그러나 우리는 지금 심산 김창숙을 더 존경하는가? 아니면 성균관대를 인수한 삼성 일가를 더 선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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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고문이다 6

- 직립보행


인간다움은 직립보행이다

고문은 인간다움을 부정한다

똑바로 서서는 절대로 안 된다

병원도 직립보행을 거부한다

1단계,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한다

온몸에 바늘을 꽂고 무슨무슨 줄을 줄줄이 달고

2단계, 앉아 이동해야만 한다

여전히 많은 것을 달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3단계, 직립보행이 된다

병원에서 탈주한다

인간이 된다


고문이다, 직립보행을 못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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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들과의 점심 - 상처 입은 우상들, 돈, 섹스, 그리고 핸드백의 중요성에 관하여
대프니 머킨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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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제목 잘도 붙였다. 편집자들이나 또는 저자들이 제목을 붙일 때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그래서 책이 팔릴 만한 제목을 붙이는데... 이 책 제목은 번역자가 번안하여 붙였다기 보다는 저자가 붙인 제목을 직역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저자는 제목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인데... 이 책에는 잡다하다고도 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들이 섞여 있으니 어떻게 제목을 붙이느냐에 따라 책이 읽히느냐 읽히지 않느냐가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제목을 붙인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제목에 대해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다. 에세이 한 편을 쓰다 불현듯 떠오른 표현인데, 이 책을 묶으면서 생각해보니 모음집 제목으로도 적절할 듯싶었다. 유명한 사람들과 정말로 점심을 먹는다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기보다는 형이상학적 묘사, 다시 말해서 유명인들에 대한 우리의 강박과 유명인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 광휘 안팎의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평이라고 해야 옳겠다. -18쪽

 

나는 서점에서 이 책을 훑어보지 못한 관계로 제목에 관한 저자의 이 글을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음은 곧 내가 제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유명인들과 점심을 하면서 그에게 이야기를 듣고 그 결과를 책으로 냈다고...

 

유명인들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책을 구입한 것이었는데... 이런, 역시 서점에서 직접 책을 넘겨보며 고르는 일과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일이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이야.

 

그래도 처음엔 좀 흥미로운 부분이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마릴린 먼로와 다이애나 황태자비'에 대한 글이니 말이다.

 

그들의 죽음이 비극이었고, 죽음의 전모가 다 밝혀지지 않았기에, 그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에서, 이들에 대해서 글을 써서 우리에게 그들을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하여 1부에는 책 제목과 어울리는 이야기가 실려 있어, 읽어가면서 나름 만족한다. 그러다 2부에 접어들면 문화적 충격, 생각과는 다른 내용에 어리둥절해지고,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내밀한 자신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유명인이 아닌. 게다가 이 사람의 생활이 나하고는 너무도 동떨어진 삶이니, 도대체 그 문화를 알지 못하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남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다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이 글에서 보이는 미국문화를 읽는 것이 아니라, 글에 보이지 않는 우리 문화를 읽으려 한다.

 

사람들이 같은 시공간에 살더라도 다 다르게 살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면서, 내 삶의 방식만을 고집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2부와 4부를 읽어갔다.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특히 애완동물에 관한 글 (개털아 휘날려라)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읽으며 논점을 잡아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읽기가 편해지고 더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읽어가면 3부와 5부, 6부에 이미 들어본 이름들이 나오니 읽기가 더 친숙해진다.

 

그리고 제목을 붙인 이유와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삶을 엿보는 그런 경험을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다양한 간접경험을 한다.

 

우리 문화에서는 도무지 경험할 수 없는 것들, 그리고 글로 이렇게 표현해서 출간이 되기 힘든 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저자의 모습을 통해 다른 문화를 경험한다.

 

그 경험들이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내 것만을 고집하는 고집을 버리게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책을 덮으며 이런 다양성들이 어쩌면 서구 사회를 유지해 온 힘이 아니었나 싶다고 생각하고. 단일민족 운운하면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려는 우리의 모습을 비쳐주는 거울이 되는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한다.

 

이 다양한 다름 속에서 어떤 공통점들, 그래도 함께 살 수 있는 그 무엇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이 책 덕분에 다른 문화, 다른 생각 많이 접하고 많이 경험하게 됐다. 내 삶에 경험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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