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고문이다 8

 -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병원비


건강보험이 잘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중한 병이 들면

이 검사, 저 검사, 이 약, 저 약

게다가 거부할 수 없는 특진비, 입원료, 식비 등등

한 순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최첨단 장비의 도움으로

진단, 검사, 치료가 쉬워진 만큼

더더 치솟는 병원비

의사의 처치가 쉬워질수록 의료수가는

더욱 올라가고

환자가 나아질수록 병원비는 올라가니

병원에 있으면 있을수록

병보다는 병원비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퇴원 후에도 후유증을 앓아야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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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호텔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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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란 결국 남의 일을 자신의 일로 기억하는 사람일 것이다'라는 이 시집의 뒷표지에 실린 김종철의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문재의 시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감수성이 뛰어나 자신의 일만이 아니라 남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느끼는 사람, 그래서 자신과 남의 일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자신의 일인 것처럼 표현하는 사람, 그 표현을 통해 남을 자신에게 동화시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시를 통해서 남을 자신에게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그 시는 성공했다고 말하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 이문재의 이 시집은 성공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시집의 제목 "제국호텔"은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제국에 침탈당하고, 생활은 물론 의식까지도 제국에 지배당하는 그런 상태를 보여준다고...

 

이 시집에서 '제국호텔'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시들은 이런 우리의 상태를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보지 않으니, 시인이 우리더러 보라고 우리의 눈 앞에 그 상황을 펼쳐 보여준다. 안 보면 안 된다는 듯이.

 

컴퓨터 정보화시대, 초고속통신망시대, 스마트폰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생각까지도 지배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지구적 축제라는 월드컵에 갇혀, 그런 제국의 논리에 빠져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고 있지 못함을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제국이 어떤 나라를 의미하는지는 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나란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프런트에서 왼쪽으로 이십 미터를 가면 스타벅스 / 오른쪽으로 다시 백오십 미터를 더 가면 맥도널드다' ('제국호텔 -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57쪽)

 

제국에서는 우리가 꿈을 이루어도 그 꿈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제국에서 탈출해야, 제국을 없애야 비로소 꿈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 제국에서 / 이루어진 꿈은 꿈이 아니다 / 그대들은 꿈★은 늘 미루어지게 되어 있다' ('제국호텔-인도에서 소녀가 오다' 중 일부 56-57쪽)

 

그러니 제국의 환상 속에 갇혀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붉은 악마의 구호를 인용해서 현실 불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시인은 '남의 일을 자신의 일로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단지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계속 알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럼에도 이 시집에 이런 시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들이 있고 (농업박물관 소식, 지구의 가을, 식탁은 지구다), 사람이 지닌 기본적인 감성을 일깨우는 시들도 많다.

 

그 중에 이 시 '파꽃'을 사람이 배우는 이유에 대입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파꽃

 

파가 자라는 이유는

오직 속을 비우기 위해서다

파가 커갈수록

하얀 파꽃 둥글수록

파는 제 속을 잘 비워낸 것이다

 

꼿꼿하게 홀로 선 파는

속이 없다

 

이문재, 제국호텔, 문학동네. 2012년 1판 5쇄. 93쪽.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야 한다. 자신이 비워져야 제대로 존재할 수 있다. 만약 파의 속이 꽉 차 있다면 그것은 이미 파가 아니다. 파로서 존재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많이 배운 사람이 제 속을 비우지 못했다면, 그것은 제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이 되었다면 차라리 안 배움만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우는 사람의 의무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우리는 배움을 채움으로 잘못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배움을 오로지 채움으로만 생각하는 세태에 물들어 있지는 않은지, 이 시가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비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 파는 속을 비우지만 속을 비우기 위해서 자신은 꼿꼿하게 홀로 서야 한다. 꼿꼿하게 홀로 섬, 이것과 속이 빔이 함께 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파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자서(自序)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우기나 채우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몸 자체, 항아리 그 자체이다. 몸은 튼튼해야 하고, 항라리는 단단해야 한다.'

 

그렇다. 바로 우리 자신들부터 바로 서야 한다. 바로 서는 공부. 바로 서는 몸. 그 다음이 바로 비우기다. 비운 다음, 채우기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시인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사람이다. 우리가 외면할 수 없게 바로 우리 눈 앞에, 우리 마음에.

 

이문재의 시집, "제국호텔" 그 역할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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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수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며 광화문에 모였다. 백만 명이라고도 하고 약 30만 명이라고도 한다. 숫자의 정확성을 따질 필요 없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거리로, 거리로 나왔음에는 틀림없다.

 

무엇이 이들을 다시 거리로 나오게 했는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제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지닌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 주권이 우롱당했기 때문에...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서 나왔음이다. 그렇다면, 주권을 잠시 위임받아 행사하는 대통령은 이런 국민의 뜻에 따라 대하(帶下)에 엎드려 잘못을 빌어야 했다.

 

석고대죄(席藁待罪)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국민 앞에 나와서 죄송하다고, 이 일에 책임지겠다고는 해야 했다.

 

그런데,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곳 근처까지도 국민들이, 주권자들이 가지 못하게 막았다. 이명박 정권 때 만들어진 차들로 이루어진 산성, 한 때 명박산성이었던 것이 이제는 근혜산성이 되어 국민들의 발걸음을, 국민들의 소리를 막아 버렸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하여 다음 날 내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목소리를 무거운 마음으로 들었으며, 현 상황에 대한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국민들이 말이 어떤 말인지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얘기다. 당신은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으니 그 자리에서 내려와라 라고 하는데, 자신은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한다고 한다. 이거야 원, 금성과 화성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상황인식이고, 대화라고 할 수 있다... 현실 인식을 못하고 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데...

 

헌법을 뒤적이다가 이게 무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 있었다.

 

헌법 제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 67조 3항, 대통령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

 

헌법 1조 2항에 의하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국민이 당신에게 더이상의 권력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권력을 이제는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한다. 이거 모순 아닌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헌법에 명시된, 그것도 헌법의 앞부분에 명시된 국민의 권력이 이렇게 무시당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헌법 67조 3항, 지금까지 단독 후보자가 나온 적이 없어서 유명무실한 조항이긴 하지만, 이것을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연계하여 생각하면 국민의 지지율이 형편없는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나던지, 아니면 탄핵을 할 수 있는 조항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대통령 시작도 하기 전에 국민의 3분의 1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아예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데,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5년이라는 임기가 보장되어 지지율이 5%에 머물러도 대통령으로서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한다고 주장할 수 있으니...

 

물론 대통령을 지지율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자릿수 지지율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특정한 정책에 대한 지지율이 아니고 대통령의 직무 수행 전반에 관한 지지율이고 또 장기간 유지되는 지지율이라면 그런 사람을 계속 대통령 자리에 머물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해봐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할 부분. 지지율이 자칫하면 인기투표 비슷하게 갈 확률도 있지만, 국민의 의식이 성숙한 나라라면 국익과 개인적 권력욕을 구분할 수 있는 시민들이 최소한 30% 이상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그것도 정책 하나하나의 지지율이 아니라, 국정 수행 전반에 관한 지지율이라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최소한 1/3 이상은 되어야지... 의원내각제라면 이미 정권이 바뀌었어야 하지 않은가)

 

5% 지지율에 주권자인 국민이 거리로 나와 물러나라고 하는데도, 그 소리들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대통령이라면 "헌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지경.

 

하 답답해, 너무도 오랫동안 읽고 있었던, 헌책방에서 구했던 황동규 전집을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발견한 시 '비망기'

 

왕들도 이래야 하는데... 하물며 선출된, 임기가 제한된 권력임에랴. 

 

비망기

 

첫째 갈피

 

제왕은 때로 신민의 그늘이다.

경들이 용상에서

대하(臺下)에 엎드린 짐을 일으켜

모란 핀 뒤뜰로 인도할 때

짐은 보지 않으련다

조간도 석간도

천리경도

다만 뜰에 호젓이 핀 꽃 사이를 말없이 거닐 뿐.

 

왕도(王道)는 때로 떠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을.

흉년에 스스로 불태워 죽는

추장 부자(父子)의 없는 외마디처럼

한숨도 병도 초가집도

초가집들이 둘러싼 조그만 낟가리도 없이

떠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을.

 

둘째 갈피는 생략

 

황동규, 황동규 시전집1, 문학과지성사. 1999년 초판 3쇄. 140쪽.

 

매주 주말마다 주권자들의 소리를 들으라고, 보라고 촛불집회를 하겠다고 한다.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 국민들은 이미 답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형기의 '낙화'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황동규의 시처럼 '떠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주권자에 대한 예의이고, 책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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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7
신경림 지음 / 돌베개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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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이란 주제로 엮은 신경림의 글을 모은 책이다. 제목은 단순하다. 그냥 "신경림"이다. 신경림이라고 하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시인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전통 가락을 시에 살린 '목계장터'의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목계장터에 얼마나 애착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잘알게 되었는데...

 

'목계장터'란 시를 세 번이나 썼다는 사실. 두 번까지 쓴 시는 그가 시집에 싣지 않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자신의 성에 차지 않았다는 것.

 

그러다 염무웅과 여행하는 도중에 청년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다시 고쳐 쓴 작품이 지금 우리가 애송하는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로 시작하는 시, '목계장터' ('목계장터' 이 책 169쪽-174쪽)

 

이렇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수필이라는 글이 지닌 특성답게 신경림 개인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신경림의 어린 시절 이야기, 집안 사람들 이야기, 자신이 만난 사람들 이야기 등등이 실려 있어, 신경림이라는 작가의 사생활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특히 그가 살아온 시기가 일제 말에서 6.25전쟁을 거쳐 군사독재 시절을 거쳤으니, 평탄치 않은 시대를 헤쳐온 한 사람의 인생을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굴곡 많은 현대사를 허체며 살아온 시인의 삶을 담은 글들은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생각하게 해줄 수 있다.

 

물론 직접적으로 시대적 상황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선동하는 책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낸 글이 수필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방황하던 시인의 모습, 또 그 주변 사람들을 통하여 청소년들은 삶에 대해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한 간접경험, 그것이 수필의 매력이기도 하다. 하여 이 간접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시대를 바라보는 눈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도 된다.

 

시인이 거쳐온 세상이 험난했다면, 지금은 훨씬 나아진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과연 시인이 살아온 세상에 비해 나아졌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가 답일 것이다.

 

시인은 유신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냈는데, 지금 청소년들 역시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으니, 이 책에 실린 신경림의 글들이 먼 과거, 또 신경림이라는 시인만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수필을 읽으며 이 시대를 버텨내고 견뎌내고 이겨내는 어떤 힘을, 희망을 발견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수필들을 읽으며 지금 우리 상황을 떠올리며, 자꾸만 시인의 '동해바다'란 시가 생각이 났다. 이 시를 지금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 시를 읽고 받아들일 마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동해바다

              - 후포에서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신경림, 길, 창작과비평사, 1996년 초판 9쇄. 59쪽.

 

나는 잘하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비리를 저질렀다. 주변의 잘못이다. 또는 의도와는 달리 결과가 잘못 나왔다.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이다. 이런 태도를 지닌 사람이 아니라, 그것 또한 내 탓이라고, 친구를 잘못둔 것고 내 탓, 결과가 의도와 다르게 나온 것도 내 책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도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할 일.

 

그래서 국민들의 비판을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이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나.

 

우리나라의 밤이 촛불로 환하게 밝혀지고 있는데, 그 희망의 빛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그래야 이 책에 나온 시대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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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꼴이나 세상꼴이나'라는 자조섞인 말이 튀어나오는 요즘이다. 세상이 어려울 수록 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끌린다던데...

 

  자기들이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들이 마치 무엇인가를 해줄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던데...

 

  1차대전 패망이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던 독일 사람들이 히틀러를 선택했듯이 - 우리는 히틀러가 합법적인 선거과정을 통해 정권을 장악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 우리 역시 선거를 통해서 최선도 아니고, 차악도 아닌 최악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번 미국 대선 결과를 보면서 미국 사람들도 참 살기 어렵구나, 그들이 그동안 경제적 부를 누리면서 살다가 이제는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을 하는구나.

 

그러니까 그렇게 앞뒤 안 가리고 직설적으로 말을 하는 트럼프를 선택했지. 마치 트럼프가 자신들을 경제적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는 것처럼. 몇 해 전에 우리도 이와 비슷한 선택을 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결과는?

 

살기 힘들기 때문에 나와 너를 명확하게 가르고, 너는 나의 발전을 가로막는 존재이니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야 한다는 생각, 그런 주장, 그리고 그런 행동들. 결국 떨어져 나가는 것은 '너'가 아니고 '나'일텐데... 그것을 이미 히틀러라는 인물을 통해서 경험을 했는데...

 

누군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책에서 읽었는데... 인간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그런 말.

 

그러니, 지금 세상에 정을 둘 데가 없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모두 썩어 문드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아니 벌써 썩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 지도 오래되었을지도 모른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가 얼마나 더럽혀졌는가. 아니 그 이름을 인해 우리나라가 얼마나 썩었는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한다.

 

경제, 정치, 문화, 의료 분야까지 도대체 썩지 않은 부분이 없으니... 옛날 재래식 화장실에 가면 처음에는 화장실 냄새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지만 조금 지나면 차차 그 냄새에 익숙해지고 말듯이, 우리는 '김영란 법'이라는 것을 출범시킨 이 때, 그동안 이렇게 부패에 익숙해져 있었나 싶게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꼴을 목도하고 있으니...

 

이렇게 정을 붙일 데가 없는데... 그런데도 정을 붙여야 하는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함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내야 함으로.

 

허수경의 시집을 읽다가 시인의 이 마음에 요즘의 현실과 겹쳐 공감하고 말았다. 세상에 정들 게 없어서 병하고 정들다니.

 

정든 병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 위독한 길을 따라 속수무책의 몸이여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 정든 병이 켜놓은 등불의 세상은 어둑어둑 대책없습니다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2001년 초판 14쇄. 17쪽

 

지금이 이렇다면 이건 참 힘든 일이다. 우리가 가는 길들이 모두 위독하다. 이 위독한 상황, 벗어나야 한다. 위독하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희망은 '끝내 희망은 먼 새처럼 꾸벅이며 / 어디 먼데를 저 먼저 가고 있구나' (불우한 악기 6연. 이 책 13쪽)라고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지금 내 곁에 없다. 내 곁에 있다면 희망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절망한다. 더욱 병든다.

 

그렇다고 이렇게 절망 속에서만 헤매서야 되겠는가. 시인이 보여주는 절망은 곧 희망을 보고 나아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둠 속에서는 작은 불빛도 길을 인도해 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정든 병이 켜 놓은 등불의 세상'이 아니라 그런 병까지도 품고 나아가도록 비춰주는 촛불의 세상을 살아갈테니까.

 

절망보다 사악한 것은 없다고, 시인이 노래한 이 병 속에서, 이 절망 속에서, 우리 앞에 있는 희망을 쫓아 우리는 가야 한다. 희망은 그래서 희망인 것이다. 계속 앞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 희망을 놓치지 말자. 희망에 눈 감지 말자.

 

정든 병에서 이제는 희망의 촛불을 보고 함께 있으면서 나아가야 할 때, 이 절망의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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