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붓으로 조선을 그리다
이석우 지음 / 북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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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하면 진경산수화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그림이 중국의 그림을 모방하던 단계에서 조선의 그림으로 넘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그런데 진경산수화라고 해서 있는 그대로를 그렸다고 보면 잘못 생각한 것이다. 진경이란 사실에 바탕을 두되 자신의 의지를 반영해서 그린 그림이라고 봐야 한다.

 

즉 진경은 실경과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정선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모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그 자연의 배치를 다시 한다든지, 생략하거나 첨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진과는 다른 그림만의 특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렇게 정선의 그림을 이해하면 된다. 마치 사진처럼 정선의 그림에서 똑같은 풍경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럼에도 진경에는 실경이 포함되어 있다. 실경을 완전히 왜곡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정선의 그림에는 18세기 조선의 모습이 들어있다고 봐야 한다.

 

그의 그림에서 우리는 조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조선이 정선의 그림에 들어있다. 이것이 바로 진경산수화의 진면목이다.

 

이 책은 정선의 그림을 주제별로 나누어서 보여준다. 그냥 정선하면 떠오르는 그림, '인왕제색도, 금강전도'뿐만이 아니라 처음 보는 그림도, 또 정선이 이런 그림도 그렸나 싶은 그림도 있다. 그가 화훼영모도를 그렸다는 것. 참... 화훼영모도 하면 신사임당만 떠올렸는데, 정선의 그림이 이렇게 정교할 수가 있구나 싶은 그림들이었다.

 

여기에 폐허가 된 경복궁의 그림에서 당시 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고, 부임지에서 그린 그림들을 통해서 조선시대의 모습을 살필 수도 있다.

 

정선의 화가로서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었던 책이었고, 정선의 그림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그의 그림을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었고, 정선이 도화서 출신이냐 아니냐와 같은 논쟁이 있다는, 정선의 생애와 관련된 논쟁도 알 수 있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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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6-11-2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천구에 정선 박물관이 좋았습니다 ^^

kinye91 2016-11-27 15:56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전철역에서 가깝다니 한번 가보려고요.
 

제목만 가지고 패러디를 하면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몇년을 먹었다' 정도가 되려나.

 

이름으로 인해 권세를 부릴 수 있는 시대라니... 이 2000년대에. 그럼에도 호가호위(狐假虎威)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이름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의 이름으로 사는 것은 한때일 수밖에 없다. 그 한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만남이 아름답지 못하게 끝난다.

 

남의 이름을 이용하여 살아가야 하는 사람, 그러니 자신의 이름조차도 자주 바꿀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의 말로는 그야말로 추악함 그 자체다.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글의 만남은 아름다워야 했으나, 글 역시 추악한 만남을 할 수 있음을 목격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에고. 시인은 절대로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텐데...이런 의도로 쓰지 않았을텐데...

 

그냥 이렇게 글과 글이 추악하게 만나고, 이름이 권세를 부리게 한 만남이 현실에 있었으니, 이런 만남이면 안 된다. 최소한 남의 이름은 며칠은 먹을 수 있게 해줄 수 있으나 이렇듯 평생을 떵떵거리고 살게 해서는 안 된다.

 

남의 이름으로 떵떵거리며 살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만남은 결코 아름다워질 수 없다. 그런 만남은 추악할 뿐이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박 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5년 1판 15쇄. 55쪽.

 

글의 만남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만남이 아름다워야 한다. 글과 사람이 따로 놀 수는 없다. 아무리 보기 좋고, 듣기 좋은 문장이라고 하더라도, 삶이 아름답지 않으면 좋은 문장이 아니다.

 

결국 시인이 말하는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는 표현은 우리의 만남 역시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이라고 하는 것은 남의 이름으로 먹고 살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이야기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 그것은 순간이어야지 영속적이어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만남은 이익으로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그것을 내려놓고 만나는 관계이어야 한다.

 

그때서야 이렇게 아무런 욕심없이 더 머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기억을 하지 않으려 해도 만남에서 어쩔 수 없이 머물러야 하는 관계... 그렇다고 어떤 이익이 개입되지 않는 관계. 아름다운 관계.

 

다음 시에서 만날 수 있다.  

 

문병

 - 남한강

 

당신의 눈빛은

나를 잘 헐게 만든다

 

아무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

 

해서 수면(水面)은

새의 발자국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래된 물길들이

산허리를 베는 저녁

 

강 건너 마을에

불빛이 마른 몸을 기댄다

 

미열을 앓는

당신의 머리맡에는

 

금방 앉았다 간다 하던 사람이

사나흘씩 머물다 가기도 했다

 

박 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5년 1판 15쇄. 80쪽

 

이렇게 아름다운 만남이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시가 삶과 만나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따스한 만남... 마음이 편해지는, 시 속에서 마음을 놓아버리는 그런 만남. 이때는 글과 마음이 만나는 것이다. 글과 마음의 아름다운 만남.

 

그것이 바로 시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하는 글과 사람이 추악하게 만나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그런 말들이 권세와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여 말들로 문장들로 추악해진 만남들을 정화해야겠다. 박 준의 이 시집에서 이 시들을 읽으며 글과 마음이 만나는 아름다운 만남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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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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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산문집이라고 하는데, 그냥 예전 용어로 말하면 김훈 수필집, 또는 에세이집 정도가 되겠다. 자신이 느낀 점을 솔직하게 표현한 글.

 

여기서 김훈의 글솜씨가 드러나겠지만, 글솜씨보다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잘 드러난다고 해야겠다.

 

수필이라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글 아니던가. 김훈이 소설가로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등과 같은 또는 이상문학상을 받았던 '화장'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로 더 잘 알려졌다고 하더라도, 소설에서는 등장인물 속으로 작가는 숨어들게 되어 있다.

 

소설에서는 작가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이 '나'라고 하여도 그 '나'를 작가라고 하기에는 망설여지는 요소가 있다. 그만큼 소설은 허구적이다. 그러나 반대로 수필은 남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다.

 

수필은 사실적이다. 사실과 꼭 부합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또는 기억을 글로 쓴 것이기 때문에 작가를 드러내는 데 수필만한 글도 없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김훈 자신의 아버지, 김광주 이야기가 나오듯이 김훈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나온다. 그리고 자신이 느낀 점도. (이 책에 나오는 '여자'라는 제목을 단 많은 글들을 보면 이 말이 이해될 것이다)

 

그러니 김훈이라는 작가의 생각을 아는데 이 책이 도움을 줄 수 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 삶을 바라보는 시각 등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요즘은 수필을 읽는 시대는 아니다. 남의 생각을 읽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보며 삶을 성찰하기에는 이 시대는 너무도 빨리 돌아간다. (이런 에세이류의 책들 중에 잘 읽히는 책은 위로를 주제로 삼거나 또는 성공담이 주제인 책들이다)

 

이 책의 '길'이라는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우리는 자연에 맞는 길을 가지 않는다. 자연의 속도로 살지 않는다. 자연의 길을 쫙 펴서 직선으로, 넘어가는 길을 뚫어서 최단거리로 그냥 휙 지나칠 뿐이다.

 

길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삶도 그렇게 되었다. 속도, 빠르기, 전진, 직진이 우선시 된다. 이런 시대에 돌아가는 길, 멈추는 길, 쉬어가는 길, 천천히 걸어가는 길과 같은 수필은 잘 읽히지 않는다.

 

읽히지 않음에도 이런 책은 꾸준히 나온다. 이런 세상이라도 그런 세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런 세상에라도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낮고 순한 말로 이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으로 몇 편의 글을 겨우 추려서 이 책을 엮'었다고 김훈은 말하고 있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인위적으로 만든 길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길, 천천히 구불구불 쉬엄쉬엄 가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변을 좀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이 된 '라면을 끓이며'란 글은 자신이 라면을 끓이며 느낀 점을 쓴 글이라기보다는 라면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음식문화라든지, 서민들의 생활상 등을 함께 정리한 글이다. 뒷부분에 자신의 라면 끓이는 법도 나오지만.

 

그렇게 한 가지 사물이나 주제에 관해서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을 풀어놓고 있다. 조금 천천히 자세히 보자고 하는 듯이.

 

그래서 김훈의 이 책을 읽으며 김훈이라는 사람의 개인적 생각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점도 있지만, 이런 글들을 통해서 내 주변을 다시 살펴보고 내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고 자신의 주변을, 자신을 다시 돌아볼 것. 이 책을 읽고 난 뒤 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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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없는 사회 - 사회수선론자가 말하는 각자도생 시대의 생존법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 민들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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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른이 없을까?

 

이때 어른은 생물학적인 나이를 말하지 않는다. 어른이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임을 넘어서 공동체의 책임을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나만이 아닌, 공동체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어른인데... 생물학적으로 나이를 먹어갈수록 공동체에서 멀어지는 것이 현대인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자본주의 관계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사고방식이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한다.

 

상품을 주고받는 관계로 사람들의 관계를 바꾸어버린 자본주의 사회. 이것을 가정에까지 적용시켜 가정에서도 맹목적인 주고받음은 이제 일어나지 않고 이익을 주고받음의 관계로까지 변질이 되었으니, 여기서 공동체가 존재할 틈이 없다.

 

공동체가 무너지면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내 이익에 관계없는 것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어른이 존재하겠는가.

 

우치다는 적어도 한 사회에 7%정도만 어른이 있어서 그 사회는 견딜 만한 사회,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풍요시대를 거쳐온 지금 일본의 40-50대는 공동체가 파괴된, 모든 것을 상품으로 환원시키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왔다고 한다. 이들이 곧 60-70대가 된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자란 30-40대가 사회의 주축이 된다.

 

이런 사회에서 어른이 있을까? 그야말로 어른이 없는 사회가 도래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어른이 없는 사회, 공동체가 파괴된 사회, 모든 것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사회가 된다는 얘기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이야기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것은 일본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얘기다.

 

우리 역시 어른이 없는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따르면 상품사회 말고도 어른이 없어진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제자가 없기 때문이다. 제자가 없다는 얘기는 스승이 없다는 얘기다. 즉, 보고 배울 어른이 없다는 얘기다. 아니, 어른은 있을지 모른다. 찾지 않고 있을 뿐.

 

그러나 우치다의 이 책을 읽다보면 어른이 없기 때문에, 스승을 찾는 제자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어른이 되었어야 할 세대들이 어른이 되지 못했는데, 이들이 한 번도 제자가 되지 못했는데, 어떻게 스승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제자가 될 수 있지? 학교마저도 상품관계로 넘어간 지가 오래되었는데... 교사는 상품판매인이고, 학생은 구매자일 뿐이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학교에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따지고 거부하는 것이 지금의 모습 아닌가.

 

여기서 스승을 찾는다는 것, 제자의 자리로 자신을 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제자가 없는데, 어떻게 스승이 있을 수 있겠는가. 스승이 없으니 자연스레 어른은 없다. 이 사회에 어른은 없다.

 

보여주는 모습이라고는 어린이의 모습뿐이다. 자신은 어린이의 모습을 보이면서 다른 이들에게 어른스런 행동을 하라고 하면 누가 듣겠는가. 스승이 '바담 풍 하면서 바람 풍 하란다'고 자신이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데, 어떻게 제대로 따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어른이 먼저 되어야 한다. 남이 어른이 되기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먼저 어른스러운 일을 하면 된다. 어른스러운 일은 나보다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일이다.

 

'혼술'이라든지 '혼밥'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우리나라에서 공동체는 참 먼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혼밥, 혼술'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주거공동체'라는 말도 나오고 있지 않은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함께 생활하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고, '밥상공동체'라 하여 함께 상을 차려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어른이 되려는 사람들이다. 어른이 없는 사회에서 어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은 배우려는 자세를 갖춘 사람들이다. 배우려는 자세를 갖춘 사람들,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다.

 

자신의 것만을 주장하지 않고 남의 말을 들으려하는 사람, 남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바로 어른이다. 하여 이런 어른들은 우선 제자의 자세를 갖춘다. 제자란 무엇인가?

 

스승의 말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아닌가? 단지 말뿐이 아니라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배우려 하는 사람이다. 온몸으로 스승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후세에 전달하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바담 풍' 하지 않는다.

 

어른이 없는 사회, 다른 말로 하면 제자가 없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잘났다. 모두가 잘나서 공동체가 없다. 오로지 나 자신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나만이 옳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게 바로 지금 우리 사회다. 그렇지 않은가.

 

어른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사실상 '피의자' 신분이 되었는데...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그냥 내 잘못이 아니야, 다른 사람들 잘못이야, 난 억울해. 마치 애처럼 떼를 쓰고 있다.

 

이 상황에서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겠는가.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사람이 어린이처럼 굴고 있는데... 어른이 없다는 사실, 그래서 어른답게 행동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는 학생 세대... 이게 현실이다.

 

우치다의 이 책, "어른 없는 사회"를 읽으며 마음이 아팠던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치다 역시 마찬가지로 얘기한다. 한 사회의 사람들이 모두 어른이 될 필요는 없다고. 7%정도만 어른이 돼도 그 사회는 행복해질 거라고.

 

그렇다면 바로 나부터 어른이 되면 된다고. 남을 보지 말고 바로 나부터 행동하면 된다고, 나부터 제자가 되려고 하고, 공동체를 생각하고, 어른스러운 행동을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 어른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내가 어른이 되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그게 어른 없는 사회를 어른 있는 사회로 바꾸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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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는 광대다 - 얼음 같은 세상, 마음을 녹이는 현장예술가 최병수
박기범 외 지음, 노순택 외 사진 / 현실문화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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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었던 책이다.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를 읽고 최병수에 관한 책이 또 한 권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데 검색해 보니 품절이다. 품절,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 중에 몇 년이 지나면 품절이 되어 더이상 구할 수 없게 된다. 아쉽다.

 

왜 품절이 되었을까? 최병수란 예술가, 많이 알수록 좋을 것 같은데... 그의 예술이 아직도 현장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여야 하는데... 하다가, 현장예술은 현장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

 

그에 관한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현장이 변하면 현장예술이 사라지고 기록으로 남듯 그의 책도 그때의 시의성이 사라지면 품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데, 과연 그의 예술의 현장성이 사라졌는가? 지금 우리는 그가 87년에 이한열이 최루탄에 목숨을 잃었듯이,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환경이 지금도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있지 않은가. 평택 대추리가 강정에서 상주에서 또 밀양에서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그 죽음을, 그 일들을 둘러싸고 또다시 반복되는 일들을 우리는 겪지 않았는가. 마치 데자뷰 현상(기시감)을 느끼듯이... 책임자는 여전히 처벌이 안 되고 있고, 우리는 다시 거리로 거리로 나오고, 현장예술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지 않은가.

 

최병수의 예술, 과거에 했던 현장예술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이 다시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읽히기보다는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작품들이 사진으로 많이 실려 있으므로. 지구온난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고, 그가 만든 얼음 펭귄은 계속 녹고 있는 상태이며, 새만금의 갯벌은 썩어버렸고, 사패산 터널은 뚫려 버렸으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더한 환경 파괴, 생태 파괴, 우리들의 삶 파괴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 삶은 온갖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데, 그것을 알려줄 현장예술가가 너무도 필요한 시점이다.

 

어쩌면 최병수에게 기대지 말고 우리 모두가 현장예술가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작은 촛불 하나를 들고 나온 사람, 그 사람들이 바로 현장예술가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을 거리에 그려내고 있는가. 그런 현장예술가들, 우리 모두가 현장예술가가 되어 세상을 예술로 바꾸어내고 있다. 바꾸어내려고 하고 있다.

 

예술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우리들의 삶에 예술이 어떻게 다가와야 하는지, 최병수의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예술은 민중과 늘 함께 했으므로.

 

책의 제목이 된 권정생 선생의 글에 '병수는 광대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는 자신의 온몸으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권정생 선생은 그 다음을 아쉬워 한다. '보는 사람 있어도 모두 구경꾼 뿐이다. 그래서 병수는 외롭다' 고.

 

우리나라 민주화, 환경, 생태, 그리고 세계 평화까지 최병수가 참여하지 않은,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은 예술은 없다. 그는 온몸으로 우리에게 세계의 위기를, 우리의 위기를 보여준다.

 

그의 광대놀음은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구경꾼에 불과했다. 그냥 박수만 치고 끝낼 뿐이었다. 권정생 선생은 그 점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모두가 구경꾼만은 아니었다. 그의 광대놀음을 보고, 그의 현장예술을 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이제는 광장으로 나와 자신이 현장예술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거대한 예술이 된다. 최병수의 예술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함께 참여한다.

 

이 책에도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 모습이 나온다. 그렇게 최병수는 외롭지 않다. 이 책은 비록 품절이 되었지만 삶 속에서 그의 예술은 현장에 있다.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와 겹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다양한 그의 활동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그의 예술이 현장에서 사라진 과거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곁에 있어야 할 예술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우리 모두가 이런 현장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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