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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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제목을 보면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게 나랴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지금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아마도 긴 세월을 또다시 한탄 속에서 보내야 하리라.

 

그러니 '리셋"이란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는데...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리셋은 현실부정에 불과하다. 무언가 새로움을 추구한다기보다는 현실이 너무도 암울하니, 차라리 이런 현실을 싹 엎어버리고 싶다는 말이 바로 "리셋"이다.

 

그러므로 "리셋"은 "혁명"과는 다른 개념으로 쓰인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리셋"은 부정적인 의미로 "혁명"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리셋과 혁명은 다르다. 순전히 이념형적인 측면에서 볼 때, 혁명가들이 민중 혹은 민족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면 리셋은 철저한 파괴를 주장한다. 혁명이 '천년왕국'적이라면 리셋은 '허무주의적 종말론'에 가깝다. ... 혁명이 하나의 '역사성'으로서의 계급투쟁을 꿈꾼다면 리셋은 역사 그 자체의 종식을 원한다.  181-182쪽.

 

이 말에 의하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리셋"을 꿈꾸는 사람들은 너무도 현실이 힘들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냥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살기 힘드니 나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망하자고, 같이 망하면 덜 억울할 것이라는 생각에 리셋을 주장하게 된다.

 

결국 이런 리셋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겐 희망이란 없는 것이다. 희망이 없다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존엄을 잃은 곳에서는 더이상 희망은 없다. 상호 연대성도 없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의도적 노력에 의해 '가까스로'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것은 존엄과 안전이다. 167쪽

 

이렇게 지금까지 이루어왔던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노력들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한 투쟁을 통해서 확보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말은 조금만 부주의하거나 무관심해지면 인간의 존엄과 안전은 쉽게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국가로부터 안전한가? 라고 질문을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경주 지진으로 대표되듯이 자연재해로부터도 국가는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으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도 잘 지켜주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면에서는 아예 벼랑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다.

 

이렇게 벼랑으로 내몰린 우리들은 결국 각자도생의 길로 가는데, 각자도생의 길은 공동체적 해결을 부정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개인적인 노력과 사적인 노력, 공동체적인 노력과 공적인 노력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사회는 지금 공동체적인 노력이나 공적인 노력은 사라지고, 오로지 개인적인, 또는 사적인 노력만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인데, 개인적인 노력에는 결국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는, 사회적 인간이라는 인간의 기본적 존재의미를 부정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사적인 노력은 어떤 일을 사적으로 해결하는 모습, 그 사적인 것에는 자신의 현재 조건이 바탕이 되므로, 이는 차이와 차별로 나타나고, 이런 사적인 노력을 중시하다보면 공적인 노력은 아예 부정하게 되는 현실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리셋'을 이야기하는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사적인 노력만을 이야기하는 사회인 것이다. 전혀 평등하지 않은데, 평등을 가장하여 책임을 개인의 노력 여하로 전가하는 것, 결코 출발점이나 조건이 같지 않음에도 철저하게 개인으로 해체하여 책임을 묻는 것.

 

그러니 약한 개인은 자꾸만 뒤쳐지고 밀려나고 쫓겨날 수밖에 없음에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도 안 된다는 무력감에 빠지게 되는데, 지배층에서 이런 무력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을 통치하는데 가장 유용한 방법이 무력한 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이러이러한 힘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에 빠지면 그 다음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진다. ... 한국의 지배계급은 말과 글의 힘을 박살내고 무기력을 통해 통치한다. 175쪽.

 

이런 무력감으로 인해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행위보다는, 함께 망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리셋'을 주장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셋'은 부정에만 머문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혁명처럼 한 번에 모든 것이 확 바뀔 것이라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만은 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그런 방법은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이종영의 논의를 빌려와 혁명을 두 과정으로 나누고 있다. 확 변하는 혁명I과 그 혁명을 이루어가는 과정인 혁명II로 이야기한다. 이 혁명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난다고 하지 않는데 이 책의 장점이 있다.

 

혁명은 어떤 순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혁명의 과정에 혁명이 내재해 있음을, 그런 혁명의 과정이 들어있지 않은 혁명은 '리셋'과 다름 없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왜 이 과정이 중요할까? 그것은 이 구절에서 알 수가 있다.

미리 경험해 본 자만이 '이후'를 준비할 수도 있고, 맞이할 수도 있고, 살아갈 수 있도 있다는 점이다. 살아보지 않은 자는 살아갈 수 없다. 살아봄의 경험이 선순환을 만들 수도 있고, 살아보지 못함의 경험이 완전히 폐쇄적인 악순환의 고리로 빠지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전환'의 가능성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이후'를 미리 살아볼 수 있는가 하는 데 달려 있다.  188쪽.

 

이 말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여기에서 혁명을 살아야 한다. 혁명을 내 삶에서 경험하지 않으면 혁명이란 없다. 즉, 내가 춤출 곳을 영원히 찾아 헤매는 곳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내가 춤추고 있어야 한다.

 

춤출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춤추는 곳을 점점 확대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혁명이다. 그런 혁명은 어떤 순간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리 힘든 순간이더라도 웃음을 영원히 잃지는 않기 때문이다.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한다는 것이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면, 나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연대할 수 있는 때가 오게 된다. 그런 때를 만드는 것,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변하고, 다가가야 한다.

 

이는 내가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말로 기능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존재는 나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함께 망하자고 하지 않는다. 함께 살자고 한다. 함께 가자고 한다. 내 말과 네 말이 만나 새로운 말을 만들게 한다.

 

우리는 말들을 통하여 관계를 형성해가기 때문이다. 이 때 말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하여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되어 가는 말이다. 이 말들을 매개로 우리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이 사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똑똑한 소비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상대의 말을 새로운 제안으로 돌려줄 아는 '협력의 기술자'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활성화되고 보호받고 안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 시대와 사회에 대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안전을 위해 활동을 중지하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 바로 활동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우리 존재의 사활이 걸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9쪽.

 

이렇게 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그 관계에서는 경쟁보다는 협력이, 증오보다는 사랑이, 절망보다는 희망이 싹튼다. 이 상태에서는 '리셋'을 꿈꾸기보다는 '혁명'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된다.

 

나만이 아니라 함께... 지금 광장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다. '리셋'이 아닌 '혁명'을 할 수 있는, 그런 관계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우리는 '혁명'의 순간들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내 곁에 있는 존재들과 함께... 그런 존재들을 우린 시민이라고 한다. 동료 시민, 시민 동료.

우리 모두는 모든 곳에서 동료 시민이다. 우리가 동료로서 평등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서 있는 법이 같다는 것을 말한다.  212쪽,

두 번째로 동료 시만이 된다는 것은 그들을 나와 같은 행위의 주체, 특히 말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213쪽.

 

이런 동료 시민들... 나는 하나의 점이다. 하나의 점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내 곁에 있는 사람도 역시 하나의 점이다. 하나의 점과 점이 광장에서 평등하게 만난다. 이 평등한 만남 속에서 점은 선이 된다. 선들이 모여 면을 이룬다. 거대한 면들이 함께 입체가 된다.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그 세상은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고 절규하는 모습에서 이 책의 뒷표지에 있는 말처럼 '멈춘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다. 하나의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입체로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갈 때다. 그러므로 이 책은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나왔다. 세상을 바꿀 가장 좋은 때에 왜 지금 우리가 이렇게 됐는지 분석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부분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있지만, 문제가 밝혀지면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으니... '리셋'이란 말로 '혁명'이라는 답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혁명'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너무 과격하다고 느낀다면 '개혁'이라고 하자. '변화'라고 하자. 아니면 '진보'라고 하자.

 

우리는 지금 바로 이런 순간에 서 있으니까.

 

덧글

 

출판사의 서평단 모집에 응모하여 책을 받고 쓴 서평이다. 지금 상황과 관련지어 제목을 보면서 꼭 책을 읽고 싶었다. 비록 읽지 않고 생각했던 '리셋'의 개념이 내 생각과는 달랐지만, 제목에서 '리셋'이라고 한 것을 '혁명이나 변화, 진보'로 바꾸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다 망하자가 아니라, 함께 살자고 외칠 때이니까... 또 우리는 지금 광장에서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이 책 흥미롭게 잘 읽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이다. 생각거리. 말할 거리. 말들과 말들이 만날 수 있게... 허공에 흩어지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 가슴에서 싹을 틔워 행위로 나아가게 하는 말들, 그런 말들의 만남.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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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고문이다 10

 - 나오며


치료가 목적일까

아니다, 격리가 목적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가두어 버리는,

있어도 없는 사람

병은 함께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추방해야 할 범죄이다

그래서 병원은 치료가 아닌 보이지 않게 하는

보통에서 차이를 없애는 방법이다

이것이 푸코가 생각하는 근대 병원이다

그렇다면

병원이 눈에 보이면

병이 있다

병원에 가면 환자가 된다

일리히가 말했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

이보다 심한 고문이 있을까

내 병의 주체가 의사고, 병원이라니

내 몸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

혹자는 말한다

병원 절대로 가지 마라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닌

의사가 오게 해야 한다고

옛날처럼

주체는 바로 나여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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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준 평전 - 통합과 인애의 정신 실천한 민족운동가
박남일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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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장병준이라니... 우리나라 근대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책을 읽고,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장병준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아마 이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나만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 집안 사람들이 많이 독립운동에 관여했는데, 이렇게 알려지지 않아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기억되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의 뒤에 사진을 보니 장병준이 죽은 뒤 그의 장례를 가족장이 아닌 사회장으로 치렀다.

 

사회장이라 함은 사회를 위해서 일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 역시 당대에는 독립운동가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다. 다만 그가 중앙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지방에서 지냈기에, 많이 잊혀졌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이 지긋지긋한 중앙주의)

 

물론 그가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그는 앞에 나서서 이름을 떨치기 보다는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민족을 위해서라면 궂은 일도 마다않고 나섰던 사람.

 

그렇다고 사회주의다 자본주의다라고 진영 논리에 가둘 수 없는 사람. 비록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 돈을 민족을 위해서 썼고, 교육 운동에도 투신했고, 그의 사위들 중에서는 사회주의자들도 있고 했으니... 그에게는 어떤 진영보다는 민족을 위한 길이 무엇일까가 더 중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일제시대에 좌우합작단체인 신간회에 그가 참여한 것으로 드러나고, 전라도 지역, 특히 목포지역에서 그는 신간회가 잘 운영되도록 힘썼다고 한다. 민족독립을 위해서는 좌든 우든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민족주의자들이 전면에 나설 수가 없게 흘러갔다. 장병준 역시 마찬가지다.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 그는 미군정에서 실시한 과도입법정부에 참여하여 좌우합작을 추진하지만, 남과북에 각기 다른 정권이 들어서고, 전쟁이 나면서 그의 가족 역시 풍비박산된다.  전쟁으로 사위 두 명을 잃었으니...

 

하지만 이승만 독재를 용납할 수 없었던 그는 이제 부정선거 규탄에 앞장선다. 1960년 3.15부정선거를 폭로하는 시위에 앞장서는 그는 4,19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산 시위보다도 광주 시위가 더 먼저 일어났다고 하고, 그 시위의 맨 앞에 장병준이 있었다. 사진으로도 남아 있으니...

 

그후 도지사 자리를 마다하고 참의원 선거에 나가 낙선한 다음에는 조용히 물러나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자신의 행적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으며, 중앙에 진출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음에 더 빨리 잊혀졌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려울 때 알게모르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 사람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꼭 해야할 일이라면 한 사람들. 그리고 그 보상을 받으려 하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병준이라는 이름이 낯설기는 하지만, 그처럼 민족을 위해서 일한 사람은 영원히 잊혀지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그 이름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다.

 

독재에 분연히 맞섰던 그... 일제라는 침략자에 맞섰던 그... 그의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도 남아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민족주의자들. 반갑다.  이런 작업이 지속되어 더 많은 잊혀진 민족운동가들이 우리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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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표 만화와 환호하는 군중들
한국만화문화연구원 지음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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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허영만의 데뷔 30주년이 맞이하여 그에 대하여 만화에 관련된 사람들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일명 허영만에게 헌정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만화가가 30여년 동안 작품활동을 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참 드문 일이다.

 

특히 만화하면 좀 떨어진 장르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는데, 허영만과 같은 만화가의 존재로 인해 만화 역시 하나의 예술로 존재함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린 시절 만화를 보면 공부 안 하고 이따위 만화책이나 본다고 야단을 맞곤 했다. 만화는 공부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불량서적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었다. 그래서 만화가가 된다고 하면 우선 혼부터 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그럼에도 만화는 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 스트레스는 이만저만한 게 아니어서, 스트레스를 푸는데는 만화보기가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만화방 가서 몇 시간이고 만화책에 묻혀 지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만화가들이 박봉성, 이현세, 고행석, 이상무, 김영하, 그리고 허영만 등이다. 이들의 만화에 빠져 만화방에 가곤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작가들 중 허영만에 대한 책.

 

그에 대해서는 최근에 "식객"이후로도 더 많은 만화가 나왔지만, 지금은 40주년이 넘었지만, 이 책은 "식객"이 연재되는 데서 멈추고 있다. 벌써 12년 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부터, 그의 작품 소개, 그를 바라보는 제자들 이야기에, 그의 만화를 캐릭터로 확장하는 일, 그리고 그의 만화가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는 것까지, 한 마디로 허영만의 만화세계를 모두 다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허영만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꼭 읽으면 좋을 책인데... 특히 그가 만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만화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가 어디인지, 또 그가 지금까지 40년을 넘게 우리에게 알려진 만화가로 존재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만화가라면 골방에 박혀 밤새도록 만화를 그리고 낮에는 폐인처럼 잠을 자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허영만은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을 주장하는 사람이고, 주말에는 여행을 다니며, 차도 당시에 벤츠를 끌고 다닐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는 것.

 

공장식 만화가들이 대세를 이루었고, 대부분의 만화책들이 이렇게 공장처럼 역할을 나누어 분업시스템으로 창작, 발간되곤 했는데, 여기에서 탈피해 예술가로서 지내고 있다는 것, 만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사람에게 읽히는 만화를 그리려 하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엄청난 자료 수집으로 시대가 변해도 그 시대에 맞는 또는 시대를 앞서가는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이 어쩌면 허영만 만화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온 비결일 수 있다는 점 등을 이 책에서 알 수 있다.

 

우리에게 "미생"의 작가로 유명해진 윤태호 역시 허영만의 제자로 출발했다는 사실, 그가 말하는 허영만을 읽는 재미도 있는 이 책은, 만화가 이제는 예술로 자리잡고 있음을 인식하게 해준다.

 

예술로 대접받지도 못하고, 공장식 생산에 치중했던, 학교에서는 공부에 방해되는 존재라는 평가를 받았던 만화에서 이제는 만화를 중점으로 가르치는 학교도 생길 정도로 만화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또한 인터넷 상에 만화를 발표하는 공간도 많이 생겼고, 만화가를 지망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만큼 이제 만화는 우리에게 친숙한 예술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허영만과 같은 만화가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아직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허영만... 그의 만화 세계를 알 수 있는 책.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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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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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눅진눅진하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몸이 물에 젖은 옷을 입고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만히 있지는 못하는데, 자꾸만 걸어야 하는데, 옷은 점점 무거워지는 상태. 그렇다고 길이 편하냐 하면 그것도 아닌.

 

그런 느낌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시집을 읽었다고 해야 하나. 무엇하나 선명하게 마음에 딱 다가오지 않고 끈적끈적하게 들러붙는 느낌을 주는 시들이다.

 

선명함과는 거리가 먼 시들... 그런 시들을 읽으며 마음이 녹초가 된다. 그냥 축 처지게 된다. 세상에 시를 읽으며 어떤 희망을 얻어야 하는데 오히려 시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다니.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명징한 언어의 세계에 살다가, 그런 언어를 좋아하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언어를 만나, 이건 뭐지 하는 기분... 도대체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대상을 만났을 때의 당혹감. 그런데도 그 끈적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

 

조금만 더 읽으면, 더 생각하면 명징한 의미를 발견할 것 같은 느낌... 그 느낌 속에서 읽고 읽어도 계속 발에는 끈끈이가 붙어있는 듯 경쾌한 걸음을 걷지 못한다.

 

무겁다. 머리를 무겁게 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결코 편하지 않다. 그러니 이 시집에서 어떤 명쾌함을 바랐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이게 이 시집의 장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이 시집은 깔끔하지 않게 다가온다.

 

시인은 이 시집을 1988년에 냈다고 한다. 이것을 2001년에 다시 냈다. 세기가 바뀌었는데 다시 출간한 시집.. 십 년이 지났는데, 세상이 변했는데, 그런데도 이 시집이 다시 나온 것은 시집이 지닌 불명확성 때문일 것이다. 불명확성은 불확정성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세월이 지나도 계속 의미는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그런 의미에서.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발 밑이 끈적끈적하기 때문에 빨리 갈 수 없고,다시 돌아오기도 해야 하는 그런 시들.

 

제목에서도 이 눅진함이 느껴지는데... '젖은 구두'란 표현이다. '젖은 구두' 정말로 열심히 산 생활인의 신발이다. 발에서 땀이 나서 신발이 젖도록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모습... 그 사람이 잠시 멈춰서 젖은 구두를 '벗고' 다른 세계에 있는 '해에게 보여줄 때' 그때 어떤 생각을 할까.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젖은 구두를 해에게 보여주면 해는 젖은 구두를 말려줄까? 아니면 지금 말려도 소용없어. 넌 계속 걸어야 해라고 할까. 누구든 이 세상에 나왔으면 죽을 때까지 걸어야 할 운명인 걸까? 그것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든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시집 제목이 된 시를 찾는데... 그래도 제목이 된 시가 시집의 대표격이지 않을까 하는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찾았더니, 이건 제목과 내용이 도무지 연결이 안 된다. 제목이 시 내용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이런 참... 게다가 제목과는 몇 글자가 다르다. ('내 젖은 구두를 해에게 보여줄 때' - 91쪽.  '를'이라는 조사가 들어갔고, '벗어'라는 말이 빠졌다.) 

 

그러다 제목이 아닌 첫 시행에 제목과 거의 같은 구절이 나오는 시를 찾았다. 이 시집의 마지막에 있다. ('길에 관한 독서' - 169쪽,  첫행이 '한때 젖은 구두 벗어 해게게 보여주곤 했을 때'로 시작한다. 제목과 많이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이것 역시 명확하진 않다. 그러나 이런 불명확성 속에서 계속 움직이며 걸어야 하는 사람들... 결국 길 위에 있어야 하고, 신발은 늘 젖어 있어야 하는, 그런 사람들의 운명, 또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 이 시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멈춤은 곧 죽음이니, 삶은 움직임이요, 정류장이 아닌 길 위에서 걷고 있음이고, 이는 바싹 마른 신발이 아닌 젖은 신발, 젖은 구두여야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명확하진 않다. 시집은 계속 마음 속에 어떤 찜찜함을 남기고 있다. 이렇게 받아들여도 되나,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음을 알라고. 꼭 한 쪽으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시인의 말에서 그 점을 느꼈다. 제발 하나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시인의 말' 제목이 바로 '자메이카 봅슬레이'다.

 

상반된 것이 하나로 묶여 있는 그 상태... 시는 이렇게 비슷한 언어들이 묶인 것이 아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언어들이 모여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그것이 시의 역할일 수도 있다고.

 

그러니 이 시집에서 어떻게든 하나로 해석되지 않고, 명확하게 이성으로 정리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 삶은 본래 이런 모순적인 것이라고, 그 모순들이 계속 움직이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린 길 위에 있을 뿐이라고. 그 길을 가자고. 그렇게 삶의 다양성, 모순성들을 생각해 보는 이문재 시집 읽기였다고 위안을 하면서...

 

시집 읽기를 마쳤다고 할 수밖에...

 

위에서 언급한 두 시는 길어서 인용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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