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둘기, 인간

 - 도심 공원 산책 3


신의 분노로 세상이 망망대해

인간이 절멸한다는 절망에 빠졌을 때

멀리멀리 날아갔다 와 희망을 심어준

비둘기가, 

인간이 저 잘살자고

숲을 밀고 제 집을 지을 때

날아갔다 돌아올 집을 잃고 헤매던

비둘기가, 

도심 공원에 안주해

인간이 남긴 부스러기들을 주워먹으며

이젠 날기도 귀찮은지

뒤뚱뒤뚱 공원을 거닐며

뭐 떨어진 것 좀 없나

두리번거린다.

이제는 새라고 할 수 없는

날기보다는 걷기를 좋아하는

닭둘기가 되어버린

비둘기가


그런데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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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는 그 자리
이혜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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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사전에 없는 낱말이 자꾸 머리 속에 맴돌았다. "비끄러지다" 이런 말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이 말이 떠오르는 이유는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두 비틀리고 미끄러지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엇갈린 관계를 맺고 있다. 엇갈린다기보다는 일방적인, 자신의 처지에서 바라보는 관계를 추구하기에 결코 맞물릴 수 없는 관계로 끝나고 마는 그런 만남들을 지속한다.

 

첫소설에서부터 이 점이 드러난다. 첫소설은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데, '너 없는 그 자리'라는 소설, 여성 화자의 편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얼핏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을 때 느끼는 애틋한 감정들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읽어보면 그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감정의 전달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일방적인 감정, 이런 일방적인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 만남은 지속될 수 없다. 남자는 여자에게 해외 근무 파견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것을 알게 되는 여자로 소설이 끝난다.

 

그만큼 둘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일방적으로 사랑에 빠지기 때문에 상대의 감정을, 상대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일방통행만이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다.

 

일방통행. 이것은 소통이 아니다. 소통이 아니기에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런 관계는 결국 비틀리고 미끌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꾸만 '비끄러지다'라는 말이 생각났는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만들어내고 싶었는지도.

 

이 소설의 감상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그렇게 '비끄러지다' 가 된다. 두번째 소설인 '한갓되이 풀잎만'에서도 일방적인 사랑이 나오고 '북촌'에서도 그렇다. 기다림이 주제인 것 같지만, 결국 함께 할 수 없는 관계로 끝나게 된다. 그런 소설들이 '감히 핀 꽃'에서도 '해풍이 솔바람을 만났을 때'에서도 나타난다.

 

좀 대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렇게 비끌어지게 표현한 소설인 '금빛 날개'에서 절정을 이룬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현대인. 자수성가한 사람이 자식에게 기대하는 것, 자신의 삶을 유지해가는 것,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 자식의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

 

비틀린 관계가 이런 비극을 유발한다는 것을 소설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나마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검은 강구'다. 물론 토끼 반도라든지 여우 열도, 흑곰, 독수리라는 표현으로 우리나라와 일본, 러시아, 미국을 빗대어서 사할린으로 끌려가 살게 된 우리 민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관계는 비틀리고 만다.

 

그래도 이 소설에서 아버지가 결국 사할린에 남는 것으로 끝나지만, 이 아버지 역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니... 소설의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편 한 편의 소설이 모두 이런 어긋나는, 서로 맞물리지 못하는 관계를 드러내주고 있다. 마치 지금 현대인들이 관계를 맺고 있지만, 서로 함께 가는 관계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지내는, 언제든지 따로 갈 수밖에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축제'에서 이런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되는 듯도 하지만, 이 소설에서 남편과 함께 한다는 결말을 찾기는 힘들다. 자신의 과거 속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비록 인도네시아에 가서 그런 단초를 마련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극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의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올바로 맺지 못하게 한다. 즉, 자기 속에 갇혀서 남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한없이 이해해 줄 수 있는 남편이라고 해도 함께 하기는 힘들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에서 주인공이 자살을 하게 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은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가족을 제대로 돌볼 수 없다는 절망, 그 절망 속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리지만 또 하나의 자기 세계에 갇힌 사람으로 인해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사람.

 

남을 이해해준다는 행위가 남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음을, 이 소설을 통해 역시 비틀리고 미끄러지는 관계를 만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남들과 함께 살아가지만, 어떨 때는 자기 속에 갇혀 자신의 안경만으로 남을 판단할 때도 있다. 자기만의 안경을 고집하는 것, 그것은 제대로 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한다.

 

내 안경이 과연 남을 제대로 보게 했는가? 자신을 남의 위치에 놓아보지 못한 사람, 그런 사람은 결코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처럼 잘못된 관계로 파국에 이를 뿐이다.

 

그러니 이 소설집은 이런 일방통행적인 관점에서 만남을 이루는 것이 어떻게 관계를 파탄내는가를 생각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한편의 단편들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며 읽지만, 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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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바둑 천재들 - 흑백 돌로 슬기를 겨루는 천재들의 창의력 이야기 한국의 천재들 시리즈
유한준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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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었다. 시작 전에는 이세돌이 이길 것이라고, 인공지능이 아직은 바둑에서는 안될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결과는 4대1로 알파고의 승리였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인공지능이 이제는 바둑까지도 인간을 이기다니, 이제 곧 인공지능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호들갑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자율주행차가도 그 중의 하나고, 의료계에서는 이제는 로봇이 수술을 하게 한다는 말도, 법조계에서는 인공지능에게 판결을 맡기자는 말도 나오곤 했었다. 그만큼 인공지능은 인간의 삶의 영역을 잠식해 들어오는 위험요소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잠식하기 전에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 생각하면, 인간이 인공지능과 다른 점이 있고, 그 점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에 들어오기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이다. 나중에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 중 한 영역이 바로 창의성 아닌가 한다.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움직임, 틀을 벗어난 생각, 따라서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있던 것에서 전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는 능력, 이것이 바로 인간의 특성 아닌가 한다.

 

이런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바둑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바둑에서는 인공지능이 아직도 인간에게는 상대가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바둑은 361개의 점에 차례로 돌을 놓아 승부를 가리지만, 그 돌들이 각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으며 집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둑에는 고도의 창의성이 필요하다. 관계를 만들어가는 능력도 필요하고, 상대와의 관계속에서 자신의 집을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것을 잘하는 사람이 바로 바둑의 고수고, 그런 사람들 중에 대표적으로 김인,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유창혁, 이세돌, 박정환 등을 들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은 바둑에 관한 책만은 아니다. 알파고와의 대결을 중심으로 바둑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바둑이야기도 나오지만, 주로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인간이 인공지능과 어떻게 다른지를 바둑 기사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 바둑 기사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기도 하고, 바둑 일화도 나오고 하여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바둑의 장점을 이야기하면서, 바둑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장점을 찾도록 하고 있다. 그런 장점을 살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책이다.

 

좀더 깊이 있게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고민하려면 이 책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이 책에서는 그 문제를 제시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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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누구나 아는 죽음 - 한국전쟁과 이승만의 거대한 적들 이야기
신기철 지음 / 인권평화연구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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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억울한 죽음들이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죽음들, 그 자식들 대에까지 고통이 전가되는 죽음들.

 

우리나라에서 이런 죽음은 주로 좌익이라는 말과 연결이 된다. 좌익이라는 말로 죽음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좌익은 곧 빨갱이고, 빨갱이는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안될 암적 존재이기 때문에 도려내야 한다. 이렇게 몇 해 전에, 지금 탄핵소추를 당해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검찰조사와 특검 조사를 받아야 하는 박근혜 정권에서도 한 정당을 해산했다. 좌파라고.

 

그 정당의 해산 과정에서 이상하게 50년대의 진보당 해산 사건을 보는 듯했으며, 진보당 당수였던 조봉암의 죽음이 연상되었는데... 그럼에도 정당해산은 강행이 되었고, 지금은 그것을 주도했던 정권이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국민들이 좌익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다고도 한다. 이 정권이 몇몇의 농간에 농단당했음에 다른 이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을 하는지...

 

이 책에서는 이런 억울한 죽음들이, 그러나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죽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금은 진실이 많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긴 김구와 여운형 같이 유명한 정치인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도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으니, 이들보다 지명도가 약한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완전히 밝혀지기는 더욱 힘들다고 보아야 한다. 그만큼 자료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소중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고, 이런 노력의 결과를 어느 정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후 좌익계열에서 활동했다고 해서 학살당한 사람 이현열, 박세열과

국군이 정비되기 전에 주로 김구와 가까웠다는 이유로 숙청당한, 이들은 좌익이 아니었음에도 좌익이라는 혐의를 받고 학살당한 전호극, 이상규와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했지만 해방후에 억울하게 학살당한 박원근, 오홍탁, 어수갑과

전쟁 시기 어쩔 수 없이 남아서 살기 위해 해야 했던 일 때문에 학살당한 이봉린, 이하영, 전재흥.

이렇게 열 명으로 이 당시의 반인권적 학살을 고발하고 있다.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억울한 죽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규명될 때 우리나라의 역사가 바로 서는 것 아니겠는가. 국정교과서 따위가 아니라 말이다.

 

읽으면서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니, 그것도 죽이기 참 편한 전가의 보도가 있었다니. 이 전가의 보도가 지금도 남아 있어서 가끔 우리에게 휘둘러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많이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좌익은 빨갱이고, 종북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런 칼을 휘두르면 위축된다. 무언가 비판을 하는 사람을 위축시키는 데는 이만한 칼도 없다. 이것이 해방이후 우리나라에서 지속된 행위고, 이런 행위가 트라우마로 우리 국민들 마음 속에 남아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 국가가 진실을 밝히고 사죄해야 한다. 이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트라우마가 극복될 수 있다.

 

그때서야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 반성과 사죄가 없는 화해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억울한 죽음, 빙산의 일각만 밝혀졌다. 그나마 진실을 밝히려는 유족들의 끈질긴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유족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진실을 규명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또 어떤 면에서는 국가가 조직적으로 감추고 있기 때문에 유족들이 더 힘들게 진실 규명에 다가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하나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 진실이라는 빛을 어둠이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어둠은 아무리 캄캄해도 결국 빛에 의해 물러가게 되어 있으니.

 

정권에 의해 억울하게 당한 죽음들, 이제는 진실이 밝혀지고 국가는 그에 대해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민이 화해하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

 

이 책이 그렇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이 책이 하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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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야록 -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개화와 망국의 역사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2
황현 지음, 허경진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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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 버렸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해 보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鳥獸哀鳴海嶽瀕 / 槿花世界己沈淪 / 秋燈掩券懷千古 / 難作人間識字人) 

 

첫구의 瀕자룰 대부분 嚬자로 쓰고 있던데, 이 책에서는 이 瀕자를 쓰고 있어서 잘 모르겠다. 뜻을 보면 이 嚬자가 맞을 듯한데... 457쪽.)

 

이게 남 얘긴가? 먼 과거의 이야기인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전 한 지식인이 죽기 전에 쓴 시인데, 이 시가 지금도 우리 가슴에 남아 있는 까닭은?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소위 식자(識字)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마치 자신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이 지내고 있으니.

 

소위 글자를 안다고 하는 사람, 배운 사람, 지식인의 책무란 무엇인가? 사회가 이 지경이 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견제하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것이 글을 아는 사람의 힘듦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우리는 상대를 비판하는 지식인은 많이 보아도 이 지경까지 이른 책임을 지겠다는, 또는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선언을 한 지식인을 보지 못했다.

 

지식인들이 지식팔이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그들에게 글을 아느 것에 대한 책무를 다시금 일깨워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는 날들이다.

 

이 지점에서 황현의 매천야록은 절절하게 다가온다. 시골에 내려가 살고 있던 선비, 나라에서 그다지 혜택을 받았다고 할 수 없는 선비가 그럼에도 자신이 선비로 글을 읽고 지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고 나라가 망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막지도 못한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지식팔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책임은커녕 나라의 혼란을, 나라의 망해감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이용한 지식팔이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들이 지금까지 호의호식하면서 살고 있으면서 역사에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고 있으니.

 

그러나 그 와중에도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꼭 있다. 황현도 마찬가지다. 그는 고종1년부터 대한제국이 망하는 날까지의 역사를 기록해 놓기로 한다.

 

후대에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아 기억 속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와 미래를 살아가는 방법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 하나하나는 지식인의 책무를 이행한 것이 된다.

 

그리고 합방이 된 후, 그는 자신의 글 아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위에 언급한 절명시는 그 중의 일부다.

 

시골에 내려가 신문이나 지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한 책인데, 사실관계가 다른 것도 있긴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책이다.

 

정말 지금 이런 모습이 과거에도 있었음을 읽게 되고 씁쓸한 마음을 지니게 되는데, 구한말이라고 하는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한 지식인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그가 기록한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성찰하여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방대한 내용을 편역자가 중요한 사항으로 발췌하여 정리해 놓은 책이기 때문에 읽기도 편하고, 역사적 사실을 간략하게 잘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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