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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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관한 책은 재미있다.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림을 통해서 화가의 삶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림을 통해 그 당시의 사회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가의 삶과 당시의 사회, 역사를 만난다는 것, 그림을 통해 통합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와 상통한다. 여기에 미적 감상을 통해 감수성을 키울 수도 있으니, 인문학도 이런 인문학이 없다.

 

단순한 그림의 역사와는 다르게 책을 신과 왕, 그리고 민중의 3부로 나누어 그림의 역사를 알 수 있고, 그림들이 사회적 변화에 어떻게 맞물려 변하는지도 알 수 있게 해주었지만, 그 시대에 유행했던 미술사조로 국한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한 사람에게서는 딱 하나의 특징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특징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여러 특징들 중에서 화가의 말년에 또는 맨 마지막 그림에 나타난 정신, 기법, 모습, 사회, 역사 등을 고찰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다고 화가의 마지막 그림만 나오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화가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그림도 나오며, 그 화가의 생존시에 유명했던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따라서 읽다보면 자연스레 미술사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편제를 신과 왕, 민중으로 한 이유도 그것이다. 또 등장하는 화가도 연대순으로 배치하여 자연스레 미술사를 익히게 된다. 여기에 화가의 삶을 통해서 단 하나의 사조가 아닌 여러 사조가 그의 그림에 나타남을 보여주기도 하고.

 

먼저 화가와 신 편에는 보티첼리, 라파엘로, 티치아노, 엘 그레코, 루벤스가 나온다.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음 직한 화가들이다. 그들의 대표작도 직접 미술관에서 보지는 못했더라도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았을테고.

 

이들이 말년에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그때의 상태는 어땠는지, 특히 보티첼리 같은 경우는 화려하고 기교가 넘치는 그림에서 그 기교를 쪽 뺀 그림이 말년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들어 한 화가에게 공존하는 여러 모습에 대해, 화가를 한 유파로만 정리해서는 안됨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화가와 왕 편에는 벨라스케스, 반다이크, 고야, 다비드, 비제 르브룅이 나온다. 소위 궁정화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그림에 궁정의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은 그들이 속한 지위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 나름대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으며, 고야의 경우에는 어느 하나로 국한시킬 수 없는 다양한 그림들이 나오고 있다. 그 점을 볼 수 있는 장인데... 비제 르브룅이란 작가에 대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고맙다.

 

궁정화가가 되어 마리 앙투아네트의 화가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여성 화가. 당시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음에도 자신의 실력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날렸던 화가.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어느 부인의 초상'도 그의 그림이라고 하니, 편견을 딛고 우뚝 선 화가라 할 만하다.

 

또한 이들로 인해 왕가의 사람들이 역사에 남았다는 사실, 별 볼 일 없는 왕이나 왕족이 이들의 그림으로 영원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당시에는 왕가가 갑이었겠지만, 지금은 화가들이 갑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로 남기도 한다.

 

마지막 편인 화가와 민중에서는 브뤼헐, 페르메이르, 호가스, 밀레, 고흐가 나온다. 이제는 시민사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시민들의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그림도 변한다. 궁정화가들의 시대는 끝났고, 시민화가들의 시대, 시민들에게 그림을 팔아야만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 그들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은 시민들의 의식에서 관심에서 멀리 벗어나면 안 된다. 그렇게 그림은 시민사회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 활약했던 화가들 중에 몇 사람을 뽑아 그들 그림의 마지막 작품에서 작가의식과 사회를 읽게 해주고 있다.

 

얼마나 다양한 그림들이 나오는가. 얼마나 다양한 기법과 소재가 동원되는가. 이제 그림은 어느 한 분야로 국한되지 않는다. 화가에 따라 수천 수만의 그림이 나오게 된다.

 

이런 식으로 흥미롭고 재미있게 책을 읽어가는 중에 그간에 읽었던 미술사에 관한 내용들과 더불어 새롭게 한 화가에게 들어 있는 많은 특성들을 읽어가게 된다. 더불어 그 시대의 특성 등도 함께.

 

그러니 단순히 그림만을 감상하는 책이 아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화, 적응해 가는 예술에 관한 책이다. 그것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 것과도 통한다. 너무도 난해해지는 현대미술이지만, 언제까지 난해할 수만은 없다.

 

난해함 속에서도 사람들 곁으로 다가오는 미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사조가 역사 내내 지속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 우리 시민들 속으로 들어올 예술은 어떤 예술일까, 그런 생각도 하게 한 책이기도 하다.

 

풍부한 그림을 통해 눈요기도 맘껏 하고, 다양한 삶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기도 하고,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화가의 모습을 통해 시대와 예술가에 대한 공부도 하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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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판이 워낙 개판이라 묻혀서 그렇지, 지금 우리나라 생태계는 난리다.

 

  고병원성 조류독감(AI-그냥 조류독감이라고 하겠다. 영어보다는 이게 더 친숙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처음 용어가 조류독감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고 한다.

 

  그게 왜 문제냐고? 조류가 병에 걸렸는데,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냐고? 그 조류에 닭이나 오리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열에 조리해 먹으면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하지만, 안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삼가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기도 하다.

 

  병에 걸린 닭이나 오리를 처리하면 되지 않냐는 생각, 그런데 이것이 전염성이라서. 그리고 인간에게도 전염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조류독감에 걸린 닭이나 오리가 있는 농장은 물론이고, 근처 몇 킬로미터에 있는 농장의 조류들까지 모두 살처분(죽이는 것)해야 한다고 한다.

 

벌써 천만 마리가 넘는 닭, 오리들이 살처분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감염의 요인을 철새로 보고 있다. 조류독감에 걸린 철새가 날아와 퍼뜨렸다는 것.

 

그런데, 철새들은 걸려도 몇 마리만 죽어나갈 뿐, 집단적으로 죽는 경우는 없다. 또한 철새는 지구 탄생이래 계속 이동을 거듭해 왔고, 그들이 이렇게 여러 곳을 다니는 동안에 온갖 질병에 걸리기도 했을 거고, 질병균들을 전파하기도 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 문제가 없었던 일들이, 최근에 들어 급속도로 퍼지면서 재앙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인간에게는 전염이 안 되던 것이 이제는 인간에게 전염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철새를 막을 방도도 없고, 또 철새를 막아서도 안 된다. 대책은 다른 데서 나와야 한다. 역시 답은 정해져 있다.

 

지금의 좁은 공간에서 대량으로 사육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이런 일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지금처럼 환경을 파괴하는 일을, 환경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일을 계속하면 안 된다는 것.

 

조류들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이번에는 소와 돼지들이 수난을 당한다. 연좌제에 걸려 수많은 소, 돼지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

 

결국 인간이 만들어 놓은 환경이 문제라는 것인데, 환경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이렇게 살처분으로 나아간다면 상황은 바뀌지 않고 반복될 뿐이다. 그때만 벗어나고, 다시 시작되는 악순환의 반복.

 

촛불이 활활 타올라 우리나라 정치권을 바꿔가고 있는데, 이제는 정치권만이 아니라 생활도 바꿔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지속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촛불 정국이라는 이름으로 묻히고 있지만 지금 고병원성 조류독감, 너무나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철새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만들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헌책방에 산 "지구는 아름답다"란 시집을 꺼내 읽었다. 생태시를 표방해서 한국시인협회에서 시인들에게 생태시를 받아 수록한 것. 401명의 시인들 시가 실려 있다. 모두 환경, 생태를 소재로, 주제로 한 시들이다.

 

이 시들을 읽으며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고, 변화가 시급함을 느꼈다. 정치권의 변혁만큼이나 우리 생활의 변혁도 필요함을.

 

그것들이 따로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함을, 함께 갈 수밖에 없음을, 지금의 정치권력으로는 생태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니.

 

이 시를 보자.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너의 일상을 돌아보라

                    - 강상기

 

강이 오염되었어!

누구 짓이야?

산이 파괴되었어!

누구 짓이야?

오존층이 파괴되었어!

이 또한 누구 짓이야?

 

한국시인협회 엮음, 지구는 아름답다. 뿔. 2007년. 13쪽.

 

누구 짓? 우린 알고 있다. 범인은 바로 우리라는 것을.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언제까지 책임 회피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촛불이 정치권을 바꾸듯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삶을 바꿔 환경이 더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하자. 지구에 있는 생물들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그것은 바로 내 일상을 되돌아보고, 일상에서 고칠 수 있는 것, 바꿀 수 있는 것은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은 책이다.

 

지금 계속 번지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독감 소식을 접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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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8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8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6-12-18 1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치권만이 아니라 생활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생활 역시 정치가 나서서 주도하고 좋은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정치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가 과거의 악습을 그대로 고수하기에 시민들이 나서야겠지만 시민들 역시 대량 사육, 대량 소비로 인한 저가의 고기를 먹는데 길들여져 있어 그 틀을 깨기는 어렵다 생각합니다. 지금 촛불 집회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데 촛불 집회와 소비자 운동 또는 시민운동은 차이가 있다고 보입니다. 지금의 촛불 집회는 분노(물론 정의감에 기인한 분노)가 추동하지만 친환경이나 유기농 사육에 비해 저가일 수 밖에 없는 지금의 대량 사육의 결과물들을 마다할 리가 없고 그런 점에서 분노해 무엇인가 운동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육식 위주의 생활을 지양하는 길 밖에 없지 않을지요?

kinye91 2016-12-18 14:19   좋아요 2 | URL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분노를 운동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정치겠지요. 지금 현실 정치세력들로서는 이런 일에 나설 일이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지녀왔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치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언론에서 다루지 않지만 그런 정치세력은 비록 힘이 약하지만 존재하고요. 그런 정치세력들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해주고, 내 생활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꿔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ysj0722 2016-12-1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꼬마요정 2016-12-18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경제는 어려워지고, 유기농이나 친환경이 유행한다지만 가격을 포기하기엔 우리가 너무 길들여져 있겠죠.. 그래도 저라도 동물복지 계란 먹고, 가능한 육식을 줄이고, 먹더라도 농장에 풀어놨다는 곳에서 파는 고기를 삽니다. 아울러 삭스핀 같은 거 좀 안 팔면 좋겠고, 잔인하게 채취하는 모피나 거위털, 오리털 좀 안 쓰면 좋겠구요. 이래저래 가슴 아플 때가 많은 요즘입니다. 많은 생각을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16-12-18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qualia 2016-12-18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류 독감(AI, Avian Influenza, Avian Flu, Bird Flu)이나 신종 플루(Swine Flue) 바이러스가 미국의 한 비밀 실험실에서 만들어져 퍼뜨려졌다는 음모론도 있더군요. 이와 관련해 의문스러운 점은 대략 1990년대쯤까지는 조류 독감이나 신종 플루 발생/확산이 거의 없었거나 미미한 수준이었는데, 2000년대 중후반부터 매년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해서 뭔가 수상한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본격 유행하기 시작한 시점, 발생 빈도, 발생 대륙, 확산 속도나 범위, 전염성 여부나 그 병증의 강도, 백신 개발 제약사의 백신 독점 판매, 등등에 대한 상세 사항과 음모론자들이 지목하는 ‘바이오테러’를 획책하는 비밀단체나 비밀국가기관 따위의 음모 내역이 뭔가 서로 아귀가 척척 맞아떨어지는 느낌도 들고요. 음모론이라 해서 걍 소설로만 여기기에는 뭔가 좀 수상쩍은 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kinye91 2016-12-18 19:22   좋아요 0 | URL
음모론인지 아니면 소설 소재에 불과한지 관심을 가지고 추적, 조사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 방면에는 문외한이라, 처음 들어보는 말이네요.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하니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지겠지요.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이 비극을 먼저 막았으면 좋겠어요.

벤투의스케치북 2016-12-1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거친 생각에 공감해주시니 다행입니다. 고민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정치가 나아지듯 우리 삶도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나의 사랑, 백남준 -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말하는 백남준과 함께한 삶, 사랑, 그리고 예술
구보타 시게코 지음, 남정호 옮김 / 이순(웅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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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그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더 적을지도 모른다. '비디오 아트'라는 분야를 창시한 세계적인 미술가. 우리나라 사람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몇 안 되는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비디오 아트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른다. 어떤 감동을 받은 적도 없다. 그냥 거대한 전자기기들의 모음이라는 단순한 생각만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되어 있는 '다다익선'을 보고서도 어떤 감흥도 받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그만큼 그의 예술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그의 개인사에 관심을 가질 일도 없었다. 하지만 백남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알고 싶었다.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가 세계적인 예술가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이제는 세상을 뜨고 없는 그지만, 그의 작품은 세계 미술관에 남아 그를 기억하도록 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와 우리나라 기자의 합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합작품이라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화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이다.

 

구보타 시게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백남준의 아내가 일본인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아내가 누구인지는 관심 없었다. 그의 아내가 그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예술가일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부부가 모두 예술가일 때 주로 남편 쪽은 유명하고, 아내 쪽은 묻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오노 요코-백남준과 친구였다고 한다-를 아는 사람보다는 그의 남편이었던 비틀즈 멤버인 존 레넌을 더 잘알고 있듯이, 백남준을 비디오 아티스트로 알고 있지만, 그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를 비디오 아티스트로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남정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책 프롤로그에서 그의 글을 읽어보면 구보타 시게코라는 예술가, 백남준의 그늘에 가려버리는 예술가가 아니다.

 

미국의 뉴욕 현대미술관에 백남준의 작품과 같은 숫자의 작품을 보관하게 하고 있는 작가, 구보타 시게코... 그가 들려주는 백남준과 그의 예술 이야기.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백남준이라는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접한 사람을 통해서 듣게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적인 내용들도 이 책에 많이 나온다. 백남준의 예술세계 뿐만이 아니라 인간 백남준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시게코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백남준의 기사를 보고, 그 기사에 난 사진을 보고 백남준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고. 그를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싶었다고.

 

'스물일곱 살에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별처럼 멀리 있는 예술가였다. 남자로서도 좋아했지만 예술가로도 흠모했다. 저렇게 빛나는 남자를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느냐고 친구가 물었을 때, 나 역시 치열한 예술가가 되어 그에게 닿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의 연인으로, 그리고 아내로 살아온 지난 40년은 그의 예술적 동반자가 되기 위한 열망과 정진의 시간들이기도 했다. 때론 고통스러웠지만, 더 큰 희열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362-363쪽)

 

그리고 그를 자신의 남자로 만드는데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같은 예술가 동료로서 만남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일본도 아닌 미국에서, 백남준에게는 가정은 관심 밖의 일.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다가 헤어지고 다시 백남준에게로 돌아간 시게코.

 

헤어짐과 만남의 과정에서 백남준은 어떤 결정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시게코가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대로 백남준은 따른다. 어린 시절 전쟁으로 일본으로 독일로 미국으로 세계를 유랑하다시피 한 백남준에게 한 곳에 머문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여자에게 매인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시게코와 함께 살면서도 결혼은 하지 않는다. 사실상의 혼인관계 생활을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는 시게코도 마찬가지다. 백남준과 함께 있으면 되니...

 

이런 그들이 공식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는 계기는, 바로 시게코의 병이다. 여자로서는 치명적인 병. 낯선 타국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걸리면 치료하기 힘든 그런 시절, 백남준은 시게코와 결혼식을 올리고, 시게코가 치료하게끔 한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순간, 그들은 함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함께 삶. 함께 하는 예술가의 삶. 물론 앞에서 인용한 시게코의 말처럼 백남준의 예술 활동으로 인해 시게코는 손해를 많이 본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양 예술가 부부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보다는 남성 쪽이 좀더 활동하고 여성은 묻히는 경우도 꽤 있었으니... 그렇다고 시게코가 예술 활동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보완을 해주는 예술 동료로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백남준 쪽이 좀더 혜택을 보았다 할지라도 시게코는 그에 대해서 큰 불만을 지니지는 않는다. 그것을 앞에 인용한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체계적인 미술 공부를 하지 못한 백남준에게 체계적인 미술 공부를 한 시게코는 정말 좋은 동반자였을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동료.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다음의 일들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더이상 예술활동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접고, 그는 그 와중에도 예술활동을 한다. 마지막 열정을 불사른 것이다. 그리고 죽음.

 

이 과정을 글로 풀어낸 책. 그들의 사랑과 예술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그냥 전위예술가라고, 나와는 동떨어진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백남준을 내 곁으로 오게 만들어준 책이다. 그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책이라고 할까.

 

내가 읽은 책은 2010년 판인데, 2016년에 다른 판으로 다시 이 책이 나왔다고 한다. 그 사이 백남준의 부인인 구보타 시게코 역시 세상을 떴다고 하고. 2015년에.

 

이 책에 '야곱의 사다리'라는 예술 작품이 나온다.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백남준의 예술작품 이름이기도 하지만, 백남준과 시게코가 함께 올라간 사다리이기도 하리라. 두 분이 하늘에서 서로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지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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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하멜표류기
강준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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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너무도 많이 들어본 책. 하멜 표류기. 학창시절에 역사시간에 배운 책이리라. 그런데 그렇게 배웠음에도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제목은 마치 읽은 것처럼 머리 속에 박혀 있는데, 실질적으로 읽어본 적이 없는 책.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보고서 이번엔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제목만 알고 있는 책이 한두 권이 아니지만, 이렇게 그런 책들이 눈에 들어오면 꼭 읽어야지 하는 결심도 한다.

 

하멜, 조선 효종 때 우리나라에 표류해서 무려 13년이나 있다가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네덜란드라고 하기보다는 인도네시아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그들의 팽창정책으로 동양에 진출했었고,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다른 나라들로 확대해가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본국인 네덜란드로는 나중에 간다.

 

그가 우리나라에 있는 동안 겪었던 일들, 느낀 점들을 쓴 글이라,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을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꽤나 두꺼운 책이리라 생각했는데, 무려 13년이나 억류(?)되어 살아온 나날들에 대한 기록이기에 방대한 내용이 있을 거라 추측을 한 것이었는데, 아니었다.

 

하멜표류기 원문은 짧다. 그것은 그가 그때그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에 의존에 조선을 탈출한 다음에 일본에서 작성한 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략적인 면만 이 책에 나온다고 보면 되는데, 그럼에도 조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하멜표류기를 부록으로 싣고 있다. 완역본이라고 하여 하멜표류기를 싣고 있는데, 채 100쪽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완역본을 먼저 읽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또 부록으로 실린 조선왕국기를 보면 그가 대체로 정확하게 조선을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이 글에서 한글에 대한 대목이 나온다. 우리글인 한글이 우수함을 하멜도 인식하고 있었음에... 새삼 한글의 편리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298쪽)

 

제목만 알고 넘어가기에는 아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글을 합쳐야 겨우 100쪽일텐데... 왜 학교 다닐 때 읽지 못했는지.. 아니 읽지 않았는지.

 

하여 교과서에서 제목만 보던 하멜표류기를 읽게 해준 책이라는 점에서 좋기도 하지만, 이 책은 이런 하멜표류기를 중심으로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추적해서 풀이해 주고 있다.

 

이 책의 본문이라 할 수 있는 이 부분은 하멜표류기를 순서대로 따라간다. 따라가면서 상세한 주석을 한다. 네덜란드인 하멜의 표류기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그리고 당시 조선에서 발간된 책 속에 나오는 하멜의 이야기를 광범위하게 찾아 정리해 준다.

 

또한 이 책은 역사적으로 하멜이라는 사람의 표류기를 추적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이 나온다. 벨테프레라는 또 한 명의 네덜란드 사람. 이 사람 역시 표류해서 조선에 왔지만, 결국 이 인물은 조선을 떠나지 못한다.

 

벨테프레는 박연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인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는 하멜 일행이 표류해 왔을 때 통역으로 이들과 만난다. 이들과 조선을 이어주는 역할을 그가 하는 것이다.

 

이런 그의 역할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왜 하멜이 13년이나 조선에 억류되어 있어야 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조선의 쇄국정책 뿐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감추려고 했던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멜은 조선을 탈출한다. 13년이나 살았는데도 탈출을 했다는 것은, 조선이 그에게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없도록 하는 나라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이 책의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하멜표류기는 참 건조하다. 그가 백성들과 만나고 생활한 일상의 모습은 이 표류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들 일행 중에는 조선인과 함께 산 사람도 있을텐데...

 

이들이 억류되고 감시받는 생활을 했다고는 하지만 표류기 곳곳에서 그들이 그래도 자유로운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는데, 하다못해 이들은 스님들과 교류를 많이 했고, 스님들에 대한 이야기가 제법 나오기도 한다. 단지, 스님들 뿐만이었겠는가.

 

탈출하는 배를 친한 조선인에게 부탁해 구입했다고 하는 장면에서는, 분명 이들은 당시 조선인들과도 교류를 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런 사실이 표류기에서는 거의 서술되지 않고 있다. 

 

하멜의 생활도 이렇게 무미건조하지는 않았을텐데, 그런 일상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당시 조선의 모습이 눈에 보이듯 다가온다.

 

역사책 속에 갇혀 있던 책이 직접 읽혀지면서 더 생생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하여 그의 표류기가 서양에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을 알려준 긍정적인 역할을 했음도 기억하게 되고, 이런 서양인들과의 만남에서 그렇게 크게 배운 것이 없었던 조선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 책 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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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6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6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12-16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좋은 리뷰와 책소개 감사합니다^^

kinye91 2016-12-16 11:3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2016-12-16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이시카와 이쓰코 지음, 손지연 옮김 / 삼천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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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눈물 난다는 게 어떤 말인지 이제 알겠다."

 

이 말이 떠오른다. 이제야 피눈물의 의미를 알았단 말인가? 자신의 행동으로 또다시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정작 그 피눈물을 닦아줘도 시원찮을 사람이 그 눈에 피눈물을 나게 해 놓고.

 

광화문에 나가 보았다. 일본 대사관 근처, 소녀상이 있다. 촛불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이 소녀상과 사진도 찍는다. 그 옆에는 천막이 있고 젊은이들이 소녀상 곁을 지키고 있다.

 

겨울이 되니 소녀상에 목도리를 둘러주고, 장갑을 끼워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소녀상은 추워 보인다. 사람들의 훈기가 소녀상 주변을 감싸고 있지만, 소녀상을 지켜주어야 할 정부가 지켜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소녀상이 언제 어디로 사라질지 몰라 그 곁에 천막을 치고 지키는 젊은이들, 그들을 따뜻하게 정부가 감싸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촛불들이 소녀상의 목도리, 장갑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일본 정부와 협상을 했다고, 그것이 협상인지도 의문이지만, 소녀상을 감싸줄 우리 정부가 앞서서 소녀상을 힘들게 하고 있다. 소녀상을 힘들게 하는 정부의 수장, 그 정부를 이끌었던 사람, 일본과의 협상을 주도했던 사람이 자기 눈에서 '피눈물'이 난다고 한다.

 

'피눈물'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다. 그가 한번이라도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던 분들의 눈물을 닦아준 적이 있던가. 아니 그들의 눈물을 바라본 적이라도 있던가. 그분들이 피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혹시 일본정부와 마찬가지로 일본군 위안부는 민간인들이 저지른 일일 뿐이고, 일본 군부가 관여한, 일본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에 대해서 알기는 하는지 의문이다. 진실을 알고 있다면 일본군 위안부가 피해자로 있는 나라의 수장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요즘 떠돌고 있는 '피눈물'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일본군 위안부로 어린 나이에 끌려가 온갖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지내다 일본이 패망한 뒤에 고향에 돌아와서도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

 

이보다 더 돌아오지도 못한 사람들, 그들의 원한이 쌓이고 쌓여 어떻게든 풀어줘야 하는데, 그것을 풀어줄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현실.

 

오히려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이 언제 사라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이 현실이 바로 이제는 몇 분 남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들의 눈에 또다시 피눈물이 나게 하고 있다.

 

일본인이 쓴 책이다. 양심적인 일본인들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지니고, 이를 잊지 않고 사죄하고 일본 정부가 책임지게 하려는 사람들도 꽤 있다. 비록 '아베'라는 일본 총리가 군국주의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 일본에서는 양심적인 사람이 꽤 있다.

 

소녀들의 편지글로 시작한다. 위안부에 대해 처음 알게 되는 일본 소녀들, 자기 나이 또래에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위안부 얘기를 듣고, 그것에 대해 점점 더 깊이 알아가는 내용으로 책은 전개된다.

 

르포와 편지글이 주를 이루면서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여기에 시가 등장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이런 비극이, 이들이 흘려야 했던 피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고 있다는 것에 분노를 넘어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책을 읽어가면서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 진실에 직면했을 때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음도.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접하고 점점 변해가는 학생들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진실은 사람을 움직인다.

 

그런데 가해자인 일본에게 피해자인 우리나라 정부가 강하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를, 그리고 책임을 질 것을 요청해야 하는데, 겨우 돈 몇 푼에 불가역적인 해결이라고 했으니, 위안부 분들의 눈에 더 많은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다.

 

이 책 역시 일본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단다. 일본 우익들에게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런 책은 아이들이 읽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일본 인터넷 서점에 이 책에 혹평이 실려 있다는데... (243-234쪽 참조)

 

이런 혹평이 실렸다는 것은 그만큼 이 책이 많이 읽힌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저자 역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고 계속 자료 조사를 하여 개정판을 냈다. 이 책은 그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다.

 

일본에서만 이러겠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일본군 위안부에 관심을 가지고 낸 책, 또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소녀상은 있다.  (윤정모의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선삐였다와 영화 '귀향' 등)

 

소녀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사죄하고 제대로 책임을 져도. 왜냐하면 소녀상은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알려주는 각성제이기 때문이다.

 

제발 자기 눈에서 피눈물 난다고 징징대지 말고,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마음을 지니고 행동했으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가볍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생생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하는.

 

우리나라 학생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무심한 정치인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도대체 학자라 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 이 책 좀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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