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3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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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권이다. 중반에 접어들었다. 소설은 정점으로 치달아야 하는데, 아직도 주요 인물에서 멈춰 있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을 셋으로 줄인다면 장발장, 코제트, 그리고 마리우스 아니던가. 물론 팡틴이 있지만 팡틴은 장발장과 코제트를 만나게 해주는 매개 역할에 머무른다고 할 수 있으니. 또 작품 내내 등장하는 인물, 장발장을 드러나게 해주는 인물로 자베르와 테나르디에가 있지만,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기는 좀 그렇다.

 

이번 권에서는 '마리우스'다. 청년이다. 우리나라도 치면 대학생이다. 우리나라가 엄혹한 독재 시절이었을 때 대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앞에 나섰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하기 힘들 때,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대학생들은 자기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민중 속으로, 노동현장으로, 그리고 민주화 운동의 맨 앞으로 나섰다. 청년들이었다. 배운다는 것의 의미를 민중 속에서 실천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미래를 현재에 살았다. 기득권층이 과거를 현재에 살았다면, 이 소설에서 왕당파들이 그렇다, 대학생들은 미래를 현재에 살았다. 그들이 살고 있는 현재에는 미래가 있었다. 그 미래를 현재로 끌어오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청년들이었다.

 

이 소설에서 마리우스 역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권에서 마리우스는 아직 미래를 현재로 끌어오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아직 미래를 꿈꾸지 못한다. 다만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을 뿐이다.

 

철저한 왕당파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왕당파, 우리나라로 치면 보수주의자였던 - 사실 우리나라는 보수주의라고 하기보다는 수구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 그가 공화국 편에 섰던 - 이것도 좀 그렇다. 나폴레옹이 처음에는 공화국을 수호하는 수호자 역할을 했다면, 그는 나중에 공화국을 붕괴시키고 왕정으로 돌아간 사람 아니던가. 나폴레옹 편에 섰다고 해서 공화국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되고 할아버지의 품을 떠난다,

 

할아버지의 품을 떠나지만 아직 공화국을 자신의 신념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비록 그가 공화국을 신념으로 삼는 친구들과 만나기는 하지만. 이 친구들에 대한 서술이 4. ABC의 벗에 나온다.

 

마리우스가 공화국의 신념을 지니고 민중들을 위해서 혁명의 앞에 나서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고. 이 권에서는 마리우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가 코제트를 만나는 장면으로 나아간다.

 

물론 마리우스가 일방적으로 코제트에게 반하는 것이고, 또 장발장이 테나르디에를 알아보지 못하고 도와주러 왔다 곤경에 처했다가 위험에서 벗어나는 장면으로 이 3권이 끝나지만...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 사회의 하층민들이 나온다. 그들이 그렇게 타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들이 사회의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들은 사회의 불안요소가 되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바꿔야 함을 소설의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민중에 대해서 환상을 지니지 않게 하는 서술들이다. 그러나 민중들에 대해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들에 대해 적대감을 가질 필요 역시 없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 점을 깨달을 수 있다.

 

3부 마리우스 : 1. 파리의 미분자 - 2. 위대한 부르조아 - 3. 할아버지와 손자 - 4. ABC의 벗 - 5. 불행의 효험 - 6. 두 별의 접촉 - 7. 파트롱 미네트 - 8. 악독한 가낸뱅이

 

이제 주연들은 모두 등장했다. 앞으로는 이들이 프랑스의 혁명적 순간에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나올 것이다. 사회는 변혁에 직면해 있다. 이 변혁에 직면했을 때 거기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이 앞으로 전개될 소설의 내용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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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2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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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코제트 : 1. 워털루 - 2. 군함 오리옹 - 3. 고인과 한 약속의 이행 - 4. 고르보의 누옥 - 5. 어둠 속 사냥에 소리 없는 사냥개떼 - 6. 프티 픽퓌스 - 7. 여담 - 8. 묘지는 주는 것을 취한다

 

2부다. 제목은 코제트다. 가련한 어린아이. 그러나 장발장에게 사랑을 일깨워 준 아이. 그렇다고 해도 코제트가 주인공으로 서술되는 분량은 아주 적다. 왜냐하면 코제트를 중심으로 하기에는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겨우 여덟 살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코제트가 겪어야 할 불행은 어머니와 떨어져 살 수밖에 없다는 것, 가정에서 떨어진 아이들이 행복하기는 참 힘들다. 물론 환경에 따라서는 행복해질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이 1860년대에 나온 것을 생각하면 가정을 잃은 아이, 특히 엄마를 잃은 아이의 생활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엄마인 팡틴은 돈을 내고 아이의 양육을 부탁하지만 엄마의 눈에 띠지 않는 아이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소설에서 너무도 잘 서술되어 있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생계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기지만,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던가.

 

결국 엄마의 눈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하고 그것을 인터넷에 연동시켜 언제든지 부모가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방법까지 동원되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방법이 없던 그 과거에는, 아이는 전적으로 양육자의 선의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양육자인 테나르디에는 인간성을 상실한 부류다.

 

그가 얼마나 못된 인간인지를 또 뒤편의 내용과 연결짓기 위해서 이 2부는 워털루 전투에서 시작한다. 장황하게 워털루 전투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 끝부분에 가면 드디에 테나르디에가 등장한다.

 

전투에서 죽은 사람들의 몸에서 온갖 귀중품을 훔쳐가는 인간으로. 그런 인간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제대로 키워줄 리가 없다. 그에게는 돈이 전부인 것이다. 돈을 제때 부쳐줄 때도 코제트를 잘 대해줬다고 할 수 없는데, 돈을 잘 부쳐주지 않았을 때 어떤 대우를 했겠는가. 테나르디에 부부는 코제트를 식모보다도 더 못한 존재로 부려 먹었다.

 

부모 없는, 또는 부모의 눈에서 멀어진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고난, 그리고 그 아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 꼭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인간성을 상실한 불쌍한 사람과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은 사람이 2부에 나온다.

 

결국 사건은 코제트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중심 사건은 장발장과 그 주변 인물들이다. 장발장이 수녀원에 들어가 자리를 잡기까지의 과정.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 코제트를 만나고 코제트를 데리고 가, 팡틴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과정.

 

그리고 코제트는 이제 장발장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는데, 그것을 수녀원 생활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그는 두 번 갇혀 지내는데, 한 번은 감옥, 또 한 번은 수녀원이다. 모두 다 철조망 안에 갇혀 있지만, 한쪽은 증오와 억압이 있다면 한쪽은 사랑이 있다.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쪽은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이고, 한쪽은 성스러운 사람들이다.

 

'그토록 비슷하면서도 그토록 사뭇 다른 그 두 장소에서, 그토록 판이한 그 두 종류의 인간들이 똑같은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즉 속죄를.' 453쪽.

 

그러나 그 속죄의 종류가 다르다. 감옥에서는 자신의 죄에 대한 속죄를 하고 있다면 수녀원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속죄를 하고 있다. 이기적인 모습과 이타적인 모습.

 

'인간의 너그러움 중에서도 가장 숭고한 것, 즉 남을 위한 속죄다.' 453쪽.

 

이렇게 장발장은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앞으로 그의 삶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즉 그는 불쌍한 사람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 코제트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불행한 삶을 살던 코제트를 위한 삶, 그 삶을 살기 위해 장발장은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단지 코제트만을 위해. 아니다, 코제트와 같은 삶을 사는 불쌍한 사람을 위해 장발장은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제 그는 코제트를 통해 미리엘 주교의 정신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레 미제라블들'에게 그는 다가갈 것이다. 이런 그로 인해 이제는 불쌍해지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 주변의 사람들, 테나르디에나 자베르 같은 사람이 되겠지.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의 정신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코제트다. 사랑을 몰랐던 장발장의 마음에 사랑으로 가득차게 해주는 존재, 코제트. 이제 장발장은 자신의 마음에도 사랑을 채우게 되었다.

 

3부는 마리우스다. 이제 소설은 더 확장되어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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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1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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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축약본으로 읽었던 책, 제목은 "장발장"이다.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책 제목을 붙였고, 우리는 '레 미제라블'이라는 제목보다는 '장발장'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릴 적 읽었던 축약본으로 이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읽지 않는다. 이 책이 무려 5권이나 되는 분량이라는 사실도 다시 읽기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완역본을 읽고 싶어졌다. 소설은 작가가 쓴 그대로 읽어야 더 맛을 느낄 수 있지 않나.

 

게다가 '레 미제라블'은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레 미제라블'은 마치 춘향전이나 홍길동전처럼 다 읽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알고 있는 그런 소설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알고 있어서 완역본을 읽으면 감흥이 덜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전체적인 줄거리가 감흥을 받는데 별로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세세한 부분의 묘사를 읽어가는 데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축약본에서 생략된 부분을 읽으면서는 축약본이 줄거리를 중심으로 참 많이도 생략했구나 하는 생각도 하면서 읽을 수 있고.

 

이제 '레 미제라블' 읽기의 시작이다. 겨우 1권을 읽었을 뿐이다. '레 미제라블'이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쓰인다면,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억압받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라고 보면 된다.

 

상류층 사람들 이야기도, 귀족 이야기도 아닌, 사회 하층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너무도 힘들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첫권의 제목이 바로 '팡틴'이다. 팡틴을 첫권의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 무얼까? 사회 하층민 중에서도 가장 무시당하고 버림받은 사람, 바로 매춘에 종사하는 여성이 아닐까 하는데... 매춘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비하하고,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위고는 이 소설의 처음을 매춘에 종사하게 되는 여인, 팡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들도 사람임을,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개인의 타락한 성품이 아니라 사회제도임을, 그래서 사회제도를 고쳐야 함을, 팡틴이라는 여인을 통해서 보여준다.

 

여직공으로서 한량이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는 여자. 이 여자에게는 일이 필수적인데,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괴롭힘을 받아 결국 직장에서 쫓겨나는 여자.  

 

직장에서 쫓겨난 여자가 자기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 그것도 비열하게 아이를 볼모로 돈을 뜯어내는 사람들에게 속고 있는 여자는 결국 마지막 단계인 몸 파는 단계까지 간다.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전락. 그런데도 인간의 고귀한 품성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품성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팡틴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첫 시작에 팡틴을 놓은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받는 사람, 그 사람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려고 몸부림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제목은 팡틴이지만 시작은 미리엘 주교로부터 시작한다. 축약본에서는 생략된 부분이다. 미리엘 주교에 대한 부분이 100쪽이 넘게 전개되는데... 이 주교가 장발장을 감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스러운 사람으로 시작하는 것은, 소설에서 장발장이 이 주교의 단계에까지 오르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아니겠는가. 주교 역시 젊은 시절엔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교가 된 이후 그는 성자의 삶을 산다.

 

인간은 변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좋은 쪽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엘 주교를 통해 시작부분에서 보여주고 있다. 결국 장발장 역시 미리엘 주교처럼 변할 수 있다는 것, 매춘에 종사하지만 팡틴 역시 미리엘 주교처럼 살 수 있다는 것.

 

비참한, 불쌍한 사람들, 이 사람들이 늘 불행하고 불쌍한 것이 아니라 이들도 이 주교처럼 성스러룬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그런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의 첫권이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다만, 주교처럼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사람들이 지닌 편견이 얼마나 강한지, 그것을 극복하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소설에서는 계속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삶은 그렇게 사회에 종속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설의 또다른 축인 자베르 역시 불쌍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자기 틀에 갇혀 사는 사람. 다른 의미에서 가엾은 사람이 바로 이 자베르 형사다. 그가 얼마나 가엾은 사람인지 이 첫권에 잘 나타나 있다.

 

비참한 사회 속에서도 인간성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이 비록 사회경제적으로는 불쌍한 사람, 비참한 사람, '레 미제라블'이겠지만, 이들의 정신은 숭고하고 성스러울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첫권이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경제적으로 상층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추악한지, 그들보다 한참 못한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더 충만한 삶을 사는지 우리는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역설적으로 '레 미제라블'은 바로 그런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 영혼이 썩어있는 사람들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제 팡틴을 지나 코제트로 간다. 순수한 어린이가 겪는 고통, 그 아이의 성장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이 첫권의 작은 제목들은 다음과 같다.

 

1부 팡틴 : 1. 올바른 사람 - 2. 추락 - 3. 1817년에 - 4. 위탁은 때로 버림이다 - 5. 하강 - 6. 자베르 - 7. 샹마티외 사건 - 8.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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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하승우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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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조항은 헌법에 있다. 그것도 제1조다. 헌법이라는 법조문이 글자로만 존재하거나 또는 선언적 의미만 지니고 있어서는 안된다. 헌법은 국민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야 한다. 아니 국민들의 생활이 바로 헌법이어야 한다.

 

그만큼 헌법은 국민의 실천을 기반으로 작성된 문구들이다. 죽어있는 문자가 아니라 펄펄 살아있는 문자들,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문자들, 국민들의 실천이 담겨 있는 문자들이다.

 

이런 문자들이 헌법 조항이어야 하는데, 그동안 헌법은 책 속에 또는 국회에 또는 법원에 또는 헌법재판소라는 곳에 갇혀 있었다. 그 속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그냥 문자로만 존재했다. 그러므로 헌법은 국민들의 생활과 별 관계가 없는 글자에 불과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파동 때 수많은 촛불들이 거리로 나와 외쳤던 구호가 바로 이 헌법 조항이다. 헌법이 우리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 계기였다. 그때부터 헌법은 국민들의 생활에 들어왔다. 들어와서 나가지 않았다. 잠시 잊고는 있었지만 헌법은 이미 국민들의 생활 속에 자리잡은 것이다.

 

다시 8년 뒤, 이번에 국민들이 또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헌법 조항들도 함께 나왔다. 광장에서 헌법 조항은 국민들의 목소리와 함께 했다. 국민들은 다시 헌법은 바로 국민들의 생활임을 깨닫고 외치기 시작했다.

 

헌법이 몇몇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 헌법은 바로 국민들의 생활이라는 사실을 광장에서, 수많은 촛불들이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헌법은 국민들의 곁에 다가왔고, 국민들의 몸에 들어왔고, 국민들의 입을 통해서 밖으로 보내졌다. 귀를 막고 있는 누군가를 향해서.

 

이런 일들이 한 달 넘게 행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너무도 당연한 말을 광장에서 한 달이 넘게 국민들이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도 정말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왔을까? 국민들은 광장에서 소리치고 있는데 정작 결정은 9명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에서 난다. 물론 이들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겠지만, 그들의 결정에 국민들이 따른다는 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과는 배치된다는 생각이 든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겨우 9명의 사람에게 결정권을 넘겨주기 위해 그렇게 외쳤던가. 그렇게 헌법을 지키라고 외쳤던가를 생각하면 아직도 헌법은 국민들의 생활보다는 법조문에 갇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결국 이제 우리는 광장에서 광장 너머를 상상하며 나아갈 때가 된 것이다. 적어도 헌법이 우리 국민들의 몸에 들어와 국민들의 실천이 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이 책은 이런 헌법 조항을 제목으로 삼고 있다. 국민들이 광장으로 나와 민주주의의 주인이 바로 국민임을 외치는 그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목적으로 쓴 책.

 

그렇다. 역사는 결국 기록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강자, 이긴자들의 기록만이 아니라 약자, 패자들의 기록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면, 약자들의 싸움, 패자들의 싸움은 반드시 기록되어야 한다.

 

그것을 딛고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약자들, 패자들의 기록도 중요한데, 지금 광장에 모인 국민들은 약자도, 패자도 아니다. 국민들은 강자다. 헌법의 주인이다. 헌법에 예속된 존재가 아니라 헌법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강자다.

 

그러므로 그 강자들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국민들이 어떻게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을 끌어내리는지, 어떤 국민들의 목소리가 우리 함께 나아가게 했는지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런 소중한 작업을 삶창이 했다.

 

단지 서울에 모인 사람들만의 기록이 아니다. 전국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기록이다. 서울, 부산, 광주, 전주, 대구, 대전 등등 전국 곳곳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헌법을 선언이 아닌 실천이 되게 하기 위해 광장에 모였다. 촛불을 들었다. 외쳤다. 우리가 바로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주인됨을 선언한 지 한 달이 넘었고, 그 한 달 남짓 전국 광장의 모습, 국민들의 모습, 헌법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의 모습, 민주주의의 참모습을 이 책이 담고 있다.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소중한 기록이다. 우리가 간직해야 할, 마음 속에 그리고 이제는 머리 속에 기억해야 할 기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기록은 완결된 기록이 아니라 진행되는 기록이다.

 

그래서 이 기록을 발판으로 우리는 선언이 아닌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 적어도 여기서 멈춰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한 해가 끝나간다. 아직 헌법은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실현되도록 국민들은 멈추지 않았다. 새 해에도 이런 실천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삶창도 함께 할 것이고.

 

덧글

 

삶창의 이런 노력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국민들과 함께 있으며 국민들에게 삶을 보여주는 창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고맙게도 이 책을 보내주었다. 이 기록을 통해 광장의 모습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고, 함께 한다는 느낌을 지니게 됐다.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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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겉표지를 보면 별이 총총 떠 있다. 어둔 하늘을 밝히는 별들이 너무도 촘촘하게 떠 있다. 이 별들로 인해 세상의 어둠이 물러갈 수밖에 없다는 듯이.

 

그런데 이건 별이 아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이 아니라 차가운 바닥에서 피어오른 촛불들이다. 저 멀리 있는, 우리가 온기를 느낄 수 없는 별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어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별, 촛불이다.

 

우리들 마음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 이 어둠이 빨리 물러가기를 바라는 마음. 모두들 따뜻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들이 차가운 지상에 따스한 별들이 떠오르게 했다.

 

이 별들이 우리나라를 따스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수많은 촛불들이 별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있다. 우리에게 갈 길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손에 손에 별을 들고 함께 걸었다. 함께 광장에 서 있다. 이 추운 겨울날에도.

 

그래서 지상의 촛불이 별이 되어 내려올 길을 알려주고 있다. 내려오라고, 탄핵정국에서 이제는 '하야'하라고, 탄핵 결정이 나기 전에 스스로 내려오라고 지상의 별들이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 별들 속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삶창은 우리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여준다. 바로 노동자들의 모습,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이다.

 

우선 성주 사람들 얘기가 성주 사람들이 직접 쓴 글로 실렸다. 제3의 장소, 롯데골프장 쪽이 사드 배치 장소로 변경, 결정되었다. 그런데, 그곳은 성주가 아니던가? 성주 맞다. 군수는 돌아섰지만 성주 군민들은 여전히 사드 배치 반대 중이다.

 

성주에만 안 된다가 아니라 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사드 배치는 안 된다. 지역이기주의를 넘어 평화를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탄핵 정국, 사람들이 성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탄핵 정국에서 오히려 더 사드 문제를 근본부터 파헤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므로 삶창은 하늘의 빛들이 비추지 않는 곳까지 비춰주고 있다. 우리들이 볼 수 있게, 이렇게... 구미에 있는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노동조합의 투쟁도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나라. 동일노동을 하면서도 차별이란 차별은 모두 받은 사회적 약자들,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그 즉시 해고통지를, 그것도 문자로 틱 하고 해버리는 자본의 행태.

 

그런 자본을 도와주는 힘있는 자들에 기생하는 지식인들, 법률가들... 그 적나라한 현실을 삶창은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삶의 어두운 부분을 비춰주고 있다. 그래야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찾아올 수 있을테니까.

 

결국 삶창에는 사회적 약자들,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어둠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그들이 바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인데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아니라고, 진실은 이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 소중하다. 삶창이.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 우리는 수많은 촛불로 별을 만들고 있다. 하늘을 향해 가는 별이 아니라 세상 어두운 부분을 구석구석 밝혀주고 따뜻하게 해주는 별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촛불이다.

 

여기에 삶창도 하나의 촛불을 더했다. 별이 되고 있다. 우리 삶을 좀더 밝고 따스하게 하는 그런 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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