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웃음이 나오는 날들이다. 세상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정도껏 가려야지, 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늘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 말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는 것이 어째 이리도 못났을까. 배움이 남들을 위하고 사회를 위해 이루어지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졌으니...

 

  그들로 인해 세상엔 즐거운 웃음이 아닌 쓴웃음들만이 판치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런 쓴웃음만 짓고 있을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는 웃음이 필요하다.

 

웃음으로 무시해버리는 것, 너희는 그렇게 사니, 난 이렇게 산다고 가볍게 웃음으로 치워버리는 것. 그래 이렇게 어둡고 무거운 세상에서 또 무겁고 어둡게 대응할 필요는 없지. 가볍게 웃음으로 탁, 치워버릴 수도 있어야지.

 

이환천의 문학살롱을 읽은 이유도 그렇다. 가볍게 웃고 치워버릴 수 있기 위해서. 책 표지에 '시가 아니라고 한다면 순순히 인정하겠다'고 되어 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여러 사람이 본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니. 아마도 시인들이 본다면 이건 시가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시인이 아닌 사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거고.

 

이런 글은 나도 쓰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렇다면 성공이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을 써서 사람들을 미소짓게 하고 있으니.

 

단지 미소만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웃음 속에서는 촌철살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웃음으로 사회가 지닌 무거움을 가볍게 하는 것. 웃음으로 사회가 지닌 어두움을 밝게 하는 것.

 

가령 이런 글... 시라고 해도 좋고.

 

직장인

 

지금처럼

일할 거면

 

어렸을 때

존나 놀걸  60쪽

 

일에 허덕거리는 직장인들의 애환. 그러나 웃음으로 가볍게 치기. 이런 시들이 많이 있다. 그냥 웃으며 넘어가도 좋을 시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사회의 뒷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시들.

 

이 웃음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의 어둡고 무거운 면을 인식할 것. 그리고 그것에 빠지지 않고 웃음으로 그것을 물리칠 것.

 

좀더 밝은 세상을 웃음으로 만들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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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1-08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inye91 님 덕분에 좋은 책 하나 더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kinye91 2017-01-08 11:58   좋아요 0 | URL
같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제겐 행복입니다. 감사합니다.
 
레미제라블 5 - 완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5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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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긴 소설의 끝이다. 5부는 장발장이다. 드디어 우리의 주인공이 제목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이제 자신이 원하던 일을 이룬다.

 

양심을 지키는 일, 자신에게 거짓이 없는 삶. 다른 사람을 속이며 살기는 쉽지만 자신을 속이며 살기는 힘들다.

 

장발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을 코제트를 위해서 고백을 한다. 자신의 양심을 속일 수 없었다는 것.

 

여기에 마리우스의 태도는 장발장을 배척한다. 젊은 시절 단 한 번의 실수가 영원히 죄수라는 낙인을 찍는 것. 얼마나 잔인한 일이냐.

 

사람은 실수를 한다. 신이 아니기에. 그러나 그 실수를 바로잡는 것도 바로 인간이다. 실수가 영원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용서를 받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용서는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이다. 그런데도 장발장은 그렇게 고귀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받는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용서의 모습이 바로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와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자베르의 자살이다. 그는 자신의 원칙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다. 인간이 만든 법률과 신의 영역인 사랑이 충돌을 하고, 결국 인간의 법률이 완전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 그가 자신의 삶을 끝낼 수밖에.

 

용서가 마지막까지 신의 영역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용서는 바로 인간의 삶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 그런 용서받을 수 있는 행위를 한 사람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는 것. 소설은 그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장발장은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에서야 진실을 알게 된 마리우스와 코제트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 사실 코제트는 장발장을 늘 인정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다만, 마리우스에 대한 사랑에 장발장이 뒤로 밀려가고 있었을 뿐.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사람살이의 기본이다 - 자신에게서 비로소 용서를 받게 된다.

 

행복한 미소를 띠고 죽는 것, 공자가 말한 오복 중에 고종명(考終命)이라는 것이 있는데, 장발장은 이런 죽음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제 미리엘 주교의 곁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5부에서는 마리우스를 구출하고, 자베르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살을 하게 되고, 악한인 테나르디에는 여전히 악한으로 살아가게 되고,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행복한 결혼, 그리고 장발장에 대한 진실의 밝혀짐과 그의 죽음으로 끝난다.

 

사회의 맨 밑바닥으로 추락한 인간이 영혼의 맨 위 단계로 상승하는 과정으로 소설이 전개되었다고 보면 된다. 작가는 이 5부에서 자신이 이 소설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직접 드러내고 있다.

 

독자가 지금 눈 아래에 펴 놓고 있는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으로나 국부적으로나, 중단이나 예외 또는 결점들이 무엇이든 간에, 악에서 선으로, 불의에서 정의로, 거짓에서 진실로, 밤에서 낮으로, 욕망에서 양심으로, 부패에서 생명으로, 동물적인 것에서 의무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허무에서 신으로의 행진이다. 출발점은 물질, 도착점은 영혼. 시초에는 칠두사, 종국에는 천사. 128쪽.

 

이렇게 장발장이라는 한 사람의 삶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그 사회를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한 영혼이 고귀해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삶을 산 사람은 결국 '용서'를 받게 된다. 그는 이 소설의 첫부분에 나오는 미리엘 주교처럼 고귀한 영혼을 지닌, 고귀한 삶을 산 사람이 된다.  

 

5부 장발장 : 1. 시가전 - 2. 거대한 해수의 내장 - 3. 진창, 그러나 넋 - 4. 탈선한 자베르 - 5. 손자와 할아버지 - 6. 뜬눈으로 새운 밤 - 7. 고배의 마지막 한 모금 - 8. 황혼의 쇠락 - 9. 마지막 어둠, 마지막 새벽

 

조금 아쉽게도 5권에 이르는 동안 차례에는 각 부의 이름만 나오지 작은 장들의 제목이 나오지 않는다. 차례에는 이런 작은 제목들을 보여주는 친절이 있었으면 하는데... 차례가 없으니 답답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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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구에게나 소원이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

 

  제목이'위시'다 우리말로 하면 '소원'이다. '소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고. 가정이 해체되어 이모가 살고 있는 시골로 온 한 소녀 '찰리'. 그녀에게 시골은 따분한 곳이다. 그리고 잠시 머물다 갈 곳이다. 결코 이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소녀는 계속 무언가 소원을 빌 빌미가 있을 때마다 소원을 빈다. 그 소원을 비는 모습이 재미있다. 그런데 그 소원이 무엇인지 나오지 않는다.

 

  소원을 빌 때는 수없이 많다. 여러 조건들이 생겼을 때 찰리는 꼭 소원을 빌지만, 그 소원을 이야기하면 안 된다. 소원은 남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찰리가 절실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집요하리만큼 찰리는 소원을 빈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얘기다. 그 소원이 무엇인지 소설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짐작하고, 또 나중에 알게 된다. 결말에 찰리의 소원이 나오니까. 그 전까지는 늘 소원을 비는 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2, 도대체 이런 가정이... 이런 가정을 만나면...

 

아빠는 감옥에 가 있고, 엄마는 거의 폐인처럼 지내고, 언니는 곧 고등학교를 졸업할 거라서 친구 집에서 기거하며, 미성년자인 찰리만이 보호자가 필요해 이모네 집으로 온다. 가족 해체의 전형이다.

 

아빠는 쌈닭이다. 툭하면 싸운다. 그래서 감옥에 가 있다. 감옥에 가 있기 전에 집에서 보여준 모습은 엄마와 툭하면 싸우는 모습이었다. 여기에 사랑은 없다. 도대체 이런 가정이 어떻게 유지되는가.

 

가정이 해체된 소녀, 찰리는 무언가 '분노'로 가득차 있다. 자신이 잘하는 거라고 뽑은 것 중에 사실이라고 한 것이 바로 '싸움'이니, 자신을 방어하기에 급급한 소녀가 바로 찰리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감의 결여, 그리고 피해의식으로 꽉 차 있다 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집안에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을테니. 아빠의 별명은 쌈닭이고 엄마도 일이 있을 때마다 야단만 쳤으니, 누구에게 칭찬을 받아본 일이 별로 없는 찰리였다.

 

그런 찰리에게 새 가정이 생겼다. 처음엔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그 가정은 잠시 머물다 갈 가정이다.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스쳐지나가는 곳, 그런 곳에 정을 둘 수가 없다.

 

여기에 친구가 된 하워드의 가정은 그야말로 찰리의 가정과는 정반대다. 시끌벅적하고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그곳에는 사랑이 있다. 가족들이 사랑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것이 찰리의 온몸에 그대로 전달이 된다.

 

이제 찰리는 전혀 다른 가정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가정은 어떤 것인가? 단지 과거로 돌아가는 가정인가? 아니면 이곳에서 경험한 사랑이 넘치는 가정인가. 답은 우리가 알고 있다. 찰리 자신도 알고 있다. 비록 말을 하지 않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답이 나오지만.

 

3. 정을 줄 수 있는 아이는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정을 줄 수 있겠는가. 찰리가.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는 사랑을 줄 줄 모른다.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어떻게 전달하는지 모른다. 제대로 전달하려 해도 그것이 잘 안된다.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 오해가 결국 또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정을 받지 못한 아이는 냉혹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기 표현에 서툴기 때문이다.

 

이런 찰리에게 하워드라는 절름발이 친구가 생긴다. 무언가 찰립만큼 결핍된 것이 있는 존재가 찰리 곁에 나타난다. 그때문에 찰리는 하워드를 멀리하지 않는다. 하워드가 자신과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절름발이로 학교에서는 왕따라 할 그 아이가 활달하게 지내는 것, 남들이 놀려도 전혀 노여워하지 않는 것, 그리고 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함께 지내려 하는 것에 찰리도 조금씩 마음을 연다.

 

또한 이모인 바서와 이모부인 거스 역시 찰리를 진심으로 대한다. 사랑으로, 잔소리보다는 사랑을 먼저 보여준다. 그런 점이 방어기제로 똘똘 뭉쳐 있던 찰리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다. 여기에 찰리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결정적인 존재, 위시본이 등장한다.

 

떠돌이개에게 찰리는 위시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 개를 결국 자신의 개로 만든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야단만 맞고 싫은 소리만 들은, 그래서 남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경험을 하지 못한 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준다.

 

사랑할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랑을 한다는 것, 사랑을 한다는 것은 곧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거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이모인 바서와 이모부인 거스에게 받은 찰리, 또 하워드에게도 친구가 되게 해달라는, 그리고 이곳에서 함께 지내게 해달라는 소원에 대해 들은 찰리.

 

이제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 여기에 개인 위시본에게는 더욱 필요한 존재가 된 찰리이니 자신의 과거와 결별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소원은 결국 이루어진다. 저절로가 아닌 노력으로.

 

과거와 결별, 새로운 가정의 탄생. 그곳에서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줄 줄 아는 존재로 거듭나는 찰리. 그 과정이 참으로 유쾌하게 전개되고 있다. 참 비참한 상황이어야 하는데도 지긋이 웃음이 머금어질 정도로 찰리의 행동에 공감하게 된다.  

 

소설이 전개될수록 찰리는 이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알게 된다.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소통하는 것, 사랑을 줄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그 과정이 결코 짧지 않다. 쉽지 않다.

 

그러나 이모네 가정의 무조건적 사랑, 하워드와의 만남, 위시본이라는 떠돌이개에게 주는 사랑. 이미 찰리는 변해 있다. 이제는 사랑하는 가족을 만들 일밖에 없다.

 

그 소원, 이루어져야 한다. 얼마나 찰리가 바라는 소원인가. 책 제목이 그래서 '위시'다. 떠돌이개에게 붙여준 이름도 '위시본'이다. 닭에게 있다는 V자형의 뼈, 그 뼈를 양쪽에서 잡아 긴 쪽을 잡은 사람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찰리는 위시본을 잡아당긴 결과 긴 쪽을 지니게 된다.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준비는 끝났다. 여기에 자신을 따르는 개 '위시본'까지 있지 않은가.  

 

5.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청소년 소설은 어떤 교훈을 주려고 해, 주제가 재미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소설은 아이들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주제가 강한 소설, 학교에서 지긋지긋하게 배우는 도덕과 무엇이 다른가.

 

우선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성공했다고 본다. 사건 전개가 짧막하게 그리고 빠르게 전개된다.

 

찰리가 곤경에 빠져 있을 때도 이상하게 슬픔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오게 된다.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고전소설에서 보이는 '해학'이 넘쳐난다.

 

그래서 웃으면서 읽게 된다. 또 빠른 전개에 지루할 틈 없이 읽게 된다. 그러니 재미를 느끼면서 읽는다. 읽은 다음에 무언가 마음에 남는다. 그러면 된다.

 

특히 가정에 대해서, 한 아이에게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소설을 읽는 사람들 자신의 가정을 돌이켜볼 수 있게도 되기 때문에... 더욱 좋다.

 

청소년들, 아마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만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덧글

 

출판사의 서평이벤트에 응모해서 당첨이 되었다. 책을 가제본 판으로 받아 읽었다. 재미있는 책이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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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4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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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다. 이제 소설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 그리고 혁명. 이 4부의 제목이 그것을 알려주고 있다.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는 두 연인을 나타낸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두 사람, 그들에게 세상은 온통 그들의 것이다. 세계를 모두 자신의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이렇게 서정시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정시의 시대만 지속된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세계를 온통 내것으로 만드는 그런 서정시의 시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비록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겪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서정시가 되겠지만, 그 사랑을 유지해 나가는 일은 서사시가 되어야 한다. 이제 자신을 세상에 내놓고 세상과 싸워야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사회와 치열하게 대립해야 한다. 주변의 사람들과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이야기 없이 감정이 넘쳐나는 서정시에서 이야기가 있는, 사건이 있고 갈등이 있는 서사시로 넘어가게 된다. 소설은 두 사람의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이 맺어지기 위해서는 사건과 갈등이 있어야 한다.

 

그 사건과 갈등을 이겨내야 한다. 서사시의 주인공은 영웅들이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운명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그 운명을 비켜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여기에 사회 문제까지 겹쳐져서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가 된다. 단지 두 연인의 사랑에서 사회에 대한 사랑으로 사랑이 확장되는 것이다. 더 큰 갈등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겪어야 하는 운명이다.

 

그렇다. 사람들에게 운명은 절대로 비껴가지 않는다. 운명은 사람들에게 곧장 다가온다. 자, 어떡할테냐 하는 식으로.

 

코제트와 마리우스를 중심에 놓으면 그들의 사랑에 이야기가 생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장발장의 처지에서 보면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에게는 사랑의 차원이 달라져야 하는 지점에 와 있는 것이다.

 

평생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에게, 이제 사랑이 찾아왔는데, 그 사랑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사랑이라니... 하여 서정시에서 서사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방대한 서사시로 가는 과정에서 여러 인물들이 나오게 된다. 이제는 영화로 친숙해진 인물, 앙졸라를 비롯해 에포닌, 가브로슈가 나온다.

 

이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는 과정을 통해서 작품은 방대한 서사시로 흘러간다. 이제는 개인들만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이라는 지점에 사람들이 맞닥뜨리게 된다.

 

바리케이트 앞에 선 사람들, 그들의 운명은? 여기까지가 4부다. 그들이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운명에 맞서게 되기까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4부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 : 1. 몇 쪽의 역사 - 2. 에포닌 - 3. 플뤼메 거리의 집 - 4. 아래에서의 구원이 위에서의 구원이 될 수 있다 - 5. 시종이 같지 않다 - 6. 어린 가브로슈 - 7. 곁말 - 8. 환희와 비탄 - 9. 그들은 어디로 가나? - 10. 1832년 6월 5일 - 11. 폭풍과 친해지는 미미한 존재 - 12. 코랭트 주점 - 13. 마리우스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다 - 14. 장엄한 절망 - 15. 옴므 아르메 거리

 

줄거리만으로 느끼지 못하는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작가의 직접적인 개입이 이렇게나 자주 일어나다니 하는 생각을 하고, 혁명에 대한 빅토르 위고의 생각을 알 수 있고, 주변 인물들을 통하여 주인공들의 삶에 더 잘 접근할 수도 있다.  

 

여기에 마리우스가 혁명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공화국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보다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절망에서 나왔다는 것, 그러나 그 절망은 바로 순수함이고, 그 순수함으로 인해 혁명의 순수함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

 

또 영화나 줄거리만으로 느꼈던 코제트에 대한 인상, 코제트를 요즘 시대로 생각해 20대일 거라고 착각하는데, 이 때가 겨우 십대라는 것, 1832년에 많아야 17살이었다는 것.

 

우리나라로 치면 이제 겨우 고1이다. 투표할 수 있는 나이를 만 18세로 하자는 안을 내느니 마느니 하는 이 나라에서 17세에 이미 사랑에 빠졌고, 마리우스의 나이와 합쳐도 40이 안 되는 나이에 그들은 이미 어른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혁명에 참여한 가브로슈는 어떤가? 그는 코제트보다도 더 어린 나이이니 말할 것도 없고, 사랑에 빠져 자신의 목숨을 바친 에포닌 역시 코제트와 동갑이 아니던가.

 

우리나라 춘향이, 로미오와 줄리엣 등 당시의 나이를 생각하면서 읽어갈 수밖에 없는 낯설음. 그만큼 우리는 독립하는 시기를, 정신의 성숙시기를 뒤로 늦추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개인의 감정에만 빠져 있는 서정시에서 우리 역시 사회로까지 시야를 확대해야 하는, 그래서 사건과 갈등이 있는 그런 서사시의 세계에 처해 있다는 생각.

 

이제 남은 건 5부다. 소설은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 점점 더 흥미로워지고 있다. 줄거리를 이미 다 알고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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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세밑 원숭이와 닭의 대화

- 병신(丙申)년이 가고 정유(丁酉)년이 오니


자네도 참 억울하겠어

자네와 발음이 비슷한 ‘닭’이

나라를 뒤흔들어 놓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게 됐으니

그 ‘닭’이 사고는 제가 치고

저는 쏙 빠져나가려 해

내가 분신들과 함께 광장에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여의봉을 들고

하나가 되어 세상을 밝히고 있지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지

하지만 저 ‘닭’은 귀를 막고

차벽으로 우리의 발을 막고 있지

이제 우리 해가 가고 자네의 해가 오는데

자네들은 어둡고 추운 땅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려는가


아닐세, 우리가 비록 독감에 걸려

비명횡사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본디 새벽을 알리는 족속,

알을 낳는 족속

세상이 흉흉할지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네

‘닭’이 암탉 망신을 다 시켰다지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이 흥할 알을 낳는 것이라네

수탉이 울면

새벽이 왔음을,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네

비록 우리 지금 힘들지라도

자네들이 밝힌 촛불이 환한 대낮을 만들도록

우리 목청껏 울으려네

‘닭고집’이 더 이상 고집 피우지 않고

밝고 따뜻한 세상이 오게

그렇게 마음껏, 목청껏 울어보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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