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서정시가 없는 시대이긴 하지만 제목을 보고 고른 시집이었는데.... '흑백'이라. 세상이 총연색으로, 고화질로 가고 있는 이 시대에 흑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면 이 세상을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 아닐까 하고 고른 시집.

 

  그런데 첫장부터 사람을 당혹하게 한다.

 

  '행운과 용서를 빈다'

 

  시인의 말이다. '행운과 용서를 빈다'고... 이거, 원 이 시집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겠구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적어도 내게 행운이란 시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일테고, 용서란 시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시집 속에서 헤맸을테니, 그렇게 만든 시인을 용서하라는 말 아니겠는가.

 

짐작이 맞았다. 첫시부터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논리가 파괴되었다. 논리로 접근했다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이다. 시집의 뒤에 있는 해설을 보아도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시인은 온갖 비밀을 시 속에 풀어놓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찾으라고 한다. 못 찾으면 말고 식이다. 이런...

 

읽으며 이상을 떠올렸다. 이거야 원, 이해를 포기해야지 하면서... 이상이 어느 소설에서 이렇게 말했다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 그는 소설 속에서... '비밀이 없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보다 더 가난하다'는 식의 말을 했다. (정확한 구절은 그의 소설 '실화'에 나온다고 하니 찾아볼 것)

 

이거야 원. 이렇게 술래잡기를 해야 하나? 인내심을 가지고 시집을 끝까지 읽어 본다. 큰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니면 오기가. 그러다 시집의 맨 뒤에 있는 글을 보게 된다.

 

'유치원이나 정신병원 같은 곳에 가면 글자놀이니 역할놀이니 하는 게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걸 하고 있다. 역할놀이에는 별 재능이 없고 글자놀이는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다. 앞으로도 글자놀이는 계속할 생각이다. 완전한 착각 속에 있고 싶다. 그렇게 될 것이다.'

 

글자놀이? 이거 완전히 이상이네. 에고. 더이상 시인의 놀이에 동참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신, 내 마음대로 놀이를 한다. 이 시집을 가지고.

 

지금 우리 사회는 역할놀이에 신물이 난 상태. 세상에 정치가 무슨 연극인 줄 아나? 대통령 역할놀이까지 하고 있는 사회니.

 

여기다 온갖 말놀이들은 어떤가. 말이 이렇게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줄은 몰랐다. 요즘 사회에서 그것도 좀 있다고 하는 것들이 쓰는 언어는 우리 사전을 거부한다. 자기들이 사전을 만든다. 완전한 글자놀이다.

 

아마도 시인의 글자놀이는 정치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해당될테다. 그럼에도 언어는 명확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내게는, 이런 시 반갑지 않다. 마음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머리에서 걸러지고 마는 시들이 아니던가.

 

사회에서 벌어지는 글자놀이, 역할놀이에 신물이 났는데... 시인마저 그런 놀이를 한다고 하니... 참...

 

그럼에도 시인이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이 시 속에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의 글자놀이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언어라는 존재를 벗어날 수도 없고.

 

뭐,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시집이다. 참고로 시집의 제목이 된 시 하나 소개한다. 읽어보고, 이 글자놀이에서 무엇을 찾아낼지는 읽는 사람들 자유다. 놀이에는 정답이 없다. 놀이는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흑백 1

 

도도한 입술이 흐리게 젖는다

섬망을 노래하는 어리석은 벌레들이

검고 프르게 간격을 지우며 움직인다

시곗바늘 소리에 맞추어

사랑한다고 함께 죽자고

숨이 벅차다고 그늘이 휜다고

 

이준규, 흑백, 문학과지성사, 2006년.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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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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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이제는 고인이 된 신영복 선생이 감옥에 있을 때 여러 선배들에게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은 이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다.

 

이론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고, 현재를 뛰어넘어야 하지만, 실천은 현재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기층 민중과 함께 가야 한다고. 그들을 앞에서 끄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어깨 겯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이론에 매여 이론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재단하지 말고, 내치지 말고 그들과 함께 할 때는 이론을 잠시 넣어두고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사람이 우선이라고. 냉철한 머리보다는 따스한 가슴으로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고.

 

신영복 선생의 삶을 보면 그는 자신의 학교 생활을 각 20년씩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우선 제일 먼저 20년은 본인이 배우는 시절이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절인 것이다. 초,중,고,대학교를 거치면서 배우는 학교 생활. 그러나 이 생활은 관념에 매인 생활이었다는 것. 아직 익지 않은 열매에 불과하다는 것.

 

두 번째 20년은 감옥 생활이다. 이 감옥 생활을 또다른 대학시절이라고 부른다. 섣부른 이론, 관념에 갇힌 이론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현실을 깨닫게 되는 학교 생활. 그것이 바로 감옥의 생활이다. 이때에서야 비로소 신영복 선생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관계를 알게 된다. 그가 실천을 우경적으로 할 수 있는 발판이 이때 마련된다.

 

세 번째 20년은 성공회대 교수로 생활한 학교 생활이다. 두 번의 학교 생활을 거쳐 이제는 실천을 하는 단계다. 그는 많은 강연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알리고 다닌다. 여러 사람을 만난다. 만나면서도 이론을 앞세우지 않는다. 사람을 앞세운다. 사람보다 앞선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이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사람이 이론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런 마음으로 그는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결국 우리는 지금 잃어버린 '관계'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 관계는 사람을 사람으로 볼 때 찾아질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사람을 사람보다는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온통 교환가치만이 판치는 세상이고, 교환가치를 잃은 사람은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대우하는 것, 그것이 관계를 찾는 첫번째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신영복 선생의 생각을 볼 수 있는 유고집이다. 여러 곳에 실렸던 글을 모았고, 또 강연 내용도 수록했으며, 기존에 발표하지 않았던 글도 모아 놓았다.

 

내용이 겹치는 부분도 꽤 있지만, 겹친다는 얘기는 반복된다는 것이고, 반복된다는 것은 강조한다는 것이니, 신영복 선생이 어떤 생각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나와 있는 이 부분을 참조했다. 그냥 신영복 선생의 생각을 텍스트로 읽고 아는 것이 아닌, 또 신영복 선생의 삶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아닌, 바로 읽는 나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나와 함께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 그런 의미를 새기면서 읽었다.

 

'책은 벗입니다. 먼 곳에서 찾아온 반가운 벗입니다. ... 독서는 모름지기 자신을 열고, 자신을 확장하고, 그리고 자신을 뛰어넘는 비약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는 삼독(三讀)입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텍스트를 집필한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그 텍스트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필자가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발 딛고 있는지를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처지와 우리 시대의 문맥을 깨달아야 합니다.' (249-250쪽)

 

'독서는 만남입니다. 성문(城門)바깥의 만남입니다. 자신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는 자신의 확장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확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만남인 한 반드시 수많은 사람들의 확장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마치 바다를 향해 달리는 잠들지 않는 시내와 같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각성이 모이고 모여 어느덧 사회적 각성으로 비약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시대가 갇혀 있는 문맥을 깨트리고, 우리를 뒤덮고 있는 욕망의 거품을 걷어 내고 드넓은 세계로 향하는 길섶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253쪽)

 

이렇게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숲을 이루면 세상의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책을 읽는 사람 하나하나를 나무라고 한다면, 우리들은 그 나무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여 숲을 이루자. 이것이 바로 '관계'다. 희망이다.

 

그래서 절망의 시대에 좌절하지 말고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말을 명심하자고 한다. 씨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것. 왜냐, 심어야 하니까. 심어서 열매를 맺게 해야 하니까. 어려울 때 씨과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땅에 심어야 한다는 것.

 

지금 우리는 새로운 씨앗을 심을 때가 아니던가. 사람들이 매주 토요일에 광화문에 모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새로운 씨앗을 심고자 함이 아니던가.

 

한 사람 한 사람은 비록 작은 나무에 불과할지라도 이 나무들이 모여 관계를 맺으면 거대한 숲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촛불을 통해서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기가 막히게도 이 책은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가 싶다.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광화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이다. (378쪽)

 

이 책의 제목은 신영복 선생이 감옥에서 또 사회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있을 때 불렀다는 노래에서 따왔다.

 

냇물이 강물로 가고, 강물이 바다로 가듯이 우리들도 이렇게 함께 모여 숲이 될 때 사회를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

 

그 바다는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지 않고 다름을 포용하고 함께 가는 그런 '화이부동(和而不同)'이 이루어지는 사회라는 것. 그것은 바로 '평화와 소통과 변화'라는 것.

 

제목에서도 신영복 선생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신 지 이제 일년. 지금 우리는 정치의 시대에 와 있다. 어떤 정치를 우리가 해야 하는가를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기인 것이다. 그 점에서 신영복 선생의 이 마지막 글은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은 시간은 차분히 글을 읽으며 다시 신영복 선생을 만나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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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하면 문학 전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대학 시절 '문지'는 '창비'와 쌍벽을 이루는 출판사였다.

 

문학과 관련된 많은 책들이 나왔고, 많이 읽혔다. 잡지 '문학과지성'도 발간했었고, 나중에는 '문학과사회'로 이름을 바꾸었었고.

 

우리나라 문학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출판사라는 생각을 한다. '내 서가 속 문학과지성사 책 이벤트'를 한다고 하여 책꽂이를 살펴보니 문지 책이 제법 있다.

 

그 중에 내가 가장 아끼는 책... 최인훈 전집... 물론 전집을 다 사지는 않았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최인훈의 소설을 미리 사서 읽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존에 갖고 있지 않은 최인훈의 소설은 문지에서 나온 최인훈 전집으로 채웠다. 특히 광장은 한 권이 아니라 세 권을 가지고 있는데...

 

작가가 '광장'을 많이 개작을 했기에, 가지고 있는 '광장'의 결말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시간을 두고 구입했기에, 어떤 책은 가령 '전집9 총독의 소리'같은 경우는 세로로 인쇄되어 있다.

 

지금 읽으라면 가끔 줄을 놓쳐 낭패를 보기 일쑤인 그런 인쇄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세로 인쇄가 많았으니...

 

이렇게 읽었던 최인훈 전집... 그것을 펴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단순하게 창비는 사회참여적, 문지는 순수문학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최인훈만 해도 순수문학이라고만 할 수 없는 작가 아닌가. 문학을 사회참여와 순수문학으로 명확하게 나눌 수 없음을 요즘은 생각하는데...

 

최인훈 소설만큼 사회비판적인 소설이 문지에서도 많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청준만 해도 소설이 사회비판적인 것이 꽤 많다. 이청준의 소설도 문지에서 많이 발간되었는데...

 

여기에 또 보태면 황순원 전집도 있다. 문지에서 좋은 작가의 책을 많이 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문지하면 시가 떠오른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은 너무도 유명하지 않은가. 우리나라 시인 지망생이라면 자신의 시집을 문지나 창비에서 내는 것을 꿈꾸지 않았던가. 예전에는.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책장의 한 칸을 차지할 정도로 구입했던 문지에서 나온 시집들이다. 한 권 한 권 읽으며 감동을 받았던, 또는 충격을 받았던 시집들.

 

여전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인들이 문지에서 시집을 많이도 냈다. 이 중에 나는 최두석의 시와 고정희의 시, 그리고 황지우의 시를 좋아했는데.

 

나중에는 오규원 시전집1,2를 사서 읽으면서 오규원의 시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했었고...

 

이런 시집과 더불어 각종 문학에 관한 책들... 그런 책들도 내 책장에 꽂혀 있다. 지금은 잘 읽지 않지만 한때 문학에 관심이 있을 때에 읽었던 책들이다. 그 책들이 나를 떠나지 않고 아직도 내 책장에 남아 있으니.

 

 

더 많은 책들이 있었겠지.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나한테는 문지에서 나온 책들이 꽤나 비중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 책들에 더해 더 많은 문지 책들이 내 책장으로 오게 되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문지였으면 좋겠다.

 

요즘은 문학이 위기에 처한 시대라고 하니...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문학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이 출판사에서 힘을 보태줄 거라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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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21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시집의 파노라마 ^^..멋쪄요 ....시인들이 상장하나 줘야 됩니다. 애독시집상....

kinye91 2017-01-21 13:09   좋아요 1 | URL
시집을 기회될 때마다 한 권 한 권 모아놓았더니, 이렇게 됐네요. 보기는 좋아요. 또 언제든지 꺼내서 아무 시집, 아무 시나 읽을 수 있어서 좋고요.

웃는식 2017-01-21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오래된 책들이네여^^교회 앞이 문학과 지성사라 ㅎ 자주 그 건물을 거쳐가고 있습니다^^

kinye91 2017-01-21 15:56   좋아요 1 | URL
최근 책도 있지만, 80년대에 출판된 책들도 있으니, 오래된 책들도 있지요. 세로로 인쇄된 책도 있으니까요. 문학과지성사도 오래된 출판사지요. 계속 이런 출판사들이 살아남기를 바랄 뿐입니다.

웃는식 2017-01-21 15: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맞습니다:) 오래 오래 좋은 책 많이 출판하고 독자와 사회에도 환원하는 출판사들이 많길 바랍니다!

knulp 2017-01-22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경의 맘이 절로 드네요. 저의 독서 편력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kinye91 2017-01-22 08:33   좋아요 1 | URL
무슨 말씀을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다 자신에게 맞는 책읽기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냥 저에게 맞는 독서를 하고 있을 뿐이고요.
 

   참 드물게 가는 전시회 관람이다.

 

  문화생활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장소가 그리 먼 곳도 아닌데, 한 번 가려면 큰 맘 먹어야 한다.

 

  시간과 비용, 그리고 효과... 효과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전시회를 제대로 감상하려는 자세가 아닌 줄 알지만, 모처럼 시간과 돈을 낸 것인데... 가서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린 시절 미술관에 가본 적이 없다. 박물관이야 학교에서 갔기 때문에 주마간산 식으로 대충 훑어본 적은 있지만, 미술관에는 학창시절에는 가본 적이 없다.

 

그러니 미술관에 간다든지 음악회에 간다든지 하는 일은 나에겐 참으로 낯설고 망설여지는 일일 수밖에 없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린 시절 이런 문화를 관람하고 감상한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어른이 되어서도 잘 안 된다.

 

그래서 어린 시절, 특히 학창시절 경험이 중요하다. 평생에 걸쳐서 문화를 어떻게 경험하느냐를 결정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은 이렇게 문화경험을 좀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르누아르의 작품은 책에서 많이 봤다. 색채의 화려함에 끌렸었는데, 그의 작품이 직접 온다니,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전시장이 가기에 그리 힘든 곳도 아니고, 시간도 나겠다, 관람비가 13000원이라서 조금 비싸다는 생각도 했지만, 복사본이 아닌 원본이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까지 왔으니 그 정도는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간 것.

 

총 4개의 전시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소녀들, 가족들, 여인들, 나체화들... 모두가 다 여인들 그림이다. 물론 가족들에서는 여인과 르누아르의 아들인 장의 그림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주제는 모두 여인이다.

 

아주 작은 그림... 손이 큰 사람이라면 손바닥 크기만한 그림에서부터 조금 큰 그림까지 르누아르가 그린 여인들 그림 중에 47편 정도가 왔다고 한다. 정확한 편수는 기억이 안 난다. 하여튼 40편은 넘었고, 50편은 안 되었다.

 

그런데... 서양 미술에 관한 책에 르누아르라면 실리는 그림들, 그런 아주 유명한 그림들은 오지 않았다. 하긴 그렇게 유명한 그림이, 아마도 꽤나 비쌀 그림들일텐데, 위험을 감수하고 먼 거리를 이동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래도 아쉽다.

 

르누아르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그림을 직접 볼 수는 없다니... 그럼에도 그가 그린 그림 원작을 볼 수 있다는 것, 색채 표현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맨 마지막 전시에서 비록 복제품(레플리카)이지만 손으로 만지면서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에서 위안을 삼았다.

 

여린 색들의 조화, 그리고 여인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평생의 주제로 택한 그의 집념 또는 일관성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라고 할까.

 

여기에 한 가지 더 전시장을 들어가는 초입이 어둡다. 약간의 어둠을 지나야 르누아르 전시장에 들어가게 된다. 1전시장부터 4전시장까지가 이런 구조로 되어 있다.

 

어둠을 지나 전시장에 들어가면 인상파라고 할 수 있는 르누아르의 그림을, 그 화려한 색채를, 조명과 더불어 만날 수 있다. 그런 효과를 느끼라고 그렇게 전시장의 동선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점은 좋았다.

 

르누아르의 대표작들을 직접 눈으로 보려면 아무래도 그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나라의 미술관으로 가야겠지.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그래도 책에서만 만나던 사람의 그림을 직접 눈으로 봤다는데 의의를 두면서 나온 '르누아르의 여인'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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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1-20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번 가려면 큰 맘 먹어야 한다, 공감합니다. 게으름을 이겨내야 하고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기가 힘들어요. ^^;

kinye91 2017-01-20 08:2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미술관이나 박물관 또는 연극이나 노래 공연 관람을 마치 마실 가듯이 쉽고 편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그것이 잘 안되네요.
 
불교성전
동국역경원 편집부 엮음 / 동국역경원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불교는 나에게는 멀고도 가까운, 또는 가깝고도 먼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절들이 대부분 산 속에 있어서 가기에는 먼, 또 유명한 절들은 대부분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더 멀고, 그렇더라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은 많이 들은 가까운 그런 종교.

 

불경을 몇 권 읽긴 했는데, 읽어서 마음 속에 체득하지 못했고, 실행도 못했기에 역시 가깝고도 먼 종교가 불교다.

 

그렇지만 불교를 아예 모른 척하고 지낼 수는 없는 일. 불경을 하나하나 다 읽기는 힘든 일이고, 하여 좋은 책이 없을까 하는 중에 기독교의 성경처럼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 글을 모아 수록해 놓은 이 책, 불교성전을 보게 되었다.

 

불교 재단 대학인 동국대학교에서 내놓은 책이니 나름대로 불교의 진수들을 모아 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불교에 대해서 초심자들도 접근할 수 있도록 편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이 책은 불교의 모든 것을 가장 중요한 핵심만 모아 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중심으로 불교의 다양한 분야로 넘어가면 된다.

 

총 5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편은 부처님의 생애다. 우리나라는 부처님오신날이 공휴일이니 부처의 생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것을 불경을 중심으로 정리해 놓았다.

 

2편은 초기경전이다. 초기경전에 해당하는 경전들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말씀들이 있는 부분을 정리해 놓은 부분이다.

 

아함경, 법구경, 본생경, 백유경 등이 치 초기경전에 해당하나 보다. 여기에 수록된 것을 보니.

 

시적 표현으로 유명한 법구경도, 여러 이야기를 통해 비유를 든 백유경도, 부처의 전생을 이야기한 본생경에 실린 글들 중에 일부는 아마 다른 곳을 통해 봤을 것이다. 많이 인용되는 글들이니까.

 

3편은 대승경전이다. 우리가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경전들이 나온다. 대승은 자신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의 깨달음까지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깨우쳤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 깨우치지 못한 미혹된 대중들까지도 깨우치게 하는 것, 그것이 불교가 나아갈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강요는 하지 않는다. 길잡이 역할을 할 뿐이다. 길을 가는 것은 본인 자신이 해야 한다. 즉, 대중들 자신 속에 있는 부처를 깨달아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자신들이 할 일이다. 부처나 보살들은 그 길을 알려줄 뿐이다.

 

따라서 그냥 따라해서는 안 된다. 치열한 수행과정이 따라야 한다. 말씀만 듣고, 또 부처에게 기원만 해서는 이런 해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런 해탈의 경지를 중생과 함께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대승의 길이다.

 

금강경, 유마경, 법화경, 화엄경 등 우리에게 친숙한 경전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유마경은 중생이 병들었기에 자신도 병들었다는 유마거사의 이야기를 다룬 경전인데... 중생과 함께 가는 그런 모습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는 경전이다.

 

4편은 교단의 규범이다. 왜 규범이 생겼고, 이 규범들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는 부분이다. 규범이라고 해도 너무 어렵지 않다. 대부분은 지켜야 할 것들이고, 다른 종교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이런 규범들은 지금도 우리가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 아닌가. 여기에 몇 가지 불교만의 특색을 더하면 (물론 다른 종교에서도 비슷한 것들이 있다. 기독교 일부에서는 술 마시지 않고, 이슬람이나 유대교에서는 음식을 가리니 말이다) 술 마시지 말라와 고기를 먹지 말라, 그리고 냄새나는 채소 (마늘, 파, 부추 등)를 먹지 마라가 있다.

 

이거야, 앞의 규범들과 달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기보다는 자신의 수행에 방해가 되는 것들이니... 참고하면 될 듯하고.

 

5편은 조사어록이다. 불교에서 유명한 조사들의 말을 모아놓은 부분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달마와 6조 혜능, 그리고 서산대사의 글들이 실려 있다.

 

이렇게 총 5편에 걸쳐 불교의 진수를 담아놓았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불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불교의 전체적인 모습을 알게 해주는 책이고, 불교에 어느 정도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불교에 대해서 체계를 잡을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며, 불교를 잘 안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수시로 참고할 수 있는 책이 된다.

 

이렇게 이 책은 한 종교, 우리나라에 깊숙히 자리잡은 불교라는 종교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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