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은 여인의 뱃살을 본 적이 있는가.

 

이제는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난 여인의 뱃살. 아이를 뱃속에 두었을 때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늘어난 뱃살, 갈라지고 터진 뱃살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더 이상 줄지 않아 이제는 똥배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뱃살.

 

뱃속에 있을 때만 아이를 돌보았겠는가. 아이가 자라 제 앞가름을 할 때까지 늘어났던 배가 다시 줄어들어, 자욱이 남을 정도로 아이를 위해 살았던 어머니.

 

배에 있는 자욱들은, 그 금들은 바로 아이를 살렸던 삶의 흔적들.

 

그러나 나이들면 축 늘어진 뱃살을 안고 살아가는, 아랫목에 누울라치면 뱃살이 축 처져 방바닥에 닿고 마는 그런 뱃살.

 

그 뱃살에는 생명이 있다. 생명을 키운 젖줄이 있다. 뱃살을 따라 이리저리로 갈라진 금들, 그 금들은 바로 강이다.

 

강은 생명이다. 뭇 생명들을 거느리는 생명줄. 그것이 바로 강이다. 이런 강들을 제 몸에 지니고 사는 사람, 바로 어머니다.

 

누가 어머니의 늘어진 뱃살을, 갈라터진 뱃살을 비웃을 수 있겠는가. 그 어느 누가, 감히.

 

 

양수를 여섯 번이나 담았던

당신의 아랫배는

생명의 곳간, 옆으로 누우면

내가 제일 고생 많았다며

방바닥에 너부러진다

긴장을 놓아버린 아름다운 아랫배

누가 숨소리 싱싱한 저 방앗간을

똥배라 비웃을 수 있는가

허벅지와 아랫배의 터진 살은

마른 들녘을 적셔 나가는 은빛 강

깊고 아늑한 중심으로 도도히 흘러드는

눈부신 강줄기에 딸려들고파

나 문득 취수장의 물처럼 소용돌이친다

뒤룩뒤룩한 내 뱃살을

인품인 양 어루만지는 생명의 무진장이여

방바닥도 당신의 아랫배에 볼 비비며

쩔쩔 끓는다

 

이정록, 제비꽃 여인숙, 민음사, 2007 1판 6쇄. 63쪽

 

이정록의 시는 따뜻하다. 그의 시 "의자"를 보라. 얼마나 따뜻한가. 그리고 그의 시에서는 어머니가 많이 등장한다. 시집 제목으로 "어머니 학교"도 있다.

 

이번 시집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을 그린, 삶을 그린 시가 있다. 바로 '강'이란 시다. 어머니의 뱃살, 그 뱃살이 터진 자욱들, 그것을 강으로 표현했다.

 

강은 바로 삶의 터전이다. 어머니는 바로 우리 삶의 바탕이다. 그런 어머니를 그린 시. 따스하고 좋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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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답지 않은 카프카
묘조 기요코 지음, 이민희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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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살아있을 때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은 것보다 죽은 다음에 받은 관심이 훨씬 크고, 그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작가는 살아있을 때 인기가 있다가 죽은 다음에는 곧 잊혀지고 마는데, 그래서 문학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지도 못하는데, 카프카는 몇몇 작품으로 또 일기로 편지로 세계 문학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그의 작품 중에서 "변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고, 누구나 한 번쯤은 읽는 작품, 읽지 않았어도 얘기는 들어본 작품이지 않은가.

 

그가 쓴 작품은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는데...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도 해석이 가능해서 다원적인 해석이 되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카프카는 문학에 자신의 전 삶을 걸었던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평가받아 왔다. 작품에서 완전을 추구하기에 미완성 작품이 많았다고, 그가 죽으면서 남긴 유언은 자신의 작품을 모두 폐기하라는 것.

 

유언집행자인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의 유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가 남긴 작품들을 출판해서 전세계에 알렸다는 것.

 

이 정도는 모두가 공유하는 사항이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카프카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문학은 도끼여야 한다'는 그런 말.

 

그만큼 그는 문학에서만은 완전함을, 범속함을 뛰어넘으려고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물론 문학에서 완전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카프카 하면 생각나는 우울, 절망, 고독 등을 전복시킨다.

 

카프카는 명랑하고 재치가 있으며 여자를 좋아하고 또 장사에도 무척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할 줄 알았다는 것. 비령한 카프카가 되나?

 

그렇게 카프카의 편지와 작품과 일기를 연관시켜 주장하고 있다.

 

카프카가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순진무구하지 않았음은 알고 있었으니 별 다른 문제는 아닌데, 그가 장삿속에도 밝았다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고 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했다는 것, 특히 자신이 만난 여인들과 가족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카프카란 사람이 문학에만 목숨을 걸었다면 그가 보험공사의 직원으로 끝까지 다니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이 있고 살아야 하고 무명작가에 불과한 카프카가 직업을 그만두긴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들고, 그러기에 더욱 직업과 문학의 경계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긴 힘들다. 이 책을 읽었음에도.

 

여자 관계, 특히 이 책은 펠리체 바우어로 알려진 카프카와 두 번 약혼을 하고 모두 파기하게 되는 여자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이 책에서는 펠리스로 나오는데 - 독일어로 읽는 것이 (펠리체는 독일 사람이니)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또 우리나라 카프카 전집에도 펠리체로 번역이 되어 있으니, 펠리체로 한다 - 그 여인이 능력있는 여인이었기에 카프카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고... 외모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서 카프카의 관심 밖이었으나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에서 관심을 얻었다는 관점이다.

 

이는 카프카가 경제에 큰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하고, 그것을 그의 편지와 일기와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경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니, 특히 작가들은 자신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길 얼마나 갈망하는가... 직업을 가져서 시간을 뺏기지 않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면 하고 바라는 작가들이 많으니, 이를 카프카의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카프카답지 않은 카프카"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 카프카의 다른 면에 대한 고찰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다. 이 모든 것을 합쳐서 카프카가 되는 것이니.

 

한 가지 새로운 주장은 카프카의 작품은 모두 카프카의 편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가 작품을 출간하지 않겠다고 한 것, 유언으로 모두 불태우라고 한 것도 역시 작품을 출간하라는 주장, 그렇게 하라는 의도를 보인 것이라는 주장인데...

 

세상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읽히지 않길 바라겠는가. 그러니 편지가 읽는 사람을 생각하고 쓰여지듯이 작품 역시 읽는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고 쓴다. 말은 "읽지 마, 읽지 마." 하지만 작가들의 이 말은 "제발 내 작품 읽어 줘."라는 것.

 

읽어달라는 말을 돌려서 작품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카프카의 작품이라는 말인데...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것이 카프카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카프카답다. 자기 작품에 흥미를 느끼게 만들고 있으니까.

 

읽기는 편한 책이다. 그리고 카프카의 작품에 대해서 편지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도 해주는 책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 생각은 이 책의 내용은 결국 '카프카다운 카프카'였다는 것. 새롭다기보다는 카프카에 대한 생각을 더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

 

덧글

 

203쪽 소소한 오타... 사실 관계 바로잡을 것.

 

'혼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발리와 요제프 폴락은 1912년 9월 15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 이듬해인 1913년 1월에 여동생인 발리가 결혼했고...' 라고 되어 있는데, 앞뒤가 안 맞는다. 1912년 9월에는 결혼식이 아니라 약혼식이다. 이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 이 사실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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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정국이 어수선하다.

 

  깔끔하게 판결이 날 줄 알았는데, 지지부진이다.

 

  시간끌기 작전에 말려들었는가?

 

  지저분한 말들이 세상에 어지러이 돌아다닌다.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는 말들. 자기합리화. 개가 웃을 소리들이 말이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닌다.

 

  그냥 말일 뿐이다. 이 말들을 제 말로 삼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지금 정국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개판'이다. 이런 개판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다. 말로는 안 되니 '깽판'을 놓아야 한다.

 

이윤택의 시선집을 읽다가 시 '깽판'을 읽게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개판,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것은 매한가지인가 보다.

 

그러니 이 시선집의 제목처럼 '나는 차라리 황야이고 싶다'고 할 수밖에.

 

시를 보자. 지금 정국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 이 시에 다 담겨 있다.

 

        깽판

 

사람들이 조금씩 뻔뻔스러워지면서

게임의 규칙은 무너졌다

뻘밭이 펼쳐지고

개처럼 싸운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일은 깽판을 치는 일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식량이라면

죽을 쑤는 일이다

 

이윤택, 나는 차라리 황야이고 싶다. 북인. 2007년 1판 1쇄.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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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7-02-11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가 딱 지금 상황이군요..

kinye91 2017-02-11 14:17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이런 시가 시로만 존재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는데요.
 
김규동 시전집
김규동 지음 / 창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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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규동 시인,  1925년에 세상에 나와 2011년에 돌아가시다. 작은 거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분. 전집에 실려 있는 사진을 보면 주위 사람들과 키 차이가 꽤 난다. 그리고 체격도 참으로 왜소하다. 그러나 김규동 시인을 회상한 사람들의 글과 그 자신의 글, 그리고 시를 보면 작은 체격에도 큰 마음을 품고 사신 분이 아닌가 한다.

 

군사독재시절에는 거리에 앞장서서 나서기도 했던 분이고, 시를 통해서도 현실이 정의롭지 못함을 고발한 분이기도 하다.

 

북쪽이 고향인데, 스승인 김기림 선생을 만나러 왔다가 이산가족이 되어 버린 시인. 돌아가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교정을 본 것이 이 시전집이다.

 

시인의 시들이 거의 모두(혹시 발표되지 않은 원고를 누군가가 유고로 갖고 있는지는 모르니까) 실은 시집이 바로 이 시전집이다.

 

앞부분에는 김규동 시인의 생전에 활동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몇 장 있고, 사진도 그리 많지도 않다. 깔끔한 시인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발표된 시집 순서대로 - 중복된 것은 빼고 - 실려 있다. 뒷부분에는 미발표 시들과 이동순 교수의 김규동 시 해설이 실려 있다.

 

실로 한 시인의 모든 시들을 모아놓은 방대한 시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인이 시로 활동한 것이 60년이 넘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시집 또한 적은 편, 작은 편에 든다고 할 수 있다.

 

1948년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한 시인이 2005년까지 9편의 시집을 냈다는 것은 다작이 아니라 과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치열하게 삶을 살았고, 시를 썼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김규동 시인은 '하나의 무덤'으로 먼저 다가왔다. 남북이 대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전쟁까지 겪고도 아직까지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우리들에게 이 시는 '죽어서 비로소 하나가 된 함경도 어부의 아들인 미소년과 지리산 기슭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김일병이 어떻게 해서 한 무덤 속에 나란히 누워, 서로 손잡고 지리산 한라산 백두산 금강산을 다녀오며 평등하게 자유로이 살고 있다는 내용. 죽어서 비로소 형제의 우애를 굳게 맹서'하게 되었다고 하는 시.

 

이제는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함께 웃으며 함께 손잡고 다녀야 하지 않겠냐던 시인, 그런 시인이 결국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으니...

 

처음부터 시집을 주욱 읽어가다 보면 시인의 시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알 수 있고, 그럼에도 시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시는 어떤 시인가를 알 수 있다.

 

시인은 시를 통하여 사회로부터 도피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시를 통하여 현실로 돌아오려고 했다. 현실과의 만남, 그것이 바로 시인이 추구하는 시였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 투쟁을 위해서 희생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인의 삶이었던 분단된 삶. 이북에 두고온 가족, 특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통일에 대한 열망이 시를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시인이 만났던 또다른 시인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시인들 중에 '목마와 숙녀'를 쓴 박인환에 대한 시가 가장 많다. 그만큼 시인에게는 요절한 박인환 시인이 안타까운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김규동 시인, 작은 몸집에 또 60평생 넘게 쓴 시치고는 작은 시집이지만 그 분의 삶은 컸고, 이 시집 또한 울림이 큰 시집이다.

 

9편의 시집을 순서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비와 광장(1955년 산호장), 현대의 신화(1958년 덕연문화사), 죽음 속의 영웅(1977년 근역서재), 깨끗한 희망(1985년 창작과비평사), 하나의 세상(1987년 자유문학사), 오늘밤 기러기떼는(1989년 동광출판사), 생명의 노래(1991년 한길사), 길은 멀어도(시선집, 1991년 미래사), 느릅나무에게(2005년 창비), 미간 시편

 

 

여기에 김규동 시인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시인이 쓴 자전적 에세이 "나는 시인이다"를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시인의 삶과 생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래, 내게는 김규동 시인의 대표작인 이 '하나의 무덤'을 여기에 적는 것으로 그의 시전집에 대한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하나의 무덤

 

탱크를 몰고 나왔던

함경도 어부의 아들인 미소년과

지리산 기슭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김일병이

어떻게 해서

한 무덤 속에 나란히 누웠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세월이 흐르고

산천은 변했으나

여기서는 예포가 울리는 일도 없고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는 이도 없다

그들이 지녔던 일체의 쇠붙이는

흙에 묻혀 한줌 가루가 된 지 오래고

여러 짐슬들이

그들과 더불어 함께 놀고

구름이 또한 두 넋을 가상히 여겨

그들의 머리 위에 정답게 머문다

김일병이 미소년의 손을 잡고

지리산 한라산 구경하러 다녀왔는가 하면

미소년은

김일병과 어깨동무하여

백두산 금강산 개마고원도 돌아왔단다

오도가도 못하는 휴전선도

훨훨 날아다니며

해와 달을 벗하여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았다

남북의 두 젊은이는

통일된 삼천리 강토 위에서

평등하게 자유로이 살고 있다

이 허술한 언덕

잡초 우거진 남녘 기슭에

누가 억울한 두 전사자의 시체를

함께 묻어줬는지

잘은 모르지만

여기를 지나는 이는

죽어서 비로소

형제의 우애를 굳게 맹서한

젊은 남북 전사의 가엾은 넋 앞에

다만 머리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김규동 시전집, 창비. 2011년. 375-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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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7-02-10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사 독재시절에나 있을 법한 블랙리스트 사건의 장본인은 관저에 처 박혀서 시간 끌기로 나오고 있으니 정말 화가 납니다.

kinye91 2017-02-10 12:3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어째 자꾸 안 좋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 바로잡히겠지요. 곧.
 
GMO사피엔스의 시대 - 맞춤아기, 복제인간, 유전자변형기술이 가져올 가까운 미래
폴 크뇌플러 지음, 김보은 옮김 / 반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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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경악했다. 이렇게까지 의학-과학기술이 발전했던가 하고, 이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하면서 읽었다. 복제인간에 대한 논의가 예전에 황우석의 실험조작으로 우리나라에서 꽤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은 있었지만...

 

아직은 인간복제는 먼 얘기구나 하고 있었는데, 먼 얘기가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여러 의학자, 과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고 실험되고 있다니...

 

인간복제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니까, 대상을 유전자로 삼아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하니, 유전자를 배아단계에서 변형, 조작함으로써 원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연구, 실험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어느 정도 성과도 있다고 하고. 착상전유전자진단법은 상당한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이런 결과로 인간의 질병을 유전자변형을 통해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하는데... 또한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도 꽤 발전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유전자에 변형을 가하는 것으로 쓰이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인간복제로까지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두 방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인공지능을 창조하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복제인간을 만드는 일이다.

 

둘 다 창조라는 영역을 개척하는 일인데,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의 분야에서 인간을 넘어서게 되자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해서 경악하면서도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공지능으로 인해 없어질 직업을 살펴보기도 하고,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지도 논의하게 되었다.  또한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지게 되면 이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인공지능은 생명체로 아직은 보지 않고 있으니, 복제인간보다는 덜 윤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인간을 위해서 장기를 적출한다거나 인간 대신에 죽어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이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지닐 수도 있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인공지능으로도 경악을 금할 수가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며 너무도 놀랐다. 의학-과학기술이 이렇게 발달했나 싶을 정도였고, 인공지능이 문제가 아니라 복제인간이 더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복제인간은 감정을 지닌 생명체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문학이나 영화를 통해서 복제인간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했다. 대부분이 암울한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복제인간 전 단계로 유전자변형인간에 대한 연구가 급속도로 진척되었다고 한다. 유전자변형인간을 이 책에서는 GMO사피엔스라고 하는데...

 

이미 유전자변형에 관해서 합법화한 나라도 있다고 하는데... 영국은 세부모체외수정법을 합법화했다고 하고, 중국에서도 유전자변형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잘 모르고 있어서 그렇지 유전자변형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고 있는 중이고, 그래서 과학자들이 모여 연구의 한계를 정하는 회의를 하고 있지만 명확한 결론은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유전자변형 중에서 유전자편집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크리스퍼-Cas9 유전자 편집기술은 상당히 발전했고, 또 많이 연구되고 있다고 하는데...

 

돌연변이 유전자를 찾아가 잘라내고 그곳에 다른 유전자를 생성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컴퓨터에서 문서나 그림을 편집하듯이 우리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이라고 하는데, 이 기술이 실험실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이 기술을 아직은 사람에게 적용하지는 말자는 합의가 대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직까지다. 누군가가 사람에게 이 기술을 적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과학적 명성이나 돈을 위해 시도한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이미 발견된 기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 누군가가 다른 분야에 적용할 것이다. 이 기술이 광범위하게 인간에게 적용된다면 우리는 맞춤아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런 맞춤아기들은 자연스러운 생식과정을 거친 사람들보다 유전적으로 뛰어날 것이며, 이들이 인류의 상층부를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

 

또 누구나 다 이렇게 돈만 있으면 맞춤아기를 만들어낼테니 자연스럽게 우생학과 연결이 되기도 한다. 어떤 기준으로 우월한 인간을 설정할테고, 그 설정에 따라 유전자를 편집할 것이다. 이것은 유전자편집기술이 상용화되면 자연스레 일어날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들 인간의 유전자 다양성은 사라질 것이고, 이것이 또다른 재앙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 책의 저자는 그래서 유전자변형 실험을 하려는 의학자, 과학자는 최소한 ABCD라고 하는 네 가지 항목은 준수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줄기세포배아연구 감독위원회의 승인과 감독 (의무적 승인 Approval), 생명윤리 교육을 우선 이수 (생명윤리 교육 Bioethics Training), 명확성과 투명성: 대중에게 정보 공개 (Clarity), 생체 내 응용 실험으로 확장하지 않는다 (Don't extend)이다.

 

하지만 이것도 완전하지는 않다. 누군가 생체 내 응용 실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발견된 기술을 쓰지 않기란 너무도 힘든 일이다. 쓰려는 유혹을 받게 되고, 그것을 실험하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 던져진 주사위가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이것은 특정 과학자나 정책입안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인공지능보다도 오히려 이러한 유전자변형인간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그 심각성을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알려주고 있다. 전문적인 용어가 가끔은 나오지만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소위 GMO사피언스라고 하는 유전자변형인간에 대해서 일반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써나갔다.

 

지금, 우리에게 여러모로 유용한 책이다. 읽고 지금 이러한 유전자변형인간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잘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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