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겨울호다.

 

겨울호를 읽으며 봄을 생각한다. 우리들의 삶에 따스한 햇볕 한줌이 드는 그러한 봄을.

 

우리 사회가 몇 년 동안 겨울을 보내다 이제는 봄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봄, 그러한 따스함, 그것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호에도 많은 글들이 있지만 2017년을 정리하는 시집에 대한 소개와 소설에 대한 소개가 있다. 문학이 우리 삶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고, 문학을 통해서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면 삶창이 기획한 2017년을 돌아보는 문학들에 대한 이야기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다고 생각하지만 커다란 생활습관. 성중립화장실(흔히들 남녀공용 화장실이라는 말을 쓴다)에 대한 이야기. 집에서는 모두가 성중립화장실을 사용하면서 공중화장실은 남녀 구분 화장실을 쓰고 있는 현실.

 

사건이 일어난다고 성중립화장실을 반대하는 경우가 더 많다던데, 몰래카메라 등이나 다른 일들은 남녀 분리 화장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 성중립화장실의 설치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디에 설치하고 어떻게 운영할까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

 

무엇보다도 화장실을 이용하는 습관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채윤,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오해)

 

성중립화장실이라는 것이 구조적인, 건물에 해당하는 문제라면, 화장실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개인적인, 사람들의 생활습관에 관한 문제다.

 

구조와 습관이 함께 바뀌어가야 서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우루과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사실 우루과이라고 하면 잘 모른다. 축구경기에서 첫해 월드컵에서 우승한 나라이고,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단 무히카 정도만 알 뿐.

 

그런데 이번 삶창에서 우루과이에 대한 글 (이순주, 우루과이의 정치 개혁과 새회 개혁)을 읽고, 우루과이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고 관심이 가게 되었다.

 

우루과이를 방문하고 나서 느낀 이 글...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최근 우리 국회의원들이 세비와 보좌진을 늘린 상황을 보면서, 몇 년 전 타바레 바스케스 대통령 시기에 에너지산업장관을 역임했던 다니엘 마르티네스 상원의원 집무실을 방문한 기억이 떠올랐다. 7-8평 남짓한, 마치 대학교수의 낡은 연구실 같은 느낌의 집무실이었다. 그나마도 불투명한 유리창이 달린 파티션 하나가 상원의원 전용 사무 공간과 비서 두 명의 업무 공간을 구분할 뿐이었다. 열심히 검토 중인 많은 서류 더미들이 흩어져 있는 사무실에서 방문자에게 제공된 자리는 상원의원과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을 수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의자였다. 새것이어서 반짝거리는, 새롭고 세련된, 혹은 지위나 권력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어떤 것도 없었다. 그런 곳에서도 국민을 위한 훌륭한 정책들은 잘 나온다. (109-110쪽)

 

이런 자세를 지닌 의원들이 오히려 정책을 더 잘 만들어내겠지... 그런 정치인들이 많아야 삶이 더 잘 보이는 정책들이 나오겠지. 그런 생각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해릴린 루소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장애인이 쓴 책을 읽으면 우선 드는 생각이 바로 '대단하다'이다. '대단하다' 이 말 속에는 그렇게 하지 못할텐데, 또는 그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에는 다름을 대하는 태도가 작동한다고 한다.

 

신체장애, 지적장애. 다른 사람인데, 이들은 사회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받거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사회적인 부담이라는 생각을 지니는 사람이 더 많고, 태어나서 자라면서 장애인 자신들도 이런 생각을 지니게 하는 환경 속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의 저자인 해릴린 루소의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장애인들을 가엾게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만큼이나 장애인 스스로도 자신들을 장애인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는 사실.

 

이만큼 다름은 삶을 살아가는데 상당한 차별로 작동을 한다. 그런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을 언론이 다뤄주는 이유도 장애인들이 우리 삶 속에 녹아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같지만 겉돌고 있음을 언론에서 다루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무에 대수란 말인가? 그럼에도 장애가 있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운동을 하거나 하면 대단한 일을 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보도를 한다.

 

이런 보도를 자연스레 접하면서 생활하는 우리들 역시 은연 중에 장애인은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사람으로 인식을 하게 된다. 우리만이 아니라 장애인들조차도.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닉 부이치지'나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책을 보면 그들이 너무도 자연스레 성공했다고 여겼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외모를 거울을 보면서 진저리친다든지, 다른 장애인을 만나면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싫다든지, 이것은 장애가 없는 사람이 장애인을 볼 때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해릴린 루소는 말해주고 있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불만을 표하듯이 장애인들도 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 장애인으로 인식하고 이런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기까지는 꽤나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

 

우리에게 장애인으로서 성공한 대명사로 통하는 헬렌 켈러도 역시 수많은 갈등을 거치면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갔을텐데, 우리는 그런 내적 고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외부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장애인의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가는 해릴린 루소의 글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실례로 우리나라 학교만 해도 그렇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 교육받기를 거부하는 부모들도 있고, 장애인 학교가 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도 있는 형편이니, 그들과 함께 하는 삶, 그들을 편견없이, 아니 장애인이라고 명확히 인식하고 생활하는 일은 아직도 힘들다.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배려하라는 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애인임을 부정하라는 것도 아니다. 장애를 인정하되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감정,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감정이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는 데는 장애인이냐 장애인이 아니냐는 구분은 필요없어져야 한다.

 

이 책의 저자인 해릴린 루소는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데도 오랜 시일이 걸렸다. 그런 자신을 똑바로 보는데도 오랜 시일이 걸렸고.

 

그렇지만 그는 안다. 장애를 부정한다고 장애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장애로 인해 남들의 도움만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도 문제라고.

 

그냥 다른 생활을 할 뿐. 생할에서 다를 뿐이지만 느끼는 감정, 욕구들은 같다고... 세상에서 여성, 장애인으로서 차별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그것들을 차별이 아닌 그냥 다름으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감정들을 솔직하게 내보이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 해릴린 루소를 '대단하다'고 하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하지 못한 우리들을 '대단하다'고 해야겠다. 비꼬는 의미에서. 그러니, 이런 비꼼의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더 낮은 곳에서 바라보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2-05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5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밤의 눈 - 2013년 제28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2013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
조갑상 지음 / 산지니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이토록 착잡할 줄이야. 응어리지어 마음 속에 남아, 질기도록 남아 찜찜한 기분을 유지할 줄이야.

 

읽으면서 몇번이나 책을 덮으려고 했는데, 그냥 지나간 과거일 뿐이야, 다 알고 있는 내용이잖아, 지금은 많이 밝혀졌잖아, 우리 역사의 어두운 부분이지만, 이제는 밝은 부분을 봐야지 하면서, 그렇게 읽기를 멈추고 싶었지만...

 

소설은 1979년 부마사태로 끝나는데... 그런데, 그 이후 우리는 4.19이후와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 소설을 덮지 못했다.

 

민중의 힘으로 독재자를 끌어낸 4.19이후 6.25때 벌어진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움직임들이 활발했다. 얼마나 억울한 죽음들이 많았을까? 그 억울한 죽음의 모습들이 이 소설의 2부를 이루고 있다. 전쟁 때 이유없이 죽어가야 했던 사람들.

 

살아있어도 고통받아야만 했던 사람들, 그들을 단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중에 자신들에게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죽이는 사람들... 여기에 피해보는 여성들.

 

소설은 속칭 보련(국민보도연맹) 관련자 처형 사건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국민보도연맹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전쟁 속에서 일어난 비윤리적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학살 당한 사람들이 꼭 보련 출신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고, 자신의 사적인 욕망만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한 마을의 사람들을 통해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적이 명확하지 않을 때 가장 두려운 적은 바로 '이웃'이다. 한 마을에서 서로 웃으며 지내던 이웃이 갑자기 적으로 돌변해 자신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것. '네 이웃을 사랑하라'가 아니라 '네 이웃을 조심하라'가 된다.

 

외국인이 쓴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책을 읽었을 때 함께 울고 웃으며 지냈던 이웃이 너무도 무서운 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서 전율했었는데... (이 책은 보스니아 내전을 다루고 있다. 한 국가 다민족으로 유고슬라비아를 구성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각 민족들이 독립된 나라를 만들고, 서로를 학살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지금은 절판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원일의 "겨울골짜기"에서 거창양민 학살사건을 다루었고, 황석영의 "손님"에서 신천의 양민학살 사건을 다루었다. 이 소설들을 읽으며 전쟁 기간 동안에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 당했는지를 간접 경험했는데...

 

이 소설은 이런 이데올로기를 표방해서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가는 인간들이 나온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인간성보다는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켜야한다는 말이 더 위력을 떨치던 시대다. 미국의 정치권력이 이런 말을 했었지. '부수적 피해'라고.

 

강력한 적을 섬멸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민간인 피해는 부수적일 뿐이라고. 아마 이 말이 의미하고 있는 핵심적 의미의 원조는 우리나라일 것이다. 빨갱이를 잡는데서 생긴 억울한 사람들의 죽음은 그야말로 '부수적 피해'일 뿐이라고. 그러니 학살한 사람들, 대다수는 죄가 없다고. 

 

그러니 그런 시대에 살아남은 사람들, 숨 죽이고 살 수밖에 없다. 사건이 일어난 뒤 십년을 숨죽이고 살고, 유해도 찾지 못한 채 살다가 4.19민주화운동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밖으로 표출하게 되는데... 관련자 처벌에 앞서 이들이 주장한 것은 진상규명이다. 진실을 밝히라는 것, 그리고 희생자들의 유골을 찾아 모시겠다는 것.

 

이들의 열망이 실현되기도 전에 5,16군사쿠테타가 일어나고, 쿠테타를 미국에 인정받고 싶어하는 세력은 다시 반공을 내세워 사람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겨우 십년 만에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 다시 줄줄이 끌려가 고문받고, 재판받고, 이들은 다시 범법자가 된다. 비국민이 된다. 이들만이 아니라 자식들까지도 국민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가혹한 연좌제.

 

반면 이들을 탄압했던 자들은 승승장구한다. 역사의 아이러니... 역사는 힘 센 자, 이긴 자의 편에 서는가... 짧은 기간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긴 역사로 보면 그렇지 않다.

 

소설이 끝나는 시점인 1979년은 새로운 희망, 그렇다, 29년이 지난 세월에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끝난다. 소설의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이후 몇번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족해 활동을 한 것이 우리 역사의 전개인데...

 

소설은 여기까지 가지 않는다. 갈 필요가 없다. 어두운 역사 속에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다음 몫은 읽은 사람에게 돌아온다. 이렇게 우리나라 아픈 현대사를 꼭 집어서 보여주는 소설은 우리에게 역사를 잊지 않게 한다.

 

과거 역사책 속에 갇혀 있는 글자들로만 기억하게 하지 않고, 생생하게 마음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래서 문학은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존재해 온 것이고, 독재자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문학을 통제하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픈 역사,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도 아프지만, 그런 비극에 마냥 눈 감을 수밖에 없다. 제대로 진실을 밝히지 않아, 제대로 처벌을 하지 않아 우리는 2000년대에 들어서도 뼈저린 후회를 하고 다시 길거리로 나서지 않았던가.

 

소설을 읽으며 마음 속에 새겨넣는다. 이런 일, 진상을 확실히 밝혀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집 전체시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 시집을 읽었을 때 어느 한 시를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시간이 흘렀을 때 어느 시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집이라면 참, 난감하다.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도 생각나지 않는 시들.

 

  그러나 어느 한 시가 기억난다면 그 시집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시인이 시집으로 기억되는 경우보다는 특정한 한 시로 기억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시 하나를 가지고 있는 시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 시집을 읽었을 때 자꾸 마음 속에 맴도는 시는 바로 '물맛'이었다. 나이를 들어가는지 이제는 더하기보다는 덜기에 더 관심이 가서 그런가.

 

물맛

 

물맛을 차자 알아간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맨발인,

 

다 싫고 냉수나 한 사발 마시고 싶은 때

잦다

 

오르막 끝나 땀 훔치고 이제

내리닫이, 그 언덕 보리밭 바람 같은,

 

손뼉 치며 감탄할 것 없이 그저

속에서 훤칠하게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그 걸음걸이

 

내 것으로도 몰래 익혀서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랑에도 죽음에도

써먹어야 할

 

훤칠한

물맛

 

장석남, 뺨에 서쪽을 빛내다, 창비. 2011년 초판 4쇄. 14-15쪽.

 

흔히 아무 맛을 내지 못하는 물을 '맹물'이라고 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맹물은 '하는 짓이 야무지지 못하고 싱거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한창 젊었을 때는 맹물과 같은 사람, 참 능력없는 사람, 한심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그래서 무언가 재주가 있는 사람, 또 자기 주장을 확실하게 하는 사람을 좋게 봤는데, 차츰차츰 나이들어가면서 사람 그자체인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자신을 꾸미지 않은 사람, 그냥 다른 사람 곁에 있어도 그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이 시에서 말하는 물맛과 같은 사람이 아닐까.

 

온갖 것을 첨가한 음료보다는 그냥 물을 좋아하는 나이, 사람의 삶도 그렇게 더하기보다는 덜하는 삶으로 향하는 나이, 그런 삶을 좋아할 수 있는 나이.

 

아니 나이를 떠나야 한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명료하게 이런 물맛을 아는 삶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이런 물맛을 아는, 이런 물맛을 내 것으로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2-03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3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 - 170일간의 재판 기록으로 밝힌 10.26의 진실
안동일 지음 / 김영사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받아들이기 힘든 정보들이 있다. 그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잘 판단하지 못할 때가 그러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를 때는 더욱 그렇다.

 

그것도 자신이 살아온 내내 들어왔고 생각해 왔던 것과는 다를 때 상당한 곤혹감과 함께 우선 부정하고픈 마음이 든다.

 

이게 사실이란 말야? 하는 생각을 먼저 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이 환경에 의해서 자신에게 스며들어 왔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미 그렇게 자신의 일부가 된 것들을 사실이 아니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로 이 책도 그랬다. 문영심이 쓴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라는 책을 읽고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극히 일부분으로 내가 전체를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동안 지녀왔던 생각을 바꾸기에는 힘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김재규에 대한 평가다. 그를 의사라고, 우리나라 민주화를 앞당긴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것도 그런 단체의 중심에 함세웅 신부가 있다는 것.

 

아마 영화 "1987"을 본 사람은 알리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밖으로 알리는데, 그 밖에서 활약했던 신부님이 바로 함세웅 신부라는 것을. 그만큼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큰 역할을 하신 분인데, 이 분이 김재규 명예회복추진위원회 일을 한다고 하니...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사실만 생각하기로 했다. 김재규는 박정희를 쏘아죽였다.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표현하는데...

 

그가 중앙정보부장으로 유신의 심장에서 한 축을 담당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박정희에게 접근하기도 쉬었다는 것도. 또한 그가 박정희를 쏨으로써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불길이 일어났다는 것.

 

다만, 그가 일으킨 불길은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의 쿠테타로 유신 잔재에 대한 설거지가 이루어지지 않고 도리어 유신 잔당들이 정권을 연장했다는 것.

 

이건 사실이다.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일 것은 없다. 다만 이제는 더 명확한 사실을 밝혀야 한다.

 

왜 김재규를 그렇게 서둘러 사형시켰을까? 김재규뿐만이 아니라 10.26에 얽힌 사람들에 대한 재판을, 그것도 단순하게 명령만을 따랐을 뿐인 사람들까지도 그렇게 빨리 사형시켰을까?

 

이들을 살려두면 안 되는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 아닐까?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유신 잔당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들의 입을 막을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호랑이가 없어지니 늑대가 호랑이 역할을 한다고, 18년 장기집권 독재자가 사라지니 그걸 본받고 싶은 새끼 독재자가 등장했으니...

 

그렇게 김재규가 말하는 유신 설거지는 다시 몇 십년 뒤로 1987년 민주화 운동을, 그리고 민주 정권이 탄생하기까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김재규를 변호했던 안동일 변호사의 법정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법정에서 공방이 오갔고,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를, 재판 과정을 통한 기록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재규를 재평가 하는데 도움이 된다. 적어도 그에 대해 가졌던 마음의 한쪽에 문을 열어둘 수는 있게 된다.

 

그리고 의문점을 갖게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토록 재빠르게 재판을 진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1979년10월 26일에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아 죽였다. 그리고 그는 며칠 뒤 체포되어 재판을 받기 시작한다. 재판 결과 사형, 1980년 5월 24일 사형이 집행된다.

 

이보다 빠른 시기에 1980년 3월 6일에 그의 비서관이었던 박흥주 대령의 사형이 집행됐다. 이상하다. 아무리 현역 군인이라고 해도, 주범의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김재규의 최종판결은 1980년 5월 20일에 이루어졌다) ... 종범 또는 공범의 사형 집행을 하다니...

 

체포된 지 7개월만에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박흥주 대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3심까지 갔는데 겨우 7개월이라니...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재판에 겨우 7개월이라니...

 

박정희 딸인 박근혜가 체포된 지가 꽤 됐는데도 1심 선고조차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속전속결로 판결이 이루어진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 책을 구치소에 있는 박근혜가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판이 불공정하다는 둥 여러 말을 많이 하고 있는데,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김재규가 어떤 절차에 의해 재판을 받았는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면 지금 재판의 불공정성 운운하는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이 책에도 이런 재판 상의 문제가 많이 나온다. 그렇다면 사법부가 권력에 종속되어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런 점을 이 책을 통해서 사실이라고 확인할 수 있으니, 김재규 평가에 이 책이 기여를 할 수 있단 생각을 한다.

 

아무리 흉악범일지라도 절차를 거쳐 재판을 해서 판결을 하는데, 특히 대통령을 사살한 경우에는 충분한 심의를 거쳐야 할텐데, 최종 집행까지 7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감추려는 것이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판단은 읽는 사람들 몫이다. 나 역시 나대로 판단은 하겠지만, 이 책이 그런 판단에 실마리를 제공하기는 하겠지만...

 

판단을 하기 위해서도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박정희만큼 공과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인물이 어디 있는가. 그만큼 김재규도 비슷하게 평가가 엇갈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니, 그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진실을 찾기를 바라며... 

 

하나 덧붙이면 사회를 변하시키는 방법을 1979년과 2016년을 비교해 봐야 한다. 부녀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방법. 

 

아버지는 김재규라는 한 명의 실행으로 개인의 신체적 죽음이라는 방법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지만, 딸은 촛불이라는 국민들의 의지를 받은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의결하여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정치적 죽음을 선고받았다.

 

그 다음 진행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너무도 다르다. 아버지의 육체적 죽음은 또다른 독재, 신군부를 불러왔고, 대다수 민중의 희생을 막지 못했지만, 딸의 정치적 죽음은 민중의 의지를 계승한(지금까지는 분명 그렇다는 평가다) 정부를 탄생시켰다.

 

세월이 흐른 만큼, 또 정치적 사건들을 많이 겪은 만큼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도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결행이 아닌 국민들의 힘으로 얻어낸 민주주의니 이제는 특정한 집단에 그 결과를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 내줄 수도 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2-02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2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