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루
김선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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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운명이다. 남북이 갈라져 있어서 그 비극을 온몸으로, 아니 온 가족이 겪어야 했다. 가장이 탄압을 받으면 어려움은 가장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어려움은 온 가족으로 번져 나간다.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당시에 남자는 가장으로서 가족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가족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 구속이 되면 아내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러 노동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게 된다. 가족의 생활이 아니라 생계가 문제가 된다.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지금은 이런 '가장'이라는 말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가족 중에 누군가가 구속이 되면 다른 가족들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엄혹했던 시절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가장이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구속이 되면 가정은 파탄나고 만다. 이웃에게서 멀어지고 알던 사람들도 떨어져 나가며, 아이들은 학교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살고, 심지어는 아내나 자식들이 직장에서 해고되는 경우도 있다.

 

완전히 파탄난 가정, 그럼에도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 정도 민주화 된 것,, 남북관계가 평화 관계로 가고 있는 것은 그들의 그런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 문제가 잘 풀려가다가 탁 장애물에 부딪혔다. 예전 같으면 그 장애물이 결정적으로 작용해 다시 남북관계가 얼어붙었겠지만, 이상하게도 요즘은 그런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장애물을 남북이 힘을 합쳐 넘을 수 있다는 생각. 분단된 지가 7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수많은 협상을 했는데, 통일을 위해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고 희생도 했는데, 잘 나가던 길에 툭 떨어진 장애물, 이 장애물이 통일로, 평화로 가는 길을 이제는 막지 못하리란 생각을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통일의 길, 평화의 길을 힘들게 닦아놓았는데, 그들이 걸어가면서 얼마나 많은 장애물들에 걸렸었는데, 그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치우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그런 노력들이 배신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다. 그리고 그 통일의 길, 평화의 길을 닦은 사람 중에 한 사람, 김낙중이 있다.

 

김낙중에 대해서는 '굽이치는 임진강'으로 먼저 알았다. 그 다음에 신문에 난 기사에 '간첩'으로, 그것도 무려 30여 년이 넘게 국내에서 학원가에 침투해 암약한 간첩이라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고, '굽이치는 임진강'을 바탕으로 최두석 시인이 쓴 '임진강'이라는 시를 읽었다.

 

이 정도면 김낙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김낙중의 딸이 쓴 '탐루'라는 책을 읽으니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다.

 

딸이 본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가 위인전기를 읽으면 마냥 존경스러운 그런 행동들과 말들이 나오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한 가족사를 쓰고 있기에, 주인공이 꼭 김낙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주인공은 두 명이라고 해야 한다. 김낙중과 부인인 김남기.

 

어쩌면 딸이 쓴 이 책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부인인 '김남기'일지도 모른다. 통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남편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초들을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지내온 그의 삶 자체가 바로 통일, 평화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웅적인 모습으로만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은 딸이 썼기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미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은 우리나라 현대사를 거쳐오면서 겪었던 갈등, 어려움 등을 어머니의 일기를 토대로, 또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기록하고 있기에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6.25전쟁을 상반되게 겪은 사람, 김낙중은 평화주의자가 되는 계기가 6.25였다면, 김남기는 6.25를 통해 반공 사상을 지니게 된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고 결혼하고 어려움을 겪어나가는 과정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소위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울고 웃는 평범한 사람, 그런 사람의 모습이.

 

소위 출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위해서 구도자처럼 평생을 살아온 김낙중, 그리고 그런 남편으로 인해 현대사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겪은 김남기.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그들의 삶이 분단이라는 현실에서 통일과 평화로 가기 위한 길이 얼마나 험난했었는지를 이 책은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이들이 걸었던 길이 조금은 넓어지고 평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꽃길'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남과 북이 걸어야 할 길은 아직도 험한 '돌길'이다. 가끔은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넘어진다고 거기서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김낙중처럼 이런 돌길, 가시밭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발자국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 발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한두 번 넘어졌다고, 또 자꾸 넘어진다고 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꾸 자꾸 걸어가야 한다. 루쉰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이미 남북 분단의 길을 통일, 평화의 길로 만들려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걸어갈 것이다. 그러니 가끔 발에 걸리는 돌부리들은 치우며 가면 된다.

 

김낙중은 커다란 돌부리에 걸리기도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4차례나 간첩혐의로 잡혀들어갔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그 길을 가려한다. 그렇게 한 사람들, 그들을 따라 더 많은 사람이 걸어가면 평화, 통일의 길은 평탄해지고 넓어진다.

 

분단된 나라에서 평화, 통일의 길을 가려던 사람, 그 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던 사람 김낙중, 그리고 그런 그와 함께 평생을 울고 웃으며 함께 한 김남기, 그들의 삶 속에서 희망을 본다. 길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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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0 1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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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0 14: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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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고을


혁명 광주는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살아있다


그때 광주는

붉은 피가 흐르는

민중의 한이 흐르는

도시


지금 광주는

민중의 가슴에

빛을 주는

빛고을


나는 

아직도 

괴로운 마음으로

광주를 이야기하지만


광주가 아닌

빛고을이

사람들 가슴에

하나하나 담기도록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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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8 16: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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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8 16: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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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어 생각한다 -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
박한식.강국진 지음 / 부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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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에 소개된 책이었다. 바로 붙어 있는 나라이지만 가장 멀리 있는 나라, 또 같은 민족이라고 하지만 잘 모르는 나라, 이해보다는 오해가 더 많은 나라 북한에 대해서 이렇게 다른 방향에서 알려주는 책이 존재하다니.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나오고, 미국에 유학을 가 그곳 시민이 된 사람. 북한에도 50여 차례 다녀오고, 카터 미국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어 그가 방북을 할 때 통역관 겸 함께 가기도 했다는 사람, 박한식.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박한식이란 사람, 교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이렇게 북한에 정통한 학자가 있음에도 전혀 알지 못했다니, 그것이 좀 의아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북한에 관해서는 사실을 제대로 전달해도 안 되는 상황이 바로 우리 상황이었단 생각이 든다.

 

북한에 관해서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보다는 원하는 방향으로 소설을 써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북한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해줄 이런 책이 이제는 나올 때도 되었다는 ㅅ애각이 든다. 아마 몇 해 전에 나왔다면 국가보안법에 걸렸을 수도 있었으리라.

 

북핵 문제 책임, 북한에도 있지만, 미국에 더 책임이 있다는 주장, 그리고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이야기하고 있는 그의 관점이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고무 찬양죄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부에서는 "북한은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뢰'가 있어야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세상에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신뢰라는 것은 대화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대화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10쪽)

 

그렇다. 자주 만나야 한다. 만나서 서로의 이야기를 해야 하고, 서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쌓일 수 있다. 신뢰가 쌓이면 복잡한 문제도 단순하게 풀 수 있다.

 

남북 역시 마찬가지다. 북미 역시 마찬가지고. 하지만 북한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집단이 있다. 이들에게 평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협상이 잘 되다가도 파탄이 나고 만다. 방해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를 북한을 쉬운 알리바이로 이용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그런 경우가 많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겠지. 상황도 달라졌고, 이번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남북 대화를 하며, 북한도 북미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 평화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남북 관계의 개선과 북미 관계의 개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데...

 

이 책은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하나하나 사실에 기반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보수가 어떠해야 하는지, 보수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수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철저하게 안보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사람들, 이제는 평화 패러다임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이를 한사코 거부하는 사람들. 그들이 우리의 평화를, 우리의 행복을 얼마나 방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절호의 기회다. 전쟁의 위협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평화가 일상이 될 수 있는.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북한을 바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우리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그때서야 대화를 할 수 있다.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다름에서 같음을 찾을 수가 있다. 점점 함께 하는 부분을 넓혀갈 수 있다. 이것이 통일로 가는 길이다.

 

이 책, 정치인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국회에서 회의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 그 시간에 이런 책을 읽고 정치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이나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상대를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말미에 문익환 목사의 일화가 나온다.

 

문익환 목사가 생전에 재판을 받을 때 검사가 '친북'을 문제 삼자 "통일을 하려면 북한과 친해야 한다. 이남 사람들은 친북이 되고, 이북 사람들은 친남이 되어야 통일이 된다"고 반박한 적이 있습니다. (288쪽)

 

이 문장 다음에 '바로 그런 자세가 통일을 만들어 가는 자세가 아닐까요.'라는 저자의 말이 나온다. 이젠 남북이 상호 비방보다는 상호 칭찬하는 그런 관계를 지녔으면 좋겠다. 좋은 점을 보고 그것을 살리도록 서로 격려하는 것, 통일로 가는 한 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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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8-05-17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간히 북한에 대한 책을 읽고는 있었습니다만, 모르던 저자였습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꾸벅)
김연철의 <70년의 대화>을 읽을까 하던 참이었는데, 이 책과 엮어 읽어야 겠네요.

종종 다큐 등 미디어를 통해 엿볼 수 있는 북한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90년대에 멈춰놓고 판단하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몇 몇 언론사와 정부가 조장을 했겠죠)
통일까지야 모르겠지만, 서로 교류하고, 평화를 정착하는 일은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inye91 2018-05-17 08:38   좋아요 1 | URL
어쩌면 우리는 북한을 옛날 ‘똘이장군‘이라는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로 여기고 있었는지 몰라요.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남북이 서로 교류하면서 평화를 정착시켜야 하겠지요. 저는 김연철의 ‘70년의 대화‘란 책을 몰랐는데,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쉽지 않은 시들이다. 표정을 읽지 않고 자세만을 보려 하는 시에서 자꾸 표정을 보려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표정을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기를 쓰고 그 사람의 표정을 읽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표정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 새 그 사람이 지닌 자세를 놓치고 만 경우가 많음에도, 나무만 보다가 산을 보지 못한 경우가 많음에도 여전히 나는 나무만을 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김소연이 쓴 시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를 읽다가 떠올랐다.

 

  자꾸만 그림자를 이야기하는데, 그림자는 이데아가 빛에 의해 보여주는 허상일 따름이라는 플라톤의 말을 빌리면 그림자를 이야기하는 것은 허상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래서 본질을 이야기하는 철학자와는 달리, 현상을, 현상이 비친 그림자를 노래하는 시인들은 공화국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하는 그와는 달리, 시인은 철저하게 그림자를 추구하고 있다.

 

그림자, 빛을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 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상태 아닌가. 그렇다면 빛으로 인해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 놓쳤던 것을 그림자는 다시 생각하도록 한다.

 

플라톤과는 반대로 그림자는 우리의 삶이 지닌 다른 면을 보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역시 마찬가지다. 앞면만 보는 것이 아니다. 빛만 보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뒷면을 보여주는 사람, 그것이 바로 시인이다. 김소연은 이 시집의 뒤에 실린 '그림자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 역시 그림자와 같지 않을까. 빛의 방향과 사물의 모서리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세계에 현현해 있는 모든 현란한 것들의 표정을 지우고, 그 자세만을 담으려 한다는 점에서. 시 쓰는 일은 그림자와 마주하는 일이다. 빛은 어깨 뒤에 있고 그림자는 내 앞에 있을 때에 시쓰는 일이 가능해진다. (김소연, 그림자론, 이 시집 111쪽)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추구해야 할 것은 빛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림자를 추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빛의 모퉁이에서

 

어김없이 황혼녘이면

그림자가 나를 끌고 간다

순순히 그가 가자는 곳으로 나는 가보고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의 표정은 지워지고

자세만이 남아 있다

 

이따금 나는 무지막지한 덩치가 되고

이따금 나는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도 한다

 

그의 충고를 따르자면

너무 빛 쪽으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불빛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다산(茶山)은 국화 그림자를 완상하는 취미가 있었다지만

내 그림자는 나를 완상하는 취미가 있는 것 같다

 

커다란 건물 아래에 서 있을 때

그는 작별도 않고 사라진다

 

내가 짓는 표정에 그는 무관심하다

내가 취하고 있는 자세에 그는 관심이 있다

 

그림자 없는 생애를 살아가기 위해

지독하게 환해져야 하는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지금은 길을 걷는 중이다 순순히

그가 가자는 곳으로 나는 가보고 있다

 

김소연,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민음사. 2006년. 14-15쪽.

 

내 삶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것, 보지 않았던 것, 그것을 보라고 시는 말하고 있다. 그래, 앞만 보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빛을 내 온몸으로 받아들여 그것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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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 LGBT(Q) 알마 해시태그 2
강병철 외 지음 / 알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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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왜 사람들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할까? 그것도 사회 지도층에 있다는 사람들은 이런 증세가 더 심하다. 남 말을 듣지도 않고 또 남 생각은 잘못되었으며,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은 그릇된 행동이고 자기 행동만이 옳다는 듯이 말하고 행동한다.

 

여기에 더하면 종교인들도 그렇다. 자기 종교만 옳다. 다른 종교는 이단에 해당하거나 아니면 잘못된 믿음일 뿐이다. 그들을 개종시키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같은 종교에서도 종파에 따라서 차별이 심하게 나타나는데, 다른 종교는 말할 것도 없다.

 

관용과 사랑, 자비에 바탕을 둔 종교가 오히려 배제와 억압, 말살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사회에서 주류를 차지한다는 종교는 더 그렇다.

 

이들에게 소수는 이단일 뿐이다. 고쳐야 할, 자신들을 따르게 할 존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종교인이나 정치인 시 신이 아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에 불과하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완전하지 않기게 서로 보완해주면서 살아간다. 내 부족한 점을 다른 사람이 메워주고, 내가 넘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고, 아름다운 사회고, 행복한 사회다.

 

자기만이 옳다고, 남들도 모두 자기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횡포다. 폭력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의식하지도 못하고 저지르는 폭력.

 

이런 폭력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이다. 물론 그들은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르다는 것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 다름을 너무 드러내지 말아라고 말할 뿐이다.그말 자체가 폭력이라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아름다운 사회, 좋은 사회는 소수를 인정하는 사회다. 소수가 행복하면 다수 역시 행복하다. 사회에서 가장 밑부분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위에 있는 사람들 역시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도 성소수자는 여전히 힘들다. 그들을 이제는 대놓고 차별하지 않지만 - 아직도 인권 감수성이나 인권 의식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들, 집단들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발언을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몇몇 종교에서는 성소수자를 인정하면 소돔과 고모라가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는 현실이다 - 은연 중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 마음이 아픈 글은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배제, 차별이다. 이주원이 쓴 '고독의 반대말'이라는 글을 보면 직장에서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말하지 못하는 고립감,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사원 복지에서 배제되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직장에서 벌어지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들, 차별적 규정들이 얼마나 많은지, 여전히 이들에게 갈길이 멀다는 사실을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던가 하니, 내가 알고 있는 성소수자가 없다. 내가 둔감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여전히 내 행동, 내 말이 성소수자를 무의식 속에서 차별하고 있는 건지 생각하게 된다.

 

분명 없을 수가 없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 역시 성소수자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머리에만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가슴으로 그들에게 공감했다면 내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을 수가 없을텐데 하는 생각.

 

그것은 토론에서 가끔 주제로 선택하는 '동성애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는 질문에 이미 나타나 있다.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의 문제가 아닌데, 이것을 주제로 택하는 것 자체가 이미 차별이라는 것.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그들은 동성애자가 된다. 그러니 이들을 찬성, 반대로 나누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다. 그들 삶을 심하게 간섭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사람에게 다른 삶을 강요하는 것이다.

 

백조연이 쓴 '동성애 찬성 반대에 관하여'란 글을 보면 많이 반성하게 된다. 여전히 성소수자에 관해서 지니고 있는 편견이 많다는 것. 이 책은 그 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많은 생각이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용어, 언어를 정확하게 써야 한다. 그래서 성소수자에 관한 언어를 정리해주고 있다. 또한 과학, 의학의 발전에 기대어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 내용은 이 책에 실린 강병철의 '성소수자에 대해 의학이 알고 있는 것들'에 잘 실려 있다.

 

성소수자에 대해 말하기는 쉬운데, 행동하기는 어렵다. 나 역시 여전히 성소수자에 관해서는 머리에만 머물러 있다. 가슴까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가슴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해줬다.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공감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고 할까. 이제 눈 앞에 있는 길을 가면 된다.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것이 인권이 살아있는 나라가 되는 길이다. 인권이 살아 있는나라는 좋은 나라고, 소수도 행복한 나라다. 소수도 행복한 나라, 그 나라는 모두가 행복한 나라다.

 

적어도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이 정도 나라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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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08: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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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1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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