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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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너무도 많이 들었던, 연극으로 상연이 많이 되었다고 이야기만 들었던 작품.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했으나 결국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노동자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주인공 윌리 로먼은 세일즈로 평생을 살아오지만 그다지 큰돈을 벌지 못한다. 물론 잘 나갈 때는 좀 벌 때가 있었지만, 그것은 그가 벌어온 돈을 평균냈을 때 이야기다. 그는 평생을 직장에 다니면서 물건을 팔면서 간신히 자기 집을 마련한다. 그것도 융자로.

 

융자가 끝날 때쯤 그의 인생도 끝난다. 아들 둘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자신은 해고되고, 그러나 그는 과거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단지 노동자들이 소모품처럼 소모되는 세상에 대한 풍자라고 하는데... 우선 윌리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상이 변해가는데 과거에만 사로잡혀 있다. 사실 노동자들이 현실의 변화를 따라가기는 힘들다. 그래서 세상이 급격하게 변할 때 따라가지 못해 해고되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 희곡의 주인공 윌리도 그러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식에 대한 기대도 변하지 않는다. 자식에 대한 무한한 기대로 인해 큰아들 비프는 아버지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자식의 인생에 부모의 기대를 걸어놓음으로써 자식이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게 만든다. 우리들 대부분 부모가 하는 그런 실수를 윌리 역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그렇지만 아들들이 돈을 잘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업을 하면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고. 예전에만 사로잡혀 있는 그에게 큰아들 비프는 현실을 바로보게 한다.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음을.

 

그러나 윌리는 아들이 잘 살 거라고 믿고 아들에게 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자살을 택한다. 그가 들었던 보험료를 아들이 지니게 하기 위해서다. 그 아들이 그 돈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세일즈맨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다. 영업사원이라고 하면 된다. 자기 회사 물건을 다른 사업체 사람에게 홍보하여 사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들이 물건을 판 대가로 돈을 받고 그것으로 생활을 해나간다. 그러다 그가 물건을 팔 수 없게 될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목숨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노동할 힘이 있을 때는, 또는 영업을 할 능력이 있을 때는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보험이라는 이름으로 목숨을 팔 수도 있게 하고 있다. 대다수 노동자들이 노년을 불안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을 때까지 돈을 벌지만 죽을 때까지 집값을 값아야 하는 처지. 그렇다고 자식들이 번드르하게 출세를 하냐 하면 그것도 아닌 상태. 자식들의 앞날까지 걱정해야 하는 노년.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다.

 

이 희곡의 주인공 역시 그런 상황에 처한다. 그럼에도 둘째 아들 이름이 해피로 나오는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희곡에 나오는 해피는 윌리의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희망적인 소리를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하는 소리. 내면에는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

 

사실 우리의 현실도 그렇지 않은가. 노동자들의 자식들이 과연 미래에 대해 밝은 희망을 지닐 수 있는 사회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히려 비프가 솔직하다. 그는 자신을 알게 된다. 대장으로 여기던 아버지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고,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만다. 하여 대학 진학도 물건너 가고. 또 가는 일터마다 도둑질을 하여 쫓겨나거나 감옥에 가기도 한다. 마지막에 전에 근무하던 사장을 찾아가지만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처음에 비프가 공을 훔쳐 왔을 때 윌리의 반응이 비프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윌리는 공을 훔친 비프를 크게 야단치지 않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연습을 더 하면 된다고 한다. 거기에 유급 위기에 처한 비프에게 공부에 대해서, 적어도 유급을 하지 않아야 함을 제대로 인식시키지 않는다. 그러니 비프가 방황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윌리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아들 해피가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공허한 울림으로 들리는데, 비프는 그렇지 않다. 그는 이제 끝까지 갔다. 여기에 아버지의 죽음까지 겪었다. 그리고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게 됐다. 비록 앞으로의 삶도 힘들겠지만, 그는 이제 자기 삶을 살아갈 것이다.

 

평생을 노동에, 그리고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죽음도 가족을 위해 선택하는 세일즈맨. 그가 살아온 인생이 도덕적이고 위대하지는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산 삶임은 확실하다. 그런 사람들이 노년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은 가족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이 희곡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고 있다. 적어도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되지 않나.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요즘도 울림을 주는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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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임 없이 노동해야만 하는 노동자.

  그들을 시시포스라 할 수 있으리라.

  아주 잠깐 쉬고는 다시 일터로 가야만 하는 노동자.

  휴일은 노동을 위한 잠깐 쉼.

  그러한 휴일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대양을 향하여 뜨거운 모래밭을 지나야 하는 노동자.

  타는 듯한 모래밭을 느릿느릿 걸어가야만 하는 노동자는

  오로지 바다에 도달하기 위해 가지만

  바다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위험이 있는지.

  평생을 노동하다 결국 바다에 닿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땅의 시시포스들, 그런 노동자들.

 

  문동만 시집을 읽다.

이 시집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시를 읽고 마음이 짠해지다.

그래. 대다수 노동자들은 거북이일지도 몰라.

노동자들은 시시포스일지도 몰라. 죽지도 못하고 바위를 끊임없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지만, 노동자들은 죽어서야 그 노동을 멈추게 되지.

 

시 '거북이'를 보자.

   

거북이

 

아이는 수험장, 나는 휴게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늙수그레한 청소부가 쓰레기통을 뒤진다

 

저이가 아이가 말한 쉬지 못하는 시시포스리라

나는 잠깐 쉬는 시시포스로군

좀 팔자 좋은 거북이거나,

고독하게 쓰레기를, 쓰레기나, 치우는

똑똑한 인간들이 쓰는 거북이

깡통을 엎자 잔류물이 목장갑을 적시는데

그 손등으로 콧등을 닦는 거북이

 

지식과 고상이 버린 퀴퀴한 쓰레기를 등에 지고

끙, 하고 일어서는 거북이

어지간한 모멸로는 깨지지 않는 등짝과

뒤집어지면 돌아가지 못하는 뱃가죽을

앞뒤로 지고

 

가장 느린 발로 기어가야 할

타는 모래밭으로

가는

거북이

 

문동만, 구르는 잠, 반걸음, 2018년. 100-101쪽.

 

'지식과 고상이 버린' 것들을 치워야만 하는 노동자. 그렇게 세상을 지탱해 가는 것은 노동자들의 땀이 있기 때문인데, 이를 '모멸'하는 고상한 인간들.

 

그래서 거북이 등은 그렇게도 딱딱한 것인지도 모른다. 걷는 동안 '어지간한' 것들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너무도 부드럽다. 약하다. 그들은 한번 뒤집어지면 치명상을 입는다. '뒤집어지면 돌아가지 못하는 뱃가죽'이란 표현처럼.

 

목표를 향해 꾸준히 가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가장 느린 발로 기어가'는 삶일 수밖에 없다. 한발 한발 천천히, 그들은 간다. 가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노동자들로 인해 세상은 유지된다. 세상이 굴러간다. 결국 모모에게 시간을 되돌려주는 길을 가르쳐 준 것도 거북이이듯이.

 

가끔은 나 자신이 노동자임을 잊을 때가 있다. 겨우 '잠깐 쉬는 시시포스'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러니 잊지 말아야겠다. 나 역시 거북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남에게 보여주는 등껍질은 딱딱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은 너무도 연약할 뿐이라는 것을. 내가 갈 길을 천천히 꾸준히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시집이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 읽었다. 그리고 시집에 있는 좋은 시들, 가슴으로 파고드는 시들... 잘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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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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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넬슨 만델라의 말로 시작한다.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렇다.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동학대가 왜 문제가 되는지를 이 말만큼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아동학대로 죽어갔던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영혼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아동학대에 대해서 쓴 책이다. 제목이 이상한 정상가족이라고 해서 가족의 형태에 대해서 쓴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읽어보면 아동 인권을 주제로 삼았는데, 아동 인권이 가장 심하게 침해당하는 장소가 바로 가족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흔히 가족하면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곳, 아이들이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을 읽어보면 아동 학대의 출발점이 바로 가족이다. 그러니 이상한 정상가족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보통 아동 학대하면 정상가족이 아닌 곳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실 정상가족이라는 용어 자체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도대체 정상가족이 아닌 가족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정상가족이다 아니다는 가족의 형태로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을 나누는 기준은 가족이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느냐의 여부로 따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 '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말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아이 목숨을 부모가 끊어버리는 일, 그것은 동반자살이 아니라 살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자녀 살해 후 부모 자살'이란 표현이 적절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만 생각하는 부모가 있는 가정은 정상가족일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체벌로부터 시작한다. 우리 사회는 부모의 체벌에 대해서는 참으로 관대하다.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일은 그럴 수도 있지, 우리도 그렇게 자랐어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기하듯이 체벌과 학대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을 나눌 수 없다. 스웨덴에서 린드그렌이 한 연설에서 아이가 회초리 대신 돌을 가지고 왔다는 엄마의 말, 그 엄마는 어떤 형태의 체벌도 교육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돌을 주방에 두고 늘 살폈다는 것.

 

법적으로 부모의 체벌을 완전히 금지한 스웨덴,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체벌 금지를 택한 많은 나라들, 우리도 형식상으로는 체벌금지지만, 여전히 체벌은 일어나고 있다. 아직도 아동 인권에서는 많이 못 미치는 나라인 것이다.

 

아동인권에 중요한 요소가 바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음이 비정상가족이라는 이상한 말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미혼모, 입양아, 다문화가정, 한부모 가정 등을 비정상가족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이런 가정을 삐딱한 눈으로 보게 되면 그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사회가 집단적으로 차별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는 것.

 

그런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 사회도 아이들의 인권이 보장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 아이가 제대로 대우받아야 우리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체벌은 학교에서는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는데 - 완전히는 아니다. 여전히 학교에서 체벌은 일어나고 있고, 학교가 아닌 사교육 현장에서는 체벌은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소위 돈 내면서 맞으려 다니는 아이들이 수없이 많은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 아동학대에 왜 화장이나 염색 규제 또는 교복은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규제하는 것, 이것 자체가 이미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누구나 똑같아야 한다는 폭력 아닌가, 그런 폭력이 교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교육이라는 가면을 쓰고 행해지니, 이것 역시 아동 학대라는 생각이 든다.

 

체벌이 법적으로 교육현장에서 금지되었지만, 상벌점이라는 이름으로 화장 등 각종 규제가 아이들을 옥죄고 있는데, 이것으로 인해 아이들이 두려움을 지니고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아이들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학교 교칙이 결국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이 곧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일을 내면화하게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이 결국 폴란드 교육학자인 코르차크의 말로 대변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세상에는 많은 끔찍한 일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끔찍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아빠, 엄마, 선생님을 두려워하는 일" (217쪽)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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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2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2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2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18-07-02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넘 좋죠 올해 상반기에 읽은 책중에 최고 였습니다 ^^

kinye91 2018-07-02 19:55   좋아요 1 | URL
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어요.

2018-07-02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3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시집을 읽게 된 이유는 단 하나다. '시인의 말'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집에 묶인 시들을 反전쟁시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특별히 평화주의자라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이 시집에 묶인 많은 시들이 크고 작은,

가깝거나 먼 전쟁의 시기에 씌어졌기 때문이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한 인간이 쓰는 反전쟁에 대한

노래,

이 아이러니를 그냥 난,

우리 시대의 한 표정으로 고정시키고 싶었을 뿐'

 

시인의 말

 

인류 역사를 어떤 사람은 전쟁의 시기와 전쟁이 잠시 멈춘 평화의 시기로 나눈다. 전쟁이 대부분 역사를 차지한다는 것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책에서 우리가 위인으로 다루는 인간들 대부분은 왕(나라를 세우거나 정복전쟁을 하거나 등등)이거나 장군이거나 하지 않던가. 평화 시기에는 특기할 만한 일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긴 전쟁의 시기와 짧은 평화의 시기.

 

그러니 反전쟁시 얼마나 반가운가. 전쟁을 반대하는 시들. 도대체 어떤 시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집이다.

 

많은 시들이라고 했으니, 시집에 실린 시가 모두 전쟁을 반대하는 시는 아닐텐데...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이 꼭 난 전쟁을 반대한다고 주장을 하거나,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내용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 서로 돕는 삶, 남에게 해를 주지 않고 - 이것이야말로 너무도 어려운, 정말 평생 살아가면서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면 그것이 바로 反전쟁시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

 

제목이 되는 구절을 따온 시와 그것과는 다르게 내 마음에 훅 들어온 시.

 

우선 내 마음에 들어온 시, 그냥 읽으면서 의미보다는 무언가 모를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것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대구 저녁국'이란 시다.

 

대구 저녁국

 

  대구를 덤벙덤벙 썰어 국을 끓이는 저녁이면 움파 조곤조곤 무 숭덩숭덩

  붉은 고춧가루 마늘이 국에서 노닥거리는 저녁이면

 

  어디 먼 데 가고 싶었다

  먼 데가 어딘지 몰랐다

 

  저녁 새 벚나무 가지에 쪼그리고 앉아

  국 냄새 감나무 가지에 오그리고 앉아

 

  그 먼 데, 대구국 끓는 저녁

  마흔 살 넘은 계집아이 하나

  저녁 무렵 도닥도닥 밥한다

 

  그 흔한 영혼이라는 거 멀리도 길을 걸어 타박타박 나비도 달도 나무도 다 마다하고 걸어오는 이 저녁이 대구국 끓는 저녁인 셈인데 

 

  어디 또 먼 데 가고 싶었다

  먼 데가 어딘지 몰랐다

 

  저녁 새 없는 벚나무 가지에 눈님 들고

  국 냄새 가신 감나무 가지에 어둠님 자물고

 

허수경,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문학과지성사. 2005년. 26-27쪽.

 

시를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 고향에서 입에 익은 밥을 먹는 시간과 고향을 떠나 다른 세계에서 사는 시간.

 

두 시간 모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지만, 과거의 공간은 충만한 공간이다. 새도 있고, 냄새도 머문다. 여기에는 평화와 사랑이 깃들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우리네 삶이 이랬는데... 어느 순간, 그 고향을 떠나 사는 삶은 빈 공간이다. 무언가가 머물지 못한다. 새도 없고, 냄새도 없는 그런 상태.

 

굳이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몸과 음식이 일치되는 삶을 살던 때, 그때가 바로 평화의 시기가 아닐까. 그런 시기는 짧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모른 채 떠나왔다.

 

다시 먼 데로 가고 싶어하지만, 그 먼 데로 과연 갈 수 있을까. 텅 비어버린 곳에서 어디론가 떠나기는 힘들다. 이 시를 읽으며 마음이 애틋해지는데...

 

반면, 다음 시는 섬뜩히다. 그야말로 反전쟁시라는 생각이 든다. 청동의 시간, 무언가 딱딱한 금속성의 시간, 석기시대를 거쳐 청동기 시대가 되면 인간의 폭력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곧이어 철기가 되겠지만.

 

이런 청동의 시간은 폭력의 시간, 전쟁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시대는 이런 전쟁의 시간을 살고 있는 때 아닌가. 아이들이, 땅이라는 어머니에게서 잘 자라야 하는 그 아이들이 제 때를 기다리며 익어가는 감자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아이들은 청동의 시간을 살고 있다.

 

  물 좀 가져다주어요

 

  아이들 자라는 시간은 청동으로 된 시간

  차가운 시간 속 뜨겁게 자라는 군인들

 

  아이들이 앉아 있는 땅속에서 감자는

  아직 감자의 시간을 사네

 

  다행이군요.

  땅속에서 땅사과가 아직도 열리는 것은

  아이들이 쪼그리고 앉아 땀을 역청처럼 흘리네

 

  물 좀 가져다주어요

  물은 별보다 멀리 있으므로

  별보다 먼 곳에 도달해서

  물을 마시기에는

  아이들의 다리는 아직 작아요

 

  언젠가 군인이 될 아이들은 스무 해 정도만 살 수 있는 고대인이지요. 옥수수를 심을 걸 그랬어요 그랬더라면 아이들이 그 잎 아래로 절 숨길 수 있을 것을 아이들을 잡아먹느라 매일매일 부지런 한 태양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을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는

  저 푸른 마스크를 한 이는 누구의 어머니인가,

  저 어머니들의 얼굴에 찍혀 있는 청동의 총,

  저 아이를 끌고 가는 피곤한 얼굴의 사람들은

 

  아이들의 어머니인가

  원숭이 고기를 끓여 아이에게 주는 푸른 마스크의

  어머니에게 제발 아이들의 안부 좀 전해주어요

  아이들이 자라는 그 청동의 시간도, 그 뜨거운 군인이 될 시간도

 

허수경,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문학과지성사. 2005년. 42-43쪽.

 

이 시에서 '언젠가 군인이 될 아이들은 스무 해 정도만 살 수 있는 고대인이지요.' 이 구절에서 가슴이 탁 막혔다. 스무 살까지만 살 수 있는 고대인... 그렇다. 아이들은 80년이 넘는 세월을 자라야 하는데, 20년에서 멈춘다.

 

군인이 되는, 전쟁터에 나가 죽어야 하는, 이들은 고대인들처럼 수명이 짧다. 이들에게 제대로 자라 다른 열매를 맺을 시간이 없다. 그냥 죽어갈 뿐.

 

그러니 어찌 反전쟁시가 아니겠는가. 어느 어머니가 자식들이 전쟁터에서 일찍 죽기를 바라겠는가. 그런 자식을 둔 어머니들, '얼굴에 찍혀 있는 청동의 총' 자국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단지 얼굴만이겠는가. 그들 가슴 속에는 시퍼런 총알이 박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시를 읽으며 전쟁의 참혹함을 어찌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다. 전쟁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 군인도 많지만 민간인도 많다. 민간인 중에서 어린이들, 참으로 많다. 또 이들을 데려가 소년병으로 만드는 집단들도 많으니.

 

우리 인간 역사에서 이런 전쟁의 시간을 없애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그럴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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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30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30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편애2


하얗디 하얀

너무도 하얘

차마 건드릴 수 없는

자그만 손길이 닿아도

얼룩이 생겨

제 온몸을 툭․ 끊어버리는

목련.

한 없이 하얀

저 꽃을 바라보며

처절히 떨어지는 훗날에

가슴 졸이고,

마음 아파하고.


사랑이야……

그 마음이,

그냥 바라보며

마음 졸임이,

가슴 시려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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