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유리 동물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8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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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와 "유리 동물원"이라는 희곡이 묶여 있는 책이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끝까지 버티는 고양이가 이기지 않을까.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재산을 두고 벌이는 일... 그렇게만 판단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이 희곡이 연극으로 상연되어 수많은 관객을 불러온 것은 단지 자식들 간의 재산싸움 때문은 아닐 것이다.

 

주인공들은 단순하다. 아버지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물려받으려는 큰아들 구퍼와 아내 메이, 그리고 브릭을 사랑하지만 아이가 없는 마거리트, 이들의 아버지, 어머니.

 

묘하게 큰아들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로 살아가는 그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애정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술에 의존해 살고 있는 둘째 아들 브릭에게 모든 것을 건다. 브릭은 유망한 운동선수였다가 부상으로 지금은 술에 의존해 있다.

 

이런 브릭은 아내인 마거리트와 몇 년간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 아마도 친구의 죽음 때문인 것으로 나오는데, 그렇다고 브릭이 동성애자는 아니다. 아마도 친구가 동성애를 고백했을 것이고, 브릭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충격으로 친구가 죽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는 있는데...

 

아내인 마거리트는 이런 브릭을 사랑한다. 처음에는 마거리트가 약자의 처지에 있었는데, 이제는 마거리트가 브릭을 돌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희곡은 끝난다.

 

고양이라고,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올라간 고양이라고 마거리트를 이야기하는데,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마거리트의 몸부림이 처절하게 다가온다.

 

단지 재산 때문이 아니라 생활능력을 잃은 남편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아버지 재산을 포기할 수없는 마거리트, 그녀는 그렇게 그르렁거릴 수밖에 없다.

 

나중에 임신했다는 거짓말로 아버지를 안심시키고, 재산을 받게 되지만, 이 거짓을 현실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의 심리가 잘 드러난 희곡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 희곡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뒤에 실린 "유리 동물원"은 유리처럼 작고 연약한 로라를 등장시키고 있다. 회상조로 작품이 전개되는데... 유리 동물들을 통해서 로라의 연약함을 볼 수 있다.

 

언제든 부서지기 쉬운 유리 동물들, 그러나 자신의 빛을 간직하고 있는 유리 동물.. 로라는 다리를 저는 장애로 인해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등장인물인 짐의 말대로 열등감으로 자신을 유폐시키는 생활을 하는데...

 

짐은 그런 로라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한다. 그러나 짐과 로라는 맺어질 수가 없다. 짐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짐과 함께 춤을 추다가 유리 동물인 유니콘을 깨뜨리게 되고, 로라는 그 깨진 유리 동물을 짐에게 선물로 준다.

 

유리 동물처럼 살아가게 되는 로라. 그런 순수함을 톰의 시선을 보여주는데...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로라, 그를 밖으로 내보내려는 어머니, 뚜렷한 결말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렇게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해준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을 때는 유리 동물들처럼 작고 연약할 수밖에 없음을.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자그마한 충격에도 깨질 수 있음을.

 

그래서 유리 동물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함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내 안에 작은 유리 동물들과만 지낼 것이 아니라 밖에 있는 수많은 동물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해주는 희곡이다.

 

그렇게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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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기념재단에 있던 영상을 보는데, 그 영상 속에서 김준태 시인이 나왔다.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시로 발표한 사람이 바로 김준태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 모두가 침묵할 때 분연히 일어나 비록 많은 부분 검열로 삭제가 되었지만 신문에 발표한 시, 시인.

 

그것은 절절하게 광주민주화운동을 노래한 시였다. 그렇게 김준태 시인은 광주민주화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시인이 되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참여를 했다고도 할 수 있고.

 

김준태 시인을 알게 된 건, 젊은시절 읽었던 시 '참깨를 털면서'이고, 짤막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시 '감꽃'도 잘 읽었다. 그렇게 김준태 시인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는데...

 

다시 김준태 시인의 시집을 읽는다. '밭'을 소재로 한 시다. 시집 제목도 '밭시'다. 그렇다고 밭이 계속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밭은 곧 땅이고, 땅은 모든 생명을 보듬고 살아가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끝간 데 없는 사랑을 지닌, 모든 것을 주는, 자신의 몸이 헤쳐지더라도, 더럽혀지더라도 다른 생명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밭. 그런 밭은 우리가 밭으로 알고 있는 사전에 있는 그런 의미를 넘어 더 넓고 깊은 의미로 향한다.

 

밭은 사람도 될 수 있고, 나무도 될 수 있고, 하늘도, 별도, 달도, 그리고 동물도, 세상 모든 것이 바로 밭이 될 수 있다.

 

각자의 존재는 각자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인 것은 남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이 사람인 것은 다른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밭은 특정한 밭이 아니라 모든 것이 바로 밭이다.

 

우리는 밭과 함께, 밭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때로는 이 밭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낸다. 마치, 눈 앞에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살듯이.

 

밭과 통하는 것이 바로 길이다. 밭은 생명의 길인데, 그런 생명의 길을 줄여서 그냥 길이라고 해도 된다. 이런 길, 모든 것이 다 길이 된다. 시를 보자.

 

 

 

어디로

가야 길이 보일까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 어디에서 출렁이고 있을까

 

더러는 사람 속에서 길을 잃었고

더러는 사람 속에서 길을 찾다가

 

사람들이 저마다 달고 다니는 몸이

이윽고 길임을 알고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기쁨이여

 

오 그렇구나 그렇구나

도시 변두리 밭고랑 그 끝에서

눈물 맺혀 반짝이는 눈동자여

 

흙과 서로의 몸속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바로 길이었다.

 

김준태, 밭시, 문학들. 2014년. 11쪽. 

 

길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이 길을 찾아 가면 된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길임을 깨닫는 즐거움, 그만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는가.

 

오죽하면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있겠는가. 나하고 가장 거리가 먼, 내가 싫어하는 사람조차도 나에게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이 낱말이 가르키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집을 읽으니, 김준태 시인의 시 한편한편이 모두 길이 된다. 밭이 된다. 나를 키워주는 밭이 되고, 내가 갈 길을 펼쳐주고 있다.

 

세상 모든 존재가 밭이 될 수 있음을, 길이 될 수 있음을, 시를 통해서 김준태 시인은 잘 보여주고 있다. 시를 읽으며 마치 오솔길을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느낌, 주변에 있는 자연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 시는 밭이다. 밭은 길이다. 길은 시다. 그러므로 밭은 시다. 시집 제목이 그래서 '밭시'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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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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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이다. 연극으로 보거나 영화로 보아도 좋을 작품을 책으로 읽는다. 보는 것과 읽는 것의 차이.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 읽히려고 쓴 희곡을 '레제 희곡, 레제 드라마'라고 했다고 하는데... 많이 들어본 제목의 이 희곡을 이제서야 읽는다.

 

영화나 연극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희곡을 읽으니, 우선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제한되지 않는다. 연극, 영화를 미리 보았더라면 그 역할을 연기한 배우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을텐데, 읽으면서 인물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희곡의 내용은 처음에 나오는 말로 압축이 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12쪽)'라고 했다는 말.

 

뉴올리언스 주에 진짜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있다고 하니, 실제와 허구를 적절하게 혼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이 도착한 곳은 극락이 아니다. 정신병원이다. 결국 과거에 매달린 영혼이 구제받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거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유폐되는 것으로 결말을 맺은 것이다.

 

남부 귀족 집안, 그것은 철저히 과거에 불과하다. 그런 과거에 잡혀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블랑시가 그렇다. 블랑시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첫번째 남편이었던 동성애 소년. 그의 자살, 그 다음 난잡한 성생활, 학교에서 추방, 동생네 와서도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고,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생활.

 

하지만 동생인 스텔라는 다르다. 스텔라는 과거와 결별했다. 그녀가 함께 사는 스탠리는 철저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는 욕망이라는 전차에 다른 욕망을 다 빼버리고 오직 자신의 남성성만을 내세운다. 이런 스탠리를 스텔라는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철저하게 현실에 자신을 적응시키려는 모습이다.

 

스텔라의 남편인 스탠리는 빈민가 남성답게 그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놀이에 집중하며 과거나 미래는 안중에 없다. 오로지 그는 현재만이 중요하다. 아내 사랑에도 이런 가리지 않은 육체적 사랑이 드러난다. 이런 그에게 처형이라고 등장한 과거에 집착하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려 하지 않는 블랑시는 귀찮은 존재다.

 

그와 블랑시의 대결.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과거는 현재를 넘어설 수 없고, 환상은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 블랑시가 스탠리에게 유린당하는 것은 이제 그런 과거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블랑시를 유린한 뒤 더 정신적으로 혼란한 상황에 있는 블랑시를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으로 희곡은 끝나는데.. 여기서 동생인 스텔라는 남편이 언니를 겁탈한 것을 알면서도 육체적 욕망으로 돌아간다. 남편에게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언니인 블랑시는 육체적 관계를 통해 과거를 잊고자 했지만, 더 과거에 얽매이게 되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그래서 육체적 관계에서도 진실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신만의 진실성. 남들은 거짓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마음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자위.

 

(미치:거짓말, 거짓말, 겉과 속이 모두 거짓말투성이예요.

블랑시 : 속으로는 절대 안 했어요. 마음속으로는 거짓말한 적 없어요. 134쪽)

 

하지만 스텔라는 그런 남편을 받아들인다. 언니와는 다른 방향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육체적 욕망에 충실한 남편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살아가는 길을 택한다. 그렇게 그들은 아이를 낳고, 이 아이는 이제 그들 미래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스텔라와 핏줄이었던 블랑시는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녀에게 아이는 없다. 또한 현재적 사랑도 없다. 육체를 내던지는(이런 표현이 어울린다) 행위밖에는 하지 않는다. 그런 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속이게 된다. 자신은 순수한 사랑을 갈망한다고... 그러나 그것은 비극으로 치닫는 행위일 뿐이다.

 

욕망이라는 전차에 몸을 실어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는 것에 불과하다. 더 이상 도착지는 없다. 그냥 묘지일 뿐이다. 정신병원이란 묘지와 다름 없지 않은가.

 

이런 블랑시가 구원받을 길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블랑시도 극락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과거와 결별하는 길은 현재에 자신을 맡기는 일인데, 자신을 맡길 수 있는 그런 존재를 만나야만 하는 것이다.

 

블랑시라는 여인을 통해 과거에 집착하면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욕망의 파멸을 보게 되고, 스탠리를 보면서 이런 비도덕성이 육체적 현존으로 나타나면서 현재를 살아가게 하고도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스탠리가 옹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블랑시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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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13: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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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14: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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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22: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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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3 0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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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핏 보면 다른 존재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같은 존재인 것들이 있다. 겉모습이 다를 뿐 본질은 같은 것.

 

  사람들 역시 그렇지 않은가. 겉모습이 다 다르지만 사람이라는 보편성에서는 공통점이 있고,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거울효과... 사람들은 바로 자신이다. 다른 자신. 딱부러지게 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신을 누구라고,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정의하기 힘든 나라는 존재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존재할 수 있다.

 

겉모습이 다를지라도. 최명란 시집을 읽다가 '불가분의 관계'란 시를 보면서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를 생각했다. 시에 나오는 나무와 종이처럼 사람들과 나도 그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을까.

 

아무리 인간은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존재라고 해도, 홀로 오기 전에 이미 다른 존재들의 관계를 통해서 오게 되었고, 홀로 갈 때도 역시 홀로가 아니라 누군가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다.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죽음에 이르더라도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불가분의 관계

 

마른나무 박스에 딱 붙은 종이를 떼어낸다

찢기고 뜯겨도 마음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이미 몸을 포갠 둘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하 - 나무와 종이는 애초 한 몸이었지

마른나무에 달라붙은 종이의 마지막은

같은 결의 한 몸을 만나는 일이었지

종이는 나무가 살아 있을 때를 기억한다

둘 사이에 바다로 가는 산물이 지난다

그 사이 물든 산 빛과 깊은 산의 숨소리가 들린다

저녁 창으로 함께 바라보았던 가을빛 노을이 흐르고

성장을 온몸으로 기록한 역사가 보인다

나무의 일생이 보인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떼어놓을 수 없는

떨어질 수 없는,

 

최명란, 이별의 메뉴. 현대시학. 2016년 초판. 49쪽.

 

이렇게 종이와 나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마지막에 이르러 서로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렇게... 다른 존재로 지내왔지만, 마지막에는 같은 존재로 함께 하게 된다.

 

우리 사람들, 서로 다른 존재지만, 우리는 하나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서로를 비추는 존재로, 서로를 지탱해주는 존재로,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종이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듯이 사람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으니, 어찌 다른 사람들을 소홀히 할 수 있으랴.

 

나만큼 소중한 존재들, 내 존재의 이유가 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그렇게 사람들을 다시 내 안으로 불러오게 된다.

 

사람들이 바로 나임을, 그들이 나고, 내가 그들이 되어야 함을, 우리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이 시를 통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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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평양
성석제 외 지음 / 엉터리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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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평양!"이라고 인사를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가? 남북 정상들이 자주 만나고... 벌써 두 번, 이번에 또 만날 예정이니 한 해에 세 번 만나는 것. 여기에 남북연락사무소까지 생기니...

 

"안녕! 평양, 안녕, 서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평양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마치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는 무진이라는 마을처럼. 짙은 안개에 쌓여 잘 보이지 않는다.

 

평양에 관한 소식들, 모습들은 여전히 안개에 갇힌 듯 흐릿하게 전해 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양을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이라는 나라를 연전히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수많은 제재를 하기 때문에 북한 역시 개방이 덜 되어 있는 때문이기도 하리라.

 

이제 서서히 안개는 걷히리라. 해가 떠오르면 안개는 사라지게 마련이니. 이렇게 남북 정상들이 자주 만나고, 또 다른 교류들이 이루어진다면 평양이 좀더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이 소설집 역시 마찬가지다. 평양을 가리고 있는 안개를 걷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안녕, 평양'이라고...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쓴 소설 여섯 편을 모았다. 각자 다른 작가들이 다른 관점에서 남북간의 관계, 아니 남한과 북한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나라를 구성하는 것이 사람이라면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읽는 것은 둘 사이를 가리고 있는 장막들을 걷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월남한 작가 중에 이호철이 있었다. 그가 쓴 소설 "남녘 사람 북녁 사람"이란 소설에서도 이념보다는 사람을 먼저 했었는데... 이 소설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 이야기를 한다. 그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분단을 어떻게 겪고 있는지, 통일을 위해서 어떻게 한 발 나아가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공선옥이 쓴 소설 '세상에 그런 곳은'은 여전히 힘든 현실을 이야기한다. 남한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해고노동자와 북한에서 왔지만 여전히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탈북자를 등장시킨다. 둘이 만나기도 하지만 소통은 하지 못한다. 그렇다. 이것이 남한과 북한의 현실이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 민중의 현실이다. 이들은 여전히 힘든 삶을 살고 있다.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이들을 유대하게 만든다. 비록 둘이 다른 곳에 서서 시위를 했을지라도 이들은 만나야만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이게 북한과 남한이 가야 할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다.

 

김태용이 쓴 '옥미의 여름'은 가상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남한 기자가 북한 과학자를 취재한다. 취재할 수 있다는 것. 어느 정도 제한은 있지만 이렇게라도 소통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은둔한 모습을 보이는 북한 천재 과학자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모습, 그런 공통점으로 인해 이념보다는, 체제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성적제가 쓴 '매달리다'는 북한 사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북한 기관원들은 잠깐 등장한다. 북방한계선을 넘어가 고초를 겪게 되는 어부들 이야기. 조작된 어부 간첩단 사건... 그러나 그 사람들이 겪게 될 비극, 가족이 당해야 했던 아픔, 당사자가 끝내 그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는 비극적인 모습을 통해서 통일이 얼마나 필요한지, 분단이 보통사람들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다가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용준 '나이트 버스'는 명확하지 않다. 남북관계에 대해서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통해서 지금 남북관계는 피곤에 절은 버스 승객들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비록 남북이 힘들지만 오늘만은 관광에 집중하자고 말한 윤 선생 말처럼,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지만 남북이 직면한 현실에서부터 시작하자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이트 버스, 나이스'라고.

 

이승민이 쓴 '연분희 애정사'는 서로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이 인물들을 남북으로 치환하면 될 듯하다. 우리는 같은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으니 말이다. 둘이 만나지 않는 것은 이 다른 관점이 지속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둘은 만나야 한다. 비록 함께 하다가 탈북을 해서 떨어져 있지만, 이들은 만나서 공통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아니 우리가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사실에서 관계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증오만을 남길 뿐이다.

 

마지막 소설은 '샌프란시스코 사우나'다. 평양 여경찰을 사랑했던 사람의 이야기. 그러나 함께 할 수는 없었던. 그렇다. 이렇게 남북한은 아직은 함께 하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미친 빨갱이'라는 말은 이제 하지 않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싫어하는 존재에게 '미친 빨갱이'라고 욕을 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낙인찍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그 낙인을 던져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남북 사이에 깔려 있는 안개가 걷힐 수 있다.

 

안개를 걷고 만나야 한다. 그런 노력들을 해야 한다. 이 소설집 또한 안개를 걷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념이나 체제를 다루지 않고 사람을 다룸으로써.

 

앞으로는 이 소설집에서 한발 더 나아간 소설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우리에게 안개가 걷힌 평양을 보여주는 소설들... 그래서 담담하게 "안녕! 평양!"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소설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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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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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1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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