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해설을 읽어도 과연 그런가 하는 시집이다. 도대체 뭔 소리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 시집.

 

  내용을 이해하기 힘드니 감동을 받기는 더 힘들다. 반어니, 역설이니 이런 해설을 읽으면서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을 하지만, 반어는 우선 상황을 공유해야만 존재하는 것.

 

  상황을 공유하지 못하면 반어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것이 반어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반어임을 알기 위해서는 시인의 표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반어임을 알고 아하, 하는 감탄을 내보낼 수가 있지. 역설 또한 마찬가지다.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상한 소리라고만 생각하고 만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반어니 역설이니 하는 것들이 들어오지 않은 것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를 잘못 만난 탓도 있지만, 그래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시를 쓰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그냥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파고드는 시가 있었는데, 그것은 '내 똥구멍 속 송아지'라는 시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시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버지의 삶에 자신에게 쏟아부은 송아지들, 이는 아마 대학이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불린데서 기인할 것이다.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소를 팔았다고 하니... 그러니 시의 화자 똥구멍 속에는 얼마나 많은 송아지들이 들어 있을 것인가.

 

그 송아지들은 부모의 사랑에 다름 아니다. 부모 사랑이 자식 몸 속에 깊이 깊이 들어와 있는 것. 그러나 자식은 그 사랑을 다 소화시켜내지 못한다. 그래서 똥구멍 속 송아지 아니던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은 시인데...

 

이 시집에서 단 한 편의 시를 고르라고 하면 '수구적인 목재 집에 대한 단상'이라는 시를 고르겠다. 그만큼 이 시는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마음에 와닿기도 한다.

 

  수구적인 목재 집에 대한 단상

 

서른 해 가까이 장씨 일가를 품고 있는 목재 집이

나무 벌레 구멍에 빠져 좀처럼 헤어나질 못한다

같은 해 뿌리를 내린 뒷마당 밤나무보다

자꾸만 작아지던 목재 집은 이젠

처마 끝에 쥐고 있던 동태 꾸러미까지

고양이에게 낚아 채이는 허리 굽은 몸이 되었다

문틈에 깊게 고인 겨울 바람에 빠져본 사람들은

저마다 손이 미치는 곳만 골라

집 좀 바꾸라는 불평을 잠깐씩 박아보지만

가슴을 뒤덮던 푸른 나뭇잎 다 떨구어

산밭 일구듯 늘린 나이테

목재 집 기둥에 가득 채운 아버지에겐

열릴 때마다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 대는

부엌문도

아랫목만 까맣도록 편애의 손길을 주는

외골수 구들장도

지켜야 할 전통일 뿐 결코 수구가 아니다

나는 아예 나무 벌레 하나라도 넘겨 볼 허점이 없는

보일러의 온기가 이 방 저 방을 편견 없이 넘나들

새 집을 지으려 하지만 목재 집은

온갖 벌레들을 불러들여 나의 설계를 방해하며

마음 한쪽에서 좀처럼 터를 내주지 않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 한군데 반듯하게

햇살에게 손을 내밀 창틀 하나 없는 목재 집이

뒷마당 밤나무만큼 땅 속 깊이 자라

대문 밖 내 풍경들의 배후에까지

도도히 뿌리를 뻗고 있다

 

장무령, 선사시대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다. 세계사. 2005년. 초판 2쇄. 57-58쪽

 

삶의 역사가 있는 집이다. 함부로 없애버릴 수구가 아니다. 이는 전통이다. 삶의 뿌리를 뻗고 있는 집. 그런 집은 불편하긴 하지만 자신들 삶이 녹아있기에 함부로 부술 수가 없다.

 

전통은 그렇게 가볍게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수구적인'이라는 말을 썼나 보다.

 

과거를 지켜야만 하는,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적인 것이 아니라, 삶이 녹아 있는 집을 함부로 없애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수구적인 것이다. '수구' 얼마나 변하기 힘든 단어인가. 그래서 시인은 전통이라는 말보다 수구라는 말을 써서 우리에게 목재 집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내 삶터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 비록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목재 집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 삶이 켜켜히 쌓여 있음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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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줘, 제발 주니어김영사 청소년문학 1
엘리자베트 죌러 지음, 임정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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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토록 끔직한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니... 어른들은 전혀 모르거나 또는 모른 채 하거나, 교사들은 알려고 하지 않거나 가리거나 그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니.

 

독일이 배경일텐데, 교육에 관해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앞서가는 그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아니 더 끔찍한 학교 폭력이 일어나다니...

 

다르다는 이유로, 별로 힘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받는 경우는 학교 교육이라는 제도가 생긴 이래로 계속 있어 왔다.

 

공동체 문화가 발전했던 예전에도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괴롭히는 존재는 어디에나 있었다. 다만 그것이 상대방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이고 강도가 점점 세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빵셔틀이라는 말이 공연히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을 주고 빵을 사오라고 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정도. 흔히 군대식 농담이라고 하는 100원주고 1000원짜리 빵을 사오고, 거스름돈 500원을 받아오라는 빵셔틀도 있었다고 하니.

 

학교라는 공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지금도 간간이 학생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또 폭력으로 숨졌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여전히 학교 폭력은 없어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건재하고, 해마다 소위 학폭이라고 하는 학교폭력대책위원회 회의가 열려 많은 학생들이 징계를 받고 있다. 문제는 이 학폭으로 인해 학교 교육이 망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잘못한 학생을 처벌해야 하는데, 가해 학생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난다. 또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건다. 학교는 뒤숭숭해진다. 그동안 피해 학생은 어떤 보호 조치를 받기 힘들다. 왜 판정도 나지 않았는데 그러느냐고 또 시비를 걸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 학생은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이런 상황에서 가해 학생들은 다시 버젓이 학교에 나오게 된다. 피해 학생이 함께 있는 학교에.

 

이때 피해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일. 학교에 기대할 것이 없고, 부모에게도 다른 어른들에게도 기대할 것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두 극단밖에 없다.

 

하나는 자살로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 또다른 하나는 가해 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

 

자살이나 살인이 다른 원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학교 폭력 희생자가 해결할 길이 없을 때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가 너무도 잘 나와 있다.

 

자신의 무력감, 두려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 이런 상태에서 우선 도피를 하지만 가해 학생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피해 학생이 가는 곳마다 있기 때문이다.

 

가장 안전하다는 집으로 도피해 컴퓨터 게임에 빠져든다. 게임에서는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 학생들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아무리 보복을 해도 그들은 다시 되살아난다. 현실에서 괴롭힘이 없어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상대에게 맞고, 게임에서 상대를 죽이게 되는 일이 반복이 되지만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고 점점 커져만 간다. 가해 정도도 점점 심해진다. 불법까지 저지르게 한다. 안 하면 가혹한 처벌이 따른다.

 

결국 자살을 생각하지만 왜 나만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괴롭힌 존재도 같이 데려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면 그때는 살인을 계획하게 된다. 계획에서 실행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 현실에서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피해자는 극단으로 가게 된다. 더이상의 선택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학교 폭력이 극한으로 치달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이 극단까지 가게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관심, 전폭적인 이해. 말은 쉽다. 하지만 서로 살기 힘든 상황에서 별다른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이 일은 참으로 힘들다. 힘들지만 해야만 할 일인데...

 

가해 학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유가 있다. 그들 역시 피해자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치유를 해야 한다. 이들의 행동을 알게 되었다면 문제를 개인에게 또 가정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사회가 함께 치유에 참여해야 한다. 사회 분위기가 포용적인 분위기여야 하고, 폭력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분위기여야 한다. 여기에 피해자나 가해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 하면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가해자와 피해자, 동전의 양면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해서, 피해자가 상처를 치유받고 존엄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가해자에 대한 치유 역시 함께 진행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힘든 일일지라도.

 

또한 학교 폭력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학교 폭력은 사회 전체의 문제다. 사회가 껴안고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말이다. 그런 점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책임을 특정한 개인에게만 물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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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결딴낸 우리말
권오운 지음 / 문학수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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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다. 읽으면서 내내... 도대체 이 시에서 어떤 말이 잘못 쓰였단 말이지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읽고 또 읽어도 내가 알고 있는 어휘 목록에서 잘못된 것을 찾아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렇게 시에서 잘못된 어휘들을 잘 찾아내다니... 이렇게 잘못 쓰인 언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시를 감상하기보다는 먼저 마음의 문이 닫히고, 벽이 쌓여 시를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말이 잘못 쓰이고 있는 현실을 너무도 안타까워 한다. 책을 읽다보면 이상하게 저자의 목소리와 이오덕 선생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리는 듯하다.

 

제발 우리말을 제대로 쓰라고, 잘 쓰라고.

 

그런데 어떻게 해야 우리말을 잘 쓰지, 제대로 쓸 수 있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좋은 글을 많이 읽으라는 것으로 대체해야 하는데...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적확한 언어로 쓰인 글인가? 아니면 언어의 적확성을 떠나 마음을 울리는 글인가? 이런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사전을 통째로 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여기에 저자는 사전도 비판을 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바른 우리말, 고운 우리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저자처럼 어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믿을 만하다는 작가들이 쓴 글에서도 잘못 쓰인 어휘들이 수두룩하니 우리말을 잘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학교 다니면서 국어 시간이 가장 많았고, 중요하다고 강조도 했는데, 국어 시간에 배운 어휘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국어 시간에 표준어로 수업을 한다고 하는데,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쓰는 표준어가 얼마나 될까? 극도로 적은 양의 어휘들만 배우고 사용하고 학교를 마치지 않았는지.

 

일상에서 쓰는 말이 어휘의 보고라는 말이 있는데, 일상에서 쓰는 말 중에 잘못 쓰고 있는 말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 말을 시에 쓰고 있는 시인들이 저자의 비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여러모로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고 잘 써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겠는데, 우리말을 어떤 식으로 배우고 익히고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고 있다. 저자의 책만 읽으면 되나?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건 저자도 바라는 일은 아닐 것이고.

 

결국 다양한 글을 읽고 다양하게 쓰인 어휘들을 비교해보는 경험을 해야 할텐데, 갈수록 쉬운 어휘만 쓰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만을 앍고, 짧고 명확한 문장만을 다루고 있는 교과서로 배운 사람들에게는 이도 힘든 일이다.

 

어휘에 대한 생각을 늘 하고 있어야만 잘못 쓰인 어휘를 찾아낼 수 있고 고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기엔 청소년들은 입시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여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고, 어른들은 먹고 살 걱정에 어휘에 대한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이래저래 우리나라 말들이 결딴나고 있는 현실인데, 작가들이, 언어로 먹고 산다는 사람들이 우리말을 살려내는, 더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한숨만 나오고 말았으니...

 

그렇다고 저자가 한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잘못 쓰인 어휘도 시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시인들이 의도적으로 낱말을 만들거나 틀리게 쓰기도 하고.

 

하여 시에서 하나하나 낱말에만 매달릴 수는 없지만, 저자의 주장을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는 시인들은 언어에 대해 아주 인색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깐깐하기 때문이다.

 

자기 감정에 맞는 언어를 고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는가. 그래서 저자는 시인들에 대해서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는지도 모른다. 시인들마저 너무도 엉뚱한 실수를 저지른다면 우리말은 결딴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을 써서 경종을 울리는지도 모른다. 우리보도 좀 생각을 하라고. 우리가 쓰는 말에 관심을 가지라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우리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알고 있는 우리말 실력이 너무도 형편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끄러움은 성찰을 이끌어내고, 성찰은 발전으로 가게 해준다고 그나마 위안을 할 수밖에.

 

가령 이런 말 '승부욕' 정말 많이 쓰는 말 아닌가. 승부욕이 강하다. 승부욕이 없다. 이렇게 잘 쓰고 있는 이 말이 잘못된 말이라니... '승부(勝負)'라는 말이 '이기고 짐'이라고 하니 여기에 바란다는 '욕(慾)'자를 쓰면 이기고 짐을 바라는 마음이라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강하다, 없다라는 말과 함께 할 수가 없다. 조심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굳어져 있는 말인데, 이 말을 어떻게 고쳐 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하는 글들이 꽤 있었는데, 우리말이 결딴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좀더 관심을 가지고 글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들에게 발을 거는 행위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런 지적들을 통해 우리말이 제대로 쓰이도록 해야 한다는 저자의 열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우리말이 결딴나지 않게 하는 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덧글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하나. 언어에 대해서 그리도 명확하게 주장하는 저자가 '고희'에 대한 설명에서는 내가 납득할 수가 없다.

 

고희(古稀), 나는 지금까지 일흔 살로 알고 있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온 말이라고... 만 70이 아닌 걸로 알고 있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일흔 살로 나오고.

 

237쪽. 고희(古稀)" '고래(古來)로 드문 나이'라는 뜻으로 일흔한 살을 이르는 말.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에 나오는 말  이라고 나온다. 어째 좀... 오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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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승부욕(勝負慾)이란 말이 과연 잘못된 말일까?
    from 마음―몸―시공간 Mind―Body―Spacetime 2018-11-19 13:30 
    가령 이런 말 '승부욕' 정말 많이 쓰는 말 아닌가. 승부욕이 강하다. 승부욕이 없다. 이렇게 잘 쓰고 있는 이 말이 잘못된 말이라니... '승부(勝負)'라는 말이 '이기고 짐'이라고 하니 여기에 바란다는 '욕(慾)'자를 쓰면 이기고 짐을 바라는 마음이라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강하다, 없다라는 말과 함께 할 수가 없다. 조심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굳어져 있는 말인데, 이 말을 어떻게 고쳐 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 k
 
 
2018-11-19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9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9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9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었던 시간

 


 

이제는 멈춘

 

능내역에서

 

한 잔의 막걸리를 마시다

 

문득 왜 능내지

 

능 안이라니, 이런,

 

하며 양수역까지 걸어가

 

전철을 타고 오는 길

 

서빙고

 

얼음역에 도달하기 전

 

차가 얼어붙었다

 

사고가 났다고

 

60년을 살았던 시간이 얼며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얼려

 

전철 안에서

 

기다리던 시간

 

남은 시간을 다른 사람

 

시간으로 가려 하는가

 

얼음역에서 능 안으로 가려 하는가

 

내 시간을 능 안에서부터 얼리려 하지 말라고

 

누군가가

 

대신 자신의 시간을 얼려버렸던가

 

꽁꽁 언

 

이제는 녹일 수 없는 시간을

 

경험하라고

 

우리들 시간도 잠시 얼려두었던가

 

언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그 시간을 잘 녹여 쓰라고

 

그렇게 온몸으로 알려주려 했던가.

 

능내에서 서빙고역으로 오던 길

 

순간 멈췄던 시간

 

순간 얼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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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균형 우리문고 10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이경옥 옮김 / 우리교육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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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삶의 균형이 어느 순간 기우뚱 기울어진다면? 견디기 힘들어진다. 삶을 지탱하는 요소들이 많지만, 청소년기 때는 친구들이다.

 

친구들이 삶의 균형을 잡아준다. 오죽하면 청소년기 때는 고민을 털어놓을 대상이 가족보다는 친구라고 하겠는가. 그만큼 친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중요한 친구 관계가 어그러지면 그때부터는 지옥이 시작된다. 꿈을 키우는 학교는 죽음을 생각하는 학교가 되고, 끼를 발산하는 학교는 자신을 드러내면 안 되는 학교로 바뀌게 된다. 처절하게 삶이 불균형 상태에 빠지게 된다.

 

딱히 어떤 이유를 발견하는 것도 아니다. 이유가 명확하지도 않다. 그냥 어느 순간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냥 무시당하는 정도를 넘어서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없는 존재가 아니라, 괴롭힘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것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참 찾기 힘들다. 많은 청소년들은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이 소설에서 '마스무라 미즈에'가 택한 길이다. 미즈에는 투신을 한다. 그러나 죽지 않는다. 투신을 하면서 미즈에는 후회를 했다고 한다. 그 순간, 자신의 삶을 그렇게 내몬 자신에 대해. 그래서 미즈에는 다른 삶을 살기도 한다. 당당하게.

 

이런 미즈에를 보면서 주인공은 '나'도 용기를 낸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렇게 자기 삶에서 균형을 찾아가려고 한다.

 

여기에 한 사람이 등장한다. '사라'라고 하는 어른. 이 어른으로 인해 나는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다. 비록 사라가 어떤 고민에 빠져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사라를 만나면서 즐거움과 편안함을 느끼고 서서히 자신의 삶에서 균형을 찾아간다.

 

그러나, 사라 역시 삶에서 균형을 잃고 있기는 마찬가지. 어른이라고 완벽하게 삶의 균형을 유지하겠는가. 자신 역시 제 삶의 균형을 찾으려 몸부림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이런 불균형은 일탈 행동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만나게 되는 일탈행위들을 그냥 도덕적인 잣대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그 행동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소설에서는 그 점을 보여준다. 사라나 나나 결국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읽어내야 한다. 자신들이 일탈행위를 하는데, 그 일탈행위가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삶의 균형은 자신이 찾아야 한다. 그렇게 찾기까지 지켜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소설에서는 초록아줌마라는 신비한 존재가 나오는데, 그런 존재를 생각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초록아줌마가 아니더라도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불균형에 처해 있던 삶이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균형을 찾아가야 하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온전히 나를 받아들여주는 존재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경쾌한 문체로, 짧은 문장들로 쓰여 있어 읽기에 편하다.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문체로 이끌어간다고나 할까. 덕분에 청소년들이 읽기 편하다. 읽으면서 자신의 삶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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