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너 오스트롬, 공유의 비극을 넘어 컴북스 이론총서
강은숙.김종석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유가 비극이라니... 누구에게나 속하기 때문에 누구나 막 사용해서, 결국 누구나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공유재의 비극.

 

공유재의 비극은 우리들 삶을 힘들게 한다. 공유재는 우리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유재를 사적으로 (시장 원리) 쓰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공유재이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공유재를 관리하는 것도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국가권력이 관리한다고 하지만 이 관리에는 너무도 많은 단계와 비용, 그리고 관리하는 사람에 대한 또다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유재의 비극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 누구도 쓸 수 있기에 누구나 써서는 안 되는 그런 공유재를 다함께, 또 오래도록 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는 노력을 한 사람이 엘리너 오스트롬이라고 한다. 공유재에 대한 연구, 단순한 강단 연구가 아니라 현실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노력한 사람.

 

이 책은 오스트롬이 쓴 "공유재의 비극을 넘어서"을 읽기 쉽게 해설해 놓은 책이다. 요약본이라고 해도 좋은데, 우리나라 학자 두 사람이 오스트롬의 책과 논의를 정리해주고 있다.

 

오스트롬의 논지를 요약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까지 생각하게 하는 책인데... 작지만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유재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는 새만금, 강정 마을, 4대강을 들 수 있겠다. 이 공유재를 국가 주도로 개발해 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던가.

 

이런 공유재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려 할 때, 또는 공유재를 국가가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추진해 나갈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말고도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공유재 개발을 추진할 때 무슨 문제가 생기는지를 이들 문제가 잘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문제가 심해지고 있는 미세먼지 역시 공유재 문제로 생각할 수 있다. 공기는 인간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인데, 이를 오염시키는 문제에 대해서 공유재의 비극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오스트롬이 쓴 책 "공유재의 비극을 넘어서"을 읽기 위해 이 책을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 감기


꽃 몸살을 앓으면

온 마음에 꽃비가 내리고


세상 모든 것이

새롭게 출발하는 이 때


연둣빛 새싹이

푸르른 여름을 향해 가듯


한 때 겪은 몸살이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꽃비는

축복이리라.


새로운 나를 알리는

세상의 외침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일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일.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사는 일이 간단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살아보면 누군가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를 주게 된다. 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피해를 주고 피해를 입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사람만이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 삶이란 이 피해들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피해ㅡ상처, 그 다음에 그 상처를 어루만지거나 대체할 수 있는 삶들. 그런 삶을 살아가려 노력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내 목숨이 남 목숨으로 유지되는 현실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김종철의 "못에 관한 명상"을 읽었다. 시집이 "못"으로 모두 전개되고 있다. 그래 못, 내가 박은 못, 내게 박힌 못.

 

못은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남과 나를 꼭 붙들어매는 역할도 한다. 내가 받은 상처와 남이 받은 상처가 못으로 묶여 하나가 되는데...

 

이 시집에 있는 시들 중에 '사는 법-못에 관한 명상·6'을 소개한다.

 

사는 법

  - 못에 관한 명상·6

 

마흔다섯 아침 불현듯 보이는 게 있어 보니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못들이 박혀 있었다

깜짝 놀라 손을 펴 보니

아직도 시퍼런 못 하나 남아 있었다

아, 내 사는 법이 못 박는 일뿐이었다니!

 

김종철, 못에 관한 명상, 문학수첩.  2001년 재판 1쇄.  20쪽.

 

이렇게 평생을 못을 박고, 못에 박히며 산다. 상처 없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못으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겠지만, 그 못으로 인해 하나가 될 수도 있으니.

 

삶은 이렇게 상처들을 통해 하나로 엮이는 그런 과정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상처가, 남에게 주는 피해가 그 사람을 더 힘들게 해서는 안 되니, 여기에는 자기 행위에 대한 성찰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못을 박을 일이 없는데도 못을 박으면 그것은 상대에게 피해만 주는 행위이고, 못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데에 박힐 때 서로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니...

 

상처 없이, 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삶이 불가능하다면, 꼭 있어야 할 곳에만 있어야 하는 못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을 고통으로만 이끄는 못이 아니라, 남과 내가 하나가 되게 연결해주는 못이 되는 삶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자 풍경 - 글자에 아로새긴 스물일곱 가지 세상
유지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에 담긴 풍경이 아니라 글자 풍경이다. 글자가 풍경이 된다. 타이포그라피라고 할 수 있는데, 컴퓨터를 쓰는 우리는 폰트라는 말을 많이 쓴다. 폰트라고 하면 더 쉽게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글자라도 형태가 다른데, 그 이유는 그 지방의 풍토, 생활습관 등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로마자의 형태만 살펴보아도 많은 글자체들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이 글자체들이 나라마다 다른 모습을 보임도 알 수 있다.

 

로마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컴퓨터에 있는 한글 폰트만 해도 꽤나 많다. 그리고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글자체도 많이 달라져 왔다.

 

같은 소설이라도 1970-80년대에 출판된 책들의 활자체와 지금 출판되는 활자체는 확연히 다르다. 지금 활자체에 익숙해져 있으면 예전에 나온 책들을 읽을 때 쉽게 눈의 피로를 느낀다. 글자들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한마디로 가독성이 떨어진다.

 

현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출판사마다 자기들이 내는 책에 활자체를 달리한다. 어떤 출판사 책의 활자는 오래 읽어도 눈이 피로하지 않고 또 글자들도 눈에 잘 들어오는 반면에, 어떤 출판사 책은 나무들을 솎아주지 않은 숲에 들어온 느낌을 주는 것처럼 너무도 글자들이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어서 눈이 쉽게 피곤해진다.

 

이렇듯 글자들의 형태는 우리에게 중요하다. 문자가 인간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면, 그 문자들이 더 잘 읽히고 의미 파악이 잘 되도록 하는 노력이 있었음도 분명하다. 그것들이 글자체로 나타났을테고.

 

우리가 흔히 쓰는 한글 글자체는 명조체라고 한다. 명조체가 궁체에서 나왔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명조체라는 이름에 대한 논란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명조체의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은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1916-1988)다. 최정호는 궁체 중 정체의 필법을 바탕으로 명조체를 설계했다. 즉 한글 글씨체인 궁체를 인쇄용 활자체인 명조체로 연결한 것이다. (166쪽)

 

한글을 창제한 사람은 세종대왕으로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한글에 대한 글자체를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최정호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한 것이고, 궁체들이 궁중 궁녀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글씨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명조체로 연결이 된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한글 창제과정과 발전과정에 더하여 한글이 어떤 글꼴로 발달해가는지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인식되었던 글꼴도 시대가 흐르면서 불편한 글꼴이 됨을, 글꼴도 생명체와 같이 수명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명조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서구식 근대 인쇄가 일본을 거쳐 유입되면서 당시 일본 가나 문장에 쓰인 본문 기본형 활자체의 일본식 이름이 그대로 흡수된 것 같다. '명조'는 '명나라 왕조'라는 뜻이다. 중국이 한자 글자체 중에는 '명조체'말고도 '송조체'와 '청조체' 등 시대로 구분한 이름이 있다. (168쪽)

 

'명조체'라는 이름은 여러모로 한글 명조체의 특성과 맞지 않아서, 1992년에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명조체를 순우리말 '바탕'으로 개칭하기도 했다. '바탕'을 이루는 기본형 글자라는 뜻이다. 고딕체는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는 의미에서 '돋움'이라고 했다. '바탕'과 '돋움'이라는 이름은 '명조'와 '고딕'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은 채 지금은 나란히 쓰이고 있다. (169쪽)

 

이렇게 우리 글꼴에 대한 이야기도 알려주고 있어서 우리 글꼴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특히 도로에 쓰여 있는 글자들과 또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간판 글자들... 이것들이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쓰이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쓰였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독일차 번호판에 있는 글자체가 위조방지와 가독성을 높이는 글자체라고 하는데, 그만큼 실생활에서도, 또 인공지능이 대세가 되는 시대에서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로 글자체 개발을 들고 있다.

 

글자체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또 지식들을 알게 해주는 책이라서, 그동안 별다른 생각없이 넘어갔던 수많은 폰트들, 또 폰트를 만든 사람, 만드는 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한글에 대하여 또 다른 언어에 대하여 지식의 확장을 이뤄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 보물창고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벌 받을 부모들!'

 

이 말이 이 소설을 말해주고 있다. '핵전쟁에 대해 나는 책임이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있을까. 내가 폭탄을 떨어뜨린 것도, 내가 폭탄을 만든 것도 아니니까, 난 책임이 없어라고 말하는 어른이 있다면, 그 어른이야 말로 핵전쟁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왜? 행동해야 할 때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핵폭발이 일어나고 어떤 도시는 완전히 가루가 되고, 어떤 도시는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지만 방사능에 의해 또 다른 유행성 질병에 의해 사람들이 죽어간다.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기만 살아남으려 한다. 자기 것에 집착하고 남을 멀리하게 된다. 먹을 것을 약탈하고 살인도 저지르며, 도덕과 법은 핵폭발과 함께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 사라질까?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도 사람다움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그렇다. 그는 사람들에게 물을 날라주고 한 사람이라도 더 도와주려 한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알고 있던 사람들, 가족들이 하나둘 죽어나간다.

 

도대체 누구에게 책임이 있단 말인가? 이런 핵폭발이 일어나도록 방치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소설은 이것을 추적하지 않는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살아온 어른들 모두의 책임이다.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만큼 소설은 핵폭발이 일어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대대수의 사람들은 핵폭발로, 그 다음에는 질병으로, 또 그 다음에는 굶주림으로 죽어갈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방사능으로 인해 후대까지 고통을 물려주게 될 것이다.

 

인류를 파멸로 이끌 핵이,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고 핵개발을 추진하는 사람들에에 책임을 면해 주지 않는다. 단 한번의 폭발로도 인류에게 심대한 위험을 불러일으키는 핵폭발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전문가의 책임을 망각한 행위인 것이다.

 

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윤리'에 의하면 최악의 사태를 생각해서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때는 기술 개발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 적어도 핵개발에 관해서는 이 책임의 윤리를 적용해야 한다.

 

외가집으로 가던 도중에 핵폭발을 목격하고, 도시에 도착해서도 온갖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핵폭발의 위험을 온몸으로 겪는 롤란트를 주인공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핵폭발 이후에 인간들이 어떤 일을 겪을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몇 년 뒤 어느 정도 안정(사실은 불안한 안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아버지와 롤란트. 이때 롤란트가 이렇게 말하면서 소설을 끝맺는다.

 

   아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읽고, 쓰고,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너희들은 빼앗거나, 도둑질하거나, 죽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들은 다시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도움을 줄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 당장 치고 박고 싸우기보다는,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함께 어울려 찾아 내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너희들의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야 한다. 비록 그 세상이 오래가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쉐벤보른에 남은 최후의 아이들이니까. (226-227쪽)

 

이 핵폭발이 꼭 핵전쟁만 의미할까? 아니다. 우리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통해 이미 핵전쟁만이 아니라 핵발전 또한 얼마나 위험한지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런 위험을 만들어낸 어른들, 그들은 아이가 벽에 써놓았던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낸 것들,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이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천벌 받을 부모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