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을 읽을 때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 참 잘 안 변한다는 것이다. 파멸을 향해 가고 있는데, 자신의 파멸에는 민감하면서도 모두가 파멸하는 것에는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지금의 우리들 아닌가 한다.

 

  기후변화가 얼마나 우리들 삶에 중요한지, 이제는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음에도, 미래 세대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음에도 기후변화를 시급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 당장 불편할 뿐이라는 생각을 하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위 잘나간다고 하는 분들이 이런 문제에는 침묵한다. 세상에 별 중요하지 않은 자소서 내용을 가지고는 벌떼처럼 몰려들어 물어뜯고 있으면서도 지구 전체의 위기를 초래하는 문제들에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식인이란다. 그래서 녹색평론을 읽으면 이런 현세태에 대해서 한숨만 나온다. 어찌해볼 수 없는 한숨, 그렇지만 언론이 철저히 침묵할 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녹색평론에게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아직도 이런 생각,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이 세상이 지탱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책읽기다.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 또 우리에게는 '오래된 미래'가 있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 아프게 다가왔던 부분이 천규석과의 대담에서 나온 말이다.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집권하면 농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그 부분. 우리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농업인데, 이에 대해서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소농 중심이 아닌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입안하는 그들의 모습에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

 

경자유전의 헌법적 가치를 스스로 깨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으니. (고성진, 누더기가 된 농지법)

 

여기에 농촌에서 쓰이는 비닐을 생각하면 농업이 생명을 살리는 길인데, 기업농 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소농에서도 비닐이 없어서는 안될 재료로 쓰이니 농업에서도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특히 최용탁의 글을 보면 농촌에서 자본이 개입하게 하는 가장 큰 요소로 비닐을 꼽았으니... 이런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비닐에 대한 추억은 아버지를 비롯한 이웃 농민들에게 소위 '돈 되는 농사'를 시작하게 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새마을운동이 아니라, 플라스틱 농법이 농민들에게 욕망의 씨앗을 뿌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  최용탁, 플라스틱 홍수 속에서, 97쪽

 

이런 상황에서 농업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는 정부라니? 이거 앞날이 캄캄하다. 촛불로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지나쳤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지경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천규석은 말한다.

 

죄든 우든 타협하고, 어떤 정권도 농민의 요구는 안 들어주지만, 소농을 지키고 농업을 지키는 것이 우리 세대가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해야 될 최선의 길입니다. 실패해도 지켜야 할 너무나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에, 정권 내놓을 각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문 대통령이 농민기본소득을 실현하고 남북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정책을 밀다가 '종북'으로 몰려 탄핵당해서 정권 유지 못 한다면, 그건 역사에 남을 영광이지 불행은 아니라고 봅니다. (천규석/이상길, '소농두레 공동체'의 길에서, 141쪽)

 

천규석의 이 말이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글들 외에 지구를 살릴 수 있는 길로 '대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엘렌 브라운, 대마라는 풀, 지구를 구하는 가장 값싼 방법) 대마를 대마초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에 새로운 시각을 전해주고 있다.

 

이런 농업 문제, 기후 문제와 더불어 이번 호는 한일 관계를 다루고 있다. 아베 정권이 출현한 이후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많이 심각하다.

 

그런 갈등을 일으킨 아베라는 인물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해준 글들이 있고, 우리가 근본적인 대응을 해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치와 삶이 따로 갈 수 없음을 아베나 트럼프라는 인물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되는데,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우리에게 적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추구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 대안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한다. 그 점을 생각하게 해주는 녹색평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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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6 0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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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6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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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6 13: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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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6 14: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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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말은 없지만 시가 쉽지는 않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는 시집이다.

 

  시집에 등장하는 존재들은 이 세상에서 탄압받고 있는 존재, 사라져 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름로 자연에, 또 다른 존재에 대해 가한 폭력이 이 시집에 너무도 잘 나와 있다.

 

  가령 40쪽에 있는 '바보들'이라는 시를 보면 인간에 의해 멸종된 동물들이 나열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모피 반대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도.

 

  이렇게 이 시집에 등장하는 존재들은 힘이 없다. 힘이 없어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뿔을 빼앗긴 코뿔소들, 인간이 빨리 가기 위해 만들어내는 철도, 고속도로로 인해 살 곳을 잃어가는 동물들.

 

'도롱뇽 소송'이라는 시를 보면 절대로 도롱뇽은 소송에서 이길 수가 없다. 왜냐 힘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현 시대를 이 시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시들로 보아 이 시집을 생태시집이라고 해도 좋겠다.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 모두가 공생하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시들.

 

세상 모든 존재들이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그 종 자체가 멸종이 되지는 않도록 해야 하는데... 개체들의 생명과 달리 종으로서의 생명들은 유지되도록 해야 하는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까지 만들어내어 뭇생명들을 지구상에서 몰아내고 있는 것이, 개체의 생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예 종의 말살을 이뤄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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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디카詩 한국문학 명저총서
이상옥 지음 / 국학자료원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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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디카시'로 검색해 본다. 과연 디카시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는가를 살피는 방법이다. 하나의 장르로 디카시가 자리잡았다면 검색했을 때 많은 책들이 있어야 한다.

 

'디카시'라고 치고 검색을 하니 제법 많은 시집들이 디카시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다. 이젠 디카시는 시의 하위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디카시라는 장르가 자리를 잡게 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 바로 이상옥이다.

 

처음으로 디카시라는 말을 썼고, 또 디카시에 관한 잡지들을 냈으며, 지방이나 서울에서 디카시 축제를 열기도 한 사람이니, 그의 작품을 시발로 해서 많은 디카시들이 창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디카시는 사진과 시가 화학적 작용을 해서 하나로 융합한 장르다. 시 따로 사진 따로 놀거나, 시나 사진 중 어느 하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 시와 사진이 합쳐져 다른 존재로, 즉 디카시라는 존재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디카시는 새로운 존재가 된다. 이 책에서는 디카시에 대한 많은 논의를 모아놓았다. 이상옥 시인이 그동안 디카시에 들인 노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글들이다.

 

그 중 하나, 디카시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디카시는 시인의 상상력이 아닌, 자연이나 사물의 상상력, 즉 신의 상상력으로 시적 형상이 구축되어진, 아직 문자언어의 옷을 입지 않은 '날시(raw poem)'를 디지털카메라로 찍어서 그 형상을 문자로 재현할 때 완성되는 것이다. (52쪽)

 

자연이나 사물이 말을 걸어오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걸어온 말을 시로 표현하는 것, 이것이 바로 디카시다. 그러니 사진이 먼저 있고, 시가 나중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자연이나 사물에서 느끼는 감정을 사진과 시로 표현하는 것이다.

 

문자에 갇힌 시가 아니라 문자를 넘어선 시, 그것이 바로 디카시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이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자리잡은 지금 시대에는 디카시는 우리 삶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대상이 있다면 언제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 말에 대해서 문자로 표현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면 되니 말이다. 이것이 디카시가 지닌 장점이다. 그러니 디카시의 문자 표현은 짧다.

 

물론 길수도 있지만 짧게 표현했을 때 더 효과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즉 사물이 내게 걸어오는 말의 울림을 짧을수록 더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카시의 운율은 시조의 운율을 닮아간다고 한다.

 

시조는 짧은 길이 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는데 (평시조가 3장 6구 45자 내외라고 하니, 짧다.) 디카시 역시 한 컷의 사진과 문자 표현 속에 많은 것을 담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디카시와 친해지면 주변을 잘 살피게 된다. 주변의 모든 것이 디카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디카시를 쓰는 사람은 자연이나 사물과 사람의 매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디카시가 정립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시가 너무 난해해지는 이때 우리 삶 속으로 시를 데려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디카시를 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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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3 09: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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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3 1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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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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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로 마음 먹는다. 마음은 먹지만 밖으로 나가기는 쉽지 않다. 자꾸 망설여진다. 걷기에 적당한 장소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 마음은 늘 걷고 싶지만 실제 몸은 집 안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또 걷기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힘들다. 계속 걸어야 할까 망설이기도 하고, 도대체 왜 걷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때 멈추면 걷기는 중단되고 만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걷기의 인문학이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처음 부분은 우리가 걷기를 시작하는 것만큼 편하지가 않다. 솔닛 자신이 걷는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내용이 명확히 들어오지 않는다. 아직 걷기 초반인 것이다.

 

참고 계속 읽기 시작한다. 읽기와 걷기는 이래서 비슷하다. 시작하기도 힘들지만, 시작하고도 처음은 더 힘들다. 이때를 이겨내지 못하면 도중에 멈추고 만다. 이 책은 읽어가면서 재미가 붙는다. 마치 걸으면서 점점 주변이 눈에 들어오고 재미가 있는 것처럼.

 

2부와 3부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걸을 때 어느 지점부터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이 책도 2부와 3부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원에 머무르는, 있는 사람들만의 걷기에서 정원 밖으로 나가는 걷기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유명한 시인인 워즈워스 남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이 걸은 거리가 만만치 않음도 놀랍지만, 당시 걷기는 정원 내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기에, 정원 밖으로 걷는 것을 당연하게 만든 이들의 걷기는 놀라운 걸음이라고 한다. 특히 동생인 도로시의 경우 여자들에게 주어지는 제약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더 놀랍고.

 

정원 밖으로 나온 걷기는 이제 산으로 향한다. 등산 문학이 등장하고 보행을 위한 모임과 통행을 위한 투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3부로 가면 근대의 걷기가 나온다. 도시를 걷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 도시에서 이제는 걷기가 정치적 행위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행진, 시위... 우리는 이 걷기를 너무도 많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함께 모여 걷는 행위. 그것을 많이도 한 시민들이 바로 우리나라 시민들 아닌가. 그냥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삼보일배를 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극한의 걷기를 통해서 자신들의 의사를 강하게 표현하는 행위. 사회를 바꾸는 노력의 한 방편으로 걷기를 택하기도 했으니.

 

여기에 엄청난 거리를 걸은 사람들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토순례라고 하여 우리나라 남단에서 휴전선까지 걸은 사람들이 있으니... 걷기는 여러 이유로 실행이 되고 또 사람들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렇게 걷기는 개인의 행위에서 사회적 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걷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차, 자동차, 비행기의 등장으로 우리는 걷기보다는 이런 기계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빠르게 이동해주는 수단들이 나오면서 걷는 행위가 줄어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걷는 행위가 실내에서 실외로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헬스장이나 집안에 자전거나 러닝머신을 이용해 걷기를 대신하던 모습에서 도심에도 걷는 공간을 마련해서 걷는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

 

대도시, 환락의 도시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가 이 책의 대미인 4부를 장식하는 것도 이 점을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로만 접근이 가능할 것 같은 이 환락의 도시가 너무도 많은 자동차들로 인해 도로가 주차장이 되니 도심 한복판에 걸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 그래서 걷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지금 새롭게 조성한다고 논란이 되고 있지만 광화문 광장이 조성되어 그나마 사람들이 걷는 장소가 조금 생기지 않았던가. 또 차없는 거리를 시행하는 도로들도 있어서 점차 사람들을 걷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각 지방자치단체들마다 걷는길을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걷게 하고 있지 않은가. 제주도 올레길을 필두로 하여 술마다 치유의 숲길이 만들어지고, 가장 붐비는 서울에도 둘레길과 성곽길을 만들어 걷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듯 걷기는 사라질 것 같았지만, 사람들이 직립보행을 한 이후로 걷기는 사라질 수 없음을, 또 두 발로 걷는 장소를 마련함으로써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게 해 사회적 동물임을 인식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리베카 솔닛은 이 책 [걷기의 인문학]을 통해 걷기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처음에는 조금 헤매면서 읽게 되지만 점차 읽기에 속도가 붙고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걷기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자연 속 걷기도 좋지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장소에서 걷는 행위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함을 생각한다. 직장인들이 출퇴근하거나 학생들이 등하교할 때 또 약속 장소레에 갈 때, 과연 걸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는지, 여가를 내서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생활에서 걸을 수 있게 생활을 재편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걷기의 인문학은 단지 걷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삶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삶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걷기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잘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결국 이 책은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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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2 15: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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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2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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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혁명 - 약과 병원에 의존하던 건강 주권을 회복하라
조한경 지음 / 에디터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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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장 쉬운 문제인지도 모른다. 우리 건강에 관한 것은... 그냥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아니, 여기에 한 가지 더 스트레스 덜 받으면 된다. 가능하면 아예 안 받으면 좋지만, 그것은 불가능할 것 같고.

 

너무도 단순하고 자명한 일인데, 건강을 지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너무 쉽기 때문에 너무 어렵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너무 쉽기 때문에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시험 볼 때를 생각해 보자. 문제가 너무 쉬우면 이건 아닐 것 같은데 갸우뚱 하면서 맞는 답에 의혹을 갖고 다시 풀거나 다른 답을 고를 때가 많지 않았는가.

 

여기에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이 한 마디 더하면 그냥 넘어간다. 전문가에다가 주변에서 모두들 이것이 옳다고, 그것도 언론에서 그렇다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쪽에 가담한다. 병도 그렇다. 병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다. 우리가 건강을 유지한다면 굳이 병원에 갈 이유가 없다.

 

그런데 병원에 가도 건강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병원에서 병을 치료하는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병원에 가겠는가? 그래도 간다. 왜냐하면 병에 대해서 자신은 모르고 의사가 잘 알고, 알아서 치료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신화들이 합쳐진 결과라고 하는데... 현대의학을 지배하는 것은 제약회사라는 이 책의 주장은 그럴 것이다라는 심증에 물증을 더해주고 있다. 제약회사들이 자신들의 약을 팔기 위해 어떻게 로비를 하는지, 그 약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완화할 뿐이라는 것.

 

이것의 최종판이 바로 백신이다. 마치 백신 접종을 안 하면 인류에게 감염병을 전파시키는 인류의 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바로 제약회사의 로비를 받은 언론과 정치집단들이다. 이들만이면 그래도 그들이야 뭐, 본래 그런 집단이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의사협회라든지, 세계보건기구 같은 경우도 제약회사들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하니, 참으로 참담하다.

 

자신의 건강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버린 꼴이다. 내 몸을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게끔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 그것도 많은 돈을 써버리면서 지내는 그런 상태가 바로 현대의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인 조한경은 아주 단순하다고 말한다. 우리 건강을 지키는 길은.

그것은 풍부한 영양 섭취, 즉 가공식품을 멀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온갖 제초체로 길러진 채소를 먹는 것이 아니라 유기농 식품들을 먹어야 하고, 탄산음료와 같은 것들은 멀리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생협이나 한살림 등 유기농 식품을 찾는 사람들이 유별난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 병원에 가지 않고 자연치유를 하려는 사람을 뭘 모르는 사람, 용감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기보다는 자신의 생활습관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 병을 근원적으로 고치는 것이라고 한다.

 

영양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우리 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우리 몸을 어느 한 부분으로 조각내 증상만을 치료해서는 절대로 건강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 몸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어느 한 부분에 병이 들었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자신의 몸을 돌아볼 기회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부의 침입보다는 내부 환경을 중시하는 관점이다.

 

또한 잘 자야 한다. 잠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잠은 건강에 필수요소다. 잘 잔 잠은 보약보다도 좋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청소년들이 제대로 잠을 못 자고 학업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은 이들의 몸을 우리가 혹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지금 청소년들의 몸이 어떻게 무너져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 지금처럼 청소년들이 잠을 잘 못자고 성장한다면 그들 몸에 다양한 이상 증세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내버려두는 것, 우리 어른들의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말 안 해도 건강에 필수인 요소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던가. 엄청난 스트레는 몸의 균형을 깨뜨린다. 그러므로 충분한 수면, 명상, 복식 호흡 등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이것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길이다.

 

이런 이야기에 이어 현대에 많이 발병하는 병들을 지금 의료계에서는 어떻게 치료하고 있고, 그것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것들을 우리 생활습관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건강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증상을 들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그렇게 설명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읽은 것에 책임을 지라는 것.

 

지금까지 건강하지 못했다면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독자 여러분들의 책임이다. (342쪽)

 

당연하다. 내 몸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예전에 한의사였던 김홍경이 쓴 책도 제목이 [내 몸은 내가 고친다]였다. 이렇듯 당연한 일을 의사에게 맡겨버리고 나 몰라라 했으니, 이 책을 읽은 다음 건강은 내 책임이다.

 

옆에 두고 찬찬히 읽으며 내 생활습관을 들여다보아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한 책이다. 우리 모두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내가 내 몸에 책임을 지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함을 깨닫게 한 책이기도 하다. 적어도 의료산업에 완전히 내 몸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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