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문학상 수상 기념으로 펴낸 시집이라고 한다. 시집의 뒤에 심사평이나 수상 소감이 실려 있다.

 

  어떤 시들은 예전에 나온 [절간 이야기]라는 시집에도 실려 있으니, 정지용 문학상을 한 시집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발표한 시들을 통해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스님 시인이라고 하지만 그냥 시인이라고 하면 된다. 시인에 무슨 종교가 있겠는가. 시인 자신이 구도자일테니, 굳이 스님 시인, 목사 시인, 신부 시인 등으로 부를 필요가 없다. 시인이라는 말 한 마디면 된다.

 

  스님은 2018년에 열반에 드셨다고 한다. 이 시집에 이런 시가 있다.

 

    적멸을 위하여

 

삶의 즐거움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조오현, 아득한 성자, 시학. 2007년. 71쪽.

 

삶이란 죽음과 하나일테고, 우주 차원에서 보면 우리 인간은 한 마리 벌레에 불과한 것. 그럼에도 자신들이 가장 잘난 줄 알고 다른 존재들을 무시하고, 없애기만 하고 있으니...

 

뭇생명들로 인해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인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다른 생명이 살아가도록 하는데 쓰지 않고 있으니, 이 시는 더 아프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렇게 돌고 도는,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니던가.

 

속세를 초월한 스님이라지만, 속세를 떠난 것은 아니다. 십우도를 보라. 결국 다시 저잣거리로 돌아오지 않던가. 그러니 스님은, 아니 시인은 세속을 벗어날 수가 없다. 세속에서 해탈을 꿈꾸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이 시를 보라. 오래 전에 쓰인 시지만, 오늘 우리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시인은 '숨 돌리기 위하여'라는 시에서 '이제는 정치판도 / 갈아엎어야 / 숨 돌리기 위하여' (23쪽)라 하고 있지 않은가.

 

국회의원, 김지하 오적에 나오는 그런 한자를 쓰는 국회의원(워낙 특이한 한자로 표기는 포기.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유신 때 국회의원이나 지금 국회의원이나...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별 차이가 없으니, 원... 국회의원 부분을 보자

 

국회의원 나온다. /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 가래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양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들고 대갈일성, / 쪽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 개조(改造)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잡농(雜農)으로! / 건설이닷, 모든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 사회정화(社會淨化)닷, 정인숙(鄭仁淑)을, 정인숙(鄭仁淑)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랏! / 궐기하랏, 궐기하랏! /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 쪽제비야, 사꾸라야, 유령(幽靈)들아, 표도둑질 성전(聖戰)에로 총궐기하랏!  / 손자(孫子)에도 병불(兵不) 후사, 치자즉 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 공약(公約卽空約)이니  / 우매(遇昧)국민 그리알고 저리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 골프 좀 쳐야겄다. 김지하, 오적, 동광출판사. 1985년. (24-25쪽)
)이 아니라 진정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선거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그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갈아엎어야 하는데, 그 판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이 이야기하는 '오늘'은 그래서 더 암담하다.

 

오늘

 

잉어도 피라미도 다 살았던 봇도랑

 

맑은 물 흘러들지 않고 더러운 물만 흘러들어

 

기세를 잡은 미꾸라지놈들

 

용트림할 만한 오늘

 

조오현, 아득한 성자, 시학. 2007년. 21쪽

 

탁한 물... 이전투구(泥田鬪狗).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 모습 아니던가. 공정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자기 이익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고 하는, 좋은 말 속에 숨겨놓은 의도들.

 

시인의 시를 읽으며 오늘을 떠올린다. 더러운 물을 막고, 맑은 물이 흘러들게 해야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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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박무영.김경미.조혜란 지음 / 돌베개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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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가 쓴 '꽃'이라는 시, 이름이 붙는 순간 존재하게 되는, 아니 존재하고 있지만 내게 의미가 없던 존재가 이름을 갖는 순간 내게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온다는 것.

 

아마도 여성들의 삶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이름 없이, 아무개의 딸로, 아무개의 아내로, 아무개의 어머니로 살다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시대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여성들은 이 책에서 말한 대로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남녀 평등, 아니 성적 지향성을 불문하고 평등할까? 그렇지 않다. 아직도 성적 지향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남녀라는 성 구분에 따라서도 받는 불이익들이 많다. 그렇게 세상은 많이 변해왔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다.

 

어떤 부분이 변하지 않았는지, 그 사회 속에 푹 빠져 사는 사람에게는 인식되지 않는다. 적어도 한 발 비껴서 있는 사람에게 변하지 않은 부분, 변해야 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 발 비껴서서 사회를 바라볼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책이 하는 역할이다. 사람들의 생각, 삶,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사회 속에 파묻히지 않고,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을 얻게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여성들을 불러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지금 우리 사회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한다.

 

유교가 지배하던, 그래서 여성은 남성의 종속물로 취급되던 그 시대에 자신의 주장을 떳떳하게, 당당하게 펼치던 여성들이 있었음을, 그럼에도 그들이 후대에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보여주면서 다시 우리 사회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우선 그들의 이름부터 보자. 몇 명이나 알고 있나? 아니, 이들의 삶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나?

 

신사임당, 송덕봉, 허난설헌, 이옥봉, 안동 장씨, 김호연재, 임윤지당, 김만덕, 김삼의당, 풍양 조씨, 강정일당, 김금원, 바우덕이, 윤희순

 

아마, 현모양처의 상징인, 오만 원 권에 등장한 신사임당과 허균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시를 잘 썼다는 허난설헌, 그리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잘 알려진 김만덕은 잘 알고 있으리라. 물론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이 그들 삶의 한 면뿐이겠지만. 어쩌면 안동 장씨도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문열이 소설 '선택'으로 불러낸 안동 장씨(이문열이 불러낸 안동 장씨와 이 책에 나오는 안동 장씨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남성의 시각에서 불러낸 여성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혹, 이문열의 선택을 읽은 사람은 꼭 이 책, 안동 장씨 부분을 읽어야 할 것이다), 남사당에 대해서 좀 알고 있는 사람은 바우덕이도 알지 모르겠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름도 생소하다. 그만큼 여성들은 이름을 남기기 힘들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로 이미 자신의 삶보다는 다른 사람(양반 남성)의 시선(생각)에 갇힌 삶을 살아야 했으니. 그만큼 부자유한 시대였다. 여기에 한미한 집안이나 또는 평민, 서얼로 태어났을 때에는 더더욱 힘든 삶을 살아야 했고.

 

이 부자유를 깨닫고 여성이라는 한계에 갇히기를 거부한 사람들. 특히 임윤지당 같은 경우는 남성 양반들과 동등하게 성리학을 논할 수준이었고, 자신의 책에서 남성과 여성이 다르지 않음을 주장하고 있으니, 이런 깨어있던 사람들을 지금 우리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여기에 강정일당 같은 경우는 남편이 오히려 스승으로 여기고 죽은 뒤에 문집을 내줄 정도였으니, 부자유한 시대에 비범했던 사람들,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역사에서 사라져서는 안 된다.

 

이들은 지금 우리에게 다가와야 한다. 우리 사회를 바로 보기 위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잘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신사임당에 관해서, 현모양처라고만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쳐야 한다.

 

신사임당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삶을 산 사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산 사람이라는 것. 여성으로서 그림을 잘 그렸다가 아니라, 화가로서 수준이 높은 그림을 그린 사람이었다는 것.

 

신사임당을 현모양처라는 틀에만 가둬두는 것은 조선시대 남성-양반들이 만들어낸 틀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마찬가지다. 임윤지당이 사람으로서 동등함을 주장했지만 어디, 임윤지당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

 

이름을 들어도 사실, 사임당이니 윤지당이니 하는 이름은 누구를 본받는다는 말, 중국 문왕, 무왕의 부인을 본받는다는 말. 여기서 어쩌면 현모양처의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이 이름을 쓴 것은 성인이 되는 것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여성도 성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이 이름을 통하여 추구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그러니 그들을 여성으로 가둬두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

 

이 책은 조선시대를 살았던 여성들, 중국보다도 더 꽉막힌 유교 윤리가 지배적이었던 조선에, 여성으로 태어나 자신의 뜻을 펼치기를 바랐던 여성들. 그들의 삶을 지금 불러내 우리 사회를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유리 천장을 이 책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것을 깨야 함을, 걷어내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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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만난 별들
장재선 지음 / 작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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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만난 별들'이다. 저자가 만나온 스타들을 시로 쓰고, 그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한 책이다.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스타부터 지금도 만나고 있는 스타들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그들에 대해서 시로 써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도 했고. 마치 고은이 쓴 "만인보"를 읽는 느낌도 있지만, 너무도 자주 보게 되는 사람들이라서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

 

물론 그들에 대한 이야기라서 좋지 않은 이야기는 없다. 별은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다운 것. 가까이에서 굳이 볼 필요도 없다.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던가. 그 별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얼마나 많던가.

 

또 별들은 저 멀리에 있기에 우리에게 감흥을 주는지도 모른다. 스타들의 민낯을 만나는 것보다, 그냥 스타로서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더 좋은지도. 그러니 굳이 그들을 시로 쓰고 그들을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좋지 않은 점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또한 스타는 이미 세상을 떴어도 우리에게 그 빛을 여전히 전달하고 있다. 마치 안드로메다 성운의 별들이 이미 사라졌더라도 우리는 백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별을 여전히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책에 나온 별들의 이름을 적어 본다.

 

황정순, 최은희, 신  구, 임권택, 패티김, 김지미, 최불암, 박상규, 조영남, 이장호, 조용필, 최백호, 안성기, 현  숙, 최성수, 송강호, 차인표, 엄정화, 김윤진, 김정은, 하지원, 수  애, 전지현, 강예원, 성유리, 손예진, 하석진, 문채원, 박하선, 김옥빈, 윤두준, 소녀시대 

 

어떤 이들은 이들을 보면서 이들과 같이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하겠고, 어떤 이들은 이들에게서 감동을 받고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이 별이 하는 역할이다. 그리고 이런 별들이 찬연히 빛나기에 세상은 좀더 밝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로 만난 별들"

이 책을 읽으면 이들에게서 빛만이 아니라 따스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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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4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5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술과 문학의 만남
이가림 지음 / 월간미술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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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의 만남이라는 제목보다는 미술가와 문학가의 만남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미술가 한 사람과 문학가 한 사람을 짝이어서 서로가 어떤 관계를 맺었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림과 작품의 관련성도 이야기하기 때문에 제목이 꼭 내용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말에 '시(詩).서(書).화(畵)'란 말이 있듯이 시와 글과 그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예전 사람들은 이 셋을 다 할 줄 알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선비라고 말할 수 없었으니까.

 

전체적인 인간, 융합과 통합을 이룬 전인적 인간을 추구하던 사회에서 분업이 주를 이루고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큰소리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이후에 예술도 서로의 분야로 갈라져 교류가 별로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자기 분야에만 전념하면 되는 풍토가 생겼다가 최근에는 예술 여러 분야들이 함께 하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이런 사회 분위기와는 별도로 예전부터 미술과 문학은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도 하였다.

 

그런 점을 서양의 작가들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세잔과 에밀 졸라처럼 그동안 잘 알려진 관계에 있던 사람도 있고, 자코메티와 사르트르처럼 읽으면 아, 그렇구나! 이들은 이렇게 관계를 맺었겠구나 하는 사람도 있고, 그 관계에 대해서 전혀 생각해 보지 않다가 이 책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다. 내게는 대부분이 그런 관계를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문학 쪽은 조금 알아도 미술 쪽은 문외한에 가깝기 때문인데, 이런 문외한에게도 잘 이해가 되게 작가들의 약력, 경향과 작품을 소개하고,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또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미술의 경우에는 작품을 보여주고, 문학의 경우에는 거기에 해당하는 구절들을 인용해 주고 있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 쉽다.

 

이 책에 나온 샤르댕과 프루스트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화가의 모델을 샤르댕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는데...이들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제목을 '하찮은 사물에의 깊은 인식과 사랑'이라고 붙였다.

 

우리가 흔히 주목하지 않고 넘어가는 사물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 화가와 작가. 그들의 관련성. 마찬가지로 '물'에 대한 성찰을 한 바슐라르와 '수련' 연작을 그린 모네를 연결지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으니...

 

단순히 지식을 쌓는다는 목적이 아니라도 글과 그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고,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미술 작품 또는 음악을 떠올릴 수도 있고, 또 우리나라 작가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과 문학이 만남. 늘 이루어져 왔고, 또 계속 그 만남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 만남이 일방이든 양방향이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예술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계속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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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현실로, 정치판

                               - 에셔 그림

 

그림 속에만 있는 줄 알았지

 

천사가 악마가 되고

악마가 천사가 되는 

검은 새가 하얀 새가 되고

하얀 새가 검은 새가 되는

계단을 오르는데 내려가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올라가는

물이 흐르는데 올라가고 내려가는

그 무한 반복

 

그 속에 들어가면 그렇게

상상을 현실로 만들 줄 알아야 하나 봐

그래야 그 속에서 존재할 수 있나 봐

 

남들은 다 아는데

자신들만 모르면서

아니.

애써 모르는 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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