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하던 모습을 잃고 굳어지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될까?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넘어가면, 다른 쓸모가 있어야 하는데.

 

  자연은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넘어가도 자신의 역할을 한다. 쓸모없음이 쓸모있음으로 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연이다.

 

  어떤 존재도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도 다른 존재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기도 한다. '밤나무 위에서 잠을 자다'란 시를 보면 그것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나무는 죽어서도 인간에게 따스함을 준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가? 인간이 남긴 것들이 어떤 쓸모가 있을까? 오히려 굳어져 화석이 되어 버리는 것 아닌지. 화석. 과거를 알려주는 존재. 그것 뿐이다. 특히, 인간의 말들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말들은 그대로 굳어질 뿐이다. 시인의 말은 더욱 그렇다. 세상을 따스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시인의 말일텐데, 시인의 말을 무슨 쓰레기처럼 그냥 버리고 만다. 시인의 말은 사람들 귀를 통해 마음에 도달하지 못하고, 화석이 되고 만다.

 

인간과 자연의 차이다.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 신용목의 시집에 나온 밤나무와 시인의 말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된다.

 

   밤나무 위에서 잠을 자다

 

오래된 밤나무를 패서 때던 저녁이 있었다

 

태풍이 핥고 간 밭가에서 바람의 혀를 물고 마르는 데 꼬박 일년이 걸렸다

 

두발 지게에 실려 밤나무가 나뭇간을 덮던 날

 

그 저녁 네칸집은 삼백일장 나무의 상여였다

취한 별들이 지붕에 문상객처럼 둘러앉았다

 

캄캄한 방고래를 지나며 나무는 제 둥치의 모양을 마지막 연기로 그려보고 있었다

 

밥물이 밤꽃처럼 흘러넘치는 저녁이 있었다

 

신용목,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창비. 2007년 초판 2쇄. 98쪽.

 

 

 

 

말의 퇴적층

 

내가 뱉은 말이

바닥에 흥건했다 누구의 귓속으로도

빨려들지 못했다 무언가 지나가면

반죽처럼 갈라져 사방벽에 파문을 새겼다

누구도 내 말을 몸속에 담아가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문을 닫고 사라졌으며

아무도 다시 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빈 방에서 혼잣말을 시작했다

뱉은 말은 바닥에서부터 차올랐고

이내 키를 넘었다 그때부터

나는 걷기를 포기했다 길고 부드러운 혀로

말의 반죽 속을 헤엄쳤다 와중에도

쉴새없이 말을 뱉었고 뱉을수록 한가득

된반죽처럼 뻑뻑해졌다

더러 문틈으로 바람이 불고 해가 비쳐

반죽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나는 점점

움직이기 힘들었고 마침내

꼼짝할 수 없었다 말들이 마저

다 마르자 나는

풍문같이 화석이 되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마지막 순간 그 우연한 자세가

영원한 나의 육체였다

몇만년 후 지질학자는

말의 퇴적층에서 혀의 종족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멸망한 시인을 증명할 것이다

 

신용목,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창비. 2007년 초판 2쇄. 106-107쪽.

 

결국 순환이다. 순환은 닫힌 체계가 아니라 열린 체계다. 돌고 도는,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 자연이 순환을 멈추면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자연이 스스로 순환을 멈추는 경우는 없다.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자연의 순환을 멈추고, 열린 체계를 닫힌 체계로 만들어 갈 뿐이다. 그리고 인간들 관계도 스스로 닫아버린다. 말이 돌고 돌아 살아 있지 못하고, 죽어 있게 된다. 한 곳에 머물고, 그곳에 쌓이고 굳어가게 된다. 시인의 말은 더더욱 그렇다. 마치 카산드라의 예언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이 시대 시인의 말은.

 

신용목의 '말의 퇴적층'은 그런 모습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 밤나무와 대비되게 시인의 말은 그렇게 화석이 되어버렸다. 시인은 '멸망한 시인을 증명할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이 시집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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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의 핵심은 '자서(自序)'다.

 

  '시처럼 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 세상이 너무 걸리는 게 많기 때문이다. // 운명적인 것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고……/ 가버린 날들은 그냥 바라만 봐야 한다. / 오랜만의 시집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 // 먼 바다로 가 수평선이나 봤으면 좋겠다.'

 

  시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테고, 무심하게 지냈던 마음에 무언가를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시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꼭 시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런 마음들이 삶을 시에 더 가까이 가게 한다. 삶들이 시가 될 수 있다.

 

시가 이슬처럼 찰나에 존재할지라도, 그 찰나에 사람에게 다가온다. 그런 존재, 그것이 바로 시여야 한다.

 

박찬 시집을 읽었다. 앞부분에 짧은 시들, 해탈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시집 앞부분에 있고, 뒷부분에 가면 사랑을 노래하는 시들이 있다.

 

시는 곧 사랑이고, 해탈이다. 지금-여기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시다. 그래서 시는 이슬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박찬의 시 '먼지 속 이슬'을 읽다.

 

  먼지 속 이슬

            - 화염길 그후

 

큰스님 오르시는 길, 비가 내린다

빗속에도 꺼지지 않는 파아란 불길.

하늘로 올라 이슬이 되어 먼지 위에 내려앉으시다.

 

박찬, 먼지 속 이슬, 문학동네. 2000년. 12쪽.

 

세상에 왔다가 떠나시는 큰스님. 오르는 길에 비가 내리지만 비는 불길을 꺼뜨리지 못한다. 그러나 큰스님은 그냥 오르기만 하지 않는다. 다시 내려오신다.

 

먼지 위에 살포시 이슬로 내려오신다. 그렇게 큰스님은 우리 곁을 떠나도 늘 우리 곁에 있다. 이것이 바로 시다.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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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0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nye91 2019-11-20 10:37   좋아요 0 | URL
유레카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학교 졸업, 시험 끝이 곧 시를 읽지 않는 시작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런 풍토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험용 시가 아닌,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시라는 인식을 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예의 바른 나쁜 인간 - 도덕은 21세기에도 쓸모 있는가
이든 콜린즈워스 지음, 한진영 옮김 / 한빛비즈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예의 바른 나쁜 인간'이라는 제목.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 한 자리에 있어,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나쁜 인간이라는 말에는 도덕적이지 않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도덕적이지 않다는 말과 윤리적이지 않다는 말이 같은 의미로 쓰이지 않음을 이 책에서 거듭 말하고 있는데... 도덕은 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고, 윤리는 사회가 지니고 있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한 사람도 도덕적으로 수치심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고, 윤리적으로 옳은 일을 한 사람도 도덕적으로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리와 법은 어떤가?

 

윤리가 관습으로 지켜야 할 규범이고,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수는 있지만, 꼭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닌 반면에, 법은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윤리보다는 법이 더 강제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강제성 면으로 보면 법이 우선이고, 다음이 윤리이며, 마지막으로 오는 것이 도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과연 도덕은 무엇일까? 도덕적 행동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그렇다고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도덕이고, 또 어떤 것이 도덕이 아닌지는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나쁜 인간을 숱하게 만나는 것이다.

 

이첵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게서 도덕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그들 행동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행동이 도덕적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도덕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느 곳에서 도덕인 것이 다른 곳에서는 도덕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한 판단 기준도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관적이라는 말은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상대적인 것이 도덕이지만, 절대적인 도덕이 있지 않을까? 우리 인간들에게 모두 도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읽다 보면 도덕이 지니는 함의가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변해왔음을, 그리고 계속 변해감을 알 수는 있지만, 자칫하면 그들의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변했으니, 사회가 변했으니,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도덕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지만, 도덕을 느끼게 하는 것은 윤리다. 사회가 지니고 있는 규범이고, 이 규범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변하면 도덕도 변하게 된다. 그렇다면 절대 도덕은 없는가? 아니다. 있다. 변할 수 없는 무엇.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에서 온다.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는 것, 그것은 비도덕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빌려 오면  '정리 31 어떤 사물은 우리의 본성과 일치하는 한에서 필연적으로 선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서광사. 2006년. 233쪽.) 라는 말이 있다. 선을 도덕과 같은 의미로 쓴다면, 우리의 본성과 일치하는 것, 그것은 바로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도덕이다.

 

이런 도덕에서 벗어났을 때 수치심을 느낀다.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젊은 사람들이란 정념으로 살고 따라서 과오를 많이 저지르지만 수치로 말미암아 이를 억제하는 까닭에 모름지기 염치심을 잘 길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염치심이 있는 젊은 이들을 칭찬하지만, 나이를 먹은 사람이 부끄러워할 줄 안다고 해서 그를 칭찬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나이를 먹은 사람은 부끄러운 느낌을 가지게 할 일을 전혀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부끄러운 느낌은 좋지 못한 행위의 결과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에게는 속할 수 없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최명관 옮김. 니코마코스 윤리학, 1984년. 서광사. 141쪽.)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몸에 배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렇게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아리스토텔레스, 최명관 옮김. 니코마코스 윤리학, 1984년. 서광사. 202쪽.)

 

이 구절을 우리나라 국회에 적용한다. 젊은이들보다는 늙은이들이 훨씬 많은 우리나라 국회. 다른 곳은 정년이 있는데, 정년이 없는 국회.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치심을 모르는 국회.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제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치심을 가지면 그것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때문에 수치심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아예 무얼 잘못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수치심도 몸에 배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니 이들은 '예의 바른 나쁜 인간'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은 늘 옳다는 그런 신념을 지니고 있는...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밖에는 없는 그런 인간들.

 

언론에선 이런 수치심을 모르는 군상들이 주로 나온다. 자연스레 우리 사회는 개인의 도덕은 권력(경제, 정치, 법조 등등)의 힘에 의해 가려진다. 윤리가 실종된다. 오로지 법이 전면에 나서는데, 법은 권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도덕은 삶에서 점점 밀려날 뿐이다.

 

'예의 바른 나쁜 인간'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지금보다는 나아질 세상을 꿈꾼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선은, 도덕은 지금보다는 나은 나, 나은 사회를 추구한다.

 

어떻게?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과 실제 적용해야 할 것을 위도와 경도로 표현하고, 이것이 만나는 지점에서 도덕이 발견될 것이라는 저자의 말(310쪽)을 명심해야 한다.

 

'예의 바른 나쁜 인간'을 거울로 삼아 자신의 행동을,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여전히 도덕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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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에서 많이 나오는 단어가 '오이디푸스나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아니고, 오이디푸스나무라니...

 

(내가 파버린 내 눈알이 열리는 오이디푸스나무, 번복하는 오이디푸스나무, 오이디푸스나무를 위한 정원사, 자라는 오이디푸스나무, 오이디푸스나무의 꽃, 오이디푸스나무와 죽은 고양이, 오이디푸스나무의 신발, 오이디푸스나무의 뼈, 오이디푸스나무)

'오이디푸스나무'라는 말이 들어간 시가 총 9편이 있는데, 시집 제목은 '오이디푸스'라는 말이 없는 '둥근 발작'이다.

 

오이디푸스가 누구인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람.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자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사람. 자신이 행한 행동에 책임을 진 사람. 부모를 위한다는 것이 부모를 죽이게 된 사람인데...

 

'오이디푸스나무'라는 말에서 죽음을 떠올린다. 뿌리를 제외하고, 하나의 줄기에서 여러 가지들이 분기되어 나온다. 부모에게서 자식들이 나오는 것. 자식들은 부모를 토대로, 부모에게서 영양을 받아 살아간다.

 

부모보다 더 크고자 하나, 클 수가 없다. 부모보다 커지는 순간 부모 가지는 부러지고, 자신도 역시 죽고 만다.

 

오이디푸스나무라는 말을 지닌 시들에서 나오는 것은 결국 하나의 죽음은 다른 존재의 죽음을 이끌어낸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 아닐까?

 

서로 영향을, 영양을 주고받아 함께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일방향인 것.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부모고, 자식은 그대로 따라가는 것. 그래서 '오이디푸스나무'를 통해 이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오이디푸스나무'와 비슷한 개념을 지닌 시로 '소파의 위치'라는 시가 떠올랐다. 상호작용 없이 그냥 일방향인, 한쪽만 보는, 그런 관계

 

 소파의 위치

 

소파는

일방적으로 한쪽 벽에 놓였다

대화를 멈추고

내가 소파에 앉았다

대화가 없어서 푹신푹신했다

싸움을 멈추고

그가 소파에 앉았다

싸움이 없어서 폭신폭신했다

눈웃음을 멈추고

그녀가 소파에 앉았다

눈웃음이 없어서 둥글둥글했다

나는 나팔꽃처럼 눈부신 쪽을 편애했다

그는 나팔꽃처럼 눈부신 쪽을 편애했다

그녀는 나팔꽃처럼 눈부신 쪽을 편애했다

그들의 눈과 코와 입과 손가락은

일방적으로 기울고 있었다

소파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소파를 친친 감아올렸다

그들은

하나의 입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의 항문을 피워내고 있었다

 

조말선, 둥근 발작, 창비. 2006년. 18-19쪽.

 

하늘을 향해, 빛을 향해 자라는 나뭇가지들. 이들도 역시 일방향이다. 이들 역시 일방적으로 기울고 있다.

 

이렇게 한 방향만 보고 있을 때 푹신푹신, 폭신폭신, 둥글둥글하겠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오이디푸스'처럼 행동하려 할 때, 그것을 막기 위해 발버둥을 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 시집 제목이 된 '둥근 발작'이다. 사과를 예로 들고 있지만, 이것은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에게 가하는 폭력일 수도 있다.

 

몇몇 청소년들이, 또 청소년 작품들에서 어른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점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둥근 발작'은 섬뜩하면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뒤에 나오는 '가을'이라는 시가 실현되기 전이 아닐까. 그 단계까지는 가지 말아야지.

 

둥근 발작

 

사과 묘목을 심기 전에

굵은 철사줄과 말뚝으로 분위기를 장악하십시오

흰 사과꽃이 흩날리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신경증적인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곁가지가 뻗으면 반드시 철사줄에 동여매세요

자기 성향이 굳어지기 전에 굴종을 주입하세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억제입니다

원예가의 눈높이 이상은 금물입니다

나를 닮도록 강요하세요

나무에서 인간으로 퇴화시키세요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부정하세요

단단한 돌처럼 사과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억누르세요

뺨이 벌겋게 달아오를 것입니다

극심한 일교차가 당도를 결정한다면

극심한 감정교차는 빛깔을 결정합니다

폭염에는 모차르트를

우기에는 쇼스타코비치를 권합니다

한 가지 감상이 깊어지지 않도록 경계하세요

나른한 태양, 출중한 달빛, 잎을 들까부는 미풍

양질의 폭식은 품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입니다

위로 뻗을 때마다 쾅쾅 말뚝을 박으세요

열매가 풍성할수록 꽁꽁 철사줄에 동여매세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둥근 발작을 유도하세요

 

조말선, 둥근 발작, 창비. 2006년. 9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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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영어 인문학 이야기 3 - '부킹'과 '목이 긴 구두'는 무슨 관계인가? 재미있는 영어 인문학 이야기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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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이다. 역시 10개의 주제로 10개의 단어들을 등장시킨다. 그 단어들이 지닌 의미, 사용법, 그리고 역사, 또 문화적 의미 등등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다만 3권이 1,2권과 다른 점은 각 단어에 대한 명언이 더 많이 실려 있다는 것이다.

 

짧막한 명언들. 외워서 쓰기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그 짧막한 문구 속에 들어 있는 길고도 깊은 뜻을 받아들이는데 있다. 그러니 영어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우리들 삶에 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이번 권은 그런 명언들이 수두룩하니, 영어 공부하는 셈치고 읽어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속담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맛보듯이, 영어 명언들을 통해서 우리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satisfaction'이란 단어를 설명하는 장 제목은 '왜 '만족은 곧 죽음'이라고 하는가?'다. 만족은 곧 멈춤이고, 멈춤은 정지니, 삶이 움직임이라면 죽음은 정지다. 그러니 만족은 곧 죽음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는데... 단지, 그것일까? 만족을 모르면 탐욕이고, 탐욕은 곧 파멸을 부르니, 탐욕 역시 죽음일 텐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이렇게 상반되는 것들이 같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하나의 일이 하나의 결과만을 낳지는 않는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듯이. 우리는 다중적인 존재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들어 쓰는 말들도 뜻이 하나일 수가 없다.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뜻이 덧붙여진다. 삶이 그러하듯이. 그러니 만족이나 탐욕이 같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러니 상황에 맞게 살아가는 것.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인생에서 필요하다.

 

satisfaction이란 말과 관련된 명언을 들고 있는 중에, 우리가 많이 들어본 말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오역이라니...

 

It is better to be a human being dissatisfied than a pig satisfied; better to be Socrates dissatisfied than a pool satisfied (만족하는 돼지보다는 불만족하는 인간이 낫고,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불만족하는 소크라테스가 낫다)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다. 서옥식은 『오역의 제국: 그 거짓과 왜곡의 세계』에서 "만족하는 돼지보다 불만족하는 소크라테스가 낫다"거나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명언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 말이 오역이 된 채 잘못 전해진 말이라고 말한다. (353-354쪽)

 

비록 엄밀한 의미에서 오역이라고 하겠지만,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이 더 귀에 잘 들어오니, 이것 참... 습관의 힘인지... 자꾸 들어본 말이 머리 속에서, 마음 속에서 나가지 않는 것인지.

 

이런 식으로 많은 내용들이 들어 있는데... 만족과 탐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삶이 어떤 삶일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야 하는데 그냥 주저앉아 있는 사람은 이 명언에서 이야기하는 '만족하는 돼지, 만족하는 바보'에 불과할 테고, 충분히 가졌음에도 더 가지려고 하는 사람은 '탐욕스런 사람'이될 테니, 삶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보다도 자기성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자기성찰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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