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가 코 끝이 찡해지는 작품을 몇 만났다. 아니, 몇이 아니라 많은 시들이 코 끝을 찡하게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에 관한 시를 읽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공부기계라는 말을 쓰기도 무색하게 점수기계, 입시기계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청소년들.

 

  그들에게 개성이란 말은 사전에나 있는 말이다. 어떻게 개성을 찾을 수가 있을까? 시간이나 있나? 시간이 있더라도 누가 허용해 주는가?

 

  개성적이라는 말은 튄다는 말과 같고, 튄다는 말은 공부 안 한다는 말과 통하고, 교칙을 어긴다는 말과도 통하니, 개성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다.

 

그래서 이 시집에 있는 '틀린 그림 찾기'란 시를 보면 마음이 짠하다. 시인은 분명 '다른'이 아니라 '틀린'이라는 말을 썼다. 학교에서 다름은 틀림과 다르다고 가르치지만,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또 사회에서 청소년들에게 쓰는 말은 다름은 곧 틀림이다. 정답에서 벗어남이다. 그러니 이런 현실을 알고 있는 시인이 '다른 그림 찾기'란 말 대신 '틀린 그림 찾기'란 말을 썼을 것이다.

 

  틀린 그림 찾기

 

아침마다 교실에선 틀린 그림 찾기가 벌어진다.

교복에 넥타이를 매고

운동화 대신 실내화를 신고

머리를 물들이지 않고

얼굴에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채

다 같은 그림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담임 선생님은 귀신같이

틀린 그림을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낸다.

한눈에 척 틀린 그림을 찾아내는

고수의 눈길을 피할 도리가 없다.

그래도 다음 날 틀린 그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담임 선생님을 도와주고 있는 게 분명하다.

틀림 그림 찾기가 취미인

담임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보란 듯 립 틴트를 바르거나

실내화를 집에 감춰 두고 온다.

틀린 그림이 아니라 다른 그림일 뿐이라고

괜히 잘난 척했다가 벌점 먹은

세나가 오늘은 얌전한 그림을 하고 있더니

담임 선생님이 나가자 잽싸게

사물함에서 짧은 치마를 꺼내 온다.

 

박일환, 만렙을 찍을 때까지. 창비교육. 2019년. 72-73쪽.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지행불일치 교육. 너무도 철저하다. 교과서 내용과 전혀 다르게 학생들을 옥죄고 있는 현실. 다름은 없는 것이 바로 학교다. 오로지 정답과 오답만 있다. 다름은 오답이다. 틀림이다. 그러니 학교에서는 수많은 '틀린 그림 찾기'가 벌어진다.

 

이 상태로 나아가면 정답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다름이 없는, 다름은 틀림이 되는 사회를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무섭다. 그리고 서럽다. 이보다 더한 다름은 없다고 선언하는 모습이 담긴 시가 있다.

 

선생님께 드리는 서술형 문제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시간에 와서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하고

  똑같은 문제로 시험을 보는데

  네 성적은 왜 이 모양이냐?

 

  위 선생님의 말을 토대로 하여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점수를 받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져서 누가 가장 곤란을 겪게 될지 5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

 

박일환, 만렙을 찍을 때까지. 창비교육. 2019년. 12쪽,

 

마냥 웃으며 읽을 수만은 없는 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 그런 모습이 일으키는 재앙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이 시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어찌 학생만이겠는가? 학교를 뛰쳐나온 청소년들도 이런 똑같음의 강요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가. 그러니 다르다고 자시가 사는 세상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버젓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런 세상에서 이 청소년시집은 다름이 사회를 더 풍요롭게 한다고. 다름은 오답이 아니라고, 제발 다름을 틀림으로 만들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3부에 실린 시들. '다름'이 인정되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들에 대한 시다. 읽으면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

 

다 좋다. 미처 알지 못했던 존재들도 만날 수 있고, 읽으면서 그렇구나 하는 마음, 마음 속에서 어떤 감동이 차오르는 경험을 할 수도 있는 시들이다. 청소년들이 읽으면 시를 통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참고로 3부에 나온 시들을 열거해 본다. 한번 찾아 읽어 보시라. 이렇게 다르게 살아가는 존재들에 의해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지고 따스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살구색의 탄생, 헛된 꿈은 없다, 어떤 열네 살, 마누엘라의 친구, 아름다운 시를 쓰는 나라, 첫눈을 사랑하는 나라, 처칠 클럽, 위대한 바보, 현대판 우공, 포탄 칼,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나라, 권정생 할아버지, 안아주고 싶다는 말 

 

이런 존재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시인 역시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이런 시인들이 있기에 다름이 다름으로 존재할 수 있다. 정답과 오답만 있는 세상이 아니라, 다름이 다양하게 공존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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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가 많이 살았던 고장, 통영.

 

  어쩌면 통영이라는 이름은 통제영이었으니, 예술보다는 군사 쪽으로 더 가까워야 할 것 같은데, 그 아름다운 바다에,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이 나왔는지.

 

  군사 요충지가 아니라 자연을 닮은 사람들을 많이 배출한 곳, 통영. 그런 통영을 노래한 시집이 바로 강희근의 "새벽 통영"이다.

 

  통영 사람들, 통영의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했는데... 이 시집에는 꼭 통영이 아니어도 아름다운 우리나라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 중에 통영 사람에 관한 시. 시에 나오는 한 사람(? 사람이라고 추측을 하는데, 도무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아, 지식의 짧음이여) 빼고는 너무도 유명한 사람들이다.

 

  통영에 오면


통영에 오면
유난히 유년이 많이 돌아다닌다
남망산 밑 햇볕 곁으로 초정의 유년이
이름표 달고 지나간다

부둣가로 지나가면 싼판으로 드는 청마의
유년, 코흘리개 까까머리가 독 한 점 없이 말갛다

대교쯤 오면
민머리 자주 쓰다듬으며 비너스호 지나가는 것
바라보는
춘수의 유년이 눈썹에 걸린다

그는 어릴 때부터
머리 빡빡 민 샤갈의 유년 같은 것에,
샤갈의 머리에 묻어내리는 눈발 같은 것에
발등이 잡혀

환상으로 걸어다녔다

바람부는 오늘은 환상이 꽃잎처럼 쓸려다닌다
대교를 지나고
유년도 더 이상 돌아볼 유년이 없다
여겨질 때
경리의 유년이 폴짝 폴짝 여치처럼 나타난다

경리뿐인가
동랑의 유년이 소 한 마리 몰고 느긋 느긋 따르고
두동의 유년이 소 한 마리 뒤에 다소곳이 따른다

통영에 오면
유난히 유년이 많이 돌아다닌다
유년이 아니라면 통제영 안골목이나 좁은 길
우체통 앞이 영 늙어 보일 것이다

중앙통으로 흐르는 간선도로
신호등까지 깜박거리고 막히면 오장이
육부가 다 쇠한,
지팡이 짚는 늙은이로 보일 것이다

 영판 늙은이로 보일 것이다

 

강희근, 새벽 통영, 경남. 2010년. 20-21쪽.

 

순서대로 하면 초정은 김상옥, 시조 시인으로 유명한 그 사람. 학창시절에 김상옥이 쓴 시조 "사향(思鄕)"을 배웠는데, 그가 통영 출신임을 이 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하긴 학창시절에 작가들의 고향에 대해서 배우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니까.

 

자연과 사람이 동화될 수 있음을, 그 당시에는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어려운 말로만 기억할 수밖에 없었으니.

 

다음은 청마다. 유치환. 깃발이라는 시. 학생 때 꼭 배운 시다. 물론 그의 시 중에서 바위, 행복, 그리움, 생명의 서 등등 생명파라고 해 많이도 배웠지. 그 역시 통영 출신이라고 하니..

 

다음 시인은 김춘수다. "꽃"이라는 시로 너무도 잘 알려진, 그가 쓴 시 중에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도 있는데, 이 시에서는 그것을 짚어주고 있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청마와 춘수'라는 시를 보면 청마의 결혼식에 김춘수가 화동(花童) 노릇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아, 청마가 결혼식을 올릴 때 / 올리며 인생을 시작할 때 / 유치원생 춘수가 화동이 되어 꽃을 바친 것 / 통영에 가면 / 아는 사람은 다 안다 - 강희근, '청마와 춘수' 5연)

 

춘수에 이어 나오는 작가는 박경리다. [토지]의 작가.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하여 좋은 작품을 많이 낸 작가. 후배들이 마음 편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작가.

 

이 박경리에 이어 동랑이 나오는데, 동랑은 청마의 형이다. 유치진. 우리나라 근대 연극을 주동한 사람. 그러니 그가 나오지 않으면 섭하겠지. 동랑에 이어 두동이라고 나오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이들과 더불어 통영하면 기억할 사람이 음악 쪽에서는 윤이상, 그리고 미술 쪽에서는 전혁림('통영대교'란 시에 전화백이라고 등장한다)이다. 또 통영 출신은 아니지만 통영에서 지냈던 사람, 이중섭도 있고. (시 - 이중섭, 또는 26-27쪽)

 

이렇게 시집을 통해서 통영을 다시 생각하고, 통영과 관련된 예술인들을 기억 속에서 불러내게 된다.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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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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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이란 말이 있다. 국립국어원에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성장통이란 낱말 풀이가 이렇게 되어 있다.

 

1) 어린이나 청소년이 갑자기 성장하면서 생기는 통증. 주로 양쪽 무릎이나 발목, 허벅지나 정강이, 팔 따위에 생긴다. 4~10세 사이에 많이 나타나고, 1~2년이 지나면 대부분 통증이 사라진다.

2) 사물의 규모나 세력 따위가 커지면서 생기는 고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 특히 청소년들에게 쓰는 말인데, 첫번째 풀이는 육체적인 변화에 따르는 고통을 말하는 듯하고, 두번째 풀이는 사람에게라기보다는 집단이나 사물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우리가 흔히 쓰는 '성장통'에 해당하는 뜻풀이가 없다는 말이다.

 

청소년들이 겪는 성장통은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을 말한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것은 청소년기에 겪는 성장통이었다 하면 방황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장통'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며 과연 어떤 성장통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방황이 모두 성장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청소년기의 일탈은 모두 성장통인가?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제목의 뜻도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방황, 일탈 등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제목 자체에서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라, 여기에 어떤 이유를 붙이지 말아라는 의도가 보인다고나 할까.

 

알렉스라는 청소년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그가 겪은 일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식으로 소설이 서술되고 있다.

 

총3부인데 1부는 알렉스 패거리가 벌이는 패악이 서술되고 있다. 그야말로 일탈이나 방황이 아닌 범죄다. 이것이 성장통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성장통과 범죄는 구분해야 한다. 성장통은 법 테두리 내에 있는 것이고, 범죄는 법 테두를 벗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 알렉스의 방황, 일탈을 성장통으로 보자.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마약에 준하는 약물에 취하는 청소년들, 거리낌없이 폭행하고, 강간하고, 약탈하는 모습이 1부에 나타난다. 도덕심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모습들.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는 알렉스. 패거리들에게도 배신당하고 감옥에 가야만 하는 지경에 이른다.

 

2부는 감옥에서의 생활이다. 국교(국립교도소를 줄여서 화자인 알렉스는 이렇게 말한다)에서 또다시 폭력을 행사하고, 새로 생긴 치료법의 대상자가 된다. 14년형을 받았지만, 이 치료를 받으면 2주만에 나갈 수 있다는. 루도비코 치료법을 받게 되는 알렉스. 이는 약물치료라고 할 수 있다.

 

폭력적인 장면이나 생각을 하면 몸에 고통을 유발하는 그런 치료법. 결국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서 착한 행동이나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 치료를 하는 영화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삽입되고, 알렉스는 이 음악을 들어도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우수한 치료 수료자로 두 주가 지나 사회로 나온 알렉스. 여기에 알렉스의 의지는 없었다.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고, 그저 약물로 인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알렉스.

 

비행청소년이었던 알렉스는 과연 선택을 했던 걸까?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그때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마찬가지로 교도소에서 알렉스 역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선택의 권리가 없는 인간, 자유의지를 상실한 인간이다. 자, 이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도 흉악범들에게 약물치료를 하고(또는 하려고) 있지 않은가.

 

3부가 되면 사회에 나온 알렉스. 치료 효과가 신문을 통해 홍보가 되고, 알렉스는 과거 자신이 행패 부렸던 사람들에게 당한다. 당하면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런 약물치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들 역시 알렉스를 이용하려고 하지, 그에게 어떤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교도소에 갖다온 알렉스는 선택의 권리가 없는, 자유의지를 상실한 인간이 되어 버렸다. 인간? 그는 태엽을 감아줘야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니 태엽이라는 말 다음에 오렌지든, 사람이든, 원숭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차피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알렉스. 자, 세월이 조금 흘렀고,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데, 불현듯 미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 이제 청소년기의 성장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성장통에 시달리는 청소년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현재만을 알고, 감정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설은 알렉스가 자기 아이를 두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그런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으로 끝난다.

 

지독한 성장통이구나! 우리나라 청소년들 가운데도 알렉스의 어린 시절과 같은 무시무시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는데, 이들도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 미래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길을 바꾸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가 미래를 설계하고 나아가는데, 알렉스 자신이 짓밟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알렉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 이렇게 갖은 비행을 저지르더라도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쪽으로 읽기 쉽다.

 

너무 위험한 읽기다. 그들의 비행을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야 하면서 보아 넘겨만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청소년기는 '시계태엽 오렌지'와 같다면, 어떻게 태엽을 작동할지가 중요하다. 즉, 자기 의지로 행동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힘으로 행동을 조절하게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면 그때 제어할 수 있는 외부 환경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쪽으로 초점을 맞추어 읽다보면 그렇다면 청소년들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는가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아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유의지가 있다. 이 자유의지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 주되, 다른 사람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범주에 대해 인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는 자유가 아니다. 그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언제까지나 범죄인 취급해서도 안 된다. 그들에게 반성과 변화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그것이 희생자를 둔 사람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이지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렉스가 1부에서 저지른 범죄의 희생자가 된 소설가에게서 볼 수 있다. 아내를 잃은 그가 얼마나 알렉스를 증오하고 있는지를. 아마도 이 소설이 성장소설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돌고 돌아 알렉스가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거꾸로 괴롭힘 당하는 장면이야 인과응보라 할 수 있어도 이 작가가 알렉스에게 한 행동, 그리고 그가 영원토록 겪어야 하는 고통을 생각하면, 청소년기에 했던 짓이 해서는 안 되는, 자유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소설의 말미에 알렉스의 말을 빌려 청소년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청춘은 가버려야만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끄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릭 끼리릭 감았다 놓으면 걸어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어가다가 주변의 것들에 꽝꽝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그런 쬐끄만 기계 중의 하나와 같은 거야.' (222쪽)  

 

자, 이게 청춘이라면 우리는 일직선 상을 정리해서 청춘이 부딪히지 않도록, 아니면 부딪히더라도 제자리로 올 수 있도록 정리를 할 수가 있다.

 

성장통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성장통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자유가 없어지는, 생명이 없어지는 그런 일을 만들지 않도록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성장하고 있는 개인에게 약물치료가 아니라, 그가 충분히 성장통을 겪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소설은 그래서 알렉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도 좋지만, 이런 청춘들의 성장통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좋다.

 

알렉스와 같은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 기성세대들이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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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영어 인문학 이야기 4 - '이타주의'와 '간통'은 무슨 관계인가? 재미있는 영어 인문학 이야기 4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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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이다. 같은 구조다. 10개 항목에 10갸 단어씩. 단어를 알아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단어와 더불어 서양의 사회, 문화를 알아간다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단어에서 파생된 여러 단어들을 볼 수도 있어서 어휘 향상을 노리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듯하다.

 

이번 권에서는 두 항목의 단어를 통해 좀더 깊이 들어가 보면 좋을 듯하다.

 

thinking과 multi-tasker와 sleep이다. 서로 떨어진 단어들 같지만 이들을 하나로 꿸 수 있다. 생각하는 능력은 곧 우리 사람들이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다. 생각 능력이 점점 떨어지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이 책에서 생각에 관한 좋은 말들 중에서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

 

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 (사람은 생각하며 살앙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209쪽)

 

그렇다. 생각을 내가 다스리지 못하고, 생각에 좌우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해야 한다. 생각을 잘 하지 못하면 자신이 multi-tasker라고 생각하기 쉽다.

 

다중 능력을 지닌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것을 보자.

 

멀티태스커들은 시도하는 과제들 중 어떤 것도 잘 수행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체가 멀티태스킹을 '도취' 상태로 유도하는 신경화학물질을 분비하여 보상을 하기 때문에 기분은 좋다. 이 도취 상태는 멀티태스커들에게 특별히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도취감에 젖고 싶어 그들은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려 든다. (317쪽)

 

깊이 생각하지 않음, 그것은 자신이 여러 일을 잘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생각이 중요하다. 먼저 읽었던 [다시, 책으로]와 통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잠이 필요하다. 잠은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잠부족이 낭비다. 우리 삶을 고통으로 빠뜨린다.

 

한 주 동안 하루 4~5시간의 수면만을 취하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퍼센트에 해당하는 정도의 무기력함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이다. (340쪽)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말이다. 잠이 부족한 사람은 주의력이 분산된다. 집중을 하지 못한다. 여러 일을 하려 하지만 어느 하나에 몰입하지 못한다. 멀티태스킹이라고 착각을 하지만 그것은 생각없음에 불과하다.

 

그러니 앞에서 언급한 생각하기, 멀티태스커, 잠은 모두 통한다. 이렇게 다른 단어들을 통해 하나의 현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인문학이다.

 

단지 단어가 아니라 우리 삶과 관련이 있다. 이 책에서 강준만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말하는 그냥 '잡학'이 아니라, 그런 '잡학'을 통하여 우리는 인문학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이 일은 이른바 '잡학(雜學) 상식'에 대한 열정으로 내가 재미있고 좋아서 하는 일이다. 독자들이 내가 누린 재미의 일부라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7쪽)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재미를 공유할 수 있다. 재미만이 아니라 지식이 깊어짐도 느낄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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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 -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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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이라고 표지에 적혀 있다. 책을 읽은 다음에 든 생각은 이 책은 순간 접속 시대이기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구나였다.

 

순간 접속의 시대, 디지털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만나게 되는 시대다. 그러니 진득하게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순간순간 만나고 잊고 또 다른 것을 만나고 하는 접속의 연쇄 속에서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접속의 연쇄, 얼핏 책을 통해서 얻게 되는 연결과 통할 것 같지만, 이런 연쇄들은 연결이 아니라 스쳐지나가는 만남에 불과하다. 즉, 상대나 다른 존재, 다른 세상과 연결해 주지 않고 그냥 순간의 만남에 그치게 한다.

 

언어와 사고가 위축되고 복합성이 줄어들며 모든 것이 점점 같아질 때, 우리 사회 정치는 종교 조직이나 정치 조직 내의 극단주의자들로부터든, 그보다는 덜 명확하게 광고주들로부터든 큰 위협을 받게 됩니다. (137쪽)

 

문제는 디지털 문화에서 우리가 소비하는 단어의 양이나 읽는 방법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는 양이 읽는 방식에 미치는 영향과, 읽는 양과 방식이 우리가 읽고 기억하는 것에 미치는 영향도 문제가 됩니다. ... 우리가 읽는 것은 디지털 연쇄의 다음 연결고리인 쓰는 방식마저 바꿔놓습니다. (141쪽)

 

다른 말로 하면 집중이 아니라 분산이다. 정신을 이것저것에 분산시키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니 집중력이 자연스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에서도 디지털 매체를 모두 부정하지는 않는다. 디지털 매체의 장점도 이야기한다.

 

읽기가 꼭 책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를 부정할 수 없기에,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도 일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디지털 매체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한다. 적절히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읽기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읽기를 양손잡이 읽기라고 이름한다.

 

하지만 양손잡이 읽기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책을 통한 읽기다. 책을 통해서는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저는 이 세상을 사랑할 새로운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읽습니다. 또한 이 세상을 뒤로 한 채 저의 상상 너머, 저의 지식과 인생 경험 밖에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읽습니다. (160쪽)

 

읽기 회로의 발달 정도는 천차만별일 수 있지요. 그것은 개별 아동의 특성, 읽기 지도의 유형, 지원 매체 (우리의 논의에서 결정적인, 읽기 매체의 유형)에 좌우됩니다. 여기에 매체의 특성이나 행동유도성까지 읽기 회로의  발달에 영향을 끼칩니다. (167쪽)

 

읽기의 첫 경험에 따라다니는 첫 번째 특징은 물질성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반복이지요. (203쪽)

 

아이들이 책을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는 것은 뇌신경에 최선의 다중감각적, 언어적 연결이 구축되도록 도움을 줍니다. (204쪽)

 

두 살 이전에 아이가 경험하는 인간적인 상호접촉, 그리고 책과 인쇄물과의 물리적인 접촉은 구어와 문어, 내면화된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최선의 진입로이자 미래의 읽기 회로를 구축할 벽돌입니다. (207쪽)

 

조금 늦게 읽기를 가르치는 나라에서 읽기로 문제를 겪는 아이가 오히려 적었습니다. (238쪽)

 

깊이 읽기는 언제나 연결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아는 것을 읽는 것에, 읽는 것을 느끼는 것에, 생각하는 것은 삶의 방식에 연결짓는 것 말입니다. (245쪽)

 

입학 후 첫 몇 년 동안은 종이책과 인쇄물을 주로 사용해 읽기를 가르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258쪽)

 

"책은 나를 느려지게 하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인터넷은 나의 속도를 높입니다." (259쪽)

 

아이에게 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가르쳐주면 토끼보다는 달팽이에 가까운 속도로 자신의 생각을 탐구하도록 이끌 수 있다. (260쪽)

 

기억해야만 할 말들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책을 통한 읽기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는 현실에서 책을 통한 읽기는 많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럼에도 책을 통한 읽기를 해야하는 이유를 이 책은 과학적인 증거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책을 통한 읽기는 이 책에서 말한 대로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 천천히 서두르기, 천천히 재촉하기 - 288쪽 )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한다.

 

그래, 책읽기는 디지털 매체로 읽기를 하는 것과는 다른 장점이 있다. 그리고 우리 뇌를 읽기 뇌로 만들어 가는데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이것이 책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다시, 책으로, 그것을 저자는 집으로 돌아온다고 표현했다.

 

우리도 이렇게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책을 통한 읽기를 해야만 한다. 특히 어린아이들, 청소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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