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말이 있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자꾸 설명을 하려고 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리베카 솔닛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제목이기도 하지만, 이 용어를 솔닛이 처음으로 쓴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떤 책에선가 솔닛이 만들었다고 읽은 것도 같은데, 그것이 아니었다.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군지보다 이 용어가 쓰인다는 사실은 그만큼 남녀가 동등하게 대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심각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 글이 발표된 직후에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는데, 가끔은 내가 그 말을 만든 사람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28쪽) ... 사실 나는 그 단어의 탄생과는 관계가 없다. 현실에서 그 개념을 구현한 남자들과 더불어 내 글이 그 단어의 탄생에 영감을 좀 준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29쪽)

 

이 책 첫번째 글이 바로 이것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고. 세상에 솔닛 앞에서 솔닛이 쓴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기껏 리뷰를 본 주제에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앞에서 한껏 젠 체하는 모습이라니...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군림하려는 남성의 모습이 지금껏 인류의 역사에서 흔하게 벌어진 일이다.

 

의식하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말하는 남성들이 태반이었던 현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여성들은 언어를 만들어내고 그 언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언어가 생기니 비로소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는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가정폭력, 부부강간, 데이트강간 등등 인지하지 못했던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고 처벌하는 풍토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직도 미진하긴 하지만. 강간문화라는 말이 이 현실을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지. 반드시 우리가 없애야 할 문화 아니겠는가.

 

수많은 여성들이 당했던 폭력... 지금도 암묵적으로 이런 폭력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을 범죄라고 분명한 언어로 말하지 못하면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 폭력은 바로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솔닛이 말하는 폭력은 바로 이렇다.

 

폭력은 타인을 침묵시키고, 타인의 목소리와 신뢰성을 부정하고, 내게 타인이 존재할 권리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한 방법이다. (18-19쪽)

 

어디서 여자가? 이런 말을 하는 남성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바로 폭력이다. 이 말을 어디서 어린 것이? 라는 말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또한 어디서 외국인이? 어디서 장애인이? 어디서 동성애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역시 폭력이다.

 

이런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그 사라짐을 추구하는 운동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하여 페미니즘은 결코 여성만의 운동이 아니다. 모든 배제되는 사람들의 운동이어야 한다. 아니 배제하든, 배제되든 모든 사람들의 운동이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잘 살아갈 수가 있다. 솔닛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 성별로 인한 또는 젠더로 인한 차별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페미니즘은 인간 세상 전체를 바꾸려는 노력이다. (221쪽)

인종주의와 마찬가지로, 여성 혐오는 피해자들만 나서서는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이 점을 이해한 남자들은 페미니즘이 남성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계략이 아니라 모두를 해방시키는 운동이라는 점도 이해한다. (225쪽) 

 

이렇게 이야기 한 다음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구속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단지 성(性)에 따른 차별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게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우리가 해방되어야 할 구속은 또 있다. 경쟁과 냉혹함과 단기적 사고와 가혹한 개인주의를 높이 사는 체제, 환경파괴와 무제한 소비를 너무나 잘 뒷받침하는 체제, 한마디로 자본주의라고 불러도 무방한 체제이다. 이런 체제는 최악의 마초성을 현실로 구현하고, 지구에 존재하는 최선의 것들을 파괴한다.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이런 체제에 좀더 잘 적응하긴 하지만, 이 체제는 사실 둘 중 어느 쪽에도 진정으로 유익하지 않다. (225-226쪽)

 

그러니 페미니즘을 편협하게 보지 말자. 물론 당장은 불편할 수 있다. 인권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규제하게 되듯이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다른 성(性)들이 보인다.

 

여전히 그 길이 멀지만... 솔닛은 그 길을 이렇게 말한다.

 

여기 그 길이 있다. 천 마일은 될지도 모르는 기나긴 길이다. 이 길을 가는 여성은 채 1마일도 걷지 못했다. 그녀가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냐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되돌아오진 않으리란 것은 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걷지 않는다. 수많은 남자, 여자 들, 그보다 더 흥미로운 다양한 젠더의 사람들이 함께할지 모른다. (227쪽)

 

이렇게 이 책은 함께 살아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한 번 내디딘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언어로 말해지는 많은 운동들, 그것들은 계속 전진할 것이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 아니 우주적 존재들이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2-30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0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칼잡이들의 이야기 보르헤스 전집 4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외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르헤스 하면 환상적인 소설을 떠올리는데, 이 소설은 환상보다는 사실에 가깝다고, 그것도 라틴아메리카 현대사를 소설에 반영하고 있다.

 

읽다 보면 라틴아메리카의 현대사가 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독립전쟁뿐만이 아니라, 독립을 이룬 다음에도 연방주의와 중앙집중주의로 나뉘어 또 서로 싸우고, 독재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고통을 받아왔음도 알 수 있다.

 

역사책을 읽지 않아도 이 소설집을 읽다보면 그러한 사실들을 알 수 있는데, 제목을 '칼잡이들의 이야기'라고 붙인 것이 이해가 된다.

 

칼잡이들은 칼을 써야 한다. 쓰지 않고 이기는 칼잡이가 진정한 고수라고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칼잡이들은 칼을 쓴다. 소설에서 결투 장면이 많이 나오고, 칼을 통해서 상대를 죽이는 일들이 다반사다.

 

이 중에 '마가복음'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소설을 읽으면 보르헤스가 사실주의적인 소설을 쓰더라도 환상적인 요소들을 제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글을 모르는 가족들에게 마가복음을 읽어주는데, 노아의 방주 부분과 지내고 있는 곳에 홍수가 나는 것, 그리고 그들은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가 모두를 용서해준다는 말을 듣고 대들보를 뜯어 십자가를 만들어내는 것.

 

카르카의 '유형지에서'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 소설인데, 종교가 무엇인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결투를 하거나 사람을 죽이면서도 그것을 가지고 내기를 하는 그런 인물들을 만나면서 '칼잡이'라는 말에서 우리나라 '검사'를 떠올리기도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야말로 불한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교양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은 그냥 자신들이 할 일을 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동물을 죽이는 것만큼 쉽게 한다. 그런 칼잡이들이다.

 

반면 우리나라 검사들은 교양인이다. 지성으로 무장한, 세속적인 칼은 쓰지 않는 엘리트 집단이다. 이들과 소설 속 인물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말이 된단 생각이 든다.

 

검사(劍士)와 검사(檢事). 한자로야 다르게 표기되지만 한글로는 같지 않나. 하는 일이 비슷하지 않나. 칼로 사람을 베는 것이나 언어라는 판결로 사람을 베는 것이나. 말이 칼이 되기도 하니, 劍士나 檢事나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장기가 사람을 베는 것 아니겠는가. 벤다는 의미는 그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는 것일 테니 보르헤스가 진짜 칼잡이들을 통해서 라틴아메리카 현대사를 구현해 냈다면, 우리나라 검사들이 지내온 한국 현대사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나만의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검사들이 劍士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이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교황도 배출했다. 아직도 혼란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여 이상하게도 보르헤스의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칼잡이라는 말에서 검사를 떠올리게 되었으니, 우리나라도 과거에서 많이 벗어나 있을 테니... 독재가 판치던 우리나라에서 지식인들은 라틴아메리카 현대사, 혁명을 공부했었다.

 

그만큼 통하는 면이 있었을 것이고, 환상적인 소설로 잘 알려진 보르헤스가 그런 라틴아메리카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소설로 표현하기도 했음을 이 소설집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인수 시집 '적막 소리'를 읽다.

 

적막이라면 소리가 없어야 하는데, 적막이 소리를 낸다. 적막은 이미 자신의 내부에 소리를 지니고 있고, 그것이 넘쳐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제목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집 곳곳에 나오는 죽음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시집에 늙어감과 죽음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시인이 이편보다는 저편을 자꾸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게 한다. 시인도 이제는 세상의 이편보다는 저편이 더 가까운가 싶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인생 한 바퀴를 돌고 더 가고 있는 시인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우리는 죽음을 한사코 외면하려 한다. 장례식장이 들어온다고 하면 결사반대를 하고, 장례식장에 결사반대라는 말, 죽음을 무릅쓴다, 죽음을 치르는 곳에서 죽음도 받아들일 정도로 싸움을 하겠다, 이런 형용모순인 투쟁을 하고, 화장장을 혐오시설로 치부하는 나라에서 시집 도처에 나오는 죽음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모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고, 아니면 바니타스, 헛되고 헛되다는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그림의 주제들이 이 시집에 되살아난 느낌이다.

 

'적막 소리'와 어울리게 망자가 말을 하기도 한다. 산 자에게...(사별, 그녀가 들은 말 - 94쪽) 그리고 망자에게 절을 올리는 사람들을 또다른 무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르르 몰려나가는 무덤들 - 32쪽)

이렇게 우리는 죽음과 늘 함께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시인은 그런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리 우리가 부정해도 늘 죽음과 함께 있다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그것이 어쩌면 성숙이라고.

 

'수박 먹는 가족'이라는 시를 보자. 이게 바로 우리 삶이다.

 

수박 먹는 가족

 

  고분군과 인접해 사는 이곳 불로동 사람들은 오히려 담담하다.

  이 오랜 죽음에 대해 별 관심 없다. 다만 여름밤이면 웅성웅성 뭔가 둥글게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지, 이 집 가족들

  만삭 같은 수박을 쪼갠다. 수박 세로줄 무늬가 줄줄이 시퍼렇게 살아나는 밤,

  저 여러 봉분들도 잘라 전부 뒤집어놓고 싶은 밤, 그 수박 속 다 파먹으면 일가족이 타고도 남을 커다란 배가 되겠다. 일가족을 모두 두고 혼자 떠나온 먼 항해,

  뒤집어쓰고 누운 것이 저 봉분들 속 독거다. 바리깡으로, 이 수박 물결무늬로, 최신식으로 얼룩덜룩 벌초해드릴까보다. 참말로 달고 시원한 맛,

  살아 아는 건지 죽어 아는 건지……껍질 안쪽에

  붉게 발린 기억은 별 내용이 없고 다만 수박 먹는 밤,

  흰 달빛 또한 고분군 위에 식칼처럼 환한 밤, 不老,

  불로동 사람들도 예외 없이 늙어가고, 고분군 쪽으로 운동 가고,

 

문인수, 적막 소리. 창비. 2012년. 초판 2쇄. 86쪽. 

 

시가 쉼표로 끝난다. 마침표가 아니다.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죽어간다. 이 시집에서 죽음을 많이 다룬 것은 바로 삶을 다루는 것이다. 둘은 떼어놓을 수 없으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2-26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6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세현의 사진의 모험 - 대한민국이 사랑한 사진가 조세현이 전하는 찍사의 기술 혹은 예술가의 시선
조세현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과 그림이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점을 이 책의 후반부에서 발견하고 기뻤다. 그래, 예술은 모두 통하지, 꼭 그림과 사진만이겠는가? 사진과 그림이 시각예술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면, 음악과 사진은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닐 수 있고, 시와 사진은 또다른 점에서 비슷하다.

 

예술은 서로 통할 수밖에 없다. 바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사람들을 감싸안아주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그림을 보면서도 또 시를 읽으면서도, 연극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경험을 한다. 그만큼 예술은 우리들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책은 사진가 조세현이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책이다. 자신이 어떻게 사진가가 되었는지, 어린시절 처음으로 필름을 주웠던 일에서부터 대학을 사진학과로 가게 된 일, 그리고 여러 유명인들과 사진을 찍게 된 일들과 그밖에 사진의 다른 여러 면들을 쉽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래서 쉽게 읽을 수 있고, 덤으로 조세현이 찍은 사진도 볼 수 있다. 화려한 칼라보다는 흑백사진을 좋아한다는 그. 그가 흑백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사진을 잘 볼 줄은 모르지만 나는 흑백사진에서 어떤 깊이와 편안함을 느꼈었다.

 

그 점을 조세현은 '흑백에는 이야기가 있다. 직설이 아닌 은유라서 좋다. ...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흑백사진을 통해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예술과의 공통점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바로 이렇게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새겨둘 만한 구절이다.

 

  쉽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을 닮은 사진과 음악은 형제이다.

  사진의 또 다른 형제는 시다. 영혼이 자유로운 시인과 사진가는 서로 닮았다.  ... 사진은 시처럼 간결하고 감각적이다. (193-194쪽에서)

 

요즘은 사진을 누구나 따 찍을 수 있다.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 그래서 조세현은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찾는다. 아름다운 것을 찍으려 한다.

 

이렇게 사진 찍기가 일상이 되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가 사진을 통해서 유명인들만을 찍지 않고 고아와 같이 어려운 환경이 있는 사람들도 찍는 이유는 단지 사진 속에 그들을 가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진을 통해 그들이 좀더 밝은 곳으로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사진 강의를 하고 그들로 하여금 사진을 찍게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고,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사진 강의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방송을 통해서 보기는 했지만, 이 책에서 그들이 어떻게 사진을 찍는지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고, 사진을 통해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모습을 알게 돼 좋았다.

 

이런 저런 사진에 얽힌 이야기들이 나와 사진 초보인 내게도 읽을 만하다고 생각되었으니, 사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더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조세현이 말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곳곳에는 시가 쓰여 있고, 그 시만큼 많은 사진들이 있으니, 사진, 우리가 멀리하려고 해도 멀리할 수 없는 존재이니 사진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듯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2-24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5 0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 - 페미니즘이 발견한 그림 속 진실
조이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을 볼 때 나는 어떤 관점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한 책이다. 나만의 관점이란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내 관점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알고 보니 알게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거나 또는 사회적으로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 것들을 내면화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세계 명작이라는 작품들을 보면서, 물론 실제로 보지 못하고 책을 통해서 보지만, 그것들을 보면서도 그림 속에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기존에 알려진 것만 보지 않았는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본 것은 아닌지.

 

표지 그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 얼핏 보면 여성의 누드에 뱀이 나온다. 누굴까? 모르고 있었는데, 이책을 읽다보면 이 여성이 릴리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여성이라고 하는데, 주체적인 여성이라고 한다. 어떤 신화에서는 아담의 첫번째 부인인데, 아담이 주도하는 생활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떠난 사람이라고 한다. 그만큼 당당한 존재. 뱀은 무엇인가? 지금은 사탄의 상징이 되었지만, 태고에는 신성한 존재를 의미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인간의 원죄를 생각하지 않나? 그만큼 뱀과 여성은 원죄와 연결짓는 일이 많았다. 성경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지만, 동양에서도 뱀은 신성하기보다는 인간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존재로 많이 나오니.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 여성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 여성일까?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림에서조차도 여성을 남성을 위한 존재로 소비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이 책은 다양한 시각에서 그림을 보게 해주는데, 특히 여성의 관점에서 그림이나 조각들을 보게 만든다. 남성의 시각에서 아름답다 또는 아름답지 않다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를 책의 뒷부분에 가면 더 잘 알게 된다.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식으로 굴레를 벗어나려 했는지, 미술에서도 남성들의 시각에서 벗어나려 했는지를 특히 5장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미술을 보는데 한 가지 시각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시각이 필요한데, 작가가 작품을 창조했을 때도 작가에게 영향을 준 사회-문화-정치-경제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 다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준 제반 요소들도 무시할 수 없다.

 

책에 나온 것 가운데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남성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점을 반성하게 했던 장면이 있다.

 

베르니니의 작품인 '아폴론과 다프네'

 

에로스 화살의 영향이라고 아폴론은 사랑에 빠지고 다프네는 아폴론에게서 벗어나려 하고, 결국 다프네는 나무로 변했는데, 그 나뭇잎으로 관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주었다는,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수여한다는 월계관에 얽힌 신화.

 

아폴론 처지에서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로 변했으니 그 사랑을 간직하고자 나뭇잎으로 관을 만들겠지만, 죽어도 아폴론에게서 벗어나려 했던 다프네 처지에서는, 죽어서도 아폴론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얼마나 폭력인가? 단순히 조각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여성에게 가해진 수많은 폭력을 생각하면서 이 조각을 볼 수도 있다는 것.

 

이렇게 서술하는 책은 남성의 폭력이 미술에서 얼마나 많이 나타났는지를,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명작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을 보는 새로운 시각 하나를 더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들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현대미술에서 전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예술들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런 사회적 편견, 사회적 억압을 까발리고 뒤집기 위해서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은 첫부분부터 심상치 않게 전개된다. 사람들에게 명작 중 명작으로 인정받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모 마리아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펴보면서 여성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서 고대 조각들 중에서 남성들의 조각은 나체로, 그것도 성기를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는 상태로 만들면서도 여성들은 그렇지 못했음을 생각하라고, 그것이 우리가 지나온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페미니즘' 하면 경기나 광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마치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을 잡아먹기라고 하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남성을 적대시 하기만 하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이 또 다른 성이 함께 서로를 인정하고 살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특정 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다름이 그냥 다름인 사회, 그 다름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 그래서 탈코르셋이든 코르셋이든 별다른 갈등없이 선택할 수 있는, 남성도, 여성도 또다른 성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참고로 이 책에서 새로운 사실, 그렇게 표면에 보이는 것에 갇혀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글이 있었는데, 그 글은 마릴린 먼로(나는 마릴린 먼로라는 이름이 친숙한데, 이 책에서는 메릴린 먼로라고 표기한다)에 대한 것.

 

남성의 시선에 자신을 맞춘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백치미의 원조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먼로가 얼마나 주체적으로 살려고 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남성 시선에 갇힌 것이 아니라 '대본을 먼저 보고 그 역할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요구를 관철시킨 담대한 배우였다(245-246쪽)고 한다.

 

최근에 살았던 배우에게서도 남성들이 알려고 한 것들만 많이 알려져 있었던 것이 현실이라면 이보다 더 먼 과거의 일들은 더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작품을 볼 때 다양한 관점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 우리 삶에도 하나가 아니라 다양성이 있음을,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