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울어도 되는 밤
헨 킴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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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울한 나날들.

 

마음 편하게 책을 읽을 수도 없는 상황.

 

이때 헨 킴이 낸 책을 읽다. 읽다라고 표현보다는 보다라는 표현이 더 좋은 책이다.

 

그래, 본다. 후루룩 넘겨보면서 봐도 좋고, 한 그림 한 그림 천천히 봐도 좋고, 그림과 함께 있는 글을 읽으며 의미를 곰곰 생각해 봐도 좋다.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구성된 그림.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자극 받을 일이 없다. 대신 검은색과 흰색. 그 대비를 통해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그냥 울어도 되는 밤이 아니라 '실컷'이다. 실컷 울어도 좋은 밤이다. 그렇게 책을 보며 맘 속으로 침잠해도 된다.

 

한 그림을 보며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그렇게 읽을 수 있는, 볼 수 있는,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지금처럼 우울할 때 헨 킴의 책을 보며 책 속에 빠져보자.

 

우울함을 잠시 잊고... 깊게... 조용히.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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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일들에 제약이 있다.

 

   전국에서 벌어지는 꽃축제들도 취소가 되었고, 식목일 행사도 예전처럼 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하나 더, 4.3제주민중항쟁에 대한 행사 역시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 역사에서 아픈 상처로 남은 일이 감염병으로 인해 주목을 받지 않고 넘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잊혀져 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잊혀져서는 안 될 일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 역사에서 제주 4.3은 잊혀져서는 안 될 일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하고, 반복되게 해서는 안 된다.

 

아주 오래 전에 [녹두서평]이라는 무크지에 실렸던 시가 '한라산'이다. 그 때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잘 모르고 있던 일이었고, 감춰진 진실이라고 해야 하나, 이를 시 형식으로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

 

여기에 노래로도 불렸다. 소위 민중가요라고 하는 '잠들지 않는 남도'(지금 검색해 보면 안치환이 작사작곡했고, 당시에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불렀다)가 있었다. 지금은 공식적으로 기념식도 하지만, 한때 제주 4.3을 문학작품으로 표현해도 잡혀가는 시절이 있었다.

 

현기영이 '순이 삼촌'이란 소설을 쓰고 겪은 고통은 잘 알려져 있는데, 그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이산하 역시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가 겪은 고통의 강도는 현기영이 겪은 것과 다르지 않은데, 다만 그가 좀 덜 알려진 시인이라는 것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시를 읽으면 4.3을 개관할 수 있다. 서사시의 장점이 바로 그것 아니겠는가. 줄거리가 있고, 사건이 있고, 인물이 있는 것. 그러니 시집을 읽으면 되는데...

 

이 개정판 시집에는 꼭 읽어야 할 글이 있다. 시뿐만 아니라 '저자 후기'를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도 이번 국회의원 선거 전에 읽으면 더 좋을 글이 있다. 아주 유명한 사람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 국가에서도 인정하는 공식 행사가 된 4.3을 어떻게 해서든 용공으로 엮어 처벌하려고 했던 사람들... 그런 국가기관.

 

그들만이 아니다. 당시 지식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이 시집 뒤에 잘 나와 있다. 씁쓸하다. 그렇지만 똑바로 대면해야 한다. 그런 부끄러운 일들이 있었음을.

 

시인 이산하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간 일만이 아니다. 오히려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으리라.

 

다시는 그런 고통을 사람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데... 저자 후기 제목이 '언제나 진실만 말해야 하는 고통'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참 고통스런 일이다. 왜냐하면 믿었던 사람을 비판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할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실을 말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시인 이산하는 그래서 저자 후기에서 '한라산' 시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글을 읽는 것이 시를 읽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4.3과 비슷한 진실이 여기에 담겨져 있으니.

 

4.3과 관련된 책과 영화가 있다. 한번쯤 읽고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라는 요즘. 소설과 시를 읽고 영화를 보면서 역사를 인식하는 마음의 거리 좁히기를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시) 이산하, 한라산  

(소설) 현기영, 순이 삼촌, 지상에 숟가락 하나, 다랑쉬 오름의 슬픈 노래

(그림) 강요배, 동백꽃 지다

(영화) 지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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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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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소설이 등장해 사건을 끌어나간다. 소설과 소설 속 소설이 구분이 되지 않게 전개된다. 읽는 독자는 굳이 둘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소설 속 소설은 주인공을 행동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추리물이라고 해도 좋고 공포물이라고 해도 좋은 작품이다. 사건의 결말을 알려주지만, 그래서 독자는 이미 그 결말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 그 과정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작품을 끝까지 읽지 않으면.

 

이게 묘미다. 사건은 이미 벌어졌다. 그런데 결정적인 것이 빠졌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 그리고 어떻게에 대한 답.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나와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는 집착이요, 하나는 공포다.

 

사람을 잡아채는 집요한 감정. 한번 말려들면 빠져나오기 힘든 감정이 바로 집착과 공포다.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 다른 두 감정에 휩싸여 있고,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수렁으로 빠져들어간다. 그 수렁 끝에 무엇을 만날지... 생각할 수 없다.

 

생각이 작동하지 않는 감정 상태. 그것이 집착과 공포다. 그런데 집착은 있는 사람, 센 사람이 할 때 무섭다.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상대를 무한정 괴롭히게 된다. 자신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집착을 정당화 한다.

 

잘못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집착하는 상대를 없애지 않으면 없다.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다. 이게 강자가 집착할 때 당하는 약자들의 모습이다.

 

공포는 주로 약자에게 다가온다. 겉으로 강해보일지라도 속으로 약한 사람에게 이 공포는 쉽게 자리잡는다. 그에게 자리잡은 공포는 약자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자신도 자신의 몸을 통제하지 못하게 한다.

 

집착과 공포가 맞섰다면...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집착을 이길 수가 없다. 그런데 공포를 벗어나는 길이 있다. 유일한 길.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때는 공포가 작동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할 틈도 없다.

 

집착은 결과까지 계산한다. 철저하다. 그리고 집요하다. 무섭다. 자신만이 존재하고, 나머지 존재들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명령대로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정해야 한다. 자신의 뜻에 맞게.

 

이렇게 집착은 사랑도 소유하려 한다. 나를 상대에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나에게만 맞추려고 한다. 이런 집착은 사랑을 죽음으로 이끈다. 파멸로 이끈다.

 

이때 누군가가 자신의 소유물을 (?짜증나는 표현이다.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는 없는데...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절대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집착에 빠진 인간들이다) 건드렸을 때 참지 못한다. 제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분노로 표출된다. 같은 방식으로 복수를 해야 한다.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공포... 이성적인 행동을 가로막는 그 무엇. 하지만 이 공포는 극복될 수 있다. 극복해야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공포에서 사랑은 상대에게 나를 맞추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위해서 자신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다. 이렇게 소설은 집착과 공포, 두 축을 중심으로 네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이 전개된다.

 

긴박한 내용 전개. 추리를 필요로 하는 사건들. 결말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다. 집착에는 돈의 힘을 가진 영제가 있고, 공포에는 육체적인 능력은 탁월하나 소심한 현수가 있다.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며 우리를 소설 한복판으로 이끌어 가는 승환이 있고, 사건의 핵심 연결고리가 되는 서원이 있다.

 

그리고 소설은 주인공 서원의 관점에서 시작에서 서원의 관점으로 끝난다. 나머지 사건들은 소설을 읽으며 채워나가면 된다. 집착과 공포 사이. 같은 사랑이라도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소설을 읽어가면서 알게 된다.

 

사건을 풀어가는 작가의 솜씨가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한번에 주욱 읽게 되는, 흥미로운 소설이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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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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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쓴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이다. 우리나라에 번역이 된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좋은 책이다.

 

좋은 글은 오래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거꾸로 해도 좋다. 오래 살아남은 글은 좋은 글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래 살아남을 수가 없다.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를 비판하는 글을 읽고 오웰이 쓴 글에 나오는 말.

 

'궁극적으론 문학작품의 가치를 판별하는 기준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느냐 말고는 없다. 생존이야말로 그 자체로 다수 의견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지표인 것이다.' (352-353쪽)

 

어떤 작품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기 전에 그 작품이 얼마나 오래 우리 곁에 있었는지를 먼저 보아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많은 비판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살아남은 책은 무언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찾으려 해야 한다. 아마도 그런 책들은 우리 마음을 울리는 무엇인가가 있다. 이 말에 따라서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를 비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오웰은 주장한다.

 

그러면 이 기준을 오웰에 적용해 보자. 그는 좋은 작품을 쓴 작가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가 쓴 작품 중에 지금까지 읽히고 있는 작품으로 [동물농장], [1984], 그리고 [카탈로니아 찬가]가 있다.

 

그래서 이들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오웰을 대단한 작가라고 여긴다. 지금까지도 이 세 작품은 꾸준히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들과 마찬가지로 저널리스트로서의 오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 제목이 된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도 실려 있지만 한편 한편 조지 오웰의 인생과 관련지어 읽을 수 있어서 좋다. 그가 버마에서 생활할 때 어떤 느낌으로 어떻게 지냈는지를 초기 글에서 알 수 있고, 그 다음에는 스페인 내전에 참가해 느꼈던 점들도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통해 알 수 있고, 더불어 그가 전체주의에 대해 얼마나 비판적인지를 알 수 있다.

 

전체주의에 대한 반대, 그것이 [동물농장, 1984] 같은 작품을 낳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체주의에 대한 반대는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온몸으로 겪게 된 결과일 수도 있다.

 

오웰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들은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글을 쓴다고, 또 써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정치적인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는 글쓰기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팜플렛이지 예술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던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294쪽)

 

지난 10년을 통들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나는 앉아서 책을 쓸 때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겠다고'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글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297쪽)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300쪽)

 

글은 작가의 생각을 대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정치적이지 않다는 말, 그런 글을 쓴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오웰의 말,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글쓰기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또 예술적으로 잘 형상화되었는가를 따져야 한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이 오래 살아남는다. 좋은 작품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수많은 작품들이 나왔다 사라졌다. 당대에는 큰 인기를 끈 작품도 있었다. 반대로 당대에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한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떤 작품은 꾸준히 읽히고, 어떤 작품은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져 간다.

 

적어도 오웰은 지금도 읽히는 책을 썼다. 좋은 작품을 쓴 작가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글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인간 오웰을 알 수 있는 책이기에 더 좋다. '정말, 정말 좋았지'라는 글을 보면 반어적인 표현인데, 그의 학창시절을 엿볼 수 있다. 그의 학창시절을 통해서 교육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왜 쓰는가. 무언가를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쓴다. 그런데 왜 쓰는가 만큼 중요한 것이 어떻게 쓰는가일 것이다. 예술 작품에서는. 오웰은 그런 점에서 성공한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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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의 계보
노윤선 지음 / 글항아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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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갈등이 심하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단지 정치 · 경제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에서도 많은 갈등이 있다. 경제나 정치만큼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제는 일본에 오고가는 것도 힘들어지고 있는 정도니.

 

[혐한의 계보]를 읽으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혐한이 최근에 발생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혐한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라고 하는데, 벌써 30년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 혐한이라고 해봤자 극우에 해당하는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것이 아니다. 일본 사회에 깊숙히 혐한 감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것이 자신들이 살기 힘들어질 때 노골적으로 드러날 뿐이지, 일본 사람들 내면에는 혐한 감정이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혐한이라는 단어가 없었을 뿐이지, 조선인들에 대한 악감정, 또 탄압들이 있었음을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으니.

 

그러니 요즘 혐한 시위에서 말하는 '좋은 한국인, 나쁜 한국인 모두 몰아내자'는 구호가 나오는 것이겠지. 한국이라는 범주만이 중요하지 개인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혐한 감정이 내면화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영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서. 이 책에서 분석하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보면 이들의 혐한 감정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혐한을 표방하는 작품들이 몇백 만부씩 팔리고 있다고 하는데... 문학은 알게 모르게 의식 속에 스며들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이성으로 제어하기 보다는 감정이 먼저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문학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문학을 다루고 있는 것은 그래서 더 타당하고, 혐한 감정에 대해서 우리가 직시하는데 도움을 준다. 단지 미워하는 것이 혐한은 아니다. 우리도 일본을 미워하지만 일본사람들 죽이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반일과 혐일을 구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살기 힘들어지면 비이성적인 면이 부각되고, 상대적으로 적대할 존재를 만들려고 하는데, 일본에게는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우리나라가 아닌가 싶다. 두 가지 면에서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니...

 

하나는 영토 문제다. 독도. 그리고 위안부나 징용공들에 대한 보상.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이제는 교과서에까지 명시를 한다고 한다.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교과서가 어떤 책인가.

 

전국민이 한번씩은 거의 암기하다시피 읽어야 하는 책 아닌가. 그런 책에 버젓이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하고,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명시하면 대다수 일본 청소년들은 한국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다. 이런 반감들이 쌓이고 쌓이면 혐한으로 흐르게 된다.

 

여기에 위안부나 징용공 문제, 자신들은 충분히 사과했다고, 그런데도 한국이 계속 떼쓴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왔다고 한다. 정치인들부터 시작해서 몇몇 언론, 일본인들이 많이 보는 만화에서까지. 자연스레 사람들 의식 속으로 한국은 떼장이, 일본은 그에 시달리는 나라라는 생각이 스며든다고 한다.

 

반성 없는 역사 속에서 일본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역사를 정당한 역사로 받아들이고 주변 국가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잃어가게 된다. 게다가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 자연스레 원망은 밖으로 향하게 된다. 정치권이 바라는 방향이기도 하고.

 

혐오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정말 무서운 일이지만 실제로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때는 5단계까지 갔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도 거의 4단계까지 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레빈의 증오의 피라미드라고 한다는데...

 

이 증오의 피라미드는 첫 번째 단계를 선입견에 의한 행위 prejudiced attitudes(농담, 적대감 표명, 배려 없는 발언, 배제적 언어), 두 번째 단계는 편견에 의한 행위 acts of prejudice  (비인간화, 비웃음, 사회적 회피, 비방 중상, 의도적 차별 표현), 세 번째 단계는 차별행위 discrimination (주거·교육·취업 차별, 사회적 배제, 괴롭힘), 네 번째 단계는 폭력 행위 violence (폭행, 협박, 방화, 테러, 기물파손, 모독죄, 강간, 살인), 마지막 단계는 제노사이드 genocide (의도적 · 제도적 민족 말살)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인 선입견과 편견에 의한 행위는 비형사적 행위이며, 세 번째 단계인 차별행위는 민사적 행위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단계인 폭력과 제노사이드 행위는 형사적 행위로 분류하고 있다. (117쪽)

 

지금 혐한은 네 번째 단계까지 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최근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끊임없이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차별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인데...

 

무서운 것은 일본인들이 보는 신문에서, 잡지에서 이런 혐한이 걸러지지 않고 나온다는 것. 특히 대중매체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일본인들 의식에 침투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특정 정치인들이 불을 지펴서 혐한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혐오표현 방지법을 만들기도 했다지만 처벌 조항이 미미해서 별 실효성이 없으며, 카운터스라고 해서 혐오표현 반대 시위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이들 역시 대세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일본과 교류가 끊어지고 서로 장벽을 쌓고 있으니 더욱 혐한 감정이 심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혐한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꽤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그리고 이러한 혐한 감정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음을, 또 이것을 이용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혐한의 계보를 추적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나아갔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긴 일본이 해야 할 일이지 우리가 혐한 감정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역사 자료만이 아니라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 일본인들이 지금 지닌 혐한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알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인을 알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은 해결책을 찾겠다는 것이니, 혐한을 우리가 인식하고 그 심각성을 느끼는 것은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니까.

 

그 혐한 감정이 하루이틀에 쌓인 것이 아님을 이 책이 잘 보여주고 있으니, 해결과정은 더 지난하겠지만 그래도 그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임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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