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이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7
헤르만 헤세 지음, 김누리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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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 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있다면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토록 많은 종교가 있지도 않을 것이고.

 

사람이라는 존재를 요소로 분해할 수 없듯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유나 살아가는 방식을 이거다라고 명확하게 분리해서 말할 수가 없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실시되어 인간 유전자 지도가 어느 정도 밝혀졌다고 하지만 인간을 유전자들로 이야기할 수 없듯이, 우리들은 다양한 요소들이 단순히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결합하면서 또다른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헤세 작품이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 [황야의 이리]는 좀 낯설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지와 사랑], [유리알 유희]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람 안에 있는 이성과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아주 단순화 시키면 인간이 이성을 대표한다면 이리는 본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성장하면서 내 안에 있는 이리를 억누르고 길들인다.

 

그래서 자신의 본능과 이성이 충돌하기도 하지만, 본능에 따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리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도덕적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을 이성과 본능으로 양자택일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인간이란 이성만으로도, 또 본능만으로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을 스펙트럼 상에 놓고 보면 맨 오른쪽에 이성을 놓고, 맨 왼쪽에 본능을 놓는다면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지점들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인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 자신이 두 부류가 아니라 수백 수천의 부류로 구성되어 있음을, 그래서 어느 하나로만 규정해서는 안 됨을.

 

불합리한 시대에 이성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힘들고 그렇다고 본능에 충실한 삶만을 추구하기도 힘든 시대. 그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존재가 현대인이라면, 불합리한 현실에 대응하는 우리 인간의 모습은 소설 속에 나타났듯이 웃을 수 있는 인간이다.

 

웃음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한다. 웃음은 그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침잠하지 않고 현실을 비껴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웃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지만 웃을 수 있는 인간.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인간은 강한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야 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이다. 소설 속 하리 할러는 이성이 강한 삶을 살던 인간이었지만, 그는 점차 자신을 괴롭히고 있던 황야의 이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하게 된다. 이성과 본능. 황야의 이리는 억눌러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고 살아왔던 그에게 본능의 힘을 일깨워주는 존재가 나타난다.

 

헤르미네. 본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여인. 그에게서 하리는 자신을 본다. 그리고 헤르미네에 이끌려 본능의 세계에, 세속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가 비판해 마지 않았던 세계에서 그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만 머물 수는 없다. 우리들 삶이 그렇다. 이성만이, 본능만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우리가 영원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현실에 거리를 두고 웃을 수 있는 인간. 즉 현실을 받아들이되 그것에 자신을 완전히 넘기지 않는 인간이다.

 

수많은 자신들의 조합으로 현실을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는 존재. 그런 깨달음을 얻으면 그때부터는 이성과 본능이 양자택일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 둘과 그 사이에 있는 다양한 것들이 바로 자신임을,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임을 하리 할러를 통해 헤세는 보여주고 있다.

 

지식인 사회에 속해 있던 하리 할러가 비판해 마지 않았던 세속의 세계 속에 발을 들여놓고, 억눌렀던 욕망들을 들여다보고, 이 현실에서 자신이 살아가야 함을, 그 현실을 웃음으로써 극복해 나갈 수 있음을, 그래서 자신 속의 황야의 이리와 함께 살아가야 함을 깨달아 가는 과정, 그 과정을 '수기'라는 형식을 통한 소설을 통해 우리도 함께 가고 있다.

 

소설은 하리 할러의 수기라는 제목 밑에 '미친 사람만 볼 것'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아놓고 있다. 그리고 할러가 들어가는 마술 극장은 미친 사람만 입장 가능하고 입장료로 이성을 지불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미친다는 것, 수많은 자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자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현실이 변하지 않는 고정된 하나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겹쳐져 있는 곳임을 깨닫는 사람, 그래서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지만 그 고통도 웃음으로 떨쳐낼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소설 도입부에 편집자의 말에서 (이것 역시 소설의 일부다. 소설을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장치인 것이다) 하리 할러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소설을 통해서 이런 하리 할러를 만나고, 그 할러가 우리들 중 한 사람임을 인식하게 된다.

 

  할러는 두 시대 사이에 끼여 있는 자였고, 일체의 안정감과 순수함을 상실한 자였다. 인간의 삶이 지닌 모든 문제를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과 지옥으로 승화시켜 체험하는 것 - 이것이 그의 숙명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의 수기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미는 바로 이 점에 있다. (36쪽)

 

자, 할러의 수기를 따라가 보자. 나는 어떤 존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내 안에 있는 이리를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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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명료한 시다. 시에 숨겨져 있는 함축적 의미들을 찾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감정을 거의 직설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히 직설적이지는 않다.

 

  소위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런 존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 객관적 상관물이 지닌 의미를 너무도 쉽게 알아챌 수가 있다.

 

  그래, 어려울 필요가 없다. 그런데 좀 아쉽다. 시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것. 또는 말을 줄임으로써 더 많은 말을 하는 것이라면, '난 네가 좋아'라는 말을 직설적으로 내어보이기보다는 다른 표현을 통해서 제 감정을 드러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읽기 쉬운 시는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올 수 있다. 시가 너무 무거우면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가뜩이나 삶이 무거운데 시까지 무거우면 그냥 쓰러져 버릴 수도 있다.

 

시를 읽으며 마음이 충만해져 오히려 더 가벼워진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시인의 감성이 잘 드러나 있는 시들. 아버지에 대한, 형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들도 많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다양하게 드러낸 시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 한 시. '어른이 된다는 건'을 인용하고 싶어졌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상처를 입어도

모른 척 덮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

 

곯은 상처가 끝내 터져

아픔에 신음해도

다른 사람들도 버티고 산다며

끝내 외면하는 일

 

철이 든다는 것이

아플 때 소리 내지 말라는 의미란 걸

진작 알았더라면

 

난 좀 더 늦게 철이 들었을 텐데

 

김지훈, 아버지도 나를 슬퍼했다. 꿈공장. 2019년. 55쪽.

 

자신의 아픔을 감내할 수 있을 때 그때 어른이 된다. 그게 어른이다. 자신의 아픔을 참아낸다는 것, 그것은 다른 존재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고, 내가 세계의 일부임을 깨닫게 될 때 어른이 된다.

 

하여 나만이 아니라 남들을 볼 수 있는, 남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되는 존재, 그것이 어른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힘듦을 감내한다는 얘기니까.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생물학적인 성장이 아니다. 정신적인 성숙이다. 그게 바로 어른이다.

 

그런 어른이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국민들을 대변하겠다고 나온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보라. 그들은 자신이 입은 조그마한 상처에도 과장된 신음, 비명을 내지른다. 그러고는 남들이 받은 상처를 모르쇠한다.

 

아니 다른 사람의 상처를 들쑤시기도 한다. 그래 놓고 자신들이 선량(選良)이 되겠다고 한다. 전혀 양호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이 시를 읽히고 싶다. '어른이 된다는 건' 바로 이런 거라고.

 

당신들은 어른이 아니라고. 육체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자신의 몸에 입혔다고 어른이 아니라고. 어른은 이렇게 자신의 아픔을 참아내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것을 보듬어줄 수 있는 존재라고. 그게 어른이라고. 그런 사람이 우리 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어른을 만나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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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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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존재들에 대한 깊은 통찰. 글로 쓴 사진이란 책을 읽으며 이렇게 주의 깊게 주변을 보는 모습에 감탄한다.

 

그것도 주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가면서,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글로 남겼다.

 

처음에 이 책 제목을 들었을 때 사진이 하나 있고, 그 사진에 관한 글이 펼쳐질 줄 알았다. 글로 쓴 사진이란 제목을 그렇게 받아들였는데, 굳이 사진이 있을 필요가 없다.

 

읽으면서 장면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것도 칼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흑백으로 떠오른다. 흑백, 무언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색조다.

 

존 버거의 글이 그런 흑백 사진을 연상시키고, 우리들 삶에서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보다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자기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글을 읽다가 아, 이런 의미로 이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지하철 역에 있는 횟대 같은 의자였다.

 

유모차의 여인이란 글에 나오는 말인데 우리나라 서울 지하철 7호선에서 보게 된 의자 비슷한 것,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글이었다.

 

런던 지하철역에 새로운 설비가 들어섰다. 승객이 앉아서 기다리던 벤치들을 없애고 대신 비스듬히 서서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일종의 횟대 모양의 버팀대를 설치한 것이다. 노숙자들이 더 이상 벤치에 누워 잠들 수 없도록 한 탁월한 구상이었다. (34쪽)

 

설마 우리나라도? 그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은 공원 벤치를 구획한 칸막이가 도처에 있는데, 이것이 노숙자들이 누워 잠들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노숙자들의 건강을 염려해서? 아니면 도시의 미관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해도 자꾸만 아닌 쪽으로 가는 이유는?

 

내가 그냥 지나쳐가던 것에 대해서도 존 버거는 주의 깊게 살핀다. 그것도 주류가 되지 못한 또는 주류가 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래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세상은 단 하나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니.

 

이 책에서 또 한 구절을 인용하고 싶어진다. 우리들 얼굴. 그 얼굴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면.. 물론 사람 나이 40정도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이븐 알 아라비(이슬람 신비주의자)가 했다는 말인데..

 

"내게는 이제까지 살았고 앞으로 살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아담의 때로부터 세상 끝날 때까지의 얼굴이, 또렷이 보인다." (113쪽)

 

우리 얼굴에 이렇게 인류의 얼굴이 겹쳐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그 얼굴이 바로 자신임을, 그냥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함부로 행동할 수 있겠는지... 버거의 글을 읽으며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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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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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정상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정상이라는 개념보다는 언어다. 바로 그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언어가 그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언어라는 것. 그래서 공자도 정명(正名)이라고 해서 올바른 이름을 써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경쟁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 경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에 빠짐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없는 사회를 상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는 독일은 열번(텐샷10 Shot)의 기회가 있는 사회인데 우리나라는 한번(원샷 1Shot)의 기회만 있는 사회라는 말이 나온다.

 

한번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우월감을, 한번의 경쟁에서 진 사람은 좌절감을... 세상에 어렸을 때 한번 본 시험으로 일생이 결정되는 그런 승자독식사회라니... 경쟁을 내면화 하고 소비중심사회로 가면서 인권 감수성은 부재하고, 권위주의가 판치는 사회가 되었다고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있는데...

 

진단은 명쾌하다. 우리가 봐야 할 거울도 제시하고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에도 단점이 많지만, 그래서 고쳐야 할 점도 많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 처지에서는 배워야 할 점이 더 많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거쳤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우리를 약소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김누리 교수가 우리는 큰나라라고 하는 것에 놀랐다. 이렇게 우리나라를 모르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30-50클럽'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도 처음 들어봤는데...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가 5천만 명 이상인 나라들을 '30-50 클럽' 국가라고 부른다고 한다. (25쪽 참조) 세계에 단 일곱 나라만이 있다고 하는데,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우리나라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2019년에 이 그룹에 들어갔다고 하니, 큰나라라고 할 수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자꾸만 약한 나라, 작은 나라라고 해서 과감한 정책을 펼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움츠리기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인 김누리는 이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충분히 독일과 같은 정책을 펼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역사적으로는 우리는 68혁명을 겪지 못했고, 정치인들은 보수와 수구의 양대 구조로만 독식되어 있으며 분단으로 인한 냉전체제를 들 수 있다고 한다.

 

독일 총리인 메르켈이 독일정치 지형에서 보수에 해당하는데 메르켈의 정책을 우리나라 정치에 대입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보다도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말, 민주당은 메르켈 정책에서 보면 보수에서도 심한 보수에 해당한다는 말.

 

우리나라 국회는 이러한 수구와 보수가 90%를 넘는다는, 한마디로 독식되어 있다는, 그래서 복지정책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다. 또한 이러한 국회의 모습과 더불어 이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대표성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세대 대표성입니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불과 0.6퍼센트가 대의되고 있다고 (97쪽), 또 세대 대표성 못지 않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 직능 대표성입니다라고 (97쪽) 하고 있다.

 

결국 국회는 전문성이라는 이름만 앞세우고 정작 대의해야 할 국민들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이것이 정상적인 모습인 양 착각하고 지내왔다는 것. 독일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우리는 준연동형, 그것도 심하게 왜곡된 선거 형태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으니. 

 

읽으면서 명쾌한 진단에 놀랄 때가 많다. 그리고 이렇게 현실을 직시해야지만 고칠 수 있음을,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상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불행 속에 빠져 그 불행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 불행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

 

불행이 당연하지 않고 우리 역시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그런 거울이 바로 앞에 있지 않냐고, 거울을 보라고. 그리고 자신을 보라고. 행동하라고.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 또 경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라고.

 

하여 저자 김누리는 진보란 정치적 좌우 개념을 넘어서 보다 넓은 의미에서 '고통과 억압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정의(137쪽)한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진보다. 고통과 억압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 그런 정책들. 그들을 보듬어 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정당들. 그런 정당이 바로 진보다. 말만 앞세우는 사람, 정당들이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질문을 하자. 한국 남성으로 권위적인 학교 교육을 받고, 3년이라는 기간을 군대에 다녀온 김누리의 질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12년 동안 교육을 받고, 3년 동안 군대를 갔다 온 저 같은 남성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게 가능한가? 제 경험으로는 불가능합니다.(139쪽)

 

이 말을 부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슨 소리냐고? 교육은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고, 군대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의무 활동인데 그런 과정을 거친 사람이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냐고?

 

여기서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게 불가능하다는 답은, 학교에서 몸에 익힌 권위주의, 경쟁,승자독식 등과 군대에서 익힌 병영문화 -상명하복이라는 절대 복종, 일사분란을 강조하는 전체주의 등-가 몸에 밴 사람이 인권감수성을 지니고 강한 자아를 지니면서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로 해석을 할 수 있다.

 

자연스레 몸에 배어야 할 인권감수성,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 등을 의식적으로 다시 익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왜곡되어 있다는 말인데, 단지 비판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비판이다.

 

불행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으로 교육개혁을 해야 하고, 남북간에 평화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 여기에 생활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이것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또 그런 사례를 우리는 독일에서 볼 수 있다는 것. 그 사례를 참조해서 우리 현실에 맞게 적용해서 우리 후손들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미룰 수 없다. 그러기엔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 너무 크다.

 

이 책은 그 점을 깨우쳐 주고 있다. 제목을 반복하자.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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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0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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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0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험이 배움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냥 스쳐지나가는 해봤다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이번 호에서 말하고 있다.

 

  무엇을 하라고 하면 그것 해봤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긴 온갖 체험학습을 학교에서 또 학교 밖에서 숱하게 했으니, 이들에게 해보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요즘은 학기 중에도 체험학습을 할 수 있어서 해외여행까지 갔다오는 경우가 많으니, 그야말로 해보지 않은 것이 거의 없는 아이들도 많다. 체험의 과잉이다. 그런데 그 체험이 배움으로 전이된 경우가, 또 몸으로 하는 활동으로 익혀진 경우가 얼마나 될까.

 

어쩌면 그 많은 체험들은 진학을 위한 발판 정도에 머물지 않았을까? 자신의 몸에 들어와 배는 것이 아니라 생활기록부 상에만 남는 그런 체험들. 행동이 아니라 글자로 남는, 증명서로만 남는 체험 활동.

 

이런 체험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것이 이번 호다. 그래,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했다. 학교에 들어온 수많은 활동들 중에 과연 배움에 해당하는 것이 얼마나 될까? 배움이 아니라 교육이고, 교육이라기보다는 진학을 위한 스펙쌓기에 불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봉사활동도 점수가 되고 출석도 점수가 되고 다양한 활동은 자기주도적 학습이라고 또 점수처럼 인정이 되니, 체험은 몸에 각인되기 보다 생활기록부라는 이름을 가진 종이에 (종이라기보다는 사이트 또는 서버라고 해야 하나) 기록되는 행위가 되고 만다.

 

그런 체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움이 일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배움이 일까? 14쪽에 이렇게 경험과 체험을 정리한 글이 인용되어 있다.

 

경험이 우리가 세계와 교류하면서 나에게 생긴 일을 의미한다면, 체험은 우리가 세계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살면서 내가 겪는 일'을 의미한다. -고영직, [삶의 시간을 잇는 문화예술교육]. 살림터

 

진정한 교육 경험이 "우리가 세계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살면서 내가 겪는 일'을 의미"한다면 그 교육의 현장은 바로 우리 아이들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허윤희, 오늘을 배우는 아이들. 14쪽)고 한다.

 

자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진정한 교육 경험을 하게 할 순간에 직면해 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처음으로 겪는 개학 연기. 개학이 연기되는 일보다 더한 경험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들은 이것을 체험했다. 그것도 몇 번이나.

 

이번에는 개학이다. 학교에 등교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개학. 일명 온라인 개학이라고 한다. 사상 초유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 변화를 아이들은 온몸으로 겪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은 세계와 만났다. 이 만남에서 다양한 일들을 겪게 될 것이다. 상황은 같지만 겪는 모습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렇게 겪은 이 순간이 아이들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인지, 아니 이 온라인 개학을 어떻게 여기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주어진 체험이 아닌 스스로 하는 체험이 된다.

 

아마도 어른들은 예전의 경험을 그대로 갖다 붙일 것이다. 온라인 개학이라는 새로운 경험 앞에 그들은 과거의 경험을 도입할 것이다. 학교 교육의 형식이 바뀌었는데 내용은 예전 것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다.

 

과거 학교 교육과정을 그대로 복사해서 온라인 교육과정에 붙이기를 할 것이다. 새로운 일을 새로운 방식으로 추진하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복사하기-붙이기, 일명 '복-붙'의 천재들. 기성세대들. 아이들은 이와 다를 것이다. 그들에게는 아직 복사할 그 무엇이 없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번 일로 진정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경험이 배움이 되려면' 이것이 이번 호의 주제다. 그렇다. 수많은 경험들, 스쳐지나가는 경험들이 아니라 몸에 배는 그런 경험들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호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너무도 쉽게 말했던 것이 다른 존재에게는 상처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게 한 글. 홍승은, 아픈 몸이 건네는 질문.

 

너무도 당연하게 아무 생각없이 '건강이 최고야'라고 말했던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준 글이다. 태생적으로 약한 사람, 앓고 있어서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에게 상황에 따라 이 말은 그 사람들을 배제하는 말로 전이될 수도 있다는 것.

 

아픈 몸을 인간 실격으로 판정하는 사회에는 다양한 몸의 서사가 필요하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덕담처럼 퍼지는 사회에서 어딘가 어긋난 몸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는 삶이 하나의 이력서가 아니며, 생산성을 위주로 '인간의 조건'을 따져선 안 된다는 권리 선언이기도 하다. (143쪽)

 

물론 건강은 최고다. 그런데 이 말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능력이 없는 존재로 치부하고 차별하는 의미를 지니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더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하면 된다'라는 말처럼... 이 말도 상황에 맞지 않게 쓰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 글이다.

 

하나 더 첨부하면 우리나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선거 교육을 하지 못하게 했었는데, 지금 상태에서는 하라고 해도 못하게 되었지만, 교육청에서 하겠다는 것을 불법이라고 했다고 들었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학교에서 중요하게 선거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

 

강민정, 민주시민을 위한 선거교육

 

이 글 읽어볼 만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선거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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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20-04-09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확실성 시대에 경험이 배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 될 책(
잡지)으로 보이네요. 학교 고서실 소장 도서로 주문넣고 싶어요. 정성어린 리뷰 발 봤습니다.

kinye91 2020-04-09 11: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교육 또는 배움에 관해서 다양한 관점을 지니게 하는 격월간지라고 생각해요. 학교 도서실에 있으면 좋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