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서 캐낸 술 이야기 - 재미있는 주사
박일환 지음 / 달아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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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주요 국어사전은 두 개다.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참조하기 쉽고, 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전들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언어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전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늘 우리나라 사전에 대해서 아쉬움을 지니고 있었다. 사전을 혼내는, 혼낸다기보다는 사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책들도 썼는데, 사전 편찬자들이 받아들여야 할 지적들이 많다. 이 책도 사전에서 찾은 술에 관한 내용들이지만, 우리나라 사전이 고쳐야 할 방향 역시 제시하고 있다.


사전, 말모이라고 하는, 그 나라 어휘들의 종합 아니던가. 그 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을 모아놓은, 단지 어휘들이 아니라, 그 어휘들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 경제, 정치 등등 생활 전반을 알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 바로 사전이다. 그러니 사전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력을 기울여 만들어야 할 그 나라의 보물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사전에 과연 얼마만한 공력을 기울였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실 가장 먼저 참조해야 하는 책이 사전이고, 또 마지막으로 정리할 때도 보아야 할 책이 사전인데, 보완할 점이 한둘이 아니니,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전에 애정을 지니고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좀더 나은 사전이 되리라는 희망을 지닌다.


이 책은 술에 관한 말들을 사전에서 찾아 우리에게 정리해주고 있다. 단지 술에 관한 낱말 모음이 아니다. 술에 관련된 사람, 일화, 유래 등등 단지 사전에만 있는 사실을 간추려 전달해주고 있지 않다.


사전에 나와 있는 말을 중심으로 부족한 점은 보충하고, 잘못된 점음 바로잡고, 또 그 말과 관련된 다른 사실들을 찾아 정리해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술에 관한 어휘뿐만이 아니라 술의 역사, 술에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다. 여기에 술에 관한 정책도 알게 되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주령'같은 경우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금주령'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이 말이 당연히 사전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도. 다만 '우리말샘'에는 있다. 주금령이라는 말은 있는데...


이렇게 사전이 현실 언어 생활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저자의 지적이 타당하다. 이런 일은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이 책은 이렇게 '금주령'이란 어휘로 끝나지 않는다. 사전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시행이 되었으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등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니 술에 관한 어휘로 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총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서 서술되어 있는데, 술꾼들을 표현하는 말을 중심으로 하는 1부와 술, 특히 소주의 세계를 알려주는 2부, 옛날 술들의 세계로 안내해 주는 3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4부, 그리고 술을 둘러싼 세계라고 해서 술의 예절, 문화, 정책 등을 5부에서 살펴보고 있다.


세계에서 술 소비량으로 따지면 순위권에 드는 우리나라. 다양한 술과 다양한 술 이름, 그리고 술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까지 넘쳐나는 우리 사회인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사전에 실린 술과 관련된 단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어서 '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술이 우리에게 술술 넘어가듯이, 이 책 역시 술술 읽히는, 읽는 맛도 좋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술을 경계하라 끝내고 있는데, 그 말을 주계(戒) 또는 주고(誥)라고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주고란 말도 사전에 실리지 않았다고 하니, 이런 말은 꼭 실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 나온 세종의 주고가 있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세종 역시 술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금주령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경계하는 글을 써서 널리 알렸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길어서 링크를 걸어둔다. 읽어보면 술에 관한 책에서 술을 경계하라!로 끝맺음을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적당해야 가장 좋은 것이 술이니...


조선왕조실록 (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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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2-04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어사전을 들여다보고 싶은 맘이 들게 하는 책이네요!
우리 국어사전 진짜 문제 많죠.. A단어의 풀이가 B라서, B를 찾아보면 A라고 나와 있는...ㅠㅠ

kinye91 2021-02-04 14:09   좋아요 1 | URL
맞아요. 국어사전에서 낱말 찾다가 계속 낱말 여행한 적도 있어요. 붕붕툐툐님 말처럼 찾다찾다 보니 처음 낱말인 경우도 있고요. 국어사전 중요하니 이런 책처럼 하는 비판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마야콥스키, 나는 마야코프스키로 알고 있던 사람. 러시아 이름이 길기도 하지만, 풀어서 쓰기도 하고 붙여서 쓰기도 하니, 어떤 글을 읽었느냐에 따라 사람 이름이 약간은 달라지기도 한다.


  마야콥스키 하면 러시아 미래파 시인이라는 기억만 남아 있다. 그의 시를 읽은 적도 없고. 우리나라에서 카프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용이 되기도 했다는 기억은 있는데...


  중고서점에서 그의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이제는 소련도 해체되고,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는 거대한 실험을 하는 나라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고, 그에 따라 사회주의를 주요 내용으로 삼던 문학가들도 문학사에서 하나둘 이름이 지워지기 시작했는데...


  왜 마야콥스키인가? 그냥 단순히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까? 아님,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꼈을까? 사회주의 혁명을 열렬히 찬양했던 시인이 사회주의 국가가 실현되자 자살을 한다? 이런 모순된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하는 호기심.


그러다 이 선집을 읽으며 마야콥스키가 사회주의 국가 소련에서 견딜 수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선집에 실린 시 중에 그런 생각을 강하게 하는 시들이 있다. 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 어떻게 혁명 이후 사회에서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그 시들 제목을 들면 회의광(1922년), 관료주의(1922년), 수뢰자(1926년), 관료주의자의 공장(1926년), 자아비판에 대한 비판(1928년), 아첨꾼(1928년)이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때부터 나타난 현상. 혁명의 배반. 그것은 혁명의 지속, 또는 혁명의 유지라는 이름을 걸고 나타난다. 마야콥스키는 그 점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시를 통해서. 


그는 러시아 혁명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뒤로, 뒤로 복고로 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렇게 보았기에 이런 시들을 썼을 것이다.


혁명은 순식간에 전 사회를 뒤집는다. 그런데 뒤집은 다음이 문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그냥 과거를 뒤집을 뿐이다. 그러니 혁명을 이룬 사람들은 초조해 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혁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고, 자칫하면 혁명은 실패하고, 혁명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만이 혁명을 완수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아첨꾼을 낳고, 관료주의를 낳는다. 오로지 회의를 통해서 결정하려고 하는 회의광들이 생기게 되고, 자아비판이 무슨 만능인 것처럼 판치게 된다. 마야콥스키는 그 점을 보았다. 그래서 시를 통해 이렇게 변해가는 사회가 과거 사회와 어떻게 다른지를 꼬집고 있다.


혁명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는 참 힘들다. 그래서 마야콥스키가 쓴 시는 지금도 유효하다.


혁명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전 정권과 다른 정권이 집권했을 때 그들이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전철을 밟는 모습이 너무도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집권한 정당, 또 사람은 더욱 어려운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길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길에 나타날 수 잇는 장애들이 무엇인지, 마야콥스키의 시를 통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마야콥스키의 시가 지금도 유효한 것이다. 한 시대만을 대표하고, 그 시대로 끝나는 시가 아닌, 우리들 삶에서 반복되기 쉬운 점들을 시로 표현하여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선집에 실린 비록 마야콥스키와 실제로 대담한 것은 아니지만, 가상 대담이 실려 있다. 번역한 이가 여러 책을 참조해서 마야콥스키의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마야콥스키의 이름을 빌려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마지막에 나온 말.


그래서 마야콥스키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말...


'나의 유토피아는 숨 막히는 완전 사회에 대한 꿈이 아니며, 독일의 철학자 블로흐가 주장한 것처럼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지향입니다. 여기 번역된 나의 시가 지금의 한국 독자들에게는 '언젠가 그 안에 담겨 있었을 진정성과 절실함은 휘발되어버리고 단지 우스꽝스러운 기표로만 남겨진' 시대착오적인 구호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믿고 있습니다.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시도 문학도 새로운 힘과 사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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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2-04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완전 강렬해요! 따귀 얼얼한 느낌!!ㅎㅎ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EBS CLASS ⓔ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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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구할 수 없는 것이 없다. 그런데 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모든 것을 구하게 하는 자본주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돈이 없다면?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돈이 없으면 모든 것이 없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넘침이 곧 행복은 아니다. 이 넘침에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돈이라는 조건.


자, 돈이 없어도 얻을 수 있는, 넘쳐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 질문을 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모든 것을 돈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이 질문을 뒤집으면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것이 있을까가 된다.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것, 돈이 없어도 구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


이 책의 제목은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이다. 책 뒷부분으로 가면 사랑과 아끼다를 함께 쓰고 있다. 사랑 애(愛) 자에는 아낀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284쪽). 그렇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을 아껴주겠다는 말을 하니, 사랑과 아낀다는 말은 함께 쓰이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 공기의 사랑'이라는 앞 제목에는 이미 아낀다는 말이 들어 있는 것이다. 한 공기라는 말이 사랑을 꾸며주는 데서 찾을 수가 있다. 사랑을 주는데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주는 것, 그것이 바로 '한 공기'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를 아끼는 행위이다. 상대가 부족하지도 않게 하고, 또 물리지도 않게 하는 행위. '한 공기'에 담겨 있는 사랑이다.


뒷제목인 '아낌의 인문학'은 이 용어를 빌리면 '사랑의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학문이 인문학이라면 인문학은 당연히 사랑이어야 하고, 사랑은 아낌이니, 아낌의 인문학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인문학이 지닌 효용에 대해서 잘 들어오지 않는 사람을 위해 우리가 몸으로 인식할 수 있는 '한 공기의 사랑'을 앞에 둔 것이다. 그렇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한 공기의 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 힘을 주는 그런 역할.


책은 총 8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강은 다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번째 부분은 김선우 시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시는 그 자체로 인문학이다. 하여 이 책에서는 김선우의 시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참고로 김선우 시집 '녹턴'에서 시를 인용했다고 한다.


시로 시작한 강의는 두번째 부분에서 부처(불교)로 넘어간다. 그렇다고 불경 강의냐 하면 그것이 아니다. 부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들이 삶을 행복하게, 사랑이 찬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손가락일 뿐이다. 그러니 부처에 대한 이야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부처의 이야기가 가리키는, 또 가르치는 쪽을 보아야 한다. 따라서 부처와 더불어 동양의 사상가들, 서양의 여러 철학자들도 언급되고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자연스럽게 세번째 부분으로 넘어간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이야기한다. 이론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앎과 실천이 함께 하는 철학자의 말하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렇게 세 부분이 합쳐져 한 강의를 이룬다.  


강의는 8강으로 나뉘어 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하나다. 우리 사랑하는 삶을 살자고. 서로 아끼면서 살자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이 있으니 그것들을 실천하자고.


한 강 한 강 읽어나가면서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나만으로 존재하지 않으니. 단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모든 존재를 아껴야 한다는 것. 모든 존재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 그래서 내가 아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고, 돈이 없어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아껴줄 때 세상은 더 살 만해질 것이다.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이 책은 우리 삶에 한 공기의 밥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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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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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데 거의 의식하지 않고 지낼 때가 행복할까? 아니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될 때가 행복할까?


이런 사람과의 관계를 공기와 사람의 관계로 치환할 수 있을까? 우리가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지 못하듯이, 공기는 우리 곁에 늘 있기 때문에 희박해지지 않는 한 의식하지 못한다. 그냥 내 삶의 일부일 뿐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좋을 때는 의식하지 못한다. 그냥 내 삶일 뿐이다. 내 삶일 뿐인 관계에서 그 사람이 문득 내게 의식이 되는 순간, 거리가 생긴다. 거리로 인해서 의식을 하게 되고, 의식이 점점 강해지면 의심으로 나아가게 된다.


단순하게 도식으로 나타내면 '의식-의심->갈등->파탄'으로 가는 길과 '의식->의심->갈등->해소'로 가는 길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서 평생 상대를 의식 안 할 수는 없다. 사랑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사랑이란 행위가 생각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면 사랑은 이미 의식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나 이외의 존재를 의식하고, 그 존재와 잘 관계맺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런 의식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그때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결실을 맺은 사랑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영원히 지속되기 위해서는 의식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있나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의식이 의심으로, 의심이 결국 파탄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고, 파탄으로 나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의심을 묻어버리는 일도 많다.


이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작품들이 상대방을 의식하는데서 나아가 의심으로, 결국은 관계의 파탄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황정은이 쓴 '상류엔 맹금류' 최은미가 쓴 '창 너머 겨울' 손보미 '산책'이 그런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상대를 의식하면서 관계가 파탄으로 치닫는 그런 소설들. 이 소설들에서는 함께 하지만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무언가 관계가 자꾸만 어긋나는 듯한 모습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상대를 존중하고 받아들인가고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일 뿐이다. 이들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자신의 내면에서 담을 쌓고 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그러면서 상대가 모든 것을 보여주길 원한다. 세 소설 중에서 특히 손보미의 '산책'이 그런 느낌을 준다. 


반면에 조해진이 쓴 '빛의 호위' 윤이형의 '쿤의 여행' 최은영이 쓴 '쇼코의 미소'는 상대를 의식하지만 그 상대로 인해서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렇다. 상대는 내 삶을 피폐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내 삶을 돌아보며 새로운 삶을,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세 소설은 읽으면 새로운 삶에 대해 두려움보다는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기준영의 '이상한 정열'은 그럼에도 삶은 지속된다는 것을, 우리의 일상에서는 이러한 의식으로 인한 파탄도, 또 해결도 함께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이번 소설집에서는 관계의 두 방향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한 쪽면만 나타날 수는 없기에, 우리들 삶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이번 작품집이다.


다만,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게 나만의 철옹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세계에 다른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다. 


함께 하되 다른 삶을, 다르되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장소를 내 삶에 마련하는 것. 거기에 성공하면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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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01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통해서 소설을 읽는 좋은 시각을 배웠네요! 잘 배우고 갑니다. 즐거운 한주 되십시요!

kinye91 2021-02-01 10:5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막시무스 님, 좋은 한주 되십시오.
 

  컨택트, 언컨택트, 언택트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나 보다. 우리는 직접 만남에서 소리를 통한 만남으로, 그 다음에는 소리가 아닌 문자를 통한 만남, 그것도 아닌 그냥 비대면이라고 하는, 서로가 접촉을 하지도 않고 물건을 통해서만 만나게 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서 배달음식들도 이제는 용기를 회수해 가지 않는다. 배달하는 사람들도 그 업소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특정 플랫폼에 소속되어 있으니, 어떤 물건을 통해서 우리는 소속감을 느낄 수도 없다.


  그냥 문자로 신청하고, 내게 온 물건을 소비하면 끝이다. 그 물건을 만든 장소가 어디인지, 누가 배달했는지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비대면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없다. 그냥 물건들만 돌아다닐 뿐이다.


함성호 시집에서 '자장면은 전화선을 타고 온다'는 시를 읽고 이 시가 지금 우리 현실을 앞서 경험했다는 생각을 했다. 


자장면은 전화선을 타고 온다


자장면 왔습니다

자장면집 배달원이 자장면을 가지고 왔다

거기 놓으세요

가장 어린 직원이 신문지를 편다

야근을 자장면 먹듯이 하는 때

우리는 둘러앉아 자장면을 먹는다

만 사천 원입니다

덤으로 튀김만두도 가져온 배달원은

빈 철가방을 들고 나갔다

우리는 자장면을 먹으며

자장면집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생각했다

어느 집이나 다쿠앙의 맛은 다 비슷하고

배달 오토바이의 종류도 다 비슷하다


우리는 자장면을 먹으며

비닐 랩이 없던 시절에도 국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그 초절 기교의 배달원들을 생각했다

그때도 자장면집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장면을 다 먹고 빈 그릇을 복도에 내놓으면

언제 와서 가져가는지 모르는

과연 그 자장면집은 어디인가?

전화를 걸어

"자장면"

하면, 오는

말이 이루어지는


함성호, 너무 아름다운 병. 문학과지성사. 2010년 초판 4쇄. 54-55쪽.


이 시 역시 언택트라고 하는 비대면의 상황을 말해준다. 자장면집이 어디인가? 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이 물음은 자장면집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비대면의 시대를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비대면의 시대와는 다른 점이 이들은 함께 모여 자장면을 먹는다. 지금은 자장면을 시켜도 함께 먹을 수 없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바꿔놓은 풍습이다. 여기에 배달원은 자장면집 소속이 아니다. 그리고 그릇을 이제는 가져가지 않는다. 


더더욱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어디를 가도 '셀프'라는 이름으로 '키오스크'라고도 하는 기계 앞에서 사람과 만나지 않고 일을 처리하게 된다. 그런 시대가 되었다. 물건들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사용이 되고 나면 이제는 재활용품이 되거나 쓰레기가 된다.


그렇게 시대가 변했다. '말이 이루어지는'이라고 했는데, 이때 말은 그래도 사람의 실체를 어느 정도 담고는 있다. 지금은 말도 아니다. '앱'을 통해 다 해결하게 된다. 


20년 전에 쓰인 이 시를 읽으며 지금 시대를 생각하게 되니, 앞으로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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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0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0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