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 - 아스카.나라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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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아스카, 나라 답사기다. 가보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는 곳. 이곳에는 우리나라 백제 사람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그를 도래인 문화라고 한단다.

 

넘어온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이룩한 문화. 문화라는 것이 한 나라에만 고정되어 있지 않는다. 사람을 통해 문화는 옮겨간다. 교류가 일어난다. 문화의 우열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는 그렇게 흐름이고 변화다. 그런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것, 답사의 즐거움일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문화유산을 읽을 능력이 없다. 더 엄밀히 말한다면 볼 능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보는 것은 아니다. 보인다는 것과 본다는 것은 수동이냐 능동이냐를 넘어서 내가 얼마나 그 문화유산에 다가가느냐에 달려 있다.

 

알면 알수록 더 잘 볼 수 있을 텐데, 보는 경지를 넘어 즐기는 경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을 보고, 또 공부해야 할까? 하지만 공부라면 벌써 어떤 장벽이 생긴다는 느낌을 받으니, 공부를 제쳐주고, 자주 보아야 한다. 자꾸 보아야 한다. 자꾸 보다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책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한번 읽었을 때 이해되지 않았던 내용이 두번, 세번 읽다보면 어느 새 내용이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던가. 문화유산도 그렇다. 자꾸, 자주, 그리고 오래동안 보아야 한다.

 

그런데 외국여행을 하면 자꾸, 자주, 오래동안 보기가 힘들다. 요즘은 한 도시에 한 달 머무는 여행도 많이들 한다지만, 그것은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고, 대다수는 며칠만에 한 도시를 여행한다. 그러니 문화유산도 그야말로 일별할 뿐.

 

일본 아스카 지방이나 나라에 가본 적이 없는 나에게 이 책은 이 지역을 여행한다는 느낌을 준다. 답사기라기보다는 여행기로 읽는다. 그것도 일본의 고대사를 어느 정도 알게 되는 여행기. 그러니까 이 책은 내가 일본 여행, 나라, 아스카를 답사하는 답사기로 읽기보다는 나중에 그곳에 갈 때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되는 여행기로 읽는다. 그러니 이 책은 나에게 일본 문화를 자꾸, 자주, 오래동안 볼 수 있는 시발점이 된다.

 

재미있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사이가 매우 안 좋아졌지만, 그것이 언제까지고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일본 문화가 존재하듯이, 일본에서도 우리 문화가 존재한다. 그러한 우리 문화에 대해서 유홍준은 민족적 선입견 없이 소개하고 있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답사기를 쓰고 있다. 이 답사기에는 주로 절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하긴 동아시아 고대 문화에서 불교를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테니. 사찰이야말로 고대 문화가 응집된 결정체 아니겠는가. 하여 많은 절들이 언급되는데, 그 중에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운 절도 나온다.

 

법륭사. 흥덕사, 동대사, 약사사, 당초제사가 주로 다루고 있는 절이고, 이 절들의 건축, 절에 있는 문화재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들이 도래인 문화에서 당나라 문화를 받아들이고, 일본 고유의 문화로 정착해 가는 과정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일본 절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시내에 있다. 평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사람들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물론 일본 절도 메이지 유신 때 벌어진 폐불훼석 사건으로 많이 파괴되었다고 하는데, 이데올로기에 의해 문화재를 파괴하는 일들이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우리가 이룩한 문화를 파괴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아스카, 나라 시대의 문화유산에 대해서, 또 사람들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일본 여행을 할 때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다.

 

아마도 아스카, 나라에 간다면 이 책을 읽고 간 것과 읽지 않고 간 것이 큰 차이를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만 보고 다 봤다고 나오는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르지 않도록 동대사 부분에서 삼월당을 설명할 때 절절하게 강조하고 있다.

 

3권은 교토다. 우리나라도 치면 경주에 해당하는 교토. 유홍준과 함께 다음에는 그곳으로 간다.

 

덧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쇼토쿠 태자의 태자당에 대한 이야기 중에

 

태자당이라고도 불리는 현재의 성령전은 160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지시로 복원된 것이다. (33쪽)

 

이렇게 되어 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8년에 죽었는데, 어떻게 1603년에 지시를 내리지?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니라 그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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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 규슈 빛은 한반도로부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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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일본편이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대중들에게 알린 것이 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였는데, 그 책에 이어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도 나왔고, 일본 문화유산 답사기도 나온 것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늘 이야기하는 일본. 지금은 사이가 너무도 좋지 않아 여행을 가기도 꺼려지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벌어지고 있고, 일본에서는 혐한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현실이라 먼 나라라고 해야만 하지만...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 역사적으로도 여러 영향을 주고받은(?)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삼국시대 이전에는 아주 가까운 나라였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백제 편에서 나당연합군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는 사실, 그런 유적이 일본에 남아 있다는 것을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으니, 더욱 가까워야 할 나라가 더 멀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너무 가까워서 서로를 인정하면 자신이 낮아질까 두려움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는데, 가깝기 때문에 먼 나라에 준 피해에 비해 더 많은 피해를 주기도 했는데, 그 피해가 쌍방이라기보다는 일방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일방이었던 피해와 가해 관계에서 가해 편에 서 있는 나라가 진정한 반성과 참회, 그리고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관계는 좋아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반성 없이는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지금 일본이 하고 있는 일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모르쇠할 수는 없다. 일본과 우리가 한때는 매우 긴밀한 관계였다는 것까지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 수도 있다는 것. 특히 일본은 지정학적 위치상 우리나라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았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책에는 그래서 '빛은 한반도로부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일본의 문화 중에서 한반도에서 온 것이 꽤 많고, 그들 역시 그들 언어로 '도래인'이라고 부른다는 것, 그것이 바로 한반도에서 온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일본에 있는 우리의 문화를 답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 여전히 많은 우리의 문화가 있다는 것, 특히 도자기에 관해서는 일본인들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도자기의 시조라고 '도조 이삼평비'가 있다는 것. 또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켰다는 것.

 

일본 속에 남아 있는 한반도의 영향을 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일본의 '규슈'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곳도 있지만, 적어도 삼국시대 또 조선시대의 한반도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 규슈. 이 규슈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답사를 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작은 나라가 아니라 한번에 다 돌아볼 수는 없다. 게다가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여행을 하면 시간을 많이 잡아야 한다. 그럼에도 일본 여행의 장점은 가깝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제주도에 가는 것보다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쓴다면 갈 수 있는 곳이 일본이기 때문이다. 특히 규슈는 그런 일본에서도 더 가깝다고 한다.

 

근대 이전에 배로 여행을 할 때 한반도에서 먼저 닿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규슈'였을 테니, 일본 문화유산 답사로 먼저 규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유홍준 특유의 문체가 잘 드러나고 있는 답사기. 일본에 여행하기 전 이 책을 읽고 또 들고 일본 여행을 한다면 더 깊이 일본 여행을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꼭 일본에 여행 가지 않더라도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앉아서 하는, 그것도 최고의 안내자와 함께 하는 일본 여행이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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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음, 장영은 엮음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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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많이 들어본 작가다. 나혜석. 나는 그를 화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의 제목은 화가로서의 나혜석이 아니라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나혜석이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온전한 자아를 글을 통해 내보낸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림으로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지만,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기득권을 지니고 있던 존재들에게는 더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충격을 무마하기 위해 그들은 글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림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이 집중하는 것은 새롭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사생활이다. 흠집을 내기 위해, 그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조그마한 잘못을 트집잡기 시작한다.

 

본말전도가 시작된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런 주장이 나왔는지, 또 그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들이 한 말이 아무리 옳아도 시대와 불화하는 생활이 약점으로 잡혀 처절하게 무너져내리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권리와 같은 권리를 주장하는 존재들을 무너뜨린다. 논리가 아니라, 감정으로, 선동으로. 하여 그들 주장에 접근하기도 전에 이미 등을 돌리게 만든다. 나혜석도 그런 반격을 받게 된다.

 

여성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한 나혜석은 사생활로 인해 당시 주류 사회에서 내쳐지게 된다. 그가 주장한 것과 상반되는 결과를 얻기도 한다. 그렇게 나혜석은 그림이나 글로 후대 사람에게 알려지기 보다는, 남성 권력들의 이야깃거리로 남겨지게 된다.

 

프랑스 유람, 거기서 최린을 만나 불륜에 빠져 결국 이혼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우리나라 여자 화가. 이정도로. 자, 여기에는 나혜석이 무엇을 주장했고, 어떤 삶을 살고자 했는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냥 흥미거리, 또는 시대를 앞서 연애를 해서 불운한 삶을 살아간 사람 정도로만 남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나혜석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 그가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를 그의 글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 나혜석이 쓴 글을 읽고,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달랑 몇 문장으로만 기억하는 나혜석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해 보라. 자신이 이혼한 경과를 당당하게 글로 써서 발표할 수 있던 사람이 그 당시에 얼마나 되었겠는가. 나혜석은 자신이 어떻게 결혼을 했고, 또 이혼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글로 써서 세상에 공표했다. 이 책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이다. '이혼 고백장'이란 글이다. 아마도 이 글을 통해 뒷담화로서의 나혜석이 아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나혜석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글 전에 소설도 발표했다. '경희'라는 소설을 보면, 주인공 경희는 나혜석의 젊은 시절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교육, 당당하게 한 인간으로 인정받으려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물론 소설은 교육을 받은 여성이 집안일도 잘하는 것으로 표현해, 여성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남자들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자들은 공부만 하면 되지만, 여자들은 공부에다 집안일도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했던 시절이었음을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혜석은 점점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글로 써 발표한다. '모母 된 감상기'에서 나혜석은 임신과 출산이 여성을 얼마나 속박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표현한 사람,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산 사람. 어쩌면 시대를 앞서 갔기에 더욱 힘든 생을 살아야 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혜석은 글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들이 나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나혜석은 '글 쓰는 여자'가 되었을 거고, 그런 글들이 남아 씨앗이 되어 발아되어 싹을 터서 열매를 맺기에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 '경희'에 나오는 장면으로 글을 맺는다. 경희가 자각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나혜석 자신이 자신에게 한 말이리라.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

  오냐, 사람이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 하리! 산정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것도 사람이 할 것이다. 오냐, 이 팔은 무엇하자는 팔이고 이 다리는 어디 쓰자는 다리냐?

  경희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두 다리로 껑충 뛰었다.

 (소설 '경희'의 끝부분. 이 책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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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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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소설을 읽고 있는 중. [28]을 읽다. 제목이 무슨 뜻일까 생각하면서 읽는데, 단순하게 읽으면 감염병이 돌고 봉쇄된 화양이라는 도시의 28일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립된 도시에서 겪게 되는 28일.

 

작가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28은 여러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제는 <화양 28> 이었어요. 화양이라는 단어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빼기로 했어요.(웃음) ‘28’은 독자들한테 성질 나면 한번씩 이 제목을 읽어 보라는 배려라고 할까.(웃음) 그리고 2하고 8을 더하면 0이에요. 아무 것도 없는 제로 상태. 화양이라는 도시가 완전히 폐허가 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제로상황이 되는 걸 보여준다, 숫자적인 풀이는 그래요. 의학적으로도 28일은 뭘 할 수가 없는 기간이에요.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원인균을 밝혀내는 데에도 오래 걸려요. 그걸 밝혀야 백신이니 진단키트가 나오는데. 에이즈 원인 바이러스를 밝히는 데에도 4년이 걸렸어요. 그러니까 28일은 살기 위해서 투쟁하는 기간이에요. 개와 인간이 살기 위해서 투쟁하고, 공명해 가는 시간

(출처:  http://news.kyobobook.co.kr/people/writerView.ink?sntn_id=7208)

 

소설은 중후반까지 굉장한 흡입력으로 나를 이끌었다. 읽으면서 여러 사건들이, 여러 소설들이 겹쳐 떠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카뮈의 [페스트]도 떠오르고,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도 떠오르고, 우리나라 광주민주화운동도 떠오르고, 지금 전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판데믹도 떠오르고, 작가의 말에서처럼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으로 살처분을 당한 동물들도 떠오르고.

 

여러 사건들, 여러 소설들이 이 소설에 들어있고, 또 작가가 쓴 소설, [내 심장을 쏴라]에 나오는 인물도 나오기도 하고, 특이하게도 재난 상황이라면 인간 중심의 소설이라고만 생각하는데, 개가 화자로 나오기도 한다.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빨간 눈의 괴질이라는 병에서 이상하게도 반공이데올로기가 떠오르고,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격리시키는 힘이 있음도 생각하게 된다. 인수공통감염병이기 때문에 당연히 동물도 주인공이 되겠거니 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 개 '링고'는 감염병이라기보다는 개를 괴롭히는 인간들에 저항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자신이 사랑하던 개 '스타'의 죽음을 이끈 인물들에게 복수를 하는 '링고' 여기에는 인간들의 잘못으로 인해 죽어가는, 또는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에 대한 연민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도, 소위 우리가 욕을 할 때 쓰는 '개만도 못한'이라는 표현이 무색하리만큼 링고는 뚜렷한 목표와 한없는 인내심을 지니고 행동하는 개로 나온다.

 

 

인간을 부끄럽게 하는 개다. 그러니 우리가 별다른 죄책감없이 살처분을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를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한다.

 

재난이 발생했다. 원인은 모른다. 질병에 걸리면 며칠 내로 죽는다. 어떻게 감염이 되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걸리면 대부분 죽는다. 이때 가장 간단한 방법은 봉쇄다. 대체로 감염병이 창궐할 때 하는 대책이다. 더이상 외부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 그러나 갇힌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지 않는 봉쇄는 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극심한 공포 속에서 자신만은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치안은 붕괴된다. 치안이 붕괴되는 모습을 노수진이라는 간호사를 통해 잘 보여준다. 재난으로 인한 봉쇄, 대책 없는 봉쇄는 여성들에게 얼마나 고통으로 다가오는지를 노수진 간호사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눈 먼 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약탈과 강간 장면이 연상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있다. 구급대 팀장인 한기준 같은 사람.그런 사람들을 통해 재난 속에서도 사람들은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봉쇄된 화양에서 사람들은 시청에 모인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간이 시청 앞 광장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재난 상황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광주민주화 운동 때 도청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장면.

 

여기에 동물 편에 서 있는 서재형 같은 인물로 인해 동물을 무작위로 살처분하는 것이 얼마나 비인도적이고 감염병을 치유하는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언론의 문제는 김윤주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기사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지니는지, 또 한 사람의 인생을 파탄낼 수 있는지를 김윤주의 기사를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는 박동해.

 

작가는 박동해의 행동을 통해 우리가 감염병에 대처하는 방식이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있지만 후반부로 가면 사건이 단순해진다. 링고의 복수, 군인들의 발포. 이것이 끝이다.

 

감염병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정부는 어떻게 이 사태를 마무리하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보여줄 수가 없다. 그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마치 광주민주화운동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과 같이, 이 소설 역시 결말은 그렇게 미완으로 끝난다.

 

다시 생각하자. 극한의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까? 우리는 결코 고립되어 살아갈 수 없다. 재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돕는 모습을 통해 재난을 극복해갈 수 있다. 일방적인 통고나 혼란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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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리커버 특별판)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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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가 경험하기 힘든 곳이 정신병원일 것이다. 우선 정신병원 그러면 정상적이 아닌 이라는 생각부터 한다. 온전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있는 곳. 비정상이 판치는 곳. 그들에게는 권리도 제한된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그곳을 경험하기는 참 힘들다.

 

정신병원이라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쳐서 들어왔거나 들어와서 미쳤거나'라는 말이 있듯이 이곳에서는 소위 정상적이라는 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어보라. 그들도 정상인들과 똑같이 협력하기도 갈등하기도 한다. 그들이 있는 곳도 세상일 뿐이다.

 

작가는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물론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래도 정신병원이라는 곳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다. 환자로서가 아니라 환자를 지켜보는 사람의 처지에서. 아마도 그런 경험을 통해 정신병원도 사회의 일부임을 자각했으리라.

 

소설은 환자의 처지에서 쓰였다. 그럼에도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정신병원에서 하는 환자의 말. 믿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 서술자의 진술을 신뢰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특히 이 소설은 심사위원회에서 자신이 여기서 어떻게 지냈는지를 진술하는 내용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것이 감정을 이입하는데 도움이 된다.

 

소설 말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는 세상에 나오기 위해 준비를 한다. 이제 그도 당당한 존재로 자신을 인정하고 세상에서 함께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글을 쓴다. 나갈 준비로. 하지만 쓰면서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는다는 것, 자신 속에 갇혀 있는 또다른 자신을 밖으로 내보내고 그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면에서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그런 힘을 이야기가 주고 있다.

 

승민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볼펜 한 다스가 사라졌다. 노트는 열 권으로 불어났다. 그 사이 나는 무한히 자유로웠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온전히 나 자신이었다. 인생의 표면을 떠돌던 유령에게 '나'라는 형상이 부여된 것이었다. 그것이 내 안에서 나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333-334쪽)

 

이렇게 내 안에 있던 또다른 나로 인해 고통받던 나에서, 그를 또다른 나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신의 여러 모습을 확인하고 인정하게 된 것.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나'에게는 '승민'이라는 자신의 길을 가는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와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설은 정신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들끼리 맺는 관계들이 소위 정상인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그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규정짓는 것이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아무리 가두어 두려고 해도 가둘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 인간은 본래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 따라서 자유를 잃은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은 존재가 되는 것. 정신병원에서 끊임없이 말썽을 부리는 것은 그들이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승민. 그러나 자신이 글라이더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았던 기억을 버리지 못하는, 다시 한번 완전히 실명하기 전에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승민을 통해, 자신 속에 자신을 가두었던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얻게 된다.

 

승민과 함께 탈출한 다음 주인공인 '니'는 자신을 가두었던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더이상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또 왜곡하지도 않고 그 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젠 더이상 사회에서 도피할 필요가 없다.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하던 것들에게 가슴을 쫙 펴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내 심장을 쏴라" 그렇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두려움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추어진 자신을 계속 가둘 수만은 없다. 그런 자신을 대면해야 한다. 물론 두렵고 어렵겠지만 대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여 이 소설은 정신병원에 갇혀 있던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펼쳐가지만, 정신병원을 사회로 확장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나'를 바로 우리 자신으로 바꾸어서 읽으면 좋다. 우리들 삶도 이렇게 비틀려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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