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초 대나무 숲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황지영 지음, 백두리 그림 / 우리학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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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

 

우리나라 전래 동화에 의하면 마음 속에 쌓여 있던 비밀을 털어놓은 곳.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곳이 바로 '대나무 숲'이다.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고 이상은 말했다지만, 자신만의 비밀을 끝까지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그 비밀이 자신의 마음을 꽉 차지하고 있어서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여 비밀을 쏟아낼 공간으로 '대나무 숲'을 만들어 운영하지만, 비밀이란 잘못되면 다른 사건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동화)은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주요 인물은 세 명이다. 유나를 중심으로 건희와 민설이 나온다. 가장 밝은 아이인 유나에게 일이 생긴다. 그 원인은 민설이지만 민설이는 두려워서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여기에 건희가 나서서 진실을 밝히고자 하지만 일은 더욱 꼬여만 간다.

 

유나는 그날 이후로 얼굴에 흉터가 생겨서 그것이 계속 자신을 괴롭히고, 피해자인 자신이 오히려 아이들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마음 쓰이고, 민설이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유나가 다치게 되었는데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 있다. 또 학교 폭력으로 전학을 와 마음을 다잡고 지내려 했던 건희는 친해진 유나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이렇게 사건이 전개되면서 아이들이 지닌 상처들이 드러나게 된다. 부모의 이혼으로 힘들어하는 민설이. 난타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려 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고 새출발을 하려는 엄마에게 걸림돌이 될까 마음 쓰고..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건희는 새로운 출발을 하려 하지만, 그또한 친구들과 잘 어울리려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었음을, 자신이 이용당했음을 알고, 나중에 자신이 괴롭힌 아이가 마음 속에 계속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햇빛초 대나무 숲 운영자가 바로 건희 자신임을 유나에게 밝히고, 그 대나무숲으로 인해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생각에 계정을 폐쇄해 버리는데...

 

그럼에도 이 작품은 갈등이 완전히 해결이 된 상태로 끝내지 않는다. 동화들이 자칫하면 완전하게 결말을 짓는 일이 많은데, 이 작품은 결말을 열어두고 있다. 물론 행복한 결말이라는 예상을 하게 되지만, 문제는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내 문제는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음을 민설이가 직접 자신이 한 일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게 된다. 건희 역시 마찬가지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유나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계정운영자임을 밝히는 것이다.

 

문제해결이 주체가 바로 자신임을 드러내는 장면들이다. 유나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해결하는 것이다. 민설이 엄마에게 자신에게도 사과하라고 하는 장면에서, 또 민설이를 난타 연습실로 들어오게 하는 장면에서 그 점이 잘 표현되고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 작은일이 큰일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그 작은일이 더 커지기 전에 해결해야 함을 생각할 수 있다.

 

동화가 지닌 힘은, 직접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기보다는 자기 또래의 인물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요즘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기 힘들어 하고 또 형식적으로만 사귀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음을, 아이들은 누구나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함을, 친구들이 아이들 관계에서 무척 중요함을 이 작품이 잘 보여주고 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더 커지지 않을지, 또 갈등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코로나 19로 아이들까리 관계를 맺을 기회가 더 줄어들고 있다. 그것은 단지 학업성취라는 측면을 떠나서 함께 관계를 맺는 활동이 사라지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많은 고민이 있다. 그 고민은 스스로 해결해야겠지만,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관계다. 가족, 친구, 선생님(이 작품에 나오는 보건교사를 보라.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의 고민을 받아줄 뿐이다)과의 관계를 통해서 해결하는 힘을 얻게 된다.

 

이 책에서 유나, 민설, 건희는 바로 이런 관계들을 통해서 스스로 자신들의 상처를 보듬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덧글

 

출판사에 책읽기 신청을 해서 받은 책이다. 잘 읽었다. 보내준 우리학교 출판사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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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좀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과연 녹색평론 174호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김종철 선생이 돌아가시고 이 잡지가 지속될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지속된다. 아니 지속되어야만 한다. 아직도 김종철 선생이 주장했던 것들이 진행형이기 때문에. 우리들 삶이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에. 이 불안함 속에서 그래도 길을 비춰주는 빛 역할을 할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에라도.

 

  녹색평론은 이런 빛이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그런 빛. 단지 그런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따스함을 전해주는 온기 역할도 했다. 빛은 밝기와 열기를 함께 지니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도 녹색평론이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나마 위안을 삼으면서 이번 호를 읽었다. 이번 호는 김종철 선생을 추모하는 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녹색평론이 해온 일을 정리하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한 세대 넘게 녹색평론을 이끌어 오면서 우리들에게 끊임없는 죽비를 내렸던 김종철 선생에 대한 추모글을 통해 그 죽비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어른 한 분을 잃었다.

 

하지만 그 어른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녹색평론을 통해 그분이 했던 말들을 잊지 않는다면.

 

읽으면서 '꼰대와 어른'이라는 두 단어를 떠올렸다. 김종철 선생은 분명 어른이었다. 그런데 이분이 어떤 사람들에겐 꼰대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하는 불경한 생각. 이분을 꼰대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생각. 하지만 이 분을 어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에서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 

 

꼰대는 자신의 경험만을 중심으로, 오로지 자신이 옳다는 신념으로 그것을 끝없이 남에게 강요하는, 그것도 자신의 권력을 기반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정의가 김종철 선생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어른은 바로 이런 꼰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넘어 세계로, 또 타인에게로 나아가는 자세, 내 이익이 아니라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사람, 결코 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 행동함으로써 그점을 보여주는 사람. 김종철 선생은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어른이었다는 생각. 우리는 또 한분의 어른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지만, 이제 우리도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번 호였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김종철 선생을 어른으로 모시며 그분에게 배움을 요청하는 존재로만 남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 꼰대가 아니라. 그러니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할 수 있는 시야를 갖자. 자신의 틀에만 갇히지 말자. 그 점을 생각한다.

 

이번 호에서 김종철 선생에 대한 추모글도 좋았지만, 농업과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근행과 정형철의 글도 좋다. 코로나19로 농업과 교육에 대해서 근본적인 성찰을 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피상적으로만 흐르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는데, 이번 호에서 그 점을 잘 지적해 주고 있다.

 

그린뉴딜이라는 말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 그린뉴딜에서 농업이 과연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가 보면 농업은 여전히 뒷전이다. 이근행은 그 점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녹색성장'을 내세우며 4대강을 파헤치고 보를 쌓는 데 세금을 낭비하고 물난리를 초래한 토건세력과, '그린뉴딜'을 내세우며 데이터와 스마트 산업에 100조를 투자해 '똑똑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치세력은 얼마나 다를까? 포클레인이 컴퓨터로 바뀌면 우리는 '더 보호받고 따뜻한 나라'에서 살 수 있을까? '사람이 중심인 나라다운 나라'는 각자도생의 사회는 아니지 않겠는가. (이근행, 그린뉴딜의 본류는 농(農)이다에서. 163쪽)

 

그러니 농업 정책에 대해서 농민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 농업을 등한시하면서 우리들 삶이 유지될 수는 없다. 우리는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 그리고 농업은 우리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가장 기본이니까.

 

여기에 온라인수업이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앞으로 교육은 온라인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데, 정형철은 그 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다.

 

  어떠한 형태나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도, 온라인교육으로는 '교습'이나 '강습'이 가능할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아이들이 '배움'에 도달할 수는 없음이 명확해진 것이다. ...

  스크린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게 배움을 차단하는 장벽이다. ...

  온라인을 통한 스크린교육은 배움의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잇는 자질구레한 모든 배움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정형철, 코로나 시대에 교육을 생각한다에서. 189쪽) 

 

교육이, 한 사람의 민주시민으로 성숙해가는 아이들의 '배움'에 그 목적이 있지 않고, 지금 우리 사회의 입시교육처럼 '성과'를 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리 교육이 온라인교육으로 대체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여전히 대학입시 제도가 우리 사회의 모든 교육과정을 짓누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무런 성찰과 변화 노력 없이 교육의 미래를 이야기한다면, 온라인교육이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대체해나간다고 해서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정형철, 코로나 시대에 교육을 생각한다에서.190쪽)

미래교육이라는 이름을 달고 지속적으로 교사와 학생, 학부모를 현혹하는 전문가들이나 관계자들의 배후에는 에듀테크 자본이 자리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기술자본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거나 아니면 놀아나는 교사들이나 교육전문가들이다. 이들은 현실의 교육문제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오인하고 잘못된 길로 유도한다. 지금도 지나친 기술주의와 교육시장화가 우리 교육을 좀먹고 있음에도, 이들은 점점 더 강력한 기술주의 해법과 비즈니스 전략을 들고 미래교육을 떠들고 있다. (정형철, 코로나 시대에 교육을 생각한다에서. 193쪽)

 

더 많은 내용이 있지만, 온라인수업의 병폐가 드러나고 있는데, 그것을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스스로 교육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코로나19가 심각해지는데도 고3들은 입시하는 이유로 등교를 해야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이지 않은가.

 

여전히 대학입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 목표다. 이런 대학입시에 대한 변화가 없으면 온라인수업은 성공이다. 성공할 수밖에 없다. 교육이 지니고 있는 다른 모든 면들을 제외하고, 오로지 문제풀이에 집중할 수 있을테니.

 

하지만 그로 인한 격차들, 또다른 문제들, 그리고 '관계'를 통한 배움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농업과 교육, 코로나19로 근원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고, 개혁을 할 수 있는 분야일텐데, 그것을 엉뚱한 쪽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 호에서 지적하고 있다.

 

좀더 깊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렇게 농업과 교육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야 할 것이다. 농업과 교육은 분명 '생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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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클라마칸 - 돌아올 수 없는 사막
브루노 바우만 지음, 이수영 옮김 / 다른우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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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그야말로 모래가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곳. 물이라곤 찾을 수 없고 보이는 것은 모래들뿐. 사막하면 그런 심상이 떠오른다. 사막하면 대표적으로 사하라 사막과 고비 사막을 떠올리는데, 예전에 타클라마칸 사막에 대해서도 이름만은 들어본 적이 있다. 실크로드와 관련해서.

 

유홍준이 쓴 중국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촉발해서 돈황에 관한 책을 읽고, 돈황을 지나 펼쳐져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이렇듯 한 책은 다른 책을 불러낸다.

 

스벤 헤딘이라는 사람이 1890년대에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한 다음에 책을 냈다고 한다. 그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정도로 매우 고생을 했다고 하고, 현지인 두 명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또 낙타들도 많이 잃고 간신히 물이 있는 호탄 강까지 도착했다고 하는데...

 

그가 쓴 책을 읽고 그와 똑같는 시기에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가 한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또 스벤 헤딘이 사막이 놓고 온 것들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모험을 감행한다.

 

약 100년 뒤. 그러니까 스벤 헤딘이 살았던 시대보다 더 월등히 성능이 좋은 장비를 갖추고 출발을 하는 것이다. 스벤 헤딘이라는 사람의 기록이 있었기에 물도 더 준비하고... 그가 간 경로를 따라 가는데...

 

그런데 사막은 우리 인간이 예상한 것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존재할 때가 많다. 타클라마칸 사막도 마찬가지다. 낙타 6마리와 현지인 두 명, 통역할 수 있는 중국인 한 명, 그리고 동료 한 명과 함께 출발한 바우만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에게는 위성으로 위치를 알려주는 도구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먼저 간 사람의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사막이 그의 계획대로 되어 주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물이 떨어지자 낙타들이 죽어 간다. 함께 했던 사람 중 한 명도 낙타에게 걷어차여 더 이상 갈 수가 없게 된다.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서 죽음을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다행히 이들은 사막을 무사히 건너 호탄 강가에 도착하지만, 사막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읽으면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을 흔히 고(苦)라고 하지 않는다. 인생은 고해(苦海)라고도 한다.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준비를 많이 한다. 함께 가야 할 사람도 있어야 한다. 사람만이 아니다. 다른 존재들에게도 빚을 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인생에서는 우리가 예상하지 또 예측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게 소중했던 존재들을 잃기도 하고, 큰 어려움에 처해 이도저도 못할 때도 있고, 그럼에도 다른 존재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기도 한다. 큰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안도한 순간, 더 큰 어려움이 다가오기도 한다. 마치 이 책의 저자인 바우만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할 때 겪었던 일처럼.

 

이 책 318쪽에 있는 사막 사진을 보자. 정말 광대한 사막이다.

 

 

이 사막에 있는 한 점의 모래와 같은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그만큼 인생은 사막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막막하기도 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 끝을 행복하게 마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준비를 하고, 많은 존재들과 함께 살아간다.

 

어쩌면 이렇게 광대한 사막을 횡단하려는 모험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인생이 이와 같은 모험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진과 먼저 간 스벤 헤딘의 발자취와 그를 통해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하는 바우만의 여정이 우리의 인생과 겹쳐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바우만처럼 이렇게 사막을 횡단하지는 못하겠지만, 사막 횡단 이야기를 통해 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갖게 해준 책이라는 점에서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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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석굴 - 인류의 위대한 유산 2
타가와 준조 지음, 박도화 옮김 / 개마고원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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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이 쓴 [중국문화유산 답사기]를 읽다가 돈황에 대해서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래, 내용이 겹치는 것도 있지만, 어차피 집 안에서 하는 세계 여행인데, 여러 사람이 쓴 책을 읽고 돈황 유람에 나서자고 생각한 것.

 

이 책은 1982년에 일본 사람이 쓴 것이다. 우리나라엔 1999년에 번역이 되었다. 유홍준도 그의 답사기에서 말하고 있지만, 일본 NHK팀이 실크로드라는 다큐를 발표했단다. 그 다큐가 상당히 감동적이었는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이 책은 그 탐사에 따라나섰다가 메모를 한 것을 중심으로, 또 촬영기사의 사진도 실음으로써 돈황에 있는 막고굴에 대해서 잘 알게 하고 있다.

 

사진이 자세해서 좋고, 유홍준이 쓴 책에 나와 있지 않은 사진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 두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불교 문화재가 겹치는 것도 있어서 복습한다는 의미에서도 좋았고.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문화유산이다. 이런 문화유산을 함부로 대했던 적이 있음을, 막고굴에 남아 있는 그을음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 혁명 이후 백군에 속한 몇몇의 사람들이 이 막고굴에 와서 기식을 하면서 함부로 대했다고 하니...

 

이렇게 무지한 사람들이 부린 행태로 인해 문화재가 소실되기도 하지만,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저지른 일... 유홍준 책에도 나오는 서양인들, 그 막대한 문화재를 자기네 나라로 빼돌린 사람들. 그리고 벽화까지도 떼어간 사람들도 있으니...

 

지금도 세계의 많은 문화유산이 한때 제국주의 국가였던 나라 박물관에 있는 현실이니... 국제적 힘의 관계를 통해서 문화재가 파괴되거나 또는 유출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다만, 이 책은 일본 사람이 쓴 책이라 일본 사람이 이곳 돈황에 와서 가져간 문화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 점도 언급하면서 반성을 했다면 이 책이 더 좋아졌을텐데...

 

그럼에도 이 책은 돈황에 있는 막고굴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돈황의 역사를 간략하게 언급하고, 막고굴에 있는 문화재를 돈황석굴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 몇 가지 주제로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다.

 

우선 아름다운 군상이 있는 석굴을 소개하고 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만든 석굴이다 보니 석굴에는 부처상이나 보살상 등이 많이 있다. 이런 군상들을 소개한 다음에는 벽화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사진을 통해서 벽화를 만날 수 있어서, 석굴에 있는 벽화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그 다음에는 벽화를 그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물론 누가 그렸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당시 화가들의 화풍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석굴의 후원자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17굴에 대해서, 수많은 불교 문서가 나온 17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 17굴에 대한 설명은 유홍준의 책에서 더 자세히 만날 수 있으니, 유홍준의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돈황석굴, 막고굴... 한번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단 생각. 물론 유홍준의 말에 따르면 가 보아도 다 볼 수는 없고, 몇몇 굴만 보게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디인가, 언젠간 한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더 들게 하는 이 책.

 

집 안에서 돈황, 특히 막고굴에 유람을 하기엔 딱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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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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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사건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절대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기도 하는데, 무소불위의 위력을 지닌 사람은 그 위력에 취할 수밖에 없다. 위력에 취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인(聖人)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권력을 지닌 사람들 곁에는 그 권력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꼬여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다 보면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을 넘어서는, 더 막강한 인(人)의 장막이 설치된다.

 

그 다음부터는 권력의 입맛에 맞는 말들만 권력자의 귀에 들어간다. 권력자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지당하는 칭송의 말과 함께 곧장 실행된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서 권력자는 권력의 맛에 취해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자신은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도 그에게 쓴소리를 하지 않고 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쓴소리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충언역어이(忠言逆於耳)라고 진실을 담은 말들은 귀에 거슬리는 것이 당연할 텐데도, 권력의 맛에 취하면 그런 말을 듣지 않는다. 듣지 않으니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떠나가게 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만 곁에 남게 된다.

 

세상에! 민주주의 시대에 지방자치단체장이 무슨 왕이란 말인가? 왕처럼 군림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있다면 그는 단체장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왕처럼 군림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차기 권력을 노리는 유력한 정치인이라면 더더구나...

 

이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거야 원... 정말 마음이 답답하다. 아직도 이런 사람이, 그것도 민주주의 운동을 했다는 사람이... 싸우면서 닮아간다더니, 니체가 경고한 대로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느덧 예전 민주투사라고 하던 사람들, 그들 자신이 전제권력이 되었음을 깨달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섬뜩한 말이다.

 

안희정의 참모진들은 나를 '순장조'라고 불렀다. ... 수행비서는 왕과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했다. 수행비서는 누구도 모르는 왕의 비밀을 알고, 죽을 때까지 함구하다, 죽음으로 그 입을 끝까지 막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조직 내에서 안희정의 지위는 절대적이었다. (15쪽)

 

이게 말이 되나? 이 민주주의 시대에, 수행비서가 무슨 예전 내시들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가. 순장조라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정치권에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니...

 

더 답답한 것은 미투 선언이 있고나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권력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권력자만큼이나 권력에 중독되어 있다.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이러한 폭로는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폭로한 사람을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여전히 그들은 권력을 쥐고 있음으로.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우리나라 내부고발자들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는가. 공익제보자들이 당한 일도 엄청난데,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는 이들보다 더한 고통이 따르는 일들이 벌어진다. 김지은은 자신이 겪은 일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했던가. 그런 식으로 몇몇이 모여 거짓말을 말하니 순식간에 나는 세간에서 '그런 여자'가 되었다. 사심으로 일을 한, 지사의 사생팬인,, 신뢰할 수 없는 이상한 여자. (20-21쪽)

 

사실이 중요한 것으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채로 여론과 선정성만이 중요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상황을 만드는 데 얼마 전까지 나의 동료였던 사람들이 참여했다. 2차 피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큰 배신감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꼈다. 권력 앞에서 사인 간의 우정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배웠다. 인간은 없고, 조직만 있었다. (156쪽)

 

대부분의 성폭력은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되기에 가해자들은 여전히 조직의 핵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피해자를 향한 조직적인 공격을 시작한다. 2차 가해다. 가해자는 여전히 해당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서 피해자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피해자가 그 힘 밖으로 나오려면 그 분야에서 쌓아온 자신의 미래도 함께 버려야 한다. (296쪽)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그것은 정치인 주변에서 이런 인식들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 권력 옆에서 함께 권력을 누리다 다음에는 자신이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 거기까지 가지 못하면 최소한 권력 옆에 계속 있을 수 있게 되는 것. 그러니 바른 소리보다는 입맛에 맞는 소리를 할 수밖에 없고, 일을 할 때 주변을 의식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구절이 나온다. 권력자 주변의 사람들이 권력자를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고, 성폭력을 폭로한 사람 편에 서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캠프는 단순히 일하는 능력이나 학위 같은 스펙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평판을 중요시 여겼다. ... 누군가의 눈 밖에 나면 그것은 곧 커리어의 끝을 의미했다. (79쪽)

 

이런 사람들이 모여 캠프를 이루고, 그들을 중심으로 정책이 마련된다. 무언가 이상하다.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그들에게는 권력이 더 중요하다. 권력을 쥐기 위해서는 겉모습이 중요하다. 평판이 중요하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 가까이서 지내면서 알게 되면 환멸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말로는 미투 운동에 찬성한다 하면서, 자신이 성폭력을 자행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정치인 안희정의 대외적 이미지와 내가 업무를 통해 겪는 실상은 낱낱이 상반되었다. 그는 신분과 계급이 존재하는 세계에 살았다. 나의 자리에서는 그에게 아주 기본적인 인권이나 노동권도 존중받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101쪽)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 노동권도 지켜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국민의 인권, 노동권을 지킨다는 것인지...

 

가끔 뉴스를 보면서 의아할 때가 있었는데, 검사들이 피의자를 조사할 때 밤샘조사를 하는 것, 왜 남들 근무하는 시간에 하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집에서 쉬게 했다가 다음 날 다시 조사하는 것이 기본적인 인권 보호 아닌가 하는 생각.

 

법을 집행한다는 검사들조차 이렇게 수면권, 또는 8시간 노동권을 무시하면서 일을 하니, 어떻게 국민들의 인권,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지금도 지니고 있는데...

 

또 국회의원들은 어떤가? 그들 역시 어떨 때는 (이들이 일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 보면 참 부끄러운 결과가 나올 테지만) 늦은 밤에도 회의를 한다. 회의는 낮에 하면 되는 것이고, 낮에 그들이 회의 한 결과를 국민들에게 발표하면 될 텐데... 이들 역시 기본적인 노동권을 지키지 않고 있다.

 

사법부나 입법부에서 일하는 것이 이런데.. 정치인들은 이보다 더한가 보다. 수행비서 역할을 하려면 인권과 노동권을 포기해야 할 정도라니... 어떻게 이렇게 하면서 보편적 인권, 노동권을 운운하는지...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고 재판을 거치면서 여러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김지은은 단지 성폭력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노동권에서도 엄청난 침해를 받았음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이런 비민주적인 활동들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니...

 

범죄 피해 사실과 관련된 수행 일정, 출장 기록, 영수증, 메시지, 사진 등 관련 자료를 모두 찾아서 제출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당한 범죄는 성폭력뿐 아니라 노동권과 인권 침해에까지 이른다는 사실을 하나둘씩 스스로 깨우쳐갔다. 그동안도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무기력 속에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었을 뿐이다. (51쪽)

 

이런 일을 겪다 드디어 세상에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폭로로 일이 끝나지 않는다. 폭로를 한 순간부터 더 큰 어려움이 닥친다. 바로 2차 가해다. 이런 2차 가해로 인해 김지은은 자해, 대인기피증 등 여러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성폭력이 신체와 정신에 가하는 살인이라면, 2차 가해는 현재의 삶, 과거와 미래, 자아, 인격에 대한 살인이었다. 성폭력이 비공개 살인이라면, 2차 가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칼로 난도질 하는 살인 같았다. (275쪽)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가려는 사람들.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댓글을 통해 피해자를 난도질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존재한다. 그러니 피해자는 폭로한 순간부터 또다른 폭력과 싸워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러한 피해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권력자 주변에서도 피해자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증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피해자는 그나마 견딜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든 2차 가해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2차 가해는 엄연한 범죄임을, 그또한 심각한 성폭력임을 명심하게 해야 한다. 피해자가 또다른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가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님에도 피해자가 그 이후에 더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김지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해자는 처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법에 의한 처벌로 자신의 행위를 무마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에게는 그런 행위가 일회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지속되는 행위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니 피해자가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폭력과 같은 일들을 막을 수 있다.

 

읽으면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재판은 끝났지만 김지은에게는, 또 피해자들에게는 이 일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음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우리 모두도 이러한 가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부끄럽다. 이 부끄러움이 지속되지 않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고, 인권, 노동권에 대한 감수성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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