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地의 상상력 - 삶-생명의 옹호자들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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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성격을 말해주는 문장이 마지막에 실려 있다.

 

인간은 원래 비참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꿈을 현실화하려는 꿈을 간절히 꾸는 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진정한 문학은 몽상의 기록이자, 일종의 기도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은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런 캄캄한 상황에서 문학이 무엇을 할 것인가, 얼른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시무레 미치코의 문학에서 중요한 암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47쪽)

 

단지 이시무레 미치코의 문학만이 아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예전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시간 순으로 보면 이치무레 미치코의 문학에 대한 글이 마지막에 있기 때문에 이치무레 미치코를 언급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학인들이 모두 캄캄한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작은 제목이 삶·생명의 옹호자들에 관한 에세이다. 모두 일곱 명의 작가를 다루고 있는데, 블레이크, 디킨스, 아놀드, 리비스(이들은 비평가), 파농(문학인이라기 보다는 사상가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리처드 라이트, 이시무레 미치코를 다루고 있다.

 

나라도 다르고 살아간 시대도 다르지만 이들이 지닌 공통점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데 있다. 각자 다른 결론에 도달했을지라도 이들에게서는 생명을 옹호하는 주장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서 김종철의 사상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김종철의 사상에 영향을 준 사람들은 이들 말고도 더 많이 있고,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 사람도 있지만, 영문학도로서, 영문학자로서 그가 공부해온 이 사람들을 통해서 젊은시절부터 생명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사상이 특정한 순간에 확 결정되는 것이 아니듯이 김종철이 녹색평론을 창간하고 생명, 생태 사상을 지니게 된 것도 그가 읽어 온 책들, 그가 만나온 사람들을 통해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읽을 만한데, 그 이유는 문학이론서라기보다는 생명사상을 문학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중심으로 논지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또 지금도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는 글들이기 때문에 문학론집이라기보다는 생태론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면에서 보면 문학을 통해서 우리 삶을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문학은 어떠한가를 생각할 수 있게도 한다.

 

그냥 작가들만의 만족에 빠진 문학인가, 아니면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좋은 쪽으로 향하게 하는 빛을 보여주는 문학인가, 문학에 인간의 근본적인 삶의 모습이 담겨 있는가 등등을 생각하게 한다.

 

이 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아직도 캄캄한 시대다. 지금 문학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들 삶에 어떤 암시를 주는지 생각해 본다. 아니 꼭 문학작품이 아니어도 된다. 내 삶을 이 글을 통해서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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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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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간에 위계가 있는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있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평등하지는 않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학력, 집안, 경제력 등등)에 의해 위계지워진다.

 

스스로 위계를 만들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위계 속에서 어느 자리에 자신이 속해 있음을 판단하게 된다. 이런 위계를 부정하는 것이 인권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른 사람과 동등한 존재인 것이다.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도 자신의 노력으로 가진 것이 아니다. 학력이 자신의 순수한 노력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과연 그런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답도 많다. 이미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최종 학력도 달라진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니... 학력이 꼭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자신의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얘기다.

 

여기에 집안은 이미 선천적으로 주어졌고, 경제력 역시 자신의 노력보다는 이미 주어진 집안의 환경에 따라서 크기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력과 학력은 자신의 노력으로 충분히 성공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의 능력에 더해 다른 조건들이 큰 역할을 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것은 동등하다. 어떤 사람도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사람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인권의식이 발달하면서 학력, 집안, 경제력 등에 의한 위계는 차별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런 것들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인권이라는 생각도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갖고 있다.

 

하지만 천부적인 것인데도 여전히 위계가 존재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성별이다. 성별과 더불어 성적 지향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위계가 존재한다.

 

페미니즘은 인권운동이다

 

그래야 한다.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어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 앞에서는 남녀나 또는 성적 지향을 구분해서는 안된다. 누구나 사람이라는 존재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

 

성별 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바로 인권이다. 그런데 성별에 따라서 성적 지향에 따라서 차별이 이루어졌다. 공공연히, 또는 암묵적으로.

 

이것에 반대해서 우리도 사람이다. 성별이나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들만 잘살겠다고 하는 운동도 아니다. 모든 남성을 적으로 돌리는 운동도 아니다. 이 책에도 언급되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을 반대하는 것이 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당연히 인권 운동이다. 인권 운동이기에 성별의 다름을 먼저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떤 성별, 성적 지향을 막론하고 사람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고, 사람으로서 동등한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과격하다?

 

페미니즘 운동을 표방하던 운동 중에 과격하게 보인 운동이 있었다. 미러링이라고 해서 남성들이 하는 혐오표현을 거울 비추기 식으로 되돌려 주는 운동도 있었다. 혐오 표현에 혐오 표현으로 대응한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

 

처음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 그간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낼 수 있는 방법은 큰소리다. 작은 소리는 다뤄주지도 않는다. 자신들을 봐달라고, 우리가 이렇게 외치고 있다고 밖에 대고 존재를 드러낼 때, 기득권을 지니고 있던 세력을 그것을 과격하다고 한다.

 

동등하게 대하지 않는다. 반항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더 험한 표현을 한다. 그럼에도 처벌은 잘 받지 않는다. 공고한 연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경험한 운동은 더 강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을 어떻게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미디어에 자신들을 알릴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격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과격이란 무엇인가. 드러나는 것만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이미 과거로부터 더 심한 억압을 받고 지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이제야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방법론을 문제 삼아 다 문제있다고 무시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페미니즘은 과격하기보다는 성별로 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조건들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사람이 먼저인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먼저다. 그런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여기에는 남성, 여성, 또는 다른 성적 지향, 진보,보수, 자본가, 노동자 또는 어떤 직업에 따라서도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사상이 들어 있다.

 

페미니즘은 모두의 행복을 꿈꾼다. 누가 누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이 책을 읽자

 

이 책은 이런 저런 페미니즘 운동을 다루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1990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페미니즘 운동을 정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부터(호주제 폐지 등) 시작하여 미투 운동까지 근 30년에 걸쳐 일어났던 페미니즘 운동을 여러 자료들을 통하여 정리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 페미니즘 운동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여기에 더한 점은 바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페미니즘을 남성들의 자장 안에서 머물게 하려는 모습이 페미니즘 운동 내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수든 진보든 가리지 않고 남성 연대들이 등장한다. 또 자기들 진영을 지키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은 모습도 드러난다.

 

이미 제목에 위계가 드러난다. 페미니즘 좋다. 그러나 내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해라. 이게 바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다. 이런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거부하고, 그 틀에서 페미니즘이 나왔을 때 보수와 진보는 연대한다. 페미니즘에 반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 책을 보라. 그런 연대 사례들이 너무도 많아서 열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테니 말이다.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나 역시 이 책에서 말한 '오빠'에 해당한다는 생각에. 아직도 무의식 중에도 이런 '오빠' 의식이 작동하고 있음에.

 

페미니즘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부터 읽었으면 좋겠다. 또 페미니즘에 대해서 맹목적인 반감이 있는 사람도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남성이 있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그가 '오빠'에 빠져 '허락한' 페미니즘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이 책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론서보다도 우리나라 사례를 중심으로 여성 운동을 정리하고 있어서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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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만한 당신 - 함께 있어 든든했던,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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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만한 당신'이다. '가만한 당신'에 이어 두번째 책이다. 이 책에도 35명의 사람들 부고가 실려 있다. 적어도 부고를 실을 정도면 무언가는 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렇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이름을 남긴다는 것, 억지로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애쓴 사람이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갔을 따름이다.

 

그런 충실함이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평판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나간 사람들.

 

물론 이 책에는 세파에 휘둘려 살아간 사람도 나온다. 하지만 그에게도 자신의 삶으로 인해 남에게 무언가를 준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 이야기. 여기에 '함께'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지금처럼 힘든 시대에, 모든 것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시대에, 이 책 발문에 실린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김탁환이 쓴 발문인데... 이런 문장이다.

 

'함께'란 단어가 제목과 부제에 모두 포함되었다. '함께'란 단어만 보면 존 버거가 던진 질문이 떠오른다. "연대가 중요한 것은 지옥이지, 천국이 아니에요. 그렇지 않나요?" 이 책에서 '함께'가 반복되는 까닭이 혹시 지금 이곳의 고통이 두 배 이상 늘었기 때문은 아닐까. 함께 도모하지 않으면 쓰러지고 지쳐 목숨까지 위태로운 시절에 '함께 있어 든든했던,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가 나와서 다행이다.

 

그래, 이렇게 함께 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그들로 인해서 세상이 조금은 더 따뜻해졌음을, 지금도 이러한 사람들이 존재함을 생각하게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사람이 없다는 것. 우리나라 사람도 실어줬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지금 우리나라도 겉으로 드러난 사람들 말고도 정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티내지 않고, 드러나지 않음에도 그 자리에서 세상의 소금이 된 사람을 기리는 작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곁에도 이렇게 '함께' 있어주었던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게 한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 앞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한다.

 

무엇보다도 '함께'가 필요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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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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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하다'는 말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말이다. 즉 남 앞에 나서서 특별한 존재로 우뚝 솟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다.

 

어떤 사람들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는 말이 잘 들어맞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꼭 알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한 일을 남에게 이야기하고 남들에게 칭송을 받기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

 

이 책은 제목에 어울리게 아주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가만한 당신'이라는 말에 맞게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 다섯 명의 부고'

 

부고라면 죽음을 알리는 글인데, 이 책은 이들의 죽음 앞에서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인지를 기록한 전기문이라 할 수 있다. 약전(略傳)이나 소전(小傳)이라고 할 수 있는 글들인데... 한 명 한 명의 삶이 절대로 '가만한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정말로 이름 없이 살다간 필부들은 이렇게 남들에게 부고조차 남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부고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제목에 맞게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하기 위해서 삶을 살아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신을 남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름을 알리기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은 대로 행동하고 살아갔을 뿐이다. 이런 삶들이 다른 사람의 삶을 좀더 좋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공통점이 있고.

 

한 사람 한 사람 읽어가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네 세상이 좀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따라서 이 책은 참 의미가 있다. 이들을 기리는 부고 형식을 택했지만, 우리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된 존재들을 기억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바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변해가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대부분 처음 들어본 사람이다. 그들이 한 일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님에도 그들은 그렇게 앞에 나서기 보다는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다.

 

여성의 삶을 위해서, 흑인들의 삶을 위해서, 재소자들의 인권을 위해서, 또 어려운 처지에 있는 환자들을 위해서,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 등등... 이 사람들 이름을 여기에 적어두지는 않겠다.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기보다는 이들이 살아온 삶을 기억하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관한 이 책. 읽을 만하다. 읽어야 한다. 우리들 세상에 소금이 된 사람들 이야기니까. 다음 권은 '함께 가만한 당신'이다. 이 책도 함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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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가는 길
정찬주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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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이 쓴 답사기와는 좀 다르다. 소설가가 쓴 것이라 그런지 감상적인 내용이 많다. 주관적인 감정도 많이 들어가 있고.

 

그래서 돈황에 관한 책을 읽는 순서가 유홍준의 책을 맨 먼저 읽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유홍준은 돈황까지 가는 과정을 중시했다면 이 책에서는 서안(장안)에서의 일과 그 다음에는 비행기를 타고 가기 때문에 돈황까지 가는 중간 과정이 없다.

 

다만 서안에서 양귀비와 현종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고로 성에 관한 것들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게 마련.

 

이 책에서도 핵심은 돈황석굴, 즉 막고굴이다. 그 부분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특히 소설가답게 학문적인 분석보다는 직관에 따르는 글쓰기를 하고 있어서 더 친근하게 막고굴에 다가설 수 있다.

 

게다가 저자인 정찬주는 막고굴에 있는 벽화에서 삼국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감동을 받았고, 그때문에 돈을 더 주고도 삼국시대 사람이 나온 석굴을 돌아보았다는 사실이 그 먼 곳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감동을 준다.

 

하긴 비단길이라고, 실크로드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드나들었을테니 그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혜초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이 책은 저자의 직관을 앞세우고, 감정을 표나게 드러내서 서술하고 있다. 사진도 있어서 막고굴에 있는 문화유산들을 살펴볼 수도 있고.

 

지금은 이때보다 달라졌을테지만, 그래도 한번은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유홍준처럼 과정을 중시하는 답사도 좋지만, 일반 관광객에게는 정찬주처럼 여행할 수도 (물론 그도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 묻어서 가긴 했지만)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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