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데이션 3 - 위대한 탄생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서래.김옥수 옮김 / 현대정보문화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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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3권이다. 위대한 탄생이다. 드디어 파운데이션이 탄생했다.

 

하지만 2권까지 긴박하게 '심리역사학'을 정립하기 위한 여정이 잘 그려지고 있다면, 3권에서는 '심리역사학'이 완성되고, 그 이후의 일들이 펼쳐진다. 1,2권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고 말았다.

 

그만큼 어떻게 심리역사학이 완성되었는지, 해리 셀던이 그 이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든지 하는 일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기 쉽다.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셀던이 자신을 쫓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존재가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되고, 그 존재의 도움을로 심리역사학을 완성하게 된다. 이 정도는 알 수 있다. 이제 은하제국은 멸망이 필연이 된다. 그것을 수학적으로, 실용적으로도 증명해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난다면 결정론이다. 종말론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살아가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도대체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의 자유의지가 없다면...

 

은하제국의 역사가 프로그래밍되어 변경할 수 없다면, 은하제국에 속한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은 없다. 어쩌면 심리역사학은 인간 배제의 학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물론 커다란 역사의 흐름은 심리역사학에서 예측한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몇몇 개인이 바꿀 수는 없다. 그것도 짧은 기간 내에.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자기 의지로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셀던이 정립한 이론 이후에 셀던은 더이상 활발하게 활동할 수 없다. 이미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밝혀진 이상 위대한 개인은 필요없다. 다만, 이 역사의 흐름에서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또한 시간을 단축하는 방향으로는 나아갈 수가 있다는 방향은 제시해줄 수 있다. 그것이 꼭 살아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니.

 

거대한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일. 셀던의 심리역사학은 그래서 종말론이 아니다. 종말을 예측했으니, 이제 종말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종말이 지속되는 기간을 단축할 수는 있을 거라고 믿고 행동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개인이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개인의 흐름을 수학적으로 예측하여 그렇게 행동하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하여 셀던은 죽어도 살아 있어야 한다. 그가 '시간 유품관'에 안치되어 위기 때나 필요할 때 자신의 '심리역사학'을 기반으로 예측한 일이 일어났을 때 나타나 조언을 게하 설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은하제국은 힘을 잃었다. 그야말로 로마제국시대 말기에 일어났던 군인황제 시대를 연상하거나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연상하면 된다. 그야말로 혼란 시기다. 이것은 이미 예측되었던 일이다.

 

안정을 얻기 위해서 셀던이 은하의 맨 끝쪽에 건설했던 파운데이션의 한 쪽 이야기기 펼쳐진다. 그곳에 '심리역사학자'들이 많이 정착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이곳에는 심리역사학을 전공한 학자는 단 한 명만 정착하게 된다.

 

이유가 뭘까? 아는 자가 많을수록 예측은 불가능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수많은 심리역사학자들에 의해 또다른 변수들이 생기게 될테니, 오히려 심리역사학을 모르는 이들이 정착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셀던이 예측한 '심리역사학'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틀 안에서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들이 나타나고, 그들에 의해 위기에 대처하는 행동들이 결정된다.

 

그렇게 이제 3권부터는 은하제국이 혼란기에 접어들고, 사람들은 퇴보해서 과거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상황을 빨리 마무리짓는 것이 파운데이션의 의무다. 그리고 이 파운데이션에서는 이제 후손들이 나와 그런 일들을 해나간다. 이 일이 바로 파운데이션의 영향력을 높여, 다른 행성들이 파운데이션을 따르게 하는 일이다.

 

이제부터는 수십 년은 단 몇 줄로도 그냥 지나간다. 그만큼 우주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인류의 평화를 위한 여정은 지속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몇 세대가 아니라 수백, 수천, 또는 수만 세대 이상에 걸쳐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3권은 군웅할거시대에 천하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고, 그때그때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이제 4권이다. 혼란스런 시대가 펼쳐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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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2 - 사이보그의 비밀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서래.김옥수 옮김 / 현대정보문화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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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제 2권. 

제국의 황제에게만 쫓기는 것이 아니다. 그를 이용하려는 세력에게 셀던은 꼭 필요한 인물. 어쩌면 정권을 유지하는데 논리를 제공해주는 학자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수학자인 셀던은 심리역사학이 증명되었다고 발표했기에 그의 심리역사학에 따르면 누가 언제부터 제국을 통치한다고만 발표하면 그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러니 셀던은 계속 피해다닐 수밖에 없다. 아직 자신이 주창한 심리역사학을 완성시키지 못했기에. 심리역사학에서 수학만큼이나 필요한 지식이 바로 역사에 대한 지식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카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역사는 현재에게 과거를 살피고,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역사학에서 과거는 필수다. 그런데 과거를 모두 연구할 수 있나? 아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기록되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기록되었다고 하더라도 수백만 년이 흐른 뒤까지 그 기록들이 남아 있을 수가 없다. 더 양보해서 남아 있더라도 기록된 언어가 지칭하는 내용이 미래에도 그대로 그 의미가 전달될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기록이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기록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옛날 구전설화를 역사와 다르게 구분했지만, 단군신화나 동명왕 신화를 보면, 구전되어 오던 설화, 신화도 역사로 편입될 수가 있다.


이 점이 이 SF소설에서 잘 나타난다. 셀던은 역사학자인 도스와 함께 여러 구역으로 가게 된다. 과거 지구라는 행성이 존재했고, 단 하나의 인류만이 존재했던 시대를 이야기하는 구역. 그런 구역에서 셀던은 로봇의 존재를 알아내고 로봇에게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물론 그가 기대했던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는 인간과 같은 로봇을 기대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간 곳에 있는 로봇은 금속 덩어리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에게 과거의 어떤 일도 알려주지 못하는 고철. 상징으로서만 존재하는 로봇.


여기서 추방당한 그는 이번에는 점성술사 비슷한 여인에게서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전체적으로 듣지는 못하고, 구전되어 오던 전설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아직 그의 '심리역사학'은 안개 속에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를 노리는 세력이 있다. 이제 그는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와이라는 구역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그들에게 유리한 심리역사학을 말하라는 권유를 받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거절한다. 계속 거절할지는 3권으로 가야겠지만.


2권에서 과거 역사를 찾아가는 셀던의 모습, 그를 도와주고 보호해주는 도스라는 역사학자의 역할.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과거 역사를 찾아가지만 그때마다 현재의 삶을 만나게 된다.


타인에게 배타적인, 자기들만의 풍습을 유지하는 구역에서 이런 배타성이 인류 평화를 해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사람들을 계급으로 나누어 차별하는 구역에서는, 제국의 지배가 이러한 분열을 통한 통치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남에게 배척당하는 계급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하게 된다. 그들이 앞으로 셀던과 어떤 관계를 맺고 그의 '심리역사학'에 어떤 도움을 줄지는 계속 읽어가야 하겠지만.


문제는 SF소설이라고 하지만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계급으로 나뉘어 분할 통치하는 사회의 모습을 현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아시모프는 이 파운데이션이라는 SF소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사회가 바람직한가? 그들의 노동으로 살아가면서도 그들을 멸시하는 소위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은하의 평화, 인류의 행복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만 관심이 있는 지배층들. 다른 계급에게 무시당하면서 폭력을 일상화한 하층계급들.


이렇게 다양한 존재들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곳. 그런 곳에서 평화와 행복은 어떻게 하면 찾아올 수 있을까? 어떻게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은하를 구할 수 있을까? 


2권에서는 이제 영웅의 모습을 서서히 갖춰가는 셀던과 도스가 그려진다. 학자로서만 표현되는 그들이 무술에도 능한 모습을 보이게 표현된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능력으로 인해 하층계급의 감탄을 자아내고 존경을 받게 된다. 


이제 이들이 '심리역사학'을 완성해서 발표하면 지배층만이 아니라 하층민들에게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이제 셀던은 연구를 혼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여럿이 있게 된다.


작가는 이렇게 우주를 구할 수 있는 인물인 셀던의 모습을 점점 더 풍부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3권이다. 와이 지역으로 간 셀던과 도스는 이제 어떤 일을 맞이할지...... 그의 심리역사학이 안개 속에서 약간의 빛을 발견해가고 있는데, 결정적인 빛이 언제쯤 나올지...... 기대하면서 읽어야 할 3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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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1 - 위험한 서막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서래.김옥수 옮김 / 현대정보문화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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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아이 로봇'을 흥미롭게 읽었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은하대백과사전'이야기가 있어서, 이 책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흥미를 주는 책이라는 생각에... 새로운 판본이 나왔지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예전 판본.


무려 10권이다. 발표한 순서와는 좀 다르게 구성되었다는 해설이 있는데, 이 구성방식이 시간 순서대로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으니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렇게 했을 수 있다.


아시모프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소설을 썼다고 하니, 마치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겠다. 소설을 발표 순서대로 읽으면... 스타워즈 역시 시간 순서가 아니라 여러 그 사이사이 사건들이 에피소드라는 이름으로 영화화 되었으니 말이다.


발표할 때마다 읽지 않았으니, 시간 순서대로 구성한 소설을 읽는 일도 이해를 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겠다. 


제목이 '파운데이션'이니 기본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창립이란 뜻인가,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우주 멸망을 수학적으로 예언할 수 있다고 생각한 수학자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수학하면 명증한 논리니까, 수학으로 우주 멸망이 증명된다면 우주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수학적으로 우주가 번영한다고 증명이 되면 우주는 번영한다. 그것을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 해리 셀던이 나오고, 그를 이용하려는 우주 세력이 등장한다.


셀던은 이론적으로 증명이 가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실현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도 가능하게 연구를 계속하라는 설득을 받고 연구를 하려고 한다. 그 사이에 그를 둘러싼 여러 음모가 벌어지고, 그는 자신의 연구를 성공하기 위해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가게 된다.


1권은 그런 수학자 해리 셀던이 겪는 모험으로 시작한다. 그는 학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의 이론은 이미 너무 위험하다. 다른 세력들에게 각자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당할 수가 있다.


얼마나 합리적인가? 수학적으로 예견된 일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자신들의 지배가. 이는 심리역사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해리 셀던이 연구하고 확립하고자 하는 학문이 바로 '심리역사학'이고, 이것이 정립되면 그것은 기정사실이 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변수들을 계산에 넣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심리역사학이 정립되면 우연도 필연의 일부가 된다. 그러니 우연에 의해 필연이 바뀌는 경우는 없게 된다. 


하지만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세력에게는 예언(증명)의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진실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예언을 비트는 일쯤이야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은하제국의 황제에게도, 또 그의 이론을 알게 되는 또다른 세력에게도. 여기에 은하가 멸망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이 등장한다. 이들에게는 은하 멸망이 예견된 일임을 증명하는 일이 중요하다. 왜? 그래야 대책을 세울 수 있으니까.


지금 기후위기를 이야기한다. 어떤 학자는 기후위기는 조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많은 학자들은 기후위기는 현실이며, 이 현실을 인정해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고 한다.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각 나라는 서로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을 하고 정책을 입안하려고 하고 있는데...


은하멸망이라는 예언(증명)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온갖 세력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을 하려 할테지만, 정말 은하 멸망이 현실로 다가왔다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다음 방책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그 이론이 필요하게 된다. 


셀던을 도우려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이론이 정립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그 이론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멸망 이후를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 유지를 원하는 세력에게는 이론 정립까지는 필요없다. 셀던이라는 사람이 했다고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셀던은 위험한 인물이 되고, 그는 제거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셀던의 이론 정립이 필요한 사람들은 해리 셀던을 도우려 한다. 멸망이 기정사실이라면 그 이후의 일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인데... 아직 해리 셀던은 자신의 '심리역사학'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는 그 이론을 완성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다양한 자료 혹은 방법론을 확립하기 위해 은하제국의 영향력이 덜 미치는 곳으로 간 해리 셀던.

이것이 바로 1권의 내용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방법론을 확립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해나갈 것이다.


이 1권 곳곳에 지구를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태초에 인류가 한 행성에 살았고, 그 행성은 푸른색이었으며... 어쩐 일로 우주 전체로 흩어져 살게 되었고, 이제는 그 행성의 존재는 전설로 남아 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지구 역시 몇십억 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말 것임을... 태양의 폭발로 함께 사라질지, 아니면 인류의 무분별한 생활로 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아주 먼 미래라 할지라도.


자, 지금 우리는 지구가 사라지는 때를 상상할 수는 있지만 현실로 느끼지는 못한다. 너무도 멀리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지구가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면 될까? 아니, 그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우주로 나갈 생각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지만, 먼저 지구를 이 소설에서처럼 전설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들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


인종, 성, 나라 등등의 차이를 부각하기보다는 인류라는 공통점을 내세워야 한다. 그리고 협력해야 한다. 우리 인류는 대동소이하지 않나. 많은 점에서 비슷하고 적은 점만 다른데, 그 다름을 부각시켜 너니 내니 하면서 갈등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이 소설, '파운데이션 - 위험한 서막'을 읽으며, 지금 지구를 생각한다. 아직 아무도 믿지 않는 은하 제국의 멸망... 우리 역시 지구의 사라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준비를 하기 위해서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하려는 '심리역사학'을 정립하려는 해리 셀던과 그를 돕는 사람들, 그리고 그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사람들.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제 2권으로 간다. 아주 오래 전 역사책을 구한 해리 셀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든 미래는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또한 우리는 방대한 우주 상상력 속에서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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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주부들이 집에서 하는 가사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한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려 하지 않는 노동. 그래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 되고, 보려고 하지 않는 노동이 되기에, 일을 하면서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어디 이런 일이 가사 노동뿐일까?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없으면 사회가 유지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외면당하고 있다. 마치 없는 존재처럼, 아니면 공기처럼 그렇게 하는 노동이 당연하다는 듯이.

 

  과연 그럴까? 그들을 보려 하지 않는 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태도가 바로 그들을 우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배척하는 태도 아닐까.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한다면서도 애써 우리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의 존재가 드러나면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자신들에게 꼭 필요할 때만 그들을 소환하지는 않았는지... 그 다음에는 토사구팽도 아니고, 그냥 다시 없는 존재로 취급하고 만 경우가 많은데.

 

문태준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읽으며 시집의 마지막에 실린 시 '일원'을 읽으면서 이렇게 모두 모여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우리들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일원

- 바라나시에서

 

  누운 소와 깡마른 개와 구걸하는 아이와 부서진 집과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돼지와 낡은 헝겊 같은 그늘과 릭샤와 운구 행렬과 타는 장작불과 탁한 강물과 머리 감는 여인과 과일 노점상과 뱀과 오물과 신(神)과 더불어 나도 구름 많은 세계의 일원(一員)

 

문태준,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창비. 2015년. 80쪽.

 

이렇게 우리는 세계의 일원으로, 그냥 맑고 깨끗한 세계가 아니라 '구름 많은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신만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우리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일원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존재들이 있지 않은가. 일원이 아니라 마치 다른 존재인 것처럼, 그들을 배척하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공고하게 구축하고 있지 않았는가.

 

마치 자신의 눈에 보이는 존재, 그것도 자기 밑이 아니라 자신과 동등하거나 위에 있는 존재들과만 어울리고, 그들을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살지는 않았는지.

 

이 '일원'이란 시에서 펼쳐진 세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위만 보아서는 안 된다. 밑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문태준의 이 시집 첫번째에 나온 시를 볼 필요가 있다. 이 시집의 처음과 끝이 이렇게 연결될 수 있음을.

 

  몸을 굽히지 않는다면

 

노랗게 잘 익은 오렌지가 떨어져 있네

붉고 새콤한 자두가 떨어져 있네

자줏빛 아이리스 꽃이 활짝 피어 있네

나는 곤충으로 변해 설탕을 탐하고 싶네

누가 이걸 발견하랴,

몸을 굽히지 않는다면

태양이 몸을 굽힌, 미지근한 어스름도 때마침 좋네

누가 이걸, 또 자신을 주우랴,

몸을 굽혀 균형을 맞추지 않는다면

 

문태준,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창비. 2015년. 10쪽.

 

고고하게 홀로 유유자적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를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자신의 몸을 굽힐 필요가 있다. 자신을 낮추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제서야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서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있었음을, 그동안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일원이다. 몸을 굽혀야 일원이 될 수 있다. 이런 행위는 그들을 자신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넘어서 자신이 그들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문태준 시는 우리가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몸부터 굽힐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사람뿐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세상의 모든 존재를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래야만 자신도 그들과 일원이 될 수 있다.

 

모두가 우리인 일원인데, 어찌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고 또는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다고 편을 가르고 나누는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시인은 그런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우리는 모두 일원이라고, 우리 모두 몸을 굽힐 줄 아는 존재가 되자고 시집에 실린 첫시와 끝시를 통해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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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가 불확실할 때, 관계를 잘 맺지 못할 때가 많다. 낯선 사람을 만날 때가 그렇다. 그런 낯섬에서 익숙함으로 갈 때, 징검다리가 있었으면 좀 수월하게 익숙함으로 갈 수가 있다.

 

  그 징검다리 역할을 무엇이 할까? 많은 관계들을 맺어가면서 살아가는데, 그 전에 맺었던 관계들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맺어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낯선 타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요즘 관계 맺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는 온갖 따돌림들이 나타나고, 그래서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옳지 않은 일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친구들 모임에서 떨어져 나오면 다른 친구들 사이로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 때는 익숙함이 좋음이 아니다. 이때 익숙함은 옳지 않음이다. 그러니 낯섬에서 익숙함으로 갈 때는 좋음이라는 가치가 개입되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벽을 쌓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벽이 쌓이고 관계 맺기가 힘들어지는 데는 소통이 안 되는 이유도 있다. 소통이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내 말뿐이 아니라 다른 말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말과 말들이 얽혀서 다른 말들을 만들어내어 튼튼한 관계를 맺게 해야 하는데, 내 말을 옳고 다른 사람의 말은 그르다는 식의 태도가 많아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직장에서도 괴롭힘이 일어나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할 수 있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빅이슈] 262호에서는 그런 소통의 방편으로, 즉 서로가 익숙한 관계 맺기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로 MBTI를 소개하고 있다. 성격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검사해서 16가지 유형 중에 자신은 어떤 유형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유형이 지니는 특성들을 이해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 오랫동안 만나서 그 사람의 말투, 행동, 생각 등을 추측할 수 있어서 이해 범위가 넓어지기 전에, 그 사람이 지닌 성격을 알고 그에 대해서 받아들인다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MBTI는 유용하다. 다만, MBTI를 그 사람을 규정하는 방편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MBTI로 성격 유형이 나오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 전부를 설명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면을 고치려고 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이런 유형이니 이것에는 안돼, 우리하고는 안 어울려 하면서 또다른 배제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결국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잘못 쓰면 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좋은 관계, 익숙한 관계 맺기를 위해서 MBTI를 활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맹신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빅이슈] 262호에서도 그 점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빅이슈] 자체가 바로 이런 좋은 관계 맺기를 하는 잡지 아닌가. 관계 맺기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을 다시 관계 맺기의 장으로 들어오게 하는 잡지.

 

이런 빅이슈를 보며 빅이슈도 좋은 관계 맺기를 하게 하는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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