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랜만 빅이슈.


  가까이 하고 싶었는데, 그동안 소원했다. 이것도 코로나19 영향이라고 해야 하나. 잘 돌아다니지 않으니 빅판(빅이슈 판매원)을 만나는 일이 가물에 콩 나듯을 넘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빅이슈를 읽지 않았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다시 빅이슈를 읽기로 하다.


  코로나19. 전세계를 공황으로 몰고간 감염병. 함께 라는 말이 민폐가 되게 만든 질병. 이제 수도권에서는 4명까지만 모이라고 한다.


가족 모임도 가능하면 삼가라고 하고. 함께, 더불어, 이런 말들은 잠시 잊고 비대면, 온라인, 랜선 등등 직접 얼굴을 맞대는 만남이 아닌 접촉을 하지 않는 만남을 하라고 한다.


접촉이 얼마나 사람들의 유대감을 형성하는지 잘 알면서, 그것을 한 해 내내 하지 못하게 하면 이 삭막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라고.


이런 감염병의 시대에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 자신의 몸을 편히 누일 집조차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한 고통을 주는 것이 이 코로나19다.


그들은 사람을 만나야 자신들의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데, 그것이 힘들어진 세상에서 기댈 것이 무엇일까? 


스스로 자립하게 도와주는 빅이슈의 활동이 위축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이번 호를 읽게 되었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집이 없는 사람들, 그들의 자립, 자활을 돕는 이 잡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어서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리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감염병의 시대에도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디딤돌이 되는 잡지이기 때문에.


이번 호 표지 사진이 박세리다. 우와, 박세리가 빅이슈 표지에 나오다니... 그냥 표지만 보고서 [타임]지를 생각했다.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되면 영광이라고, 대단한 일이라고 추켜세우던데... [타임]에서 선정한 100인에 들면 자랑스런 일이라고 하던데.


빅이슈 표지 모델이 된 것을 그만큼 자랑스러워해도 되겠단 생각을 했다. 빅이슈에서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환으로 올해의 000을 기사로 내었던데... 그것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타임]지처럼 꼭 인물을 100인 선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빅이슈에서는 표지 모델로 인물들을 이미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박세리 선수. 대단한 선수였다. 지금은 예능 방송에도 나와 자신의 얼굴을 많이 알리고 있기도 하지만. 그가 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누구에게나 해주고 싶은 말이다. 박세리라는 사람을 다시 보게 한 말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관대해져라'


그렇다. 어려운 시대에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책하는 사람이 많다. 아니다.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느 계기로 지금 이 자리에 있을 뿐이다. 이 자리에 있는 나를 부끄러워하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나는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그러니까 자신에게 인색하지 말고 관대해져야 한다. 이 말. '자신에게 관대해져라'는 힘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을 합리화하라는 말이 아니다. 있는 자가 아닌, 없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열심히 살아왔으니 노력의 보답을 아직은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또는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래, 네 잘못이 아냐 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니 너무 자신을 자책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라고.


연말, 박세리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마음에도 와 닿으리라. 


이렇게 표지에 나온 박세리 말고도 다른 글들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 중에 올해의 000을 읽어보라. 한 해 우리 생활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 사건, 물건 들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


힘들게 지냈던 한 해다. 그럼에도 빅이슈 241호를 읽으며 새해에는 지금보다 나은 생활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을 기꺼이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줄 줄 알기 때문이다. [빅이슈]는 그러한 손을 내어주는 잡지니까 그 손에 조금이라도 온기를 보태주고 싶은 마음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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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쫌 아는 10대 - 세상의 가장 작은 것이 만들 가장 큰 세상 과학 쫌 아는 십대 6
장홍제 지음, 방상호 그림 / 풀빛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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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쫌 아는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과학책이다. 화학에 관한 책인데, 원소에 관해서 쉽게 잘 설명해주고 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서 각 과목과 관련된 다른 책들을 학생들이 얼마나 읽을까 하는.

 

교과서는 기본을 가르쳐주는 책. 교과서만 공부한다는 것은 기초지식만 익히고 만다는 얘기인데, 우리나라는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거기에 더해서 참고서라고 해서 교과서 내용을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책까지 달달 외운다. 그러고는 공부 끝.

 

더 나아가지 않는다. 교과서에서 원소를 설명한다면 원소에 관한 다른 책들을 읽고 정리하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한때 슬로리딩이라고 해서 한 학기 책 한 권 읽기라든지, 책 한 권으로 끝내기 등등의 교육방법도 있었지만...

 

책 한 권으로 끝내기라는 것은 교과서가 한 권이라는 뜻이지 달랑 한 권만 읽는다는 것은 아니다. 가령 소설 한 편으로 한 학기 동안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들을 공부할 수 있다는 방법이었는데...

 

수많은 교과서를 통해서 얻는 지식이 교과서에만 국한되면 실력은 더이상 늘지 않는다. 교과서를 기본으로 그와 관련된 책을 읽고 지식의 범위를 깊게 하고 넓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공부라고 할 수 있을텐데... 지금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과연 그럴 시간이 있을까?

 

성적순으로 주욱 줄을 세우는 이 나라에서. 수능 점수가 거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이 나라에서. 그러므로 청소년을 위한 이런 쉬운 과학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정작 청소년들이 이 책을 얼마나 읽을까다.

 

화학을 어렵게만 여기는 사람들에게 화학은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역사적으로, 또 동시대적으로 살피면서 알려주는 책인데, 학생들이 잘 읽지 않을 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들면 안 되는데... 주기율표. 사실 주기율표를 외우기 싫어서 화학을 포기한 경우도 많은데, 왜 주기율표가 중요한지, 주기율표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주기율표에 있는 원소들이 우리가 찾은 원소들의 전부이고 앞으로 더 찾으면 주기율표에 첨가된다는 것.

 

참으로 중요한 화학에서 사전 역할을 하는 것이 주기율표라는 것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그러면서 흥미진진하게 원소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 원소들이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어떻게 발견이 되었는지, 현대 사회에서 어떤 쓰임새를 지니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화학에 흥미를 갖게 한다. 또 화학이 실험실에만 박혀 있는 학문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화학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사람들이 찾아낸 모든 원소가 주기율표에 있고, 이 주기율표는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더 채워질 수 있음을,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암흑물질이라고 한다는데, 이를 하나하나 밝혀나가는 것도 우리의 과제임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과학, 화학에 관심 없는 학생들에게는 화학도 참 매력적이고 쓸모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을,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는 앞으로도 연구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원소 쫌 아는 10대에서 화학에 관심을 가지는 10로,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니까.

 

화학의 발달 역사에서 원소들이 지니는 장단점, 부작용 등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있는 책이기에 더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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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5
찰스 디킨스 지음, 김세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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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유명한 소설이다. 꼭 크리스마스가 아니더라도 사람을 변화시키고 싶을 때 권하는 소설이다. 여기에 구두쇠의 대명사 스크루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니, 이 소설은 엄청 성공한 소설이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이 많이 있지만, 아이들에게 이 소설만큼 많이 읽힌 작품이 있을까 싶다. 어제 크리스마스. 아마도 역대 성탄절 중에서 가장 조용하게 보낸 날이지 싶다. 나가기도 그렇고, 세상이 흉흉한데 뭘 하나 싶기도 하고.


집에서 이 책을 꺼내 들었다. 그래, 어렸을 때 읽었던 크리스마스 캐럴을 다시 읽어야지. 스크루지가 어떻게 개과천선 했는지 다시 살펴야지. 여전히 재미 있다. 유령이 나오고, 과거-현재-미래를 보고... 사람이 변하고.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데, 변하려면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하면서 읽게 되었는데, 구두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빼면 우리는 어제 성탄절을 스크루지가 평소에 보내던 성탄절처럼 홀로 보내지 않았나 싶다.


5인 이상 집합 금지니... 즐거운 날도 함께 하지 못하고, 비대면이라는, 화상으로 서로 얼굴을 보고 안부를 묻고 그렇게 보내야만 했으니, 본의 아니게 스크루지처럼 성탄절을 보내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유령이 와야 하지 않나, 우리 생활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고치려고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상초유의 코로나19 사태가 유령이라면, 그 유령은 우리에게 과거를 보고,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예측하게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과거 유령... 꼰대에서 탈출하는 길


스크루지에게 과거는 자신을 반성하는 길이다. 나때는 말이야 라는 소위 꼰대들의 말이 아니라, 그때는 나도 그랬었지, 그런 일들을 힘들어 했었지 하면서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눈을 갖추게 되는 것.


과거에 잘나가던 나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힘들어 했던 자신을 찾고, 그 힘듦을 현재에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반복하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과거 유령이 하는 일 아니겠는가.


이미 과거 유령을 통해 스크루지는 변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 과거를 본다는 것은 현재를 성찰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꼰대에서 탈출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 과거는 그래서 잊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이다. 우리가 초심을 유지하라는 말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유령... '나'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길


내 세계에 갇혀 있는 스크루지에게 다른 사람을 살필 수 있는 눈은 없다. 그는 오직 자신만을 본다. 창문이 없는 완결된 단자다. 소통하지 않는, 그 자체로 막혀 있는 존재다. 그런 존재에게 다른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그는 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회적 동물로서 사회에 힘입어, 다른 존재들에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다른 존재가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닫힌 세계를 열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 현재 유령은 스크루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존재를 인식하게 한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인식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자, 스크루지는 이미 변할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행동으로 나아가려면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한다.


미래 유령... 수정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길


예측이다. 막연한 짐작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면, 그 길로 가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 길로 가면 반드시 파멸할 텐데, 누가 가려고 하겠는가. 그래서 정확한 예측은 행동을 변화시킨다.


누구에게도 뻔히 보이는 길을 제시하는 것. 지금처럼 살면 당신이 맞이할 미래는 이렇다라고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 


스크루지는 제게 예정된 미래를 본다. 바꿀 수 있다면, 바꾸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 그렇게 그는 자신의 행동을 바꾼다. 그리고 그의 미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도 바꾸게 된다.


나만의 변화가 아니라 내 변화로 다른 사람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게 할 수 있다. 그렇게 스크루지는 즐거운 성탄절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지내왔던 칙칙한 삶에서 밝고 명랑한 삶으로 나아간다.


자, 코로나19라는 유령은 과거-현재-미래 유령의 결합체다. 이 유령은 현재 우리들 삶에 나타나 과거 우리 삶을, 우리가 진정 추구했던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렇게 살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살펴보게 한다. 


혹 우리 삶이 지구에게는 스크루지처럼 살아가는 삶이 아니었는지, 코로나19라는 유령이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한다고 그렇게 이 소설을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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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고, 속이구, 계속 속이는

                         - 6․29 선언과 그 이후


6․29!

6․29?

속이구!

대통령은 국민을 속이고,

기업가는 노동자를 속이고,

선생은 학생을 속이고,

학생은 선생을 속이고,

속이고, 속이고……


뱀이 

제 꼬리를 물려고

결사적으로 덤비듯

우리는 

서로 서로

속이고, 속이고, 속이구.


87년 6․29

결국

몇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또 속이구.


다시 

모든 것을 속이고,

또, 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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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 - 우리가 오해한 ‘과학적 상상력’에 관한 아주 특별한 강의
이상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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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상상력이라고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이나 아주 기발한 발상을 떠올린다. 그래서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상력이란 과연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엄밀한 체계를 추구하는 과학에서는 상상력이 필요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우리들 삶에도 필수적임을, 그리고 과학이나 예술에서 모두 상상력이 작동됨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수렴적 사고와 발산적 사고의 긴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내재적과 외재적이라는 말로 단순화시켜 설명할 수도 있는데, 기존의 지식에 정통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과학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혀 다른 틀을 가져야 기존의 틀을 대체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앞부분의 예로 코페르니쿠스를 예로 든다. 우리는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꾸어놓은 사람, 또는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알고 있는 사람인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까지 그는 프톨레마우스의 천문학에 정통한, 그것도 당대에 가장 뛰어난 학자였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그가 기존의 천동설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은 기존 천문학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정통했기에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틀 내에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상상력은 갑자기 외부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적인 고민, 공부를 거듭한 결과에 이어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결부되었을 때 발휘되는 것이다. 그러니 상상력은 집요함, 정교함과 더불어 새로움이 합쳐져야 발휘된다고 할 수 있다.

 

뒷부분은 상대성 이론을 들 수 있다. 뉴턴 역학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론. 이렇게 이 책은 상상력을 한정짓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적용해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 칙센트미하이의 이론을 빌려 상상력이 발휘되는 네 가지 조건을 이야기한다. 새겨들을 만하다.

 

비판적으로 읽고 이해한다. 이때 비판은 분석적 평가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내용과 연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247쪽)

 

집요하게 문제에 도전한다(249쪽)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것이 한순간에 이루어진 일이 아님을, 정말로 집요하게 고민하고 정리하고 여러 시행착오에도 굴복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서 이루어졌음을 알려주고 있다.

 

주의 깊게 관찰한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현상과 이론에 대한 지식에서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측면에 주목할 줄 알았던 것이라고 한다. (252쪽)

 

다양한 자원을 종합한다(254쪽)

 

이 네가지 조건에 대해 읽으면서 세종을 생각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게 되는 과정이 상상력의 이 네가지 조건과 어쩌면 이리도 잘 맞을 수 있는지... 그렇다. 세종이 한글을 어느 순간, 예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야담식으로 전해지던 볼일을 보던 중 문틀을 보고 생각해냈다는 그런 말처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세종은 기존에 쓰인 문자인 한자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말과 그를 표현하는 문자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분석적 사고를 하고, 삶과 연관지을 수 있었다는 것.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 공부를 하면서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 과정에서 홀로 하지 않고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 집현전 학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왕세자와 왕자, 공주 그리고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신미대사 등등... 또 중국의 학자 등 다양한 자원들을 종합하는 것이다.

 

그러니 세종은 상상력이 넘치는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문자를 넘어서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이 책은 과학에서 말하는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문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적용할 수가 있다. 그만큼 상상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몇몇 문장들 속에서 우리 사회를 생각할 수 있다. 그 문장들을 보자.

 

항상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접근 방식을 검토하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자신에게 유용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적절하게 '변형'해서 가져다 쓰는 연구 태도가 필요합니다. ... 그런 의미에서, 어렸을 때부터 다른 분야는 무시하고 수학이나 과학만 공부시키는 (물론 그것만 하고 싶어 하는 학생에게 억지로 다른 분야의 공부를 강요해도 안 되겠지만) 영재교육이 바람직한가에 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200-201쪽)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되지 않는 과학연구가 무가치하다는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과학연구는 '문명의 이기'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나 예술의 결과물이 그러하듯 인류의 지적·문화적 성취이기에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226쪽)

 

우리가 '탈추격형' 과학기술 개발, 즉 주어진 정답을 쫓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와 답을 동시에 제시하는 방식으로 과학기술을 개발하려면,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성공적으로 실패하는' 방법을 먼저 익혀야 합니다. (269-270쪽)

 

영재교육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글과 과학연구가 꼭 실용적이어야 하나 하는 문제제기와 앞으로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과학기술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다른 존재와 함께 지내면서 자신과 다른 관점을 익히는 것, 그런 다름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이 꼭 실용적이지 않아도 예술처럼 자신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집요하게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 그래서 실패를 하더라도 패배자, 낙오자가 되지 않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이것이 상상력을 살릴 수 있는 사회이지 않을까 싶다. 상상력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넘어선다는 것. 함께 하는 삶이 필요함을 이 책이 잘 말해주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일 것 같은 상상력이 사회적일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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