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 2 : 환상의 나라 오즈 - 완역본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2
L. 프랭크 바움 지음, 존 R. 닐 그림, 최인자 옮김 / 문학세계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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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즈의 마법사]다. 두 번째부터는 생소하다. 읽은 적이 없다. 그래도 도로시가 계속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했는데... 도로시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팁이라는 소년이 나온다.


이젠 팁의 모험이다. 그런데 1권과 완전히 다르면 오즈 시리즈가 되기 힘드니, 1권에 나왔던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팁의 모험에 함께 하는 인물들. 허수아비와 양철나무꾼이 등장한다. 물론 착한 마법사는 당연하고.


허수아비가 에메랄드의 왕에서 쫓겨난다. 소녀들이 쳐들어와 허수아비가 양철나무꾼이 다스리는 나라로 도움을 요청하러 간다. 팁의 모험 과정에 이 내용이 들어간다. 


자, 이제 내용은 팁과 더불어 허수아비가 왕위를 다시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에메랄드 왕의 후계자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착한 마법사 글린다를 만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즈마라고 불리는 후계자는 어디에 있을까?


동화답게 오즈마의 존재를 말하는 순간 오즈마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마법이지 않은가. 소녀를 소년으로 바꾸는 마법. 그 마법이 풀리고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


팁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2권은 이렇게 팁이 오즈마로 밝혀지고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는 것으로 끝난다. 


행복한 결말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지만, 정당성이 없는 권력은 오래 갈 수 없음을 이 동화에서 보여주고 있다.


기이한 존재들이 모여, 호박머리 잭, 목마, 하늘을 나는 검프까지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을 상상에서 이룬다. 그렇다. 이러한 상상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없는 일들을 꿈꾸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상상 속에서 무엇이 옳은지, 옳지 않음이 어떻게 극복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일지를 경험하게 해준다.


세상에서 소중한 것은 돈보다도 지혜, 사랑, 우정임을 이들의 모험을 통해서 보여주고, 돈만을 추구하는 삶이 결코 행복할 수 없음을, 그런 생활은 지속될 수 없음을 반란을 일으킨 진저라는 인물을 통해서 보여준다.


자연스레 재미있게 읽으면서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를 익히게 한다. 그것이 동화가 지닌 장점이기도 하겠지만, 1권을 너무도 재미있게 읽은 아이들이 다음 이야기를 써달라고 요청해서 썼다고 하는데, 그만큼 아이들에게 상상의 재미를 주는 역할을 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 2권을 읽으면서 [나니아 연대기] 중에서 [말과 소년]이 생각났다. 출생의 비밀? 결국 제 자리를 찾아가는 주인공? 아이 때 한번쯤 상상했던 일들을 동화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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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1 : 위대한 마법사 오즈 - 완역본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1
L. 프랭크 바움 지음, W.W. 덴슬로우 그림, 최인자 옮김 / 문학세계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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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았던가? 애니메이션으로 보았던가, 아니면 짧게 요약한 요약본으로 읽었던가? 오즈의 마법사는 분명 아는 내용이다. 적어도 이 1권은.


허리케인으로 오즈로 온 도로시가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사자를 만나 여행을 하고, 결국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는다는 모험 이야기.


줄거리야 워낙 유명하니까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동화답게 우연적인 요소도 많이 등장하고, 현실과 맞지 않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이 동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우리는 합리와는 거리가 먼 상상 속에 빠지길 좋아하니까. 그런 상상 속에서 자신의 앞으로 살아갈 힘을, 방법을 은연중에 깨우치게 되는지도 모른다. 동화란 그런 것이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직접적인 말이 환상 속에 펼쳐짐으로써 강요로 느껴지지 않는다.


재미있게 읽으면서 그냥 동화 속 인물들과 함께 모험을 한다. 그뿐인 것 같다. 하지만 알게모르게 무언가가 자신을 채우게 된다. 


오즈의 마법사 역시 마찬가지다. 허수아비는 뇌를 갖고 싶어하고, 양철나무꾼은 심장을 갖고 싶어하며, 사자는 용기를 갖고 싶어한다. 이들은 자신에게 이것들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모험을 하는 과정을 보면 허수아비는 충분히 지혜롭고, 양철나무꾼은 사랑이 넘치며, 사자는 불굴의 용기를 지니고 있다.


오즈의 마법사는 이미 있는 것을 있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그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선물할 뿐이다. 이미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을 실제로 지니고 있다고 여기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즈의 마법사가 준 선물이다. 이렇게 오즈의 마법사라고 해서 오즈의 마법사가 큰 역할을 할 것 같지만, 그 역시 서커스단원일 뿐이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물.


그렇다면 지혜, 사랑,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이미 자신에게 있다. 그것을 자각하고 발현하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아마도 이 동화를 읽으면서 그 점을 무의식 중에 깨달을 수 있으리라. 여기에 지혜, 사랑, 용기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해야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사자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셋을 아우르는 존재가 바로 도로시다. 순수함을 지닌 존재. 이러한 순수함을 지닌 존재는 외양으로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 우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들을 그대로 인정한다. 도로시가 지닌 그러한 태도 때문에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사자 역시 자신들의 자리에 머물 수 있음에도 도로시가 고향으로 떠날 때까지 함께 한다.


이는 나만의 목적 달성이 곧 행복이라고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내 목적만 달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모두 달성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여 위대한 마법사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위대한 마법사는 바로 자신이다. 자신이 그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이제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를 다 읽기로 했다. 그냥 대충 아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생각. 다음 편엔 널리 알려진 1권의 내용과는 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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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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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고 되어 있는데, 소설이라기보다는 실화라고 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쓴 글. 글을 써서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 여기에 허구는 없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사람들과 구분하려면, 이 작품에서는 '소설'이란 말을 빼야 한다.


'아이'부터 시작해서 '글을 쓰다'로 끝나는데, 글의 끝부분에서 어두운 터널을 지나 나온 끝에 글을 쓰게 된다.


글쓴이에게 글을 쓰는 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것이어서였다. 너무나 오래전부터 빼앗겼던 나의 이야기(241쪽)'를 스스로 하는, 주체가 되어가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아이 때, 외로움에 싸여 있던 아이에게 친절과 사랑을 가장해 찾아온 사람. 그 사람은 그런 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킨다.


단지 성적 욕구의 만족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나쁜 놈 하면서 문제를 간단히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사람이 유명한 작가라는 것이고, 이러한 경험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했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 자신이 만났던 소녀들을 표현하면서도 그것은 작품이라고, 현실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작가. 또한 자신의 권위를 앞세워 소녀들을 자신의 올가미에 옭아맨 사람.


그에게 소녀들은 그것도 16살이 넘어서는 안 되는, 사춘기에 해당하는 소녀들(물론 아시아에서는 소년들도 포함이 된다)은 '먹잇감'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도 먹잇감이라고 나오는데, 이는 그가 성 맹수이기 때문이다.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사자나 그밖의 맹수들이 사냥을 할 때 노리는 먹잇감이 무엇인가. 무리 중에서 약해 보이는 동물을 선택하지 않는가. 그리고 한번 물면 놓아주지 않는다. 상대가 죽을 때까지.


이 책에 나오는 G로 표현되는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외로움에 빠져 있는, 누군가의 사랑을 갈망하는 소녀들을 찾아내면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자신에게 성적 만족을 또는 그의 말대로 하면 작품에 대한 영감을 더이상 주지 못해서 그가 만나지 않게 될 때까지.


그런데 이것도 자신이 먼저 소녀들을 내쳤을 때 이야기다. 자신이 소녀들에게 내쳐짐을 당했을 때, 즉 먹잇감에게 반격을 받았을 때 맹수들이 당황하는 것과 같이 그 역시 당황한다. 하지만 맹수가 당황한다고 사냥을 그만두지는 않는다. 끝까지 추적한다. G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만나려 한다.


만나려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만약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헤어짐도 깔끔했을 터. 하지만 G에게는 자신이 내침을 당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작품으로 또 타인에게 유포를 한다. 자신의 영역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듯이.


이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는다. 어린시절 G에게 당했던 일들이 글쓴이에게는 평생 따라다니는 상처가 된다. 학교도, 다른 일도 하기 힘든 상황. 이때 질문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


외로움에 처해 있던 소녀들이 왜 중년 남성에 끌리느냐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째서 그는 소녀들에게 끌리느냐로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 소녀들이 아니라 바로 그런 소녀들을 유혹해서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승승장구한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2020년대에 들어 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도 많이 달라졌다고 하고, 글쓴이 역시 완전히 그에게서 받은 상처를 이겨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씀으로써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더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질문의 방향, 책임의 방향을 바꾸려고 한다.


'동의'라는 말, 두려워서 나서지 못했던 사람들의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경향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그러면 안 된다. 그것은 권위에 의한 폭력을 계속 용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 속에서 이런 책을 써서 문단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성폭력의 전말을 밝힌 글쓴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글쓴이 역시 과거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문단 권력에 의한 (성)폭력이 꽤 많이 있었다고 알려졌는데, 이 책은 그것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를 살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권위를 이용해 가해를 한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덧글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책에서 이 책에 관한 내용이 조금 소개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G에 관해서도 논의를 하고 있다. 물론 당연히 G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 그 책을 읽어도 좋고, 그 책을 읽은 다음에 이 책을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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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 선생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남진희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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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나의 이야기를 찾으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일들이 겹쳐 서술된다. 인물의 생각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다.


주인공이 최면술사라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 내면에 깊숙이 숨어 있는 것들을 끄집어낸다고 볼 수 있는데, 볼라뇨는 이 소설을 통해서 무엇을 꺼내려 했을까?


바예호라는 인물이 나온다. 이 인물이 죽어가고 있는데, 이를 살려달라는 요청을 팽선생이 받는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이 팽선생에게 바예호를 포기하라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바예호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 결국 팽선생은 자신이 치료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지니지만 바예호에게 두번 다시 가지 못하고, 바예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커다란 줄거리 안에 다양한 인물들과 일들이 중첩된다. 환상적으로 때로는 불명확하게 서술이 되고 있는데... 마치 안갯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카프카 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하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생각하면 불확실함이 주를 이루는 것이 맞겠단 생각이 든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때. 사람들은 행복의 시대보다는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게다가 독일에서는 나치가 집권을 하지 않았던가. 세계는 더더욱 불확실성으로 빠져들게 되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을까. 


사람들 역시 불안함에 어쩔 줄을 몰라 했으리라. 어떤 사람은 그런 시대에도 자기 확신을 지니고 살아가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러니 팽선생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헤매는 것도 이해가 갈 만하다.


바예호가 있는 병원을 찾아가지만 병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복도를 이리저리 헤매는 팽선생의 모습에서 위기를 인식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 소설에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주인공인 팽선생이 적극적으로 나서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팽선생 역시 헤매고 있다. 헤맬 수밖에 없다. 그를 최면술사로 설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내면에서는 불안감이 작동하고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행동하기 힘든 상태. 그러한 인물들.


결국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 바예호는 죽고 마는데, 이는 스페인 내전에 이은 2차 세계대전으로 빠져드는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만 볼라뇨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명확한 주장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행동을 하는 인물을 창조하지도 않았다.


그냥 흐릿하게 역사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소설 속 인물들처럼 살아간다면 어떤 결말에 처할지를 보여줄 뿐이지만, 그런 삶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격동기에 살았던 볼라뇨로서는, 그 전에 유럽에서 벌어진 혼란 상황을 표현함으로써 자신들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보라고, 이 소설 속 인물들이 그렇게 흐릿하게 살아감으로써 결국 바예호를 죽게 만들지 않았냐고. 그렇게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고 묻고 있는 듯하다.


그다지 길지 않은 소설 속에 일관되지 않은 사건들을 배치해서 어지러운 현실을 소설 속에 구현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우리 역시 명확하게 정리된 줄 알았는데, 아직도 혼란 속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지, 이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소설 속 인물인 팽선생처럼 생각은 있으나 헤매다 끝나고 말면 안 된다고, 적어도 그 점은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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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하면 즐거움을 떠올린다. 설렘.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기대. 망설임. 


  그런데 정호승 시의 여행은 그러한 것들과 거리가 있다. 정호승 시에서 여행은 삶의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의 여정이다.


  결코 쉽지 않은, 그러나 가야만 하는 길. 하여 이 시집을 읽으면서 삶은 여행이라는 말을 생각한다. 가볍게, 즐겁게, 조금은 망설이지만 그럼에도 기대가 더 많은 여행이 아니라, 자신의 전존재를 걸고 나아가는 구도의 길.


  시인의 말에서 '시는 내 인생이라는 여행의 동반자이자 스승이다'(125쪽)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는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자 마음이 된다.


시인은 '슬픔'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슬픔, 낮은 곳, 어려운 곳으로 나아가는 과정, 그것이 여행이다. 하여 여행은 자신을 걸고 슬픔으로 가는 과정이 된다.


슬픔에게 말을 거는 과정을 넘어서 이제는 슬픔과 하나되기 위해 가는 길, 그것이 여행이다. 이러한 여행을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여행은 궁극적으로는 홀로 가야 한다.


자신이 홀로 짊어지고 가야 할 여행, 이것이 곧 삶이다. 함께하지만 홀로 갈 수밖에 없는 삶. 


그래서 여행을 하면서 읽어야지 했던, 제목만 보고 시집을 골랐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이것은 여행을 하면서 읽을 시집이 아니라, 차분히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을 갖고 읽을 시집이라는 생각.


         여행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뿐이다


정소승, 여행, 창비. 2013년. 초판 3쇄. 10쪽


이런 내용과는 좀 다를지 모르지만, 이 시집에 실린 '사과'(44쪽)라는 시도 역시 여행이란 이러해야 한다고 하는 듯한 생각을 했다.


구족회화 작가들이 그린 사과 그림이 화랑에서 나와 행상을 하는 청년에게 건네져 많은 사람들이 사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시. '그것이 그들 사과가 가장 원하는 일이다'('사과' 마지막 행. 44쪽)라고 하고 있으니...


사과도 이러한 여행을 바라는데, 사람의 여행 역시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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