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 남성문화에 대한 고백, 페미니즘을 향한 연대
박정훈 지음 / 내인생의책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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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 관련 기사를 쓰면 유독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라"거나 "페미들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다"와 같은 댓글이 달린다. 남자들이 살기에는 이 세상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거이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긍정적 시각'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성별 때문에 차별받지 않아 본 자만 누릴 수 있는 여유라는 사실을. 유리 천장에 가로막하지 않고, 결혼과 출산 이후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남성의 평온함은 여성의 희생과 고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7쪽)


이 책은 이 부분에 전체 내용이 나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은 여전히 기울어져 있다. 여성들이 많은 분야에 진출했지만, 여전히 가사일은 여성이 훨씬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유리 천장이 있고,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이 점을 외면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남성들이 요즘은 남성들이 역차별 받는 사회라고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여러 사실들을 통해 알리고 있다.


제목이 남자들의 심리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은 남자들의 심리보다는 여성을 대하는, 또 페미니즘을 대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그래도 난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착각을 하지 말자'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차별들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태도. 그것은 특정한 남성들이 저지른 일이니 일반화하지 말라는 태도. 이런 태도들이 억압을 무시하는 정도를 넘어서 억압을 묵인, 방조하는 일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나는 아니야'하고 빠져서는 안되고, 그런 일이 벌어진 것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을 반성하는 태도. 침묵의 카르텔을 깨야 한다는 것.


하여 이 책은 남자들을 대상으로 썼다. 남자들이 자신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을 깨닫도록 하고 있다. 사실 강한 쪽에 속한 사람들은 차별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특권으로 인한 편리함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편리함에 불편함을 던져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역할. 그 역할을 이 책이 하고 있는 것이다.


성찰과 반성, 그리고 페미니즘에 연대. 이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읽어보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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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을 읽었다. 최근 시들의 경향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에 거의 의무적으로 읽기는 하는데... 심사위원들이 호평을 하는 심사평을 읽으면서 참, 나와 거리가 멀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하긴 심사위원들은 시의 형식이나 실험 등도 고려하면서 시의 다면성과 완결성을 판단하겠지만, 나는 내 마음에 와닿느냐 닿지 않느냐로 판단을 하니, 그들의 판단과 내 판단이 일치할 리는 없다.


  일치하지 않더라도 공통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번 수상시집에 선정된 시들은 대체로 길다. 길어서 한 쪽으로 끝나는 시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두 쪽, 세 쪽 넘어가는 시들이 많다. 예전 같으면 단편서사시라고 했겠다. 장시라고 하거나. 도대체 사람들이 시를 읽어도 외워서 즐길 수가 없다.


아무 곳에서나 시를 읊조리는 문화를 이루려면 시가 좀 짧아야 하지 않나. 무슨 조선시대처럼 사서삼경을 달달 외우는 것도, 판소리를 외우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시가 길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찾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번 수상시집에서 유희경의 '교양 있는 사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교양 있는 이라는 말은 긍정적으로 쓰이는 말인데, 가끔은 비꼬는 말로도 쓰일 때가 있다. 이 시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내게 한껏 기대를 주지만,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고 계속 나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교양 있는 사람, 우리가 참 많이 기대했던 사람, 그런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가 윤동주 시 '팔복'이 생각났다. 교양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나'는 팔복에 나오는 슬퍼하는 사람이지 않나 하는 생각.


교양 있는 사람


  교양 있는 사람은 노크하며 묻는다 똑똑 계십니까 교양 있는 사람이여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이 없군요 당신을 위해 던져버렸으니까요 그것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반듯하게 접힌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선한 이마를 훔친다 경치가 훌륭하군요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기다린다 어서 그가 말해주기를 한 층 한 층 올라설 때마다 떠올렸던 영광된 기억과 희망 찬 미래의 이야기들을 거기서 얻어낸 빛나는 영감들 그리고 그가 낚아챈 상념의 거센 발버둥과 울음소리에 대해서도


  몹시 피곤하군요 그는 졸린 눈으로 나를 본다 나는 그에게 의자를 가져다주고 그러면 교양 있는 사람은 자리에 앉아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일은 매번 반복되지만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내가 기다리는 교양 있는 사람이고 언젠가 내가 기다리는 말을 해주리라는 사실을


2020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2019년. 15쪽. 유희경, '교양 있는 사람' 전문


어떤 면에서 윤동주 시가 떠올랐을까. '매번 반복되지만'이라는 시구에서였을 것이다. 윤동주 팔복은 마태복은 5장 3-12절을 비튼 시인데...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가 여덟 번 반복되다가 맨 마지막 구절에서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로 끝난다. 이 시구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로 바꾸고 싶어졌고, '저희가 영원히 기다릴 것이오.'로 끝내고 싶어졌다.


기다림... 기대... 그래서 환호하고, 그를 맞이하기 위해 어떤 장애물도 다 없애놓았는데 ('여기에는 문이 없군요/당신을 위해 던져버렸으니까요') 그는 내가 기대한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그냥 그 자리에서 침묵한다.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를 위해 준비했는데, 그는 나에게 왔을 뿐,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윤동주 시에서 슬픔을 기다림으로 바꿀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태복음에는이렇게 나온다.


1.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2.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3.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4.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5.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6.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7.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8.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3절-11절)


그래서 12절에서는 예수로 인하여 핍박받은 자들은 천국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팔복이다. 이들은 현세에서는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에는 복을 받는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윤동주에게는 영원히 슬플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면, 이 시 속의 '나'에겐 영원한 기다림일 수밖에 없다. 교양 있는 사람이 내게 준 것은 기다림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영원한 기대.


'나'가 왜 교양 있는 사람을 기다릴까? 그것은 그가 '영광된 기억과 희망 찬 미래의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 들여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는다. 그냥 잘 뿐이다.


그러니 교양 있는 사람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의 입만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그런 생각을 이 시를 통해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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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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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지


흔히 하는 말이고,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럴 수도 있지. 이 말은 문제 삼지 말라는 말이다. 주로 힘이 있는 자들이나 그들 편을 드는 사람에게서 나오면 우리 역시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이 말이 가끔은 약한 사람, 또는 피해자 편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면 억장이 무너진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도 있지 또는 너도 잘못한 것 아니냐 라는 말이 너무도 흔하게 나돈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우선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쉽게 해서는 안 될 말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 이 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 단지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용납되지 못하는 말이 아니라 범죄에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성(性)'에 관해서는 이 말을 더 해서는 안된다. 자칫 하면 이 말은 이차 가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 읽으면 불편하다. 상당히. 그런데 읽어야만 한다. 눈을 가린다고 사라지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없는 그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범죄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냥 심심풀이로 또는 욕망을 사이버 공간에서 표출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실제로 육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고? 정신이 죽어가고 있는데, 또 그 피해로 인해 실제로 몸이 앓고 있는데...


사이버 성폭력, 이 말도 너무 순화시킨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범죄다. 그냥 처벌받아야 할. 아직은 양형기준이 강한 처벌을 하지는 못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파탄낼 정도로 심한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으니... 


이 책이 나오기 전과 나온 다음,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성착취에 대해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아니 기대를 한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공권력이 - 정말로 힘없는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공권력이 아니라, 민중의 지팡이라는, 파수꾼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이러한 범죄로부터 지켜주는, 더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그런 공권력이었으면 하는데 - 제대로 개입했으면 한다.


이 책은 텔레그램이라는 플랫폼에서 일어났던 - 이렇게 과거형으로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 성착취 범죄를 추적한 '불꽃'이라는 단체의 활동과 그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읽으면서 사이버 공간의 성착취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 이것이 문제가 된 이후에 언론들의 보도 행태가 흥미 위주이지, 이 문제를 근본으로부터 해결하려는 자세는 많이 부족했음도 알게 되었다.


여기에 우리나라 경찰, 검찰들의 무능함도.. 텔레그램은 수사할 수 없다라든지, 이들을 잡을 수 없다라든지,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는 모습이라든지, 경찰에 신고를 해도 내 일이 아닌 양 하는 모습이라든지.. 참으로 답답함을 느끼는 장면이 많다.


그럼에도 공권력이 살아 있으니 성착취방을 운영한 자들을 체포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아직도 근절시키지 못했다는 점, 경찰이나 검찰이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려면 점점 진화하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폭력, 성착취에 대해서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 제목을 다르게 읽으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인데, 여자가 남자를 우리라고 부르기 힘든 사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삶 자체에 위협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도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런 위협을 느끼면서 지내야 하고, 불안감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것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무마하고 눙치려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


결국 지금은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기' 힘든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성별로 인해 어떤 성별이 또는 소수의 성적지향을 지닌 사람들이 위협에 시달려서 불안감을 늘 안고 살아가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이런 사회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성착취물을 공유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안일한 생각, 그것이 범죄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양산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럴 수도 있지가 아니라 그건 명백한 범죄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범죄로 인해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사회가 어찌 행복한 사회겠는가.


그래서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감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는 안돼라고 하면서 엄중한 처벌을 하고, 그런 일이 모방 또 재발, 확산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 중에 법안을 정비하는 것도 포함되니... 이 책은 다양한 방면에서 성범죄를 예방해야 함을 생각하게 해준다.


특히 이 책을 읽는 것이 나도 '우리'에 속한다는 연대의 표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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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 오리아나 팔라치, 나 자신과의 인터뷰
오리아나 팔라치 지음, 김희정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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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타협하지 않음. 저널리스트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자세이지만, 작가도 이런 자세를 지녀야 하나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살아간 오리아나 팔라치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읽어보라.


사실과 진실 앞에서 타협하지 않았던 사람. 이 사람에게 기자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은 동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두 생활에서 글쓰기 방식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알리는데서는 차이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긴 외국 기자를 알 수가 없지. 그껏해야 퓰리처상이라는 이름이나 들어봤지, 우리나라 기자들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데 이탈리아 기자, 그것도 세상을 뜬 지 십 년도 더 된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현대 작가들이 쓴 이탈리아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고...


알라딘에 오리아나 팔라치를 검색해 보니, 소설 작품도, 또 그에 대한 소개한 책도 제법 있다.물론 소설은 절판이거나 품절인데,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었다. 어쩌면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저널리스트로서 또 작가로서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가. 중요한 일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기자, 작가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고, 또 특정 정파의 이익에 따라 사실을 짜깁기 해서 진실을 호도하는 저널리스트들을 많이 보아온 터에 침묵하지 않는다고, 불편한 삶, 불편하게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는 사람이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기레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널리즘이 상실되어 있으니...


그렇다고 이 책은 오리아나 팔라치가 직접 쓴 자서전이 아니다. 죽은 뒤 그가 쓴 글들에서 뽑아 편집한 책이다. 하지만 모든 글이 오리아나 팔라치가 직접 쓴 글이니 자서전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우선 침묵하지 않는 삶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말하고 있다.


작가나 기자는 사랑받고 환영받고 칭찬받는 직업이 아니다. 그들의  역할은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과 잘되는 것을 들려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나 기자의 임무는 나쁜 것과 문제가 되는 것을 고발하는 것이다. 미움받고 공격당하고 모욕받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76쪽)


기자만이 아니라 작가도 그래야 한다는 말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작가는 허구를 창조하는 사람이기에 진실에서 멀어질 것 같지만, 아니다. 작가는 사실들을 간략하게 전달하는 기자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드러나지 않은 일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작가 역시 진실을 전달하는 사람이 된다. 진실과 멀어진 작가의 생명력은 오래 가지 못한다. 왜 작가 역시 진실되어야 하는지 오리아나 팔라치의 말을 보자.


회고록이나 자서전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이상을 말하고 싶었으므로 소설 형식이 필요했다. ... 일대기에서 끌어내어 정교하게 다듬고 재창조하여 더 심오하고 더 큰 진실로 옮겨놓은 이야기이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일화는 객관적인 잣대로 설명될 수 없다. 저널리즘은 축소하지만 소설은 확장한다. ... 소설은 시와 같다. 그 시간과 그 장소, 그 사람을 초월해서 내일과 모레에도 유효하게 남아 있으며, 사진이 보여줄 수 없는 풍경 속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이야기이다. (197-198쪽)


이렇게 진실을 말하려면 절대로 침묵해서는 안된다. 편안함만을 추구해서도 안된다. 불편해져야 하고, 남들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 페미니즘이 강하게 주장되기 전에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런 말도 했다. 세상을 자유롭고 진실되게 살려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느껴지는 일일 것이다.


남자들의 주요한 문제는 경제적이고 인종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지만, 여자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여자라는 사실에서 나오기도 한다. 해부학상의 어떤 차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체의 차이와 더불어 여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터부를 말하는 것이다. (79쪽)


당신이 남편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을지라도 그는 당신이 먼저 일어나서 커피를 준비하고, 먼저 집에 달려와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당신 기분과 관계없이 그의 기분에 따라 장단을 맞춰야 한다. (185쪽)


이 말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세상을 불편하게 보기 힘든 사람이다. 세상의 절반이 선천적인 조건으로 인해 불편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세상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못 느낀다면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여성의 문제를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란의 최고지도자였던 호메이니를 인터뷰할 때 겪는다. 그 과정을 읽어보면 오리아나 팔라치가 이렇게 말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오리아나 팔라치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한다.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용기는 두려움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용기 있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두려워도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109쪽)


이 말 때문이라도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그는 사실을 통해서 진실을 왜곡하는 일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소위 기레기들이 자신이 들은 말의 앞뒤를 자르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말들을 교묘하게 편집하여 내보내는 행태와 비교하면 새겨들어야만 한다.


내가 증오하거나 존경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인터뷰이가 내게 한 말을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주의를 기울였다. (127쪽)


가장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자세다. 이렇게 사실을 통한 진실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멀리하려 하지만 진실을 가릴 수는 없으므로, 이런 사람을 불편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진실은 더욱 잘 드러나게 된다.


나는 불편한 것을 말하는 불편한 여자이자 불편한 이야기를 쓰는 불편한 작가이다. (196쪽)


불편한 작가라고 했지만, 읽는 내내 책을 손에서 뗄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오리아나, 자신의 자유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기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거부할 수 있었던 사람. 어떤 정권의 구미에 맞는 기사를 쓰지 않은 사람.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오리아나 팔라치라는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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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장 주네 지음, 윤정임 옮김 / 열화당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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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 작품은 책에서만 봤다. 직접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는 책에서 본 자코메티의 작품만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장 주네 역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는 아니다. 나 역시 그가 쓴 작품 중에서 읽은 것이라곤 [도둑일기]가 유일하니까. 하지만 그는 우리가 비천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어린시절, 젊은시절에 다 겪은 작가니, 그가 만난 자코메티의 작품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책은 아주 얇다. 60쪽 정도니까, 문고판 책보다도 더 얇다고 보면 된다. 마치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이 너무도 가냘프듯이...

 

하지만 자코메티 조각상들이 주는 느낌은 가냘픔과는 다르게 무거움을 주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얇은 책이지만 그 속에는 상당한 두터움이 들어 있다. 구절구절 마음에 와 닿는데...

 

몇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장 주네가 자코메티 작품에 대해 하고픈 말을 가장 잘 전달하는 일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 ...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를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 주게끔 하려는 것 같다. (6-7쪽)

 

...자코메티의 작품들이 '죽은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또한 그의 작품이, 수많은 사람들이 탄탄한 뼈대 위에 살아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의 지대를 뚫고 들어가 저승의 구멍 난 벽들을 통해 스며 나올 수 있는 기이한 힘을 부여받은 예술 -유려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아주 견고한 예술-이 요구된다. ... 자코메티의 작품은 모든 존재와 사물이 인식하고 있는 고독을 죽은 자들에게 전달해 준다. 그리고 그 고독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우리의 영광이다.(16쪽)

 

자코메티의 조각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가장 멀리 떨어진 극한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친숙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그 왕복에 의해 지탱되는 것 같다. 이 오고감은 끝이 없으며, 그것이 바로 조각들에 움직이는 느낌을 주고 있다. (27쪽)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은 소멸해 버린 세대에 속한 느낌, 숱한 시간과 밤이 지혜롭게 갈고 닦아 부식시킨 후 부드럽고도 견고한 영원성의 기운을 담아 우리 앞에 내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30쪽)

 

사물을 고립시켜 그것이 갖는 유일하고 고유한 의미만을 집적시키는 능력은 관찰자의 역사성의 소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바라보는 이의 역사성을 없애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해서 영원한 현재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한 어지럽고 끊임없는 질주, 휴기을 허용치 않는 양극단 사이의 긴장감있는 흔들림이 되어야 한다. (35쪽)

 

자코메티, 혹은 눈 먼 자들을 위한 조각가 (49쪽)

 

자코메티가 그려낸 대상들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안심시키는 것은 그 대상이 '좀더 인간적으로 - 인간이 쓸 수 있고 끊임없이 써 왔던 것이라는 의미로 - 표현되어서가 아니며, 가장 좋고 부드러우면서 감각적인 인간의 현존이 대상을 감싸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가장 순박하고 신선한 '그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것, 그리고 아무것도 함께 하지 않는, 그 전적인 고독 속의 대상 (59쪽)

 

그것은(자코메티 예술) 차라리 가진 것 없어도 당당한 룸펜의 예술이며, 대상들을 서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모든 존재, 모든 사물의 고독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순수한 지점에 이르고 있다. 대상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혼자다. 그러므로 내가 사로잡혀 있는 필연성에 대항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이대로의 나일 수밖에 없다면 나는 파괴될 수가 없다. 지금 있는 이대로의 나, 그리고 나의 고독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신의 고독을 알아본다." (60-61쪽)

 

이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이 책을 읽으면서 장 주네가 이야기해 주는 자코메티를 만나면 된다.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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