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EBS CLASS ⓔ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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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구할 수 없는 것이 없다. 그런데 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모든 것을 구하게 하는 자본주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돈이 없다면?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돈이 없으면 모든 것이 없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넘침이 곧 행복은 아니다. 이 넘침에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돈이라는 조건.


자, 돈이 없어도 얻을 수 있는, 넘쳐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 질문을 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모든 것을 돈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이 질문을 뒤집으면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것이 있을까가 된다.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것, 돈이 없어도 구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


이 책의 제목은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이다. 책 뒷부분으로 가면 사랑과 아끼다를 함께 쓰고 있다. 사랑 애(愛) 자에는 아낀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284쪽). 그렇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을 아껴주겠다는 말을 하니, 사랑과 아낀다는 말은 함께 쓰이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 공기의 사랑'이라는 앞 제목에는 이미 아낀다는 말이 들어 있는 것이다. 한 공기라는 말이 사랑을 꾸며주는 데서 찾을 수가 있다. 사랑을 주는데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주는 것, 그것이 바로 '한 공기'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를 아끼는 행위이다. 상대가 부족하지도 않게 하고, 또 물리지도 않게 하는 행위. '한 공기'에 담겨 있는 사랑이다.


뒷제목인 '아낌의 인문학'은 이 용어를 빌리면 '사랑의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학문이 인문학이라면 인문학은 당연히 사랑이어야 하고, 사랑은 아낌이니, 아낌의 인문학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인문학이 지닌 효용에 대해서 잘 들어오지 않는 사람을 위해 우리가 몸으로 인식할 수 있는 '한 공기의 사랑'을 앞에 둔 것이다. 그렇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한 공기의 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 힘을 주는 그런 역할.


책은 총 8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강은 다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번째 부분은 김선우 시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시는 그 자체로 인문학이다. 하여 이 책에서는 김선우의 시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참고로 김선우 시집 '녹턴'에서 시를 인용했다고 한다.


시로 시작한 강의는 두번째 부분에서 부처(불교)로 넘어간다. 그렇다고 불경 강의냐 하면 그것이 아니다. 부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들이 삶을 행복하게, 사랑이 찬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손가락일 뿐이다. 그러니 부처에 대한 이야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부처의 이야기가 가리키는, 또 가르치는 쪽을 보아야 한다. 따라서 부처와 더불어 동양의 사상가들, 서양의 여러 철학자들도 언급되고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자연스럽게 세번째 부분으로 넘어간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이야기한다. 이론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앎과 실천이 함께 하는 철학자의 말하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렇게 세 부분이 합쳐져 한 강의를 이룬다.  


강의는 8강으로 나뉘어 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하나다. 우리 사랑하는 삶을 살자고. 서로 아끼면서 살자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이 있으니 그것들을 실천하자고.


한 강 한 강 읽어나가면서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나만으로 존재하지 않으니. 단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모든 존재를 아껴야 한다는 것. 모든 존재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 그래서 내가 아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고, 돈이 없어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아껴줄 때 세상은 더 살 만해질 것이다.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이 책은 우리 삶에 한 공기의 밥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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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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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데 거의 의식하지 않고 지낼 때가 행복할까? 아니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될 때가 행복할까?


이런 사람과의 관계를 공기와 사람의 관계로 치환할 수 있을까? 우리가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지 못하듯이, 공기는 우리 곁에 늘 있기 때문에 희박해지지 않는 한 의식하지 못한다. 그냥 내 삶의 일부일 뿐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좋을 때는 의식하지 못한다. 그냥 내 삶일 뿐이다. 내 삶일 뿐인 관계에서 그 사람이 문득 내게 의식이 되는 순간, 거리가 생긴다. 거리로 인해서 의식을 하게 되고, 의식이 점점 강해지면 의심으로 나아가게 된다.


단순하게 도식으로 나타내면 '의식-의심->갈등->파탄'으로 가는 길과 '의식->의심->갈등->해소'로 가는 길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서 평생 상대를 의식 안 할 수는 없다. 사랑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사랑이란 행위가 생각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면 사랑은 이미 의식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나 이외의 존재를 의식하고, 그 존재와 잘 관계맺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런 의식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그때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결실을 맺은 사랑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영원히 지속되기 위해서는 의식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있나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의식이 의심으로, 의심이 결국 파탄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고, 파탄으로 나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의심을 묻어버리는 일도 많다.


이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작품들이 상대방을 의식하는데서 나아가 의심으로, 결국은 관계의 파탄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황정은이 쓴 '상류엔 맹금류' 최은미가 쓴 '창 너머 겨울' 손보미 '산책'이 그런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상대를 의식하면서 관계가 파탄으로 치닫는 그런 소설들. 이 소설들에서는 함께 하지만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무언가 관계가 자꾸만 어긋나는 듯한 모습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상대를 존중하고 받아들인가고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일 뿐이다. 이들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자신의 내면에서 담을 쌓고 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그러면서 상대가 모든 것을 보여주길 원한다. 세 소설 중에서 특히 손보미의 '산책'이 그런 느낌을 준다. 


반면에 조해진이 쓴 '빛의 호위' 윤이형의 '쿤의 여행' 최은영이 쓴 '쇼코의 미소'는 상대를 의식하지만 그 상대로 인해서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렇다. 상대는 내 삶을 피폐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내 삶을 돌아보며 새로운 삶을,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세 소설은 읽으면 새로운 삶에 대해 두려움보다는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기준영의 '이상한 정열'은 그럼에도 삶은 지속된다는 것을, 우리의 일상에서는 이러한 의식으로 인한 파탄도, 또 해결도 함께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이번 소설집에서는 관계의 두 방향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한 쪽면만 나타날 수는 없기에, 우리들 삶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이번 작품집이다.


다만,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게 나만의 철옹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세계에 다른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다. 


함께 하되 다른 삶을, 다르되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장소를 내 삶에 마련하는 것. 거기에 성공하면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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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01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통해서 소설을 읽는 좋은 시각을 배웠네요! 잘 배우고 갑니다. 즐거운 한주 되십시요!

kinye91 2021-02-01 10:5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막시무스 님, 좋은 한주 되십시오.
 

  컨택트, 언컨택트, 언택트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나 보다. 우리는 직접 만남에서 소리를 통한 만남으로, 그 다음에는 소리가 아닌 문자를 통한 만남, 그것도 아닌 그냥 비대면이라고 하는, 서로가 접촉을 하지도 않고 물건을 통해서만 만나게 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서 배달음식들도 이제는 용기를 회수해 가지 않는다. 배달하는 사람들도 그 업소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특정 플랫폼에 소속되어 있으니, 어떤 물건을 통해서 우리는 소속감을 느낄 수도 없다.


  그냥 문자로 신청하고, 내게 온 물건을 소비하면 끝이다. 그 물건을 만든 장소가 어디인지, 누가 배달했는지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비대면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없다. 그냥 물건들만 돌아다닐 뿐이다.


함성호 시집에서 '자장면은 전화선을 타고 온다'는 시를 읽고 이 시가 지금 우리 현실을 앞서 경험했다는 생각을 했다. 


자장면은 전화선을 타고 온다


자장면 왔습니다

자장면집 배달원이 자장면을 가지고 왔다

거기 놓으세요

가장 어린 직원이 신문지를 편다

야근을 자장면 먹듯이 하는 때

우리는 둘러앉아 자장면을 먹는다

만 사천 원입니다

덤으로 튀김만두도 가져온 배달원은

빈 철가방을 들고 나갔다

우리는 자장면을 먹으며

자장면집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생각했다

어느 집이나 다쿠앙의 맛은 다 비슷하고

배달 오토바이의 종류도 다 비슷하다


우리는 자장면을 먹으며

비닐 랩이 없던 시절에도 국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그 초절 기교의 배달원들을 생각했다

그때도 자장면집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장면을 다 먹고 빈 그릇을 복도에 내놓으면

언제 와서 가져가는지 모르는

과연 그 자장면집은 어디인가?

전화를 걸어

"자장면"

하면, 오는

말이 이루어지는


함성호, 너무 아름다운 병. 문학과지성사. 2010년 초판 4쇄. 54-55쪽.


이 시 역시 언택트라고 하는 비대면의 상황을 말해준다. 자장면집이 어디인가? 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이 물음은 자장면집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비대면의 시대를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비대면의 시대와는 다른 점이 이들은 함께 모여 자장면을 먹는다. 지금은 자장면을 시켜도 함께 먹을 수 없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바꿔놓은 풍습이다. 여기에 배달원은 자장면집 소속이 아니다. 그리고 그릇을 이제는 가져가지 않는다. 


더더욱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어디를 가도 '셀프'라는 이름으로 '키오스크'라고도 하는 기계 앞에서 사람과 만나지 않고 일을 처리하게 된다. 그런 시대가 되었다. 물건들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사용이 되고 나면 이제는 재활용품이 되거나 쓰레기가 된다.


그렇게 시대가 변했다. '말이 이루어지는'이라고 했는데, 이때 말은 그래도 사람의 실체를 어느 정도 담고는 있다. 지금은 말도 아니다. '앱'을 통해 다 해결하게 된다. 


20년 전에 쓰인 이 시를 읽으며 지금 시대를 생각하게 되니, 앞으로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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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0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0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 제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종옥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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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상집에는 다양한 내용의 소설이 실렸다. 어느 하나로 정리하기가 힘든, 또 일곱 편의 소설을 몇가지 주제로 나누기가 힘든 그런 소설들이다. 그러니 이 수상집에 있는 소설을 하나로 뭉뚱그리는, 또는 어떤 공통점을 찾는 일은 포기하자.


젊은작가들이란 나름 기성세대를 뛰어넘으려는 실험을 하는 패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 기존 소설의 문법에 충실한 작가들이 젊은작가상을 받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해 무언가 새로운 주제, 새로운 내용, 새로운 형식을 잘 드러난 작품들이 젊은작가상이라는 상을 수상했다고 봐야 하는데...


다른 작품들은 그다지 큰 느낌을 주지 못했는데 첫작품 김종옥이 쓴 '거리의 마술사'는 마음에 남았다. 왕따를 다룬 소설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다름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서 그랬다고 할 수 있다.


다름에도 종류가 있다. 찬사를 받는 다름과 멸시를 받는 다름. 그냥 나랑 다르네 하고 인정을 받는 다름. 이렇게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마지막 부류, 나랑 다르네 하는 범주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포함된다.


왜냐하면 쌍둥이조차도 완전히 똑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아서 모르지만 복제인간이 나타난다고 해도, 복제인간과 세포(핵)를 제공한 인간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 어, 나랑 다르네. 이것은 배제가 아니라 인정이다. 함께 살아갈 때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발견하는 모습.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다수는 다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이 다를 때는 양 쪽으로 분화가 된다. 찬사와 멸시로.


찬사를 받는 다름은 뛰어남으로 인정받는다. 숭앙의 대상이 된다. 우상이 된다. 그런 사람들은 다름으로 인해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 다름을 자랑스러워 하며 지내게 된다. 다른 사람들도 그 다름을 부러워할 뿐이다.


김종옥 소설에서 이런 찬사를 받는 다름의 부류에 속하는 인물은 안나와 거리의 마술사다. 안나는 뛰어난 외모로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학생으로, 그 학교 아이들의 찬사를 받는다. 달라도 너무나 다른 생활을 하는 안나에게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무시도 못한다. 그냥 경이에 찬 눈으로 안나를 바라볼 뿐이다. 그야말로 탤런트다. 재능이 많은 사람. 부러운 사람.


반면에 멸시를 받는 인물로 남우가 나온다. 소설 속에서 잠깐 등장하지만 남우를 영어로 'Rain Man'으로 낙서해 놓는 장면이 나온다. '레인 맨' 자폐를 앓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그런데 학생들은 이 '레인 맨'을 인정으로서가 아니라 무시를 넘어서는 멸시로 낙인 찍는다. 


남우는 학교에서도 특이한 걸음걸이와 다른 행동들로 학생들과 다르다고 인정되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저 나랑 다르네 정도였다. 그러다 반대쪽 다름에 있는 안나와 짝이 되면서 정확하게 안나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다름의 천칭이다. 하나는 찬사로서의 자리, 하나는 멸시로서의 자리.


결국 남우는 거리의 마술사를 흉내내지만 실패하고 만다. 남우의 다름은 거리의 마술사처럼 다른 사람의 찬사를 자아내지 못하고 죽음을 부르고 만다. 그렇다. 우리는 이렇게 다름을 다르게 대한다.


자신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사람의 다름에는 찬사로, 자신보다 한참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다름에는 무시 또는 멸시로,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인정으로. 


소설은 그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지 '왕따'에 관한 소설이 아니다. 우리들 삶에 관한 소설이다.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사람들.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런 우리들이 인정할 수 있는 다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제는 학교를 넘어서 직장에서도, 또 사회 전반에 걸쳐 다름으로 인한 '왕따'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도대체 왜 다름이 우리를 더 다양하게 풍요롭게 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다름에도 경계를 긋고 마는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경계의 확장 아닐까? 멸시를 받는 다름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지나친 칭송을 받는 다름 역시 일반 삶에서 배제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우리는 대다수의 인정받는 다름 속에서 두 다름을 배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대다수가 속해 있는 다름의 영역을 점점 넓혀가야 한다. 경계를 점점 더 엷게 해야 한다. 알게 모르게 그 경계들이 하나로 합쳐질 수 있게. 경계가 사라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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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손보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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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내 세계를 잠시 잊기 위해서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내 세계를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그냥 다른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기 위해서 들어가기도 한다.


그만큼 소설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열린 세계다. 비록 소설 속에서 닫힌 세계로 나타나더라도, 읽는 사람에게는 열린 세계다. 언제든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그런 세계. 특히 단편 소설은 그렇다. 


이번 젊은작가상 3회 수상작품집에서는 세 방향의 낯선 세계로 들어간다. 먼저 따스한 세계다. 그냥 읽으면서 잔잔하다, 덤덤하다고 느끼는 그런 세계. 그럼에도 그 세계 속에서 위안을 느낀다.


김미월이 쓴 '프라자 호텔'과 황정은이 쓴 '양산 펴기'가 그렇다. 두 소설을 읽으면 그 잔잔함에, 그리고 어려운 현실을 잠시 잊고 무언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이 두 소설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따뜻한 세계, 인정과 위안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잠시 마음을 편하게 놓아두게 된다.


두번째 세계는 미로의 세계다. 길을 잃은 세계. 여기서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도 있지만, 영원히 미로에 갇혀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김성중이 쓴 '국경시장'과 이영훈이 쓴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다. 현실에 없는 세상에 들어가 경험을 하지만, 자신의 기억을 팔아 다른 물건을 산다는 설정은 자신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자신을 잃은 사람은 살아갈 수가 없다. 국경시장의 인물들이 현실로 나오지 못하고 마는 것은 이러한 이유다. 자신의 기억을 판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이니까. 물신에게 자신을 파는 행위는 결국 파멸로 끝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영훈 소설은 미로에 들어가지만 나온다.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배설을 한다. 미로 속에 갇힌 삶에서 그것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므로 이 인물에게는 새로운 길이 나타날 수 있다.


세번째 세계는 닫힌 세계. 서로가 서로에게 벽을 쌓고 사는 세계다. 손보미가 쓴 '폭우'와 김이설이 쓴 '부고' 그리고 정소현이 쓴 '너를 닮은 사람'은 함께 하지만 결코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이 세계는 철저하게 닫혀 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문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설정이나, 갈등이 있을 때 문을 닫고 나가는 행위(폭우), 오로지 자신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고 일을 추진하는 모습(부고), 나에게 보이는 나의 또다른 모습을 부정하고자 하는 행위(너를 닮은 사람)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이번 작품집은 서로 다른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자,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하나의 세계로 정리할 수 없다고. 이보다 훨씬 많은 세계가 있다고. 당신은 소설을 통해서 어떤 세계를 경험하고 있냐고.


아니, 소설의 세계를 통해 당신은 어떤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냐고 묻고 있는 듯하다. 2012년에 나온 소설집이지만, 이 소설집에 나온 세상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들은 여전히 소설을 통해서 수많은 세계를 들락거리고 있다. 나는 어떤 세계에 살고 싶은가? 나는 어떤 세계를 만들고 싶은가?


소설을 통해서 더 많은 세계를 만나는 일은 내 세계를 더 다양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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