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개정판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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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집에는 6편이 실려 있다. 본래 7편인데 우여곡절 끝에 한 편이 삭제되고, 다시 출판되어 6편이 실려 있다. 작가란 이야기를 펼쳐가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지만, 자신이 어떤 소재를 어디에서 취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그래도 여섯 편만으로도 충분하다. 충분히 감동적이다. 마음을 울리는 소설들이 많이 실렸는데, 한편 한편이 독립적이면서도 지금 우리 사회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성성'과 관련된 소설들이 많았는데...


강화길 '음복',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장류진 '연수'가 그런 작품들이다. 


집안에서 오냐 오냐 귀함을 받고 자란 남편. 그 남편을 향한 적의를 절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남편. 그리고 그것을 감추려고 하는 시어머니 등등. 강화길 소설에서는 집안에서 누가 권력자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진정 권력을 쥔 자들은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하고자 하는 말을 그냥 하면 될 뿐. 그 행동과 말의 의미를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것. 한 집안의 제삿날에 펼쳐지는 강화길의 '음복'은 그점을 아내이자 며느리, 딸인 화자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서 서늘한 느낌을 받는데, 집안에서 이렇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예민하게 의식하고 민첩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직도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무딘 것이 자랑인 것처럼 말하는 남성들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집안에서 권력자이기 때문이라는 것. 


강화길의 소설에서 나아가면 비혼을 주장하는 여성이 나오는 장류진의 '연수'를 만나게 된다. 그렇다. 집안에서 궂은 일을 다하면서도 눈치를 보는 사람으로 살아가느니 홀로 살아가는 길을 택한 사람. 그 사람의 눈에 비친 어머니로 대표되는 여성들의 삶은 자식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여기는 삶이다. 자신과 자식을 동일시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즐기기보다는 자식의 삶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삶. 그런 삶을 거부하는 딸의 모습.


이런 모습은 '팬티'에 관한 일화로 강화된다. 팬티란 무엇인가. 가장 은밀한(?) 부위를 가리는 존재고,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반대로 다른 사람 대신 치우고 싶지도 않은 그런 존재 아니던가. 그런데 아내로서 남편의 팬티를 빨거나, 아이들의 팬티를 세탁해서 중고로 내놓은 그러한 삶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화자가 나온다.


누군가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받침하는 삶. 드러나지 않는 삶. 자신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삶에 대해서 그것이 특정한 성별에게만 부여된다는 부당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장류진 소설이다. 이런 일이 가정에서만 일어날까? 아니다. 사회에서도 일어난다.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가 그 점을 보여준다. 능력있는 강사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자 교수나 강사들과는 다른 반응을 받는 사람을 지켜보는 화자를 등장시켜서, 그들이 걸어온 길이 쉽지 않은 길이었음을, 그래서 그런 그들이 보여준 '희미한 빛으로도' 지금껏 많은 여성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그 빛은 '희미하다'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현석의 '다른 세계에서도'는 낙태에 관한 소설인데, 쉽게 정리하기가 힘들다. 많은 생각. 여성의 관점, 생명의 관점, 선택권의 관점, 그리고 행복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접근하고 있는 소설인데...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진행 중이니, 더 많이 고민해 보고 생각해 봐야 겠다.


이런 경향과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 김초엽 '인지 공간', 장희원 '우리(畜舍)의 환대'다. 두 작품 다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는데...


장희원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라고 한글로 쓰면 우리는 대부분은 나와 너가 함께 하는 '우리'를 생각하는데, 괄호를 치고 동물들을 기르는 장소인 '축사(畜舍)'라고 썼다. 우리는 '우리(畜舍)'에 갇히길 거부하는데, 이것은 '우리(畜舍)'를 우리와는 다른 장소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畜舍)'의 환대라니.. 반대로 우리가 환대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환대받고 있다니...


이때 우리는 소위 '정상가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우리(畜舍)'는 그 틀을 벗어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사회에서 주류를 이루는 보통 '정상가족'을 생각하는 우리를 환대하는 소수자의 삶을 사는 '우리(畜舍)'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의미가 있다.


무엇이 '정상'인지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畜舍)'라는 장소에서 편안함을 느끼면서 다른 '우리(畜舍)'들을 배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들이나 우리나 다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우리(畜舍)'일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김초엽 소설은 공상과학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상의 환상적인 공간을 이야기하지만 등장인물이 '이브'라는 점에서 인간의 역사를 생각하게도 한다. 제목 역시 '인지 공간'이다. 모두가 공동 지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개인 지식을 생각하는 '이브' 


그 '이브'는 공동체에서 배제된 사람이다. 다르다는 이유로. 아니 자격미달이라는 이유로. 또는 다른 생각을 지녔다는 이유로. 그것은 공동지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왜 우리가 모두 공동지식만을 지녀야 한다는, 인지 공간에서만 살아가야 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에 배제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이브'를 지켜보는 '제나'를 통해, 또 '이브'의 뒤를 이어 '인지 공간'을 떠나는 제나를 통해 어쩌면 개인이라는 존재가 사회에 자리잡는 과정을 쓴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공동체주의에 매몰되어 자신을 생각하지 않게 되는 삶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개인을 생각하고, 주체로서의 개인을 의식하고 개인으로서 살아가려는 모습이 이 소설에서 '이브와 제나'를 통해 표현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간략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이번 수상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은 한편 한편이 다양한 토론거리를 제공한다. 읽고 읽고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 관련지어 많은 이야기를 하면 좋을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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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08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재미있게 있었던 기억이 리뷰를 통해 새록해지네요! 즐거운 하루되십시요!ㅎ

kinye91 2021-02-08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젊은작가들 소설 읽는 재미도 쏠쏠하지요. 막시무스 님도 책과 함께 즐거운 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우리들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주거 아닐까? 홈리스라고 하는 노숙인이라고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주거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


  주거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과연 개인의 책임일까? 무조건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모 도움이 없다면 자기 집 장만하기 힘들다. 


  집값이 좀 비싸야 말이지. 부모 찬스를 쓸 수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기회는 공평하지 않다. 그런데도 개인에게만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이렇게 소중한 주거 공간에 대해서 사회적 책임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역할, 빅이슈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런 역할을 하는 소중한 존재다.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빅이슈에서 연재되고 있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글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 소중한 집이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번 호에는 집과 관련해서 슬픈 글이 하나 있다. 이주노동자였던 속헹 씨의 죽음. 속헹 씨와 비슷하게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거처하는 곳은 기숙사이거나 또는 비닐하우니 내 가설건축물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비닐하우스도 인정해줬는데, 지금은 불법이고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은 허가가 되었다고 다시 비닐하우스 외 가설건축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연령, 성별, 지역, 국적, 인종 등등에 따라서 어떠한 차별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인권인데,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주거를 마련해 주고 노동을 하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번 호였다.


빅이슈가 발간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런 집에 관한 문제를 계속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니, 그 점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번 호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글들이 많다.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들에서. '쓰레기와 의료'라고 정리할 수도 있겠는데...


쓰레기 문제는 그야말로 심각하다. 그런데 이 쓰레기들 중에 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고, 그것을 노인들이(예전에는 주로 여성 노인, 그 다음에 남성 노인이 참여하고, 이제는 젊은층과 이주노동자 층도 참여해서 이 부분에서도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분리수거 해서 생계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


폐지와 다른 것들을 줍는 노인들이 우리나라 재활용산업의 한 축인데 그들을 무시하는 모습들은 지양해야겠다는 것과, 권위와 이익을 내려놓은 의료.


의료 협동조합을 하는 의사 이야기는 읽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의사들이 우리 곁에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더 많은 의사들이 의료협동조합 활동에 참여해서 권위와 이익을 내려놓고 정말로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 편은 그래서 읽으면서 마음이 내내 따스해졌다. 그 책을 사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기회를 봐서 꼭 읽어봐야겠다.


물론 이번 호에서 표지에 나온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라는 만화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다시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나 역시 이 글에 소개된 순정만화는 잘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학창시절에 다른 만화에 빠져 있었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그린 신일숙 작가가 초기에 순정만화는 인기 만화에 끼워 출판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박봉성 만화가의 '신의 아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당시에 박봉성 만화도 즐겨 봤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과거로 돌아가는 즐거움을 맛보는 시간도 가졌다.


좋다. 이번 호는 이 말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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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2-06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호 구매가 시급합니다!! 좋은 나눔 늘 감사해요!!😊

kinye91 2021-02-07 08:19   좋아요 1 | URL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빅이슈는 그야말로 나눔이에요. 책읽기도 마찬가지란 생각이고요.
 
N번방 이후, 교육을 말하다 - 페미니즘의 관점
김동진 외 지음, 김동진 기획 / 학이시습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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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에 우리나라를 흔들었던 사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N번방 사건이었다. 우리가 흔히 너무나 많아서 숫자를 붙이기 힘들 때 알파벳 N을 쓴다. 가령 몇 사람이 동등하게 나눌 때 사람 숫자가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1/N'하자라고 이야기 한다. 이 N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래서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어느 누구라고 꼭 정하지 않더라도 흔하게 하는 일에 참가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게 된다.


N번방, 마찬가지다. 1번방, 2번방이 아니라 N번방이다. 그만큼 방이 많아졌다는 뜻이겠다. 방이 많아졌다를 다른 말로 하면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단속되지 않도록 방을 바꾸면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뜻이다. 범죄인 줄 알면서도 안 걸린다고 방을 만들면서 큰소리를 친 사람이 있었고, 그 큰소리를 믿고, 안 걸릴 줄 알고 참여한 사람도 있고, 그것이 범죄라고 생각하지도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가 된 이후에 N번방을 만들거나 적극 참여한 사람들이 체포되고, 입건이 되면서 그것이 범죄라는 사실을, 적어도 그 사실만은 깨닫게 되었다. 나는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자신도 그 범죄에 가담한 사람임을 자각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사실 N번방이라는 말보다는 성착취범죄방이라고 하는 편이 사람들에게 더 조심하게 하는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 않게, 그것이 범죄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표현을 언론이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단지 언론에서만 그렇게 하면 되나? 아니다. 끊이지 않고 나오는 성폭력 사건들을 보라. 그것도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니, 이것은 특정한 못된 범죄자들만이 저지르는 일이 아니다. 또 이렇게 이야기하면 선량한 사람들을, 특히 남자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고 비비판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N번방 사건과 같은 일이 특정한 못된 흉악한 범죄자만이 저지르는 일이 아니라는 말은 그러한 문화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으며, 그것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지니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예전 소설에서 남자들이 군대에 가기 전에 무슨 통과의례처럼 사창가에 가는 일들이 너무도 흔하게 나타났다. 또 여자들을 동등하게 대하지 않는 행동들도 무척 많이 나타났고. 그런 모습들이 소설에 많이 나타났다는 것은 여성들의 성을 착취하는 행위가 일종의 관습처럼, 남자들 세계로 전해 내려왔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잘 아는 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보라. 여기에 선녀의 인권은, 자기결정권은 어디에 있는가? 자, 나는 나무꾼이 아니라고? 그렇담 생각해 보자. 나무꾼이 당당하게 선녀와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마을에서도 그런 행동이 용인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나무꾼이 아니라고 나는 선녀의 그 일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지 말라고 하기 전에, 우리 사회에 어떤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지를... 어쩌면 너무도 익숙해서 문제의식을 지니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그래서 우리는 불편해져야 한다. 자신을 돌아봐야 하니까. 자신의 행동을 생각해 봐야 하니까. 그리고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할지 고민해야 하니까. 적어도 이 지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N번방이 우리에게 지닌 의미를.


그래서 이 책은 유치원부터, 초-중-고-대, 그리고 성인까지를 아우르면서 성평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계기는 N번방이지만 우리 사회가 여성을 보는 관점과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N번방은 그야말로 또 다른 방을 불러오는 N번방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이 매우 힘든 일임을 각 분야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사람, 그들 말대로 하면 '한 줌밖에 안 되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사회는 조금씩 변해간다.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자신과 관계 있는 분야의 대담, 글을 읽어도 좋지만, 처음부터 주욱 읽어가는 것도 좋다. 왜냐하면 '유-초-중-고-대-사회'에서 노력하는 모습, 어떻게 해왔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분야가 있지만, 거기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내가 살아온 날들도 있고, 나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살아온 또는 살아갈 날들도 있고, 여러 사람이 관계되는 장소, 공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한 분야에서만 바뀌어서는 안 된다. 여러 분야에서 이런 사람들의 노력이 함께 결실을 맺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 그 상대방의 연령, 학력, 성별, 경제적 상황, 신체 등등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 그러나 나와는 다른 사람, 그래서 더 존중해야 할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존중은 다름에서 나온다. 나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다른, 독립된 존재임을, 나와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할 사람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부터 한다면 상대를 짓누르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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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캐낸 술 이야기 - 재미있는 주사
박일환 지음 / 달아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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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주요 국어사전은 두 개다.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참조하기 쉽고, 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전들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언어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전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늘 우리나라 사전에 대해서 아쉬움을 지니고 있었다. 사전을 혼내는, 혼낸다기보다는 사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책들도 썼는데, 사전 편찬자들이 받아들여야 할 지적들이 많다. 이 책도 사전에서 찾은 술에 관한 내용들이지만, 우리나라 사전이 고쳐야 할 방향 역시 제시하고 있다.


사전, 말모이라고 하는, 그 나라 어휘들의 종합 아니던가. 그 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을 모아놓은, 단지 어휘들이 아니라, 그 어휘들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 경제, 정치 등등 생활 전반을 알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 바로 사전이다. 그러니 사전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력을 기울여 만들어야 할 그 나라의 보물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사전에 과연 얼마만한 공력을 기울였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실 가장 먼저 참조해야 하는 책이 사전이고, 또 마지막으로 정리할 때도 보아야 할 책이 사전인데, 보완할 점이 한둘이 아니니,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전에 애정을 지니고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좀더 나은 사전이 되리라는 희망을 지닌다.


이 책은 술에 관한 말들을 사전에서 찾아 우리에게 정리해주고 있다. 단지 술에 관한 낱말 모음이 아니다. 술에 관련된 사람, 일화, 유래 등등 단지 사전에만 있는 사실을 간추려 전달해주고 있지 않다.


사전에 나와 있는 말을 중심으로 부족한 점은 보충하고, 잘못된 점음 바로잡고, 또 그 말과 관련된 다른 사실들을 찾아 정리해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술에 관한 어휘뿐만이 아니라 술의 역사, 술에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다. 여기에 술에 관한 정책도 알게 되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주령'같은 경우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금주령'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이 말이 당연히 사전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도. 다만 '우리말샘'에는 있다. 주금령이라는 말은 있는데...


이렇게 사전이 현실 언어 생활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저자의 지적이 타당하다. 이런 일은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이 책은 이렇게 '금주령'이란 어휘로 끝나지 않는다. 사전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시행이 되었으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등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니 술에 관한 어휘로 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총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서 서술되어 있는데, 술꾼들을 표현하는 말을 중심으로 하는 1부와 술, 특히 소주의 세계를 알려주는 2부, 옛날 술들의 세계로 안내해 주는 3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4부, 그리고 술을 둘러싼 세계라고 해서 술의 예절, 문화, 정책 등을 5부에서 살펴보고 있다.


세계에서 술 소비량으로 따지면 순위권에 드는 우리나라. 다양한 술과 다양한 술 이름, 그리고 술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까지 넘쳐나는 우리 사회인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사전에 실린 술과 관련된 단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어서 '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술이 우리에게 술술 넘어가듯이, 이 책 역시 술술 읽히는, 읽는 맛도 좋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술을 경계하라 끝내고 있는데, 그 말을 주계(戒) 또는 주고(誥)라고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주고란 말도 사전에 실리지 않았다고 하니, 이런 말은 꼭 실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 나온 세종의 주고가 있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세종 역시 술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금주령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경계하는 글을 써서 널리 알렸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길어서 링크를 걸어둔다. 읽어보면 술에 관한 책에서 술을 경계하라!로 끝맺음을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적당해야 가장 좋은 것이 술이니...


조선왕조실록 (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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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2-04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어사전을 들여다보고 싶은 맘이 들게 하는 책이네요!
우리 국어사전 진짜 문제 많죠.. A단어의 풀이가 B라서, B를 찾아보면 A라고 나와 있는...ㅠㅠ

kinye91 2021-02-04 14:09   좋아요 1 | URL
맞아요. 국어사전에서 낱말 찾다가 계속 낱말 여행한 적도 있어요. 붕붕툐툐님 말처럼 찾다찾다 보니 처음 낱말인 경우도 있고요. 국어사전 중요하니 이런 책처럼 하는 비판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마야콥스키, 나는 마야코프스키로 알고 있던 사람. 러시아 이름이 길기도 하지만, 풀어서 쓰기도 하고 붙여서 쓰기도 하니, 어떤 글을 읽었느냐에 따라 사람 이름이 약간은 달라지기도 한다.


  마야콥스키 하면 러시아 미래파 시인이라는 기억만 남아 있다. 그의 시를 읽은 적도 없고. 우리나라에서 카프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용이 되기도 했다는 기억은 있는데...


  중고서점에서 그의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이제는 소련도 해체되고,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는 거대한 실험을 하는 나라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고, 그에 따라 사회주의를 주요 내용으로 삼던 문학가들도 문학사에서 하나둘 이름이 지워지기 시작했는데...


  왜 마야콥스키인가? 그냥 단순히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까? 아님,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꼈을까? 사회주의 혁명을 열렬히 찬양했던 시인이 사회주의 국가가 실현되자 자살을 한다? 이런 모순된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하는 호기심.


그러다 이 선집을 읽으며 마야콥스키가 사회주의 국가 소련에서 견딜 수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선집에 실린 시 중에 그런 생각을 강하게 하는 시들이 있다. 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 어떻게 혁명 이후 사회에서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그 시들 제목을 들면 회의광(1922년), 관료주의(1922년), 수뢰자(1926년), 관료주의자의 공장(1926년), 자아비판에 대한 비판(1928년), 아첨꾼(1928년)이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때부터 나타난 현상. 혁명의 배반. 그것은 혁명의 지속, 또는 혁명의 유지라는 이름을 걸고 나타난다. 마야콥스키는 그 점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시를 통해서. 


그는 러시아 혁명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뒤로, 뒤로 복고로 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렇게 보았기에 이런 시들을 썼을 것이다.


혁명은 순식간에 전 사회를 뒤집는다. 그런데 뒤집은 다음이 문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그냥 과거를 뒤집을 뿐이다. 그러니 혁명을 이룬 사람들은 초조해 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혁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고, 자칫하면 혁명은 실패하고, 혁명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만이 혁명을 완수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아첨꾼을 낳고, 관료주의를 낳는다. 오로지 회의를 통해서 결정하려고 하는 회의광들이 생기게 되고, 자아비판이 무슨 만능인 것처럼 판치게 된다. 마야콥스키는 그 점을 보았다. 그래서 시를 통해 이렇게 변해가는 사회가 과거 사회와 어떻게 다른지를 꼬집고 있다.


혁명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는 참 힘들다. 그래서 마야콥스키가 쓴 시는 지금도 유효하다.


혁명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전 정권과 다른 정권이 집권했을 때 그들이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전철을 밟는 모습이 너무도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집권한 정당, 또 사람은 더욱 어려운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길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길에 나타날 수 잇는 장애들이 무엇인지, 마야콥스키의 시를 통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마야콥스키의 시가 지금도 유효한 것이다. 한 시대만을 대표하고, 그 시대로 끝나는 시가 아닌, 우리들 삶에서 반복되기 쉬운 점들을 시로 표현하여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선집에 실린 비록 마야콥스키와 실제로 대담한 것은 아니지만, 가상 대담이 실려 있다. 번역한 이가 여러 책을 참조해서 마야콥스키의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마야콥스키의 이름을 빌려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마지막에 나온 말.


그래서 마야콥스키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말...


'나의 유토피아는 숨 막히는 완전 사회에 대한 꿈이 아니며, 독일의 철학자 블로흐가 주장한 것처럼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지향입니다. 여기 번역된 나의 시가 지금의 한국 독자들에게는 '언젠가 그 안에 담겨 있었을 진정성과 절실함은 휘발되어버리고 단지 우스꽝스러운 기표로만 남겨진' 시대착오적인 구호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믿고 있습니다.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시도 문학도 새로운 힘과 사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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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2-04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완전 강렬해요! 따귀 얼얼한 느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