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의 불 - 한 자연과학자의 자전적 현대 과학문명 비판
에르빈 샤르가프 지음, 이현웅 옮김 / 달팽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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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에르빈 샤르가프의 자서전이다. 에르빈 샤르가프... 몰랐던 사람이다. 과학 쪽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알겠지만, 과학과는 거리를 두고 사는 내게는 전혀 낮선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이런 나에게도 친숙한 이름인 왓슨-크릭이 발견한(?) DNA 이중나선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샤르가프의 연구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그렇다면 이 에르빈 샤르가프라는 사람도 생물학 쪽에서는 꽤 권위를 지닌 과학자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책 제목 옆에 쓰여 있는 설명은 '한 자연과학자의 자전적 현대 과학문명 비판'이다. 샤르가프는 현대과학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았음을 알려주는 말인데...


너무도 분화되고 전문화된 현대 과학은 전문가끼리도 소통이 안되는 경우가 많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융합이니 통합이니 하는 쪽으로 여러 학문이 교류하고 함께 작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요즘 과학풍토에 대해서도 샤르가프는 비판적일까 생각을 해보니, 그의 자서전을 읽은 결과 그는 요즘 이런 융합 과학 쪽에도 비판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샤르가프가 비판하는 과학의 방향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전문분야만으로는 더 나아갈 수가 없으니 다른 전문분야와 합쳐 나아가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현대 과학의 방향이다. 반면에 샤르가프는 작은과학을 추구했다. 그것은 각 분야로 더 쪼개지는 과학이 아니라 자연을 넘어서지 않는, 인간 자체를 넘어서지 않는 과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책의 표지에 천지창조 그림 중에서 신이 아담에게 손가락을 내밀고 있는 장면에서 둘의 손가락은 맞닿아 있지 않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샤르가프는 바로 이 상태에서 자신의 삶, 자신의 과학을 한다고 한다. 떨어져 있는 이 공간을 넘어서지 않으려는 자세. 이것은 둘의 손가락을 맞닿게 함으로써 인간을 신의 위치에 올려놓으려는 현대 과학을 비판하는 그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또 샤르가프는 물리학 분야에서 이루어낸 과학 결과들은 바꿀 수 있지만, 인간이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생물학 분야에서 이루어낸 과학 결과물들은 비가역적이라고,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다고, 인간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고, 그 유기체들은 스스로 살아가게 된다고,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고, 그런 점을 명심하고 추구하는 과학이 작은과학이라고 한다.


그러니 샤르가프는 동키호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는 고집세고 시대를 읽을 줄 모르는 과학자 취급을 받는다. 


이 책은 왜 샤르가프가 그렇게 현대 과학에 비판적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가 살아온 시대를 통해 과학자들의 위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알 수 있다.


책의 첫 시작은 원자폭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그 사건을 접하고 미국을 떠날 생각을 한다. 여기서부터 샤르가프가 생각하는 과학을 알 수 있게 된다.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프로젝트를 맨하탄 프로젝트라고, 엄청난 숫자의 과학자들이 모여 작업을 했고, 그것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으며, 결과는 인류에게 참혹한 폭탄 생산이었다는 것.


기술과 권력에 종속되는 과학은 진정한 과학일 수 없다는 것, 그런 과학이 이제는 인간의 몸을 향하면 인간 복제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에 대해서, 그는 과학이 선을 넘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시 책의 끝부분에 가면 그의 생애를 한 장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첨단과학기술시대를 살고 있다. 샤르가프가 우려했던 부분에서 더 나아가고 있는 중.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 결과가 샤르가프의 예측을 빗나가게 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더 많은 고려, 더 많은 책임, 더 많은 윤리들이 과학에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금 나는. 그럼에도 샤르가프의 경고, 또는 우려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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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인민들의 문학 생활 - 북한의 페미니즘 소설부터 반체제 지하문학까지, 최신 소설 36편으로 본 2020 북한 인민의 초상
오창은 지음 / 서해문집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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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을 보고 북한 소설에서 어떻게 페미니즘 모습과 반체제 모습이 나타나는지 궁금해서 구입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페미니즘이나 반체제 모습은 아주 조금 나온다. 이 책을 이루는 주요 부분이라고 할 수 없다. 주요 부분은 1990년대 이후 북한 소설의 전체적인 모습이다.


그 전체적인 모습 속에서 페미니즘이나 반체제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소설이 등장하고, 그것에 대한 설명이 있지만, 이 책을 아우르는 것은 북한 소설에 나타난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가다.


북한은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마음으로는 가장 멀리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마음으로라고 이야기한 것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서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북한에 대한 정보를 자유롭게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화라고 하고, 정보화 시대라고 하지만 북한에 대해서만은 예외다. 그래서 마음의 거리를 재보면 북한은 저 멀리에 있다. 여기에 몸의 거리도 역시 가장 멀다. 우리 몸이 자유롭게 그곳을 드나들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보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되어 있으니 북한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역시 그 한정된 정보 속에서 숨어있는, 또는 숨겨진 정보를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무척 힘든 일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많은 북한 소설이 나오는데, 연구자는 운이 좋게도 (세상에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그 나라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운이 좋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모습도 역시 북한은 몸과 마음으로 참 멀리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때 '멀다면 안 되겠구나'라고 해서 그 말이 유행했었는데, 사실 멀다. 아주 멀다. 이것이 현실이다) 연변에서 북한 소설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1990년대 이후에 나온 소설들을 읽을 수 있었고, 그렇게 읽은 작품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그러니 이 책에는 우리가 전혀 읽지 못했던 북한 소설들이 다수 등장한다. 물론 제목과 작가, 그리고 대략적인 내용만 우리는 알 수밖에 없지만.


북한 문학은 '노동과 일 중심의 서사, 비극이 없는 낙관주의,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과 집단주의 의 추구' 등을 특징으로 한다. (23쪽)


아마도 이 말이 북한 소설을 정리하는 가장 좋은 말일 것이다. 이 책에 나온 많은 작품들도 이런 내용을 주로 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만 문학 작품을 창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학은 집단주의보다는 개인주의 쪽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고, 세상은 낙관으로만 일관되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비극적인 결말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을 소설이 외면하면 과연 그 작품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북한 소설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나라 독자들이 북한 소설을 읽더라도 반발심을 지니게 되는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수령과 당에 대한 찬양은 북한 문학의 장르적 관습이다. (215쪽)


수령과 당에 대한 찬양이 소설 속에 나와야 한다면, 그 소설이 비극으로 갈 수가 없다. 낙관주의, 집단주의 특성을 지니게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1990년대에 겪었던 고난은 그들로 하여금 노동과 일 중심의 서사를 소설 속에서 구현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생각이 든다.


이 점을 감안하고, 소설 속에 숨어 있는, 노동과 일 중심의 서사 속에 숨어 있는 장시간 노동, 굶주림, 여성보다는 남성 중심의 생활 등등을 찾아내고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재구성해내는 모습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에서 반체제적인 작품이 전혀 없을까? 아마 공식적으로 출판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지만, 비밀리에 유통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비밀리에 북한 내에서 유통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북한 체제를 비판한 작품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고 한다.


반디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사람이 쓴 '고발'이라는 소설을 통해 체제 속의 소설과 체제 밖의 소설을 비교할 수 있게 된 것을 넘어 북한 사람들의 알려지지 않은 생활, 감정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몸과 마음으로 거리가 먼 북한 소설. 읽기도 힘들고, 이해하기도 힘든, 숨어 있는 의미, 즉 행간을 읽기도 힘든 소설들을 연구하는 사람이 최근에 나온 북한 소설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페미니즘이나 반체제 문학에 대해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소설을 통해서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북한 소설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이 책이 아마도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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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작년과 달리 삶이 보였으면 한다. 물론 삶은 늘 보였겠지만, 작년엔 코로나19로 인해 암담하지 않았던가. 우리들 삶이 전세계를 덮친 감염병으로 가려져 있지 않았던가.


  감염병조차도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음을 우리는 한 해 동안 똑똑히 겪어보지 않았던가. 그런 감염병의 시대에 삶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평시에도 삶이 잘 안 보이던 사람들이었음을... 그나마 그들이 볼 수 있던 쪽창도 감염병은 막아버리고 말았음을 온몸으로 겪었던 한 해였다.


  '삶이보이는창 124호'는 겨울호지만 새해 시작을 알리는 호이기도 하다. 그러니 추운 겨울에서 새로운 시작을 보고, 봄을 기대하게 하는 책이기도 한 셈.


  이 책에 실린 글들 역시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희망을 지니기 위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만 하니, 우리 사회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을 대변하는 잡지라고 해도 되지만, 대변이라는 말보다는 그들과 함께 하는, 또는 그들이 만들어 가는 잡지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그래야 '삶이 보이는 창'을 우리들 모두가 지니게 될 테니 말이다.


특히 '삶이 보이는 창'에는 '노동'에 관한 글이 빠지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노동없이 살아갈 수 없음에도 노동을 천시하고 있었던 것이 현실 아니던가. 그러니 노동을 강조한다기보다는 노동이 제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는 삶창의 글들은 여전히 소중하다.


'노동'에 관한 글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잘 실려 있는데, 이번에 '시인의 눈'에서 다룬 이주노동자들의 시는 우리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을 다루고 있는 방송들을 보게 되면, 그들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절에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논조로 방송을 이끌어가면서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노동하러 온 사람들 아닌가.


그 나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어 하는 일들을 했던 사람들이 파독 광부, 간호사들 아니었던가. 마찬가지로 지금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힘든 일들, 남들이 많이 꺼리는 일들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기본적인 노동을 그들이 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에게도 기본적인 인권, 정당한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아직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그러니 그들이 쓴 시집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들이 어떤 감정을 지니고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삶이 보이는 창'은 우리에게 삶을 보여준다. 우리들이 가끔은 눈 감아 버리는 삶들이 엄연히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보여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들도 자신들의 삶이 있음을, 그들도 삶을 볼 수 있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함을 여러 글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래, 올해는 모두에게 '삶이 보이는' 그런 한 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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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차별주의자 - 보통 사람들의 욕망에 숨어든 차별적 시선
라우라 비스뵈크 지음, 장혜경 옮김 / 심플라이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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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으면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 눈에 있는 티끌은 잘 본다'는 말이 생각난다. 내가 살아오면서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차별주의자들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차별주의자라고 쉽게 단정짓고 판단한다.


그런 판단 자체가 이미 차별주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랬다. 내가 지닌 차별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나 역시 쉽게 편가르기를 하고,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우선적으로 호감을,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비판적이기보다는 악의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꾸만 내 의견을 채우는 사실들, 책들, 사람들, 주장들만 받아들이고, 나와 다른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억측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내치기만 한 것은 아닌지...


민주주의란 상대의 주장에 대해 귀 기울여 듣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이룰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을 내 관점에서 왜곡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만큼 이 책에는 다양한 차별의 형태들이 나온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차별들. 스마트 시대가 되었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차별이 있음을, 우리가 스스로 빅브라더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자아를 중시하면서도 오히려 남의 이목을 끌려고 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여기에 보태서 소비에서 일어나는 차별. 어쩌면 우리는 소비하는 모습을 통해서 차별을 공고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단지 특정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것을 떠나서 유기농, 공정 무역 등등에서도 차별적 시선이 담겨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한 말 '독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250쪽)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변치 말아야 할 것은 도덕적인 우월감과 경멸을 조장하는 세력을 잘 살피고 공개해 널리 알리는 일, 그리고 남을 향하는 엄격한 시선을 자주 자신에게로 돌리는 일이다. 이런 패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적어도 이 점에서는 우리 모두가 평등한 셈이다. (251쪽)


쉽지 않은 일이다. 엄격한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는 일은. 그럼에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민주주의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다. 존중은 꼭 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사실 관계를 파악하며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 주장보다 낫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면 인신공격을 일삼는 행위나 또는 패거리 정당 문화로, 자기 정당의 주장만이 옳다고 하는 행태는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태가 사라지게 하는 것은 결국 우리 몫이다. 우리 역시 이러한 패거리 문화에 속해 너무도 쉽게 한 편의 의견을 지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자신에게 엄격한 시선을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


일, 성, 이주, 빈부 격차, 범죄, 소비, 관심, 정치라는 8개 분야로 나누어서 이 분야들에 차별적 시선들이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틈나는 대로 다시 펼쳐서 읽으면서 내 사고방식, 행동방식에서 차별적 시선이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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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와 불평등 -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에 대하여
홍세화 외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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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평등해 보인다. 능력주의란 말.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다는 말. 그래 자신이 한 만큼 대우를 받는다는데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능력만큼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엇이 능력일까?


능력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능력은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그 개인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음을 이 책 여러 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내가 가진 능력이 오로지 나로서만 얻어진 것인가 하면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때 유행했던 아이큐 검사를 요즘은 신뢰하지 않는다. 아이큐 검사가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과도 특정 집단에 유리하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능력도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능력의 출발선이 달라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가족간 릴레이 경주라고 한다. 이미 한참 앞서 달린 가족에게서 이어받아 달리는 사람과 한참 뒤쳐진 가족에게서 이어받아 달리는 사람은 이미 출발선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그들이 발휘하는 능력은 이미 차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능력주의가 평등하다고? 이 책은 능력주의가 또다른 불평등을 낳고 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능력주의가 어떻게 공고하게 유지되는지를 보여주는데, 그 능력주의를 내면화하는 것이 바로 학교다. 학교는 시험을 통해서, 서열을 정함으로써 능력주의를 스스로 받아들이게 한다.


철저하게 서열화되어 있는 학교를 12년간 다니다보면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는다는 것에 반대하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게 된다. 그렇게 대학까지 16년을 다니고 사회 생활을 하게 되면 능력주의는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지탱해주는 이념이 된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공정을 외치게 된다. 결과의 공정이 아니라 기회의 공정이다. 기회가 균등하지 않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능력에 따른 결과를 오로지 개인에게 묻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나만의 능력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환경들의 총합이 능력으로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발선이 잘못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회가 평등하지 않음을, 능력은 결코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과를 능력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배분할 수가 있어야 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한다. 필요에 따른 결과의 배분은 기회의 불평등을 보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문제는 이것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해결책은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공립대학의 평준화 이야기도 나오고, 학교에서 서열화하는 시험을 폐기하는 방안도 나오고, 기본소득을 지급하여 최소한의 생계 걱정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하자는 방안도 나오지만, 여전히 해결책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 책은 소중하다. 능력주의가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불평등을 낳는다는 인식을 사람들이 공유한다면, 그 다음에는 능력주의로 인한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딱 한 가지만 기억하기로 했다.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은 착각이라고. 능력에 따른 차별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고. 진정한 공정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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