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탄생
김민식 지음 / 브.레드(b.read)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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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문득 이상국 시집이 생각났다. 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시집 제목은 '집은 아직 따뜻하다'다. 그래, 집은 따뜻하다. 따뜻해야 한다. 그런데 시 내용이 이런 따뜻함이었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목 그대로 보자. 사람이 떠났어도 집은 따뜻하다. 사람들이 살았던 온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은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집을 지나치게 크게 지으면 온기를 느낄 수가 없다. 집이 아니라 사무실이나 다른 공간이라고 느끼게 된다. 집이 따뜻함을 유지하려면 적정한 크기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집도 역시 크지 않다. 작은 집을 추구한다.


그렇다고 저자는 아주 작은 집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극한으로 몰아가는 작은 집. 그런 집은 수련을 위해서 또 잠시 머묾을 위해서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집이 따뜻한 이유는 사람 몸을 지켜주기 때문이기도 한데, 몸을 지켜준다는 이야기는 마음이 편해지는 분위기와 자연환경으로부터 건강을 지켜준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집, 그런 집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남들과 같은 집이 아니라, 나를 편안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집. 


저자 역시 이런 생각을 여러 군데서 비치고 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건축보다 자신이 우연히 만난 시골 건축이 더 좋다고 하는 말들. 화려한 디테일보다는 꾸밈없는 소박함이 좋다고 하는 말들. 디테일에는 비용이 들어간다고.. 비용은 단순히 돈만을 의미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력과 시간까지도 의미하니... 그런 건축보다는 적은 비용이 들었지만 살기에 편안한, 사람을 보듬어 주는 건축이 더 좋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축 자재로는 나무만한 것이 없다고... 나무는 오래가지 않냐고 하는 질문에 부석사 무량수전보다도 오래간다고 말한다는 그. 작은 평수의 나무집을 지어 사람들에게 보급도 하고 있다는 저자는, 집에 관한 여러 생각을 이 책을 통해서 펼치고 있다.


길지 않는 글들이 모여 있고, 다양한 집들이, 또 저자 글에 이어서 작은 설명이 스케치와 더불어 함께 해서 좋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글은 바로 '한옥'에 관한 글이다. (한옥은 없다. 137쪽-149쪽을 참조하면 된다)


도대체 '한옥'이 무엇인가? 한옥하면 어떤 집이 떠오르는가? 먼저 한옥하면 기와집이 떠오른다. 북촌에 있는 한옥들, 또는 전주한옥마을, 남산한옥마을 등등을 떠올린다.대부분 기와집이다. 


한옥을 짓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초가집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만큼 한옥은 특정한 형상으로 굳어져 있다. 그런데 과연 한옥이 무엇인가? 기와집만이 한옥인가? 아니라고 한다.


저자는 한옥이라는 말을 이렇게 뭉뚱그려서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집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데, 굳이 한옥이라는 이름으로 단순화시켜야 하겠냐고 반문한다.


(이상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한옥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통집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마을인데도 그냥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기와집과 초가집이 함께 있기 때문인지... 이 이름을 보더라도 한옥으로 뭉뚱그려서는 안 되겠다.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그냥 기와집, 초가집, 귀틀집, 너와집 등등으로 그 집의 특성을 알려주는 이름으로 부르면 된다고 한다. 이를 통칭하는 말로 전통집이라고 하든지, 한옥이라고 하든지 하면 상관이 없지만, 지금은 한옥하면 특정한 집들만을 떠올리니, 저자의 지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집은 다양한 재료로 지어진다. 예전에는 자신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집을 지었겠지만, 지금은 재료가 몇 가지로 통일되어 있다. 이것도 문제다. 환경에 맞는 집들이 지어져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도 동의한다.


특히 나무로 집을 지으면 탄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나무는 탄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또 나무로 집을 지으면 집을 짓는 재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일 수 있으니, 앞으로 환경을 생각한다면 나무집을 지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자기가 사는 곳에서 나는 나무면 더 좋겠지만... 이렇게 집을 짓는 재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상국 시집 제목이 사라지지 않았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그렇다. 집은 따뜻하다. 우리는 그 따뜻한 집에서 살아가야 한다. 나를 압도하는 집이 아니라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집. 그런 집에서 살아야 한다.


이상국 시 '집은 아직 따뜻하다'를 다시 읽으니 이 책에서 느꼈던 감정이 다시 살아난다. 이 책에 실린 내용 중에 이 시와 비슷한 내용도 있었으니... 사람은 사라졌어도 집은 그 사람의 삶, 그 사람의 온기를 품고 있다는...


집은 아직 따뜻하다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어성천이 큰 산 그림자 싣고

제 목소리 따라 양양 가는 길

부소치 다리 건너 함석집 기둥에

흰 문패 하나 눈물처럼 매달렸다


나무 이파리 같은 그리움을 덮고

입동 하늘의 별이 묵어갔을까

방구들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입은 사람들 어른거리고

이 집 어른 세상 출입하던 갓이

비료포대 속에 들어 바람벽 높이 걸렸다


저 만리 물길 따라

해마다 연어들 돌아오는데

흐르는 물에 혼은 실어보내고 몸만 남아

사진액자 속 일가붙이들 데리고

아직 따뜻한 집


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만

늙은 가을볕 아래

오래 된 삶도 짚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닫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이상국, 집은 아직 따뜻하다. 창작과비평사. 1998년. 초판. 64-65쪽.


이 시에 나오는 함석집이 이 책을 다시 불러왔다. 저자는 함석집에서는 '가난의 함의가 담겨 있다(102쪽)'고 했다. 가난의 함의. 그렇지만 그 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 집에 담겨 있던 따뜻함. 그것이 사라졌다.


'한국전쟁 후 주로 실향민이 모여 살던 도심 주변, 산등성, 개천가의 함석집들. 이제는 영화 속 장면에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 나의 우직한 강원도 산골 마을에도 함석 지붕이 사라졌다. 함석집의 서정. 가난의 기억.(102쪽)'


책이 시를 부르고, 시가 다시 책을 불렀다. 집을 통해서 다양한 분야, 저자는 철학과 시를 집과 연결시키는데, 그 말이 맞다. 비록 이 글에서는 철학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삶이 바로 철학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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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방 - 오직 나를 위해, 그림 속에서 잠시 쉼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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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방이라고 한다. 아니, 방은 혼자 있기 좋아야 한다. 자신이 지닌 가장 내밀한 공간이 바로 방 아니겠는가.


그 방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방을 지녀야 한다. 다 공개된 삶을 살더라도, 일부는 공개될 수 없는 삶이 있다.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자신만의 비밀들.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것은 삶이 풍요롭지 않다는 말과도 같을 수 있다. 비밀만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비밀도 없으면 그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을 가지려고 한다. 자기만의 방에서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려고 한다. 세상의 번잡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장소, 바로 방이다.


이 책은 그림에 관한 책이다. 아니, 삶에 관한 책이다. 그림을 왜 보는가? 그림을 통해서 우리 삶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방과 관련된 그림을 통해서 우리 삶을 보여준다. 우리 삶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경험과 더불어서, 또 꼭 방이 아니더라도 방과 같은 역할을 하는 다른 공간들을 그림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공간과 지금 이 책을 읽고 나의 공간을 이어주고 있다.


방은 나만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방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나에게 휴식과 위로와 충전을 주는 공간이다.


다양한 그림들이 이 책에 나오는데, 대부분의 그림이 그 전 미술에 관한 책에서는 본 적이 없는 작품들이다.


그만큼 이 책은 그림에 대한 설명보다는 그림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삶을 이야기학 있다. 또한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림이 아닌, 우리 삶을 그림 그림을 통해서 우리들이 위안을 받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작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좀 아쉽지만, 방 안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많은 종류의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것도 방과 관련된 그림으로, 우리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그림들이니.


혼자 있기 좋은 방. 이 방은 늘 혼자만 있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을 잇기 위해서 나를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게 하기 위해서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니 이 방을 통해서 나는 삶을 살아가고,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이 책에 나온 많은 그림들은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지금 나를 돌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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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의 말, 무엇을 덧붙일까... 그래, 빅이슈를 읽고 무엇을 덧붙일까 하는 고민을 한다.


  굳이 무엇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냥 읽으면 되는 잡지 아니던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점들을 생각하게 해주니, 그 자체가 이미 내 삶에 덧붙여지고 있는 셈인데...


이번 호에는 직업에 관한 글들이 제법 있단 생가을 했다. 다양한 직업에 대한 소개.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커버스토리는 늘 어떤 직업을 지닌 사람들 이야기니, 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 교사의 이야기도 있고,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 이야기도 있다.


이런 직업과 더불어 집에 대한 이야기.. 가족에 대한, 소위 정상가족이라는 말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글, 김경서의 '비정상적 빈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의 빈곤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빈곤한데도 호소할 수가 없는, 정상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왜 그들의 삶에 정상-비정상이라는 말로 덧붙이려고 하는지, 그냥 그들의 삶을 그대로 인정해주면 되는데... 


이런 덧붙임은 쓸모가 없는데, 빅이슈를 통해서 그 점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번 호에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담은 존재를 소개하고 있는데, 급속도로 디지털화 된 세계에서 예전의 존재들에 대해서 느끼는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글들이다.


아, 나도 그랬었지. 나도 저런 존재들과 함께 했었지...카세트 테이프... 한참 듣다보면 테이프가 늘어져서 소리가 길어지던 그런 테이프에 대한 생각.


한 곡 한 곡을 빈 테이프에 녹음하던 시절에 대한 생각. 테이프에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해 선물하고 선물을 받던 그때에 대한 추억. 그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다.


그렇게 다시, 지나온 세계를 생각하고, 지금 사는 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고, 좀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빅이슈.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내 삶에 무언가를 더 채워주는 잡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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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 나도 모르게 쓰는 차별의 언어 왜요?
김청연 지음, 김예지 그림 / 동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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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상대와 나를 잇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끊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은 상대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힘을 빼기도 한다. 상대를 격려하기도 하고, 좌절하게 하기도 한다. 말은 살림의 말이 될 수도 죽임의 말이 될 수도 있다. 말은 붕대가 될 수도 있고, 칼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말은 중요하다. 중요한 말임에도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상대에게 다르게 다가간다. 상대에게만이 아니다. 나에게도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서 말은 중요하다. 잘 말해야 한다. 


그런데 가끔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 가운데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말들이 있다. 상처를 주는 말들.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말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말들이 있다. 그런 말들은 그래도 사람들이 쉽게 인식한다. 그 말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쓰지 못하도록 막을 수가 있다.


문제는 자주 쓰는 말이라서 별다른 생각없이 쓰는 남에게 상처주는 말들이다. 심지어는 언론에서도 그 말들이 쓰이고 있어서 남들도 다 쓰는데 뭐가 문제야 하는 식이 되기도 한다. 이 책 제목처럼.


이 책은 그렇게 자주 쓰이는 말 중에서 차별을 담고 있는 말을 다루고 있다. 다른 말로 바꿔 쓸 수 있으니 사용하지 않거나, 바꿔쓰면 좋은 말들에 대한 이야기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으로 청소년에 관한 말부터 시작한다. 급식충... 사람을 벌레에 비유하면 듣는 사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런데 많은 말들에 이 벌레 '충'자가 붙는다. 남들을 비하하는 말로.


중고등학생을 급식충이라고 하고, 대학에 지역균형발전전형으로 들어온 학생을 지균충이라고 하고, 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말로 한남충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고 하니... 이건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이 말... '지방대 출신으로 대기업 입사' 

어디서 많이 본 구절 아닌가. 여기서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지방대'에 있다. 예전에 표준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말이 표준어이니 다른 지역 말들은 표준어가 되지 못한 불완전한 말들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각 지방의 말들 중에, 그러니까 서울이라는 지방의 말을 표준으로 삼아 맞춤법을 정리했을 뿐이라고, 말들에는 위계가 없다고... 이 말을 대학에 적용하면 각 지방에 대학이 있는 셈이니,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대학들도 지방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방대 출신이라는 표현은 서울을 중심에 놓고 다른 지역을 아래로 보는 차별이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모든 대학은 지방대다. 이런 생각을 지닌다면 위에 쓴 말을 쓰지는 못하겠지.


이런 예는 많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호칭을 고칠 필요가 있고.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참 다양한 직업인들을 만날 수 있지. 그런데 직업인에 따라 누구한테는 '선생님' 또는 '님'이라는 말을 붙여 부르고, 누구한테는 '아저씨' '아줌마' 심지어 '어이' '여기'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어. 의사한테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붙여 부르면서 소방관한테는 '아저씨'라는 말을 붙여 부르는 게 대표적인 예지.' (45쪽)


이런 호칭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냥 생활에서 쓰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면서 직업에 따라서 다르게 부르지 하는 생각. 그 말들이 은연 중에 차별로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의사에게는 늘 의사선생님이라고 하면서 경찰, 소방관과 같이 우리들 삶을 다른 방향에서 살리는 사람들에게는 아저씨 또는 그냥 '-님'(이 경우도 많지는 않지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경우 말은 사람들을 잇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끊는 역할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직업이 말을 통해 은연 중에 구분되고 있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직업의 귀천이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쓰는 말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말들이 왜 문제인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어서 받아들이기가 쉽다. 말, 한 번 나오면 다시 담기 힘드니, 잘 생각하고 내보내야겠다. 


다른 사람의 귀를 통해서 마음까지 닿는 것이 말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청소년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읽고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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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붕의 메타버스 이야기 - 디지털 신대륙에 사는 신인류, 그들이 만드는 신세계
최재붕 지음 / 북인어박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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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라는 말이 유행이다. 뜻이 무언지 잘 몰라도 하도 많이 나오니, 중요한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메타버스를 모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메타버스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필요한지, 또 미래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잘 모르고 있다. 하루하루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생각할 여유도 없다. 자칫하면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세대간 격차만이 아니라 경제적 차이에 의해서 메타버스 세계에서도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신세계가 눈 앞에 있다고 해도, 그 신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늘 그런 갈등이 일어났다. 그리고 신세계로 나아간 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고 미래 세계를 이끌어 갔다.


지금 우리가 거부하려고 해도 메타버스라는 신세계는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미 우리 생활에 들어와 있다. 그 신세계에 발을 딛고 그 세계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들도 있다. 그 반면에 메타버스가 뭐야 하면서 여전히 메타버스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점을 안타깝게 여기고 메타버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와 있는 세계를 마냥 부정할 수는 없다고. 거부할 수 없는 세계라면 '하필이면'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가김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2020년이 지나면서 인류는 코로나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메타버스의 세계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런 점을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디지털 문해력'을 지닌 인간들이 미래를 주도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디지털 신대륙, 즉 메타버스의 세계를 부정하고, 거부하지 말고, 그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지금 우리 눈 앞에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그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그 세계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고.


이 메타버스의 세계에서는 중앙집중이 아니라 자율적인 개인들이 의견을 내고 만들어가는 세상이 된다고 한다. 또한 메타버스의 세계가 환경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지만 오히려 인간과 환경을 생각하는 메타버스로 가고 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미 우리 앞에 다가온 새로운 세계. 그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려면 지금까지 지녀왔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고 해야 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메타버스의 세계가 인간에게서 멀어질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메타버스의 세계는 인간이 인간에게 공감하는, 인간이 환경에 공감하는 그러한 공감이 기본이 되는 세계여야 한다고 한다.


하나의 표준을 강제하는 세계가 아닌 다양한 표준이 있는, 그러면서도 서로가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그런 세계. 


하지만 저자는 메타버스의 세계는 우리에게 기회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실패의 세계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저자가 성공한 예로 든 사람들만이 있지는 않다. 실패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신세계에 처음 나아갈 때 당연히 실패가 더 많다. 그럼에도 나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신세계에서 살 수 있게 된다. 다만,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또한 망설이고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 세계에서 불편함이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지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성공사례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실생활과 연결되는 또다른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계가 메타버스가 되어야 한다.


저자가 말하듯이 앞으로의 세계는 1등, 최초가 중요한 사회가 아니라, 그곳에 적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중요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 준비를 하는 곳이 바로 메타버스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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