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1
아서 C. 클라크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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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광활한 우주를 다루고 있다. 우주라는 공간만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까지도 다루고 있다고 해야 한다. 선사시대 인간들의 모습이 이 소설의 첫부분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상상이 작용한다. 역사를 들먹이면서 이건 사실이 아냐라고 하면 안 된다. 소설을 소설로 읽으면 된다. 상상 속에서 재구성해낸 세계. 우리들의 선사시대. 


원숭이인간이 어떻게 다른 동물들을 정복하면서 살아남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다양한 증거들이 나왔고, 어느 정도는 합의를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지 인간의 선사시대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이 틈에 소설이 들어갈 수 있다. 아니 역사에서 완전히 밝혀지지 않는 사건들을 소설이 재구성해낼 수 있다고 해야 한다. 선사시대에 지구에 온 특이한 바위, 이 바위로 인해 인간은 자신들의 지능을 발전시키고, 도구를 사용하게 된다. 이때부터 인간은 지구에서 최상위 존재에 속하게 된다. 자신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고.


이 다음에 소설은 몇백만 년을 건너뛴다. 이제 바야흐로 우주시대에 돌입했다. 그것도 이 소설이 1960년대에 나왔는데, 소설 속에서는 이미 달에 우주기지가 있다. 그곳에서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 미래 예측이라고 하겠지만, 소설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겨우 달에 머무르는 상상이라면 굳이 오디세이라고 제목을 붙이지도 않았으리라.


더 멀리,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모험을 떠나야 한다. 오디세이처럼... 그러나 여기서 제목에 들어있는 오디세이란 인물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오디세이는 모험을 하지만,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결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소설에서 달에서 선사시대에 지구에 있었던 것과 같은 물체를 발견한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 이 물체에 대한 답을 주지 않고 소설은 곧장 토성을 향해 날아가는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로 건너뛴다. 지구에서 달로, 달에서 토성으로다. 물론 토성에 가기 전에 목성을 거치게 되지만, 목적지는 토성이다. 왜 하필 토성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우주선에 있던 로봇 HAL이 이상반응을 보이고 다른 우주선 탑승자들이 죽고난 뒤 홀로 살아남은 보먼을 통해 밝혀진다.


소설 초반에 나왔던 물체와 연관이 된다. 토성의 위성에 이와 같은 물체 또는 이런 물체를 만든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에 따라 이들을 토성으로 보내게 된 것.


우주선 이름은 디스커버리 호다. 발견이다. 탐사다. 이렇게 인류는 먼 우주를 탐사한다. 또다른 지적인 생명체를 찾아서. 아니 달에 있던 물체를 보면 우주에 다른 지성체가 있다면 인류보다 한참 발전한 생명체이리라는 추측을 하고서.


홀로 살아남은 보먼은 토성에 다다르고, 목적했던 위성에 이르러 탐사에 나선다. 그러나 그가 탐사를 나선 사실까지도 모두 알고 있는 외계 존재들. 보먼은 아득한 우주 공간으로 나아가고 어느 우주에서 다시 태어나 지구로 돌아온다.


다시 태어난 존재로. 그러니 이는 육체를 지닌 인간의 형상을 한 보먼이 아니라 빛과 같은 존재인 보먼으로 돌아왔다고 보면 된다. 지구에 재앙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또다른 지성체에 대한 탐구로 소설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러면서 과연 우리가 우주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끝없는 우주(우주에 끝이 있다는 주장이 있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만)라는 표현을 많이 하듯이, 빛의 속도로 가도 인간의 수명으로는 가볼 수 없는 곳이 많은 우주를 우리는 탐험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직선으로만 나아가서는 안 된다.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다고 해도 우주는 인간의 수명에 비해서는 너무 넓다. 그러니 다른 방도가 있어야 한다. 그것에 대해서도 탐구하게 하지만, 소설에서는 이를 상상으로 채워놓고 있다.


바로 이동의 통로이자 관문이 되는 것이 처음 지구에 있었고, 달에도 있었던 물체다. 우주 어디로도 통할 수 있는 관문. 과연 그런 관문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21세기. 여전히 우리는 화성에 발을 딛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소설이 1960년대에 쓰여졌다. 이는 우리의 상상력이 현실 과학을 앞서갔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상상이 현실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말도 된다.


이런 상상덕분에 우리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 소설은 오래 전부터 인간을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상상 지평을 넓혀준 소설.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도록 해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 이후로 세 편이 더 있다고 하는데,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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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아트 - 예술을 영원히 뒤바꾼 여성들
발렌티나 그란데 지음, 에바 로세티 그림, 아이오와 편집부 옮김 / 아이오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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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다. 누구의 말이냐가 중요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이들은 소리를 내더라도 철저하게 묻힌다. 다른 소리들에 의해. 또 소리를 낼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으로 내몰린다.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으라. 아무 소리도 내지 마라.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소리를 내지 않고 살 수 있나? 침묵은 금이라고... 웅변은 은이라고. 이는 평소에 자기말을 할 수 있는, 또는 자기 목소리를 지나치게 많이 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침묵은 굴종이고, 웅변은 저항이다. 그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놓아두려고, 그들의 목소리를 억누르려고 하는 움직임이 많다. 그동안 지녀왔던 자신들의 이익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집단들도 많다.


이는 불평등이다. 사람은 지위, 성별, 국가, 연령, 인종 등등에 의해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 사람이라고 인식되는 이유는,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과 동물을 너무도 쉽게 구분한다. 그만큼 우리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사람이기때문에 사람으로 인정받고 대우받아야 한다. 당연한 이 말이 당연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지금까지는 이런 문제가 많았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점점 더 평등한 쪽으로 변화해 왔다. 


아직 평등이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다. 어떤 형태로든 다시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 지금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는데...


예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때 여성들에게는 '여류'라는 말을 붙였다. 남성들은 그냥 화가나 작가라고 하고, 여성에게는 '여류'화가, '여류'작가라고 했다. 차별인지도 모르고 쓰던 말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예술계에서도 이런 '여류'란 말은 이제 잘 쓰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시대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되돌려서는 안 되고, 되돌릴 수도 없는데, 자꾸만 되돌리려고 해서 갈등을 일으킨다. 지금까지 이뤄왔던 성과들을 뒤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그건 아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 책은 예술계에서, 특히 미술계에서 성평등을 지향했던 화가들 이야기다. 네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 게릴라 걸스는 한 사람이 아니다. 단체라고 해야 한다- 주디 시카고, 페이스 링골드, 아나 멘디에타, 게릴라 걸스다.


사실, 게릴라 걸스에 대한 이야기는 책으로 읽은 적이 있지만 부끄럽게도 나머지 세 사람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들이 여성이 예술계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노력했음에도 소수의 사람에게만 알려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된다.


자꾸 찾아봐야 한다. 알아야 한다. 자기 목소리를 낸 사람들을. 그 사람들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한때에 머물지 않고 계속 우리들의 삶으로 들어오게 된다.


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서 알게 된다. 자꾸 목소리를 내야. 또 그 목소리를 전달해야.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소중하다. 


자기 목소리를 낸 사람들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픽 평전이라고 그림을 곁들여서 이들에 대해서 알려주기 때문에 더 쉽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어떻게 그들이 자기 소리를 냈는지... 


소중한 목소리들...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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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이슈 잡지를 받으면서 인권에 대해 생각했다. 빅이슈는 인권과 관련이 있는 잡지인가 하는.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잡지니까,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 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잡지니까 인권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누가 봐도 인권과 관련된 내용들의 글이 빅이슈에 실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빅이슈에 실린 기사들이 너무도 다양해서 어떤 사람들은 그게 무슨 인권과 상관이 있느냐 할 수도 있다. 유명인에 대한 대담 기사부터, 디저트 소개에, 집 소개 등등...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인권이다.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 않나, '빵과 장미'란 유명한 말이 있듯이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빵과 장미가 함께 필요하다. 


빅이슈가 추구하는 일도 바로 이것 아닐까 한다. 빵과 장미. 경제적으로는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는 목적을 이루려고 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노숙인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회 각 분야의 소식들을 전해주어서 사회 각 분야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일. 


즉 먹고 사는 일만이 아니라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다른 일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잡지. 그래서 이번 호를 읽으면서도 빅이슈에 실린 기사의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또한 인권을 폭넓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표지 모델은 솔직히 본 적이 없다. 본 적이 없어서 빅이슈 표지 모델이라는 점에서 믿음이 가서 내용을 읽어보니, 그래 이것이다. 바로 빵과 장미가 바로 이 모델, 입짧은햇님과의 인터뷰에서 잘 나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삶을 즐겨야 한다. 또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사회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빵에 대한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회, 또 빵과 더불어 장미를 즐길 수 있는 사회.


이번 호에는 그래서 먹방(?) 개인 방송을 운영하는 입짧은햇님과 탱고에 대한 기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먹방하면 그냥 많이 먹는 방송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에, 함께 먹는다는 느낌을 주는 방송이 먹방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래서 집에서 고립되어 있는 개인이 아니라 방송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방송. 이것이야말로 빵과 장미 아니겠는가.


탱고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이 남는 사람들의 여유 있는 취미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음주가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 아니었던가. 그러니 여유 있는 소수의 취미가 아닌 우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춤으로 탱고도 들어와야 하지 않을까. 또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장미를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어야 하므로.


게다가 탱고는 홀로 추는 춤이 아니라 상대에 맞춰 추는 춤이라고 하니,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연습을 하는데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 빅이슈란 잡지는 자활을 하겠다는 의지를 지닌 노숙인들에게도, 또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삶들을 알고 자신의 삶을 좀더 아름답게 꾸려가겠다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그야말로 '인권'이 배어 있는 그런 잡지라 할 수 있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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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스 민음사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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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나아가는 꿈. 인류는 아마도 먼 옛날부터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아가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우주로 나갈 기술이 안 되었을 때는, 지구 곳곳을 탐험하는 모험담을 다룬 이야기들을 만들어냈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우주에 나아가는 상상을 하면서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 우주로 나아가기도 하고. 물론 아직도 먼 미래 이야기지만. 그만큼 우주이야기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오래된 소설이다. 이름은 오래 전부터 들었는데, 막상 읽기는 지금이 처음이니...영화 제목으로 많이 들어봐서인가, 아니면 비슷한 이름들이 소위 SF소설에 많이 나왔기 때문인가? 아이작 아시모프 소설에서는 솔라리아라는 이름으로도 나오니, 물론 같은 행성은 아니지만, 이 이름에 친숙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폴란드어판을 저본으로 하는 번역본이라고 한다. 400쪽이 넘는 긴 분량의 소설인데, 읽으면 금세 읽힌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가게 된다. 그만큼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무언가가 있다.


다만, 읽고 나서는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잘 알 수가 없게 된다. 결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지만 솔라리스라는 행성에 도착한 사람들이 겪는 일들을 통해서 우리가 우주에 도달했을 때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를 생각해 볼 수는 있다.


솔라리스에서 과거에 만났던 사람을 만나게 된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우리 무의식에 들어와 무의식 속에 있는 인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인물을 우리에게 보낸다. 왜? 이유는 모른다. 선물일수도 있고, 재앙일 수도 있다.


자신이 과거에 제대로 풀지 못한 일이 다른 행성에서 반복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까? 무한반복, 영원회귀? 아니, 이 행성에서는 성공했던 일들, 또 성공했던 관계들이 나오지는 않는다. 과거에서 불러낸 인물은 그 과거에서 실패한 관계를 맺었던 인물이다. 그것도 내게는 중요한 인물이었음에도 파국으로 치달은 인물.


그런 인물이 솔라리스에서 나에게 온다. 그렇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인물이 분명 과거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심하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그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게 될테고, 그 마음을 이겨낸다면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되겠지.


이렇게 솔라리스는 우리 잠재의식 속에 있는 인물을 우리에게 보내준다. 솔라리스 바다는 단지 그 일만을 한다. 어떤 목적의식도 없다. 또 우리를 조종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냥 내면에 있던 일들을 보여줄 뿐이다.


하여 소설 끝부분에서는 솔라리스의 이런 일들을 아기의 장난이라는 표현으로 이야기한다. 어떤 의도도 없이 그냥 순수하게 행동하는 아기들. 아기들은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다른 행동으로 넘어간다. 거기에 어떤 고민도 없다. 그냥 그렇게 행동할 뿐이다. 이런 아기의 행동을 두고 어른들이 자기들 관점으로 해석할 뿐이다.


솔라리스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지구 관점으로,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행동할 뿐이다. 그 점을 주인공은 켈빈은 깨닫는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켈빈은 어떤 행동을 할까? 소설은 여기서 멈춘다. 


멈추고 있지만 비극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켈빈에게는 희망이 있다. '잔혹한 기적의 시대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음을 나는 굳건하게 믿고 있다' (447쪽)고 되어 있으니...


아주 오래 전에 나온 우주에 관한 소설인데, 지금 읽어도 그렇게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온갖 과학지식들이 도처에 나오기 때문이고, 우리 내면에 있는 존재들을 불러낸다는 발상이 특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우주에서 또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연상시키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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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3-30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글을 읽을 수록 더 읽고 싶어져요,,, 그런데 SF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닌데,,, 싶어서 주저하고요.^^;; 잘 읽었습니다.^^

kinye91 2022-03-30 16:0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는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잘 파악이 안 되고 있어요. 나중에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코로나 19로 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하는 날이 확 줄어들었다. 전면등교, 정상등교라는 말이 나왔지만, 코로나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 듯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2년이 지나 3년째, 학교라는 곳에 휴일을 빼고는 매일 등교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휴일이 아닌데도 원격수업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등교하지 않게 되었다.


  그랬더니 학력저하 운운하면서, 원격수업의 질이 나쁘다고, 원격수업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이곳저곳에서 큰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문제는 오로지 학력인 것처럼. 더 다른 문제들이 있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성적, 성적이다.


그래, 학생 때는 공부를 해야지. 공부도 때가 있는데, 하는 말들이 있지만, 과연 학교가 아이들 성적만 책임지는 공간이었던가. 학교는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간이기보다는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장소 아니었던가.


자기와는 다른 학생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 또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과 갈등하고 화해하면서 어우러지는 방법, 교사라는 어른들, 그것도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치거나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교사들을 만나면서 사회 적응력을 키우는 장소. 그런 장소가 바로 학교 아니었나.


어떤 사람은 자조적으로 학교는 아이들의 식사(잠) 장소이자, 사교 장소라고 말한다. 밥 먹고 친구 만나러 학교에 온다고...교육기능보다 탁아기능이 더 강하다고... 이게 자조적으로 할 말인가? 오히려 학교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


친구와 만나고 놀고, 같이 밥 먹는 장소. 그런 학교...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그런 학교라는 장소를 잃고 오로지 성적, 성적만 하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만을 생각하게 되지 않았는가.


도처에서 들리는 학력저하 운운하는 말들은 학교를 오로지 성적으로만 존재하는 곳으로 여기고 있지 않나. 코로나로 인해 등교하는 날수가 줄어들어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고, 다양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고 그런 만남,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함기석 시집 [수능 예언 문제집]을 읽으며 우리나라 학생들이 갇혀 있는 수능이라는 감옥을 다시 생각한다. 수능으로 대변되는 성적, 성적, 그리고 그 성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학교. 아니다. 학교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예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책도 영화도 있지 않았던가.


학교는 학생들이 행복할 수 있는 장소이자,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장소다. 그래야 하는데... 오로지 수능이라니.. 수능에 갇힌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 시집을 읽다보면 너무도 잘 알게 된다.


'오전 8시, 마시면 배탈 설사 나는 흰 우유 같고' (모의고사 보는 날-10쪽)라고 표현할 정도로, 수능이 아닌 모의고사 자체도 학생들에겐 견디기 힘든 존재다. 그러니 이런 청소년들은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우리한테 그동안 뻥쳐서 미안했다는 / 사과나무나 한 그루 심으시지'(사과나무-17쪽)라고... 하지만 어떤 어른도, 특히 권력을 쥐고 있는 어른들은 더더욱 학생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니 학생들은 '아, 전국 모의고사 날은 / 전국이 모의해서 고등학생을 사망시키는 날 / 갑자기 내가 정육점 식당 갈고리에 걸린 / 9등급 고깃덩어리 같았다' (우울해서-25쪽)고 표현하게 된다.


더 많은 시들이 있지만, 이 시집 1부만 어른들이 제대로 읽어도 지금처럼 교육제도를 유지하지는 않을테다. 감정이 있는 어른들이라면... 적어도 아이들이 공각기동대라는 영화에서 킬리언 소령이 했다는 말인 '나의 정신은 인간이다 그러나 / 나의 육체는 인공 신체다'(공각 기동대-36쪽)를 비틀어서 '나의 육체는 인간이다 그러나 / 나의 정신은 인공 기계다' (공각 기동대-37쪽)라고 하게 하지는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학교는 오로지 성적을 위해서 학생을 가둬놓는 공간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온갖 실험들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소, 또 많은 실수, 실패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장소다. 그러니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애오라지 성적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잃고 있음을 생각하고, 교육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시집 1부를 읽으면 지금처럼 학교가, 교육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4부에 가면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의 아픔이 오롯이 전해지는 시들이 많다. 아직도...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힘들게...지내고 있으니...  그러니 수능이 끝나면 교과서는 쓰레기가 되고 말지... 이 시처럼.


       책 무덤


수능 끝난 학교 옥상에

책들이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 있다

알록달록 형광펜으로 칠해진 수많은 책이

수백 마리 가오리처럼 쌓여 있다

책 무덤 속에서 들려온다

글자들 우는 소리, 천둥 치던 여름밤 빗소리

절망에 빠져 흐느끼던 친구들 목소리

하늘은 옥상 난간까지 내려와 잿빛 수의처럼 펄럭이고

수능 마친 책들이 봉분처럼 쌓여 있다


함기석, 수능 예언 문제집, 창비교육. 2020년.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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