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조 지무쇼 지음, 서수지 옮김, 와키무라 고헤이 감수 / 사람과나무사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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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균실에서 살 수는 없다.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 또는 생명체가 아닌 것들과도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런데 다른 존재로 인해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 어떻게든 그 존재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생명은 하나밖에 없기에...


인류의 역사는 질병과 투쟁한 역사라고 해도 좋겠다. 그만큼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질병이 나타났고, 그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으며,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서 많은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질병이 개인에게만 나타나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겠지만, 많은 질병들은 감염이 된다.


내 질병이 나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가게 된다. 감염병이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는 인간은 감염병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시킬 수 있는 질병이 감염병이고, 이런 사례가 무증상 감염자라는 말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감염병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 책은 그 많은 감염병 중에서 10가지를 골라 이야기하고 있다. 그만큼 인류를 위협하는 감염병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극복이 된 감염병도 있고, 여전히 위협적인 감염병도 있다.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감염병들일텐데...


페스트, 인플루엔자, 콜레라, 말라리아, 이질, 결핵, 천연두, 황열병, 티푸스, 매독


이 중에 천연두는 공식적으로 극복 선언이 된 질병이긴 하다. 하지만 예전에는 천연두는 공포의 질병이었다. 천연두 하면 종두법, 우리나라에선 지석영, 외국에서는 제너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그 질병. 


이런 질병들과 세계 역사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연결지어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다. 가령 페스트를 설명하는 장에서는 페스트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연결시키고 있다.


페스트는 격리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많은 정보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기 때문에 인력이 부족하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때마침 금속활자가 등장했다고 한다.


금속활자로 인해서 많은 정보를 적은 인력으로 전파할 수 있게 된 것. 이런 식으로 인플루엔자는 우리가 흔히 스페인 독감이라고 이야기하는, 1차 세계대전과 관련지어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렇다. 감염병은 인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만큼 인류는 수많은 감염병들과 함께 지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염병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감염병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에, 또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코로나19로 인해서 팬데믹이 선언되고, 세계인의 생활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면 중심의 활동에서 비대면이 일상화되었고, 이제 팬데믹 종식 선언이 있더라도 예전과 같은 대면 생활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비대면과 대면이 융합된 그런 사회생활이 만들어졌고, 더 활성화되리라 예측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감염병이 인류 역사를 바꾼 살아있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감염병이 왜 인류의 생명을 위협할까? 그것은 인류와 다른 생명체들이 접촉하는 시간, 장소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존재가 접촉하면서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세균, 바이러스들을 교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견딜 수 없는 존재들은 사라지게 되고, 견디는 과정에서 서로 적응을 해나가게 된다. 사실 세균이나 바이러스도 숙주가 사라지면 자신들도 사라지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숙주를 멸종시키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는다. 도킨스가 말한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생존을 위해서는 변이를 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수많은 변이에도 불구하고, 치명률은 점점 약화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에서도 이를 볼 수가 있고,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출현했던 감염병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감염병이 차차 약화되어 가고 있는 모습...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면 약화되겠지 하고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겠는가. 특히 죽어나가는 존재들은 약자들일텐데... 


감염병이 어떤 상황에서 창궐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서로의 영역이 겹치면서 접촉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생활공간을 확장하면서 다른 생명체들의 생활공간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활공간과 인간의 생활공간이 겹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만이 지니고 있던 세균, 바이러스들이 다른 매개체를 통해서 감염이 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 이런 상황이니 의학의 발전만을 믿고 생활 형태를 바꾸지 않으려 해서는 안 된다. 함께 가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 그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이었다면, 여기에 코로나19도 이젠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에 더하여 다른 감염병들이 또다시 우리를 급습하지 않도록 우리들 삶의 형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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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창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그것도 잘나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어서 좋다.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다가 새로운 사실을 만나고는, 그래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글들을 만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빨리 실시했으면 좋을 그런 일들.


복지와 농업을 합할 수 있다는 사실. 그렇다. 농업과 치유가 하나가 될 수 있음은 예전부터 짐작하고 있었지만, 실생활에서 하는 농업과 치유, 복지가 함께 할 수 있음을, 조예원의 글 '농업·농촌 치유의 공간으로 태어나'라는 글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네덜란드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는 치유농업(케어팜이라고 한단다)을 우리나라에서도 도입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농업과 치유, 사회복지가 함께 갈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치유농업 말고도 우리가 받아들일 것이 많다. 


여기에 더불어 박총이 쓴 '전혀 시대착오적이지 않은'이라는 글에서는 여전히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만날 수 있다.


노조조직율이 매우 낮은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들은, 특히 비정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가 힘듦을 이 글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데...


사회의 수준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여전히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반대도 있는 우리 사회로서는, 노동자들의 삶, 노동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삶창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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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위해 책을 읽습니다
김보경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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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다. 동물만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지구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느 순간 인간이 지구에서 최종 포식자가 되어 다른 동물들이나 식물들을, 또 무생물들을 인간을 위한 존재로 취급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다른 존재들은 인간보다는 못한 존재로 대우하는 일이 생겼다.


같은 생명이라도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 생명체에 대한 인식이 이런데, 생명체가 아닌 다른 존재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홀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순간 '인류세'가 된다.


다른 '세'에 자리를 물려주게 될 '인류세' 그래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체들, 또 무생물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바꾸지 않으면 인류는 자신들의 오만함으로 지구라는 행성을 자꾸만 파괴하게 된다. 생명체들이 살아가기 힘든 행성으로.


이 책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면서 겪게 된 일들,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동물학대에 관한 글들, 반려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 그리고 반려 동물을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또 동물원에 대한 이야기, 개 식용에 대한 이야기 등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동물과 관련된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주로 좋지 않은 일들이 펼쳐진다. 그만큼 우리나라 동물들은 힘들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 나아졌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하는 편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길고양이만 해도 여전히 많은 곳에서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붙여놓고 있으며,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사건도 사라지지 않고, 반려 동물들을 버리는 일들도 부지기수다. 여기에 동물원은 여전히 건재하고, 개 식용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이 책에서 다루는 일들이 섬뜩하게 다가오고,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 하면서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만 든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해도 여전히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캣맘'('고양이엄마'라고 하면 너무 긴가?)들이 있으며, 길고양이 집을 만들어주는 사람들도 있고, 버려진 반려 동물을 입양해서 함께 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금씩 자기 자리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생명의 동등함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에 대한 태도가 변해가고 있음은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동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행동이 동물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위한 행동이라고 하는 이 책의 주장에 동감한다.


생명에는 가볍고 무거움이 없다.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는 좋지만, 생명에 관해서만큼은 동등함을, 같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그 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그래서 다른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를 어릴 적부터 지닌다면,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다른 동물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사람도 함부로 대할 수 있게 된다는 말, 명심해야 한다. 동물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교육은 결국 사람이 잘살 수 있는 방법을 익히는 교육과 같다는 점.


그래서 '동물을 위해 책을 읽습니다'는 제목은, 결국 '우리를 위해서 동물을 사랑합시다'로 바꿀 수가 있다. 글 내용 중에 동물과 관련된 책을 소개하고, 그 책을 통해서 동물들을 이해하고 함께 지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니. 이 책에는 책 속에 또 책이 있고, 그 책들 속에는 동물과 인간의 생명이 함께 해야 한다는, 생명의 동등성이 담겨져 있다.


이미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함께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명의 소중함은 다 같다는 인식을 지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주변의 반려 동물, 또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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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마루 2022-05-17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일 뉴스에 인간이나 동물을 상대로 한 잔인한 소식들이 쏟아지는 요즘..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사람도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해요.
좋은 글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kinye91 2022-05-17 19:20   좋아요 1 | URL
모든 생명은(존재) 소중하다는 마음을 지녀야 할 요즘이라고 봅니다.
 
페스트의 밤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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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소설이다. 긴데, 한번 읽으면 빨려들어간다. 사건이 사건을 일으키고,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페스트라는 감염병이 민게르라는 섬에서 발생한다. 여러 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오스만제국령인 섬, 민게르. 


이곳에 파견된 의사는 피살이 되고, 중국으로 가기로 했던 파키제 술탄과 그 남편 누리가 민게르 섬으로 방향을 돌려 가게 된다. 섬에서는 페스트가 창궐하지만, 그 페스트를 대하는 방식은 민족에 따라, 또 종교에 따라 다르다.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이나 행위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은 방역 당국의 조치들을 거부하고, 어기고, 또한 방역당국에서도 여러 민족들의 상황에 따라서 방역조치를 일관되게 취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상황, 낯설지가 않다. 팬데믹이 선언된 상황에서도 방역 수칙을 위반하는 집단이 있는 모습은 현대에도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여기저기서 뚫린 방역은 결국 섬을 페스트가 휩쓸고 가게 만든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감염병에 대응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참혹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방역에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소설에서는 민게르 섬에서 여러 정치권력과 종교, 그리고 민족들이 갈등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감염병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이러한 감염병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이루려는 사람들도 있고.


감염병이 소설을 이루는 한 축이라면 민게르라는 작은 섬이 독립국가로 가는 과정을 페스트와 연결시키는 과정이 한 축이다. 여기에 터키 사람인 작가 오르한 파묵이 지니고 있는 오스만제국에 대한 생각도 드러나고 있고.


여러 말이 필요없는 소설이다. 읽으면서 다양한 집단이 어떻게 페스트에 대처하고, 이용하는지를 소설을 읽어가면서 따라가기만 해도 된다. 그러면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겪었던 일들이 자연스레 겹쳐지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아니라 사람들의 안전,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이 방역을 주도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런 과정은 무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겠지만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위에서부터 일방적으로 내려지는 지침으로는 방역이 성공할 수 없다. 죽음이 아무리 두렵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이 평생동안 지녀왔던 신념과 위배되는 행위를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물며 종교적 관습이 관계되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또 일이 잘 해결되지 않을 때 희생양을 찾는 모습도 소설에 나오는데, 지금 시대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 방역을 한다고 봉쇄를 하는 모습. 민게르 섬을 봉쇄해버리는 오스만제국과 영국, 프랑스 등의 강대국 모습은, 코로나19로 국경이 폐쇄되고, 출입국을 금지하던 현대 우리들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방역이 잘 안되었을 때 겪게 되는 혼란에 대해서도 소설에서는 잘 묘사하고 있고... 이렇게 파티제 술탄의 편지에서 촉발되어 소설을 썼다고 작가가 이끌어가는 이 소설에서는 감염병이 한 나라에 끼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길지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의 상황과 관련이 지어지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 나오는 민게르 섬이 겪었던 그런 과정을 우리는 이제는 겪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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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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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이 파괴되고,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기 시작한다. 미국에서는 노예제가 형태만 바꿔서 다시 창궐하고, 마약에 취한 사람들은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인다. 광기에 휩싸인 세상이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고,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도 살아갈 수가 없게 된다. 부자 마을들은 중무장하고, 경비원을 고용해 나름대로 안전을 도모하지만, 그보다 못한 지역에서는 장벽을 세워도 약탈자들에게 습격을 당하게 된다.


극한으로 몰린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이제 사람은 함께 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일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만 하는 현실.


최근에 유행한 좀비 영화들과 비슷하다.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 좀비가 된다. 왜 좀비가 될까? 그들이 나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나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징벌로 좀비로 변하나? 아니다. 좀비로 변하는데 그 사람이 살아온 행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 신체적, 성별, 연령 구분이 없다. 그냥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된다.


그리고 좀비는 조금 전까지 함께 했던 가족이라도 죽여야 하는 존재가 된다. 안 그러면 나도 좀비가 되니까. 따라서 좀비 영화는 디스토피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디스토피아에서 인과응보가 존재할까? 인과응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디스토피아가 된다.


인간이 살아가는 지구를 디스토피아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 많은 종교가 창시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종교가 아니더라도 철학이든, 윤리든, 법이든 인간은 디스토피아에서 살지 않기 위해 서로를 제약할 수 있는, 또는 권장할 수 있는 사상, 문화, 제도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사상, 문화, 제도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혼란이 시작된다. 혼란은 이 소설에서 불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마을을 불태우고, 산을 불태우고, 사람들 이성을 불태워 약탈과 살육으로 나아가고 있듯이, 사람들을 디스토피아로 몰아간다.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든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진다. 뿌리를 잃은 사람들...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가 디아스포라가 된다. 아주 부유하여 권력을 쥐고,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런 상황에서 자본가는 정치가와 결탁해 노동자들을 노예로 전락시킨다. 그들은 노예와 같은 상황에 처해 노동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다른 부랑자들에게서 자신들을 지킬 수 없기에 여기저기로 살기 위해서 떠날 수밖에 없다.


공동체 해체... 살아남는 방법은? 마치 신의 저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신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했듯이 사람들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방법, 그것이 바로 씨앗이다. 성경에서 빌려온 이 씨앗 개념은 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해 씨앗을 보존하고, 소설의 끝에 가서 씨앗을 심기로 결정하면서 디스토피아에서도 인간은 살아남아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비록 실패를 예견하고 있더라도 시도해 보는 일. 최후까지 씨앗을 포기하지 않고, 어떤 씨앗이든 싹을 틔우리라 믿고 행동하는 일.


인간은 미래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예측은 할 수 있고, 그 예측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을 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한 행동. 이것이 바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심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 고통을 해소해야 한다. 이 소설에서는 초공감증후군이라는 말로 나오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말과 통한다.


이런 공감능력을 지니고 있는 주인공 로런... 마을이 파괴되었을 때 주인공은 로런은 홀로 떠나려던 계획에서 두 사람과 함께 떠난다. 셋이서 떠나는 삶을 찾는 여정. 여기에 한 사람, 한 사람 계속 일행이 추가된다. 사연이 있는 사람들, 성별도 인종도, 살아온 배경도 다른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하면서, 이들이 정착할 곳을 찾아 가는 여정이 펼쳐진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쾌락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함께 한다는 사실이 부담되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로런은 가면서 이렇게 계속 사람들을 합류시킨다. 이것이 바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자세다.


그 과정에서 온갖 참상을 목격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로런이 말하는 '지구종'을 위해. 이때 지구종은 지구에 뿌리는 씨앗이라는 의미다. 지구가 망해가고 있지만, 인류가 멸망으로 치닫고 있지만, 그럼에도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된다는, 소설에서 로런은 지구에 국한하지 않고 우주로 자신의 사고를 확장한다. 


인류는 지구에서 우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지금 당장 지구에서 살아가기도 힘듦에도 우주를 생각하는 로런. 그래서 그는 자신의 종교를 '지구종'이라고 한다. 물론 이때 종은 씨앗 '종'자라고 할 수 있지만, 새로운 종교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자신들이 성공한다는 보장을 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소설을 읽으면 결말 부분에서 그들이 심은 씨앗들이 언젠가는 싹을 틔울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끼게 된다.


소설 마지막에 실린 성경 구절, '<누가복음> 8장 5-8절'. 인용하지 않겠지만, 찾아보면 많이 본 구절일 것이다. 그리고 이 구절을 통해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에 유토피아가 내재되어 있음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한다.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에서 나올 수밖에 없음을... 그런 씨앗 뿌리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가 유토피아의 꿈을 꿀 수 있음을.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에 이어서 읽은 두 번째 소설... 앞 소설과 마찬가지로 무척 흥미롭게, 한번에 죽 읽히는 소설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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