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씽 -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의 가치
앤디 앤드루스 지음, 김정희 옮김 / 드림셀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공하고 싶으면 높고 멀리 보라고 한다. 당연하다. 자신의 앞만 보고는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말에서 쉽게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높고 멀리 보되, 발걸음은 현실에 디디고 있어야 한다는 것.


즉 이상은 높게 잡지만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현실 속에서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된다.


큰 것만을 추구하다가는 틈새가 벌어져 어느 순간 무너지게 된다. 그러니 큰 것을 추구한다면 작은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작은 것들이 큰 것을 이룬다. 


이 책은 그 점을 여러 사례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상은 크게 가져야 한다. 저자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성실하게 실천하라는 말에는 결국 큰 것을 이루려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들어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간단하다. 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만 해서는 안 된다. 자신만의 관점을 지니되, 맹목에 빠져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제시하고 있어서 설득력을 지닌다. 게다가 어렵지 않게, 누구나 실천할 수 있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좋은 말들로 가득한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힘들다고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으라고 하지 않는다. 어려움을 견뎌야 할 때는 견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견딤 자체가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자신이 미식 축구 선수 생활을 할 때 온갖 두통에 시달려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을 때, 사실 그 자체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고통만 가중시키는 선수 생활이었지만, 저자의 아버지는 계속 하라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미식 축구를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한다. 


이때 저자의 아빠가 했다는 말 


'그만두는 것이 당장은 별 것 아닌 사소한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게 널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고, 또 그걸 정상을 향한 마음이나 태도를 갖게 만들 수도 있단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만두는 것이 정상이기도 하지. 계속 도전하고 밀어붙이는 것보다 그만두는 것이 항상 더 쉬운 법이란다.'(107쪽)


자, 그만두는 것은 사소한 일일까? 아니다. 그것은 포기다. 도전하지 않는 삶은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 그러니 자꾸 실패하고 견디는 과정을 거치게 해야 한다. 이런 일을 언제 경험해야 할까? 바로 학창시절이다.


젊은시절에 도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명심해야 한다. 있는 존재를 보지 않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또 자신에 대한 믿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 그렇게 꾸준히 뚜벅뚜벅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다른 이들과 다른 성취를 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누구나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 성취의 결과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지 않다.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지 목표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목표를 성취했을 때 성공했다고 할 수 있으니...


사소한 것들이라고 무시하지 말자. 그 사소함이 바로 위대함을 이룬다는 것을 명심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의 운명 - 세기의 걸작들은 어떻게 그곳에 머물게 되었나
이명 지음 / 미술문화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에서 유명한 그림들이 있는 미술관이 있다. 왜 그 그림이 그 자리에 있을까? 이런 질문은 해보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같은 화가가 그린 그림이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 있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뜻하는 곳에 있기도 하고,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있기도 한다. 


그림은 화가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지만, 의도와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이미 화가의 손을 떠난 그림은 그 자신의 운명을 찾아간다.


이 책은 그러한 그림들이 왜 그 장소에 있게 되었는지를 살피고 있다. 그냥 '그 미술관에 있어'가 아니라 어떤 경로를 거쳐 그 미술관이 소장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그림들도 참 다양한 운명을 겪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가령 피카소가 그린 <아비뇽의 아가씨들>이라는 그림은 피카소 자신이 루브르 박물관에 걸리길 원했지만, 그림을 인수한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 걸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지금은 사람들이 모두 잘 알고 있는 <모나 리자>가 왜 루브르에 있는지, 모네의 <수련>이란 작품이 일본에 있게 된 계기도 알려주고 있고, 마티스의 그림이 미국에 전시되어 있는 이유 등등이 잘 설명이 되어 있다.


여기에 어떤 작가들의 작품은 작가의 주장 또는 여러 이유로 인해 거의 한 곳에 모이게 되었으며 (로스코, 고흐, 달리의 작품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딴 공간을 지니게 되었다), 로댕의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퍼지게 된 이유 등도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설명을 읽으면서 작품도 자기들의 고유한 운명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책은 그러한 작품에 얽힌 이야기와 더불어 작품 감상도 할 수 있고, 작가의 생애도 짤막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 작가에 대한 지식도 얻을 수 있는 여러 장점을 지닌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 운, 재능,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브라이언 키팅 지음, 마크 에드워즈 그림, 이한음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들을 천재라고 부른다. 과학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그들을 보통사람이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천재들이 우리들과 다른 사람일까? 천재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로 본다면, 노력이라는 것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미 타고난 천재들이 업적을 이룰테니까.


그런데 아니다. 천재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보통사람이다. 보통사람인데 남들보다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고 모두가 천재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 상을 받았다는 것은 물리학계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루었다는 얘기니... 그들이 성공을 거둔 이유를 찾으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을 수 있겠다.


이 책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9명의 과학자를 만나 질문하고 대답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그런 대담에서 이 책이 견지하고 있는 방향은 이들은 보통사람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사람과 같지만 노력을 하고, 남들을 배려하고 함께 경쟁하면서 존중하는, 그럼에도 하나의 이론에 머물지 않고, 편견에 물들지 않고 끊임없이 증거를 찾아 노력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또 성과를 이룬 다음에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무엇보다 이들이 지닌 자세는 겸손이다.


겸손은 자신을 높여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지 않는 자세다. 자신을 열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바로 겸손이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은 주변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많다. 함께할 사람이 많다.


그리고 겸손한 사람은 마음이 닫혀 있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열려 있다. 열려 있으므로, 자신의 주장만을 고수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주장도 살핀다. 살필 때 편견을 지니지 않는다. 객관적인 증거가 나오면 흔쾌히 인정한다.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가 지녀야 할 태도다.


이 책에 나온 아홉 명의 과학자들이 공통으로 지닌 태도가 그렇다. 자신의 업적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꾸준히 발전해온 과학에 한 발을 더 내디뎠을 뿐이라고... 또한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은 후대들이 해결할 것이라고.


지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일은 아니라고, 자신들은 그러한 미래를 위해서 지금 할 일을 하면 된다는 자세를 지닌 사람들이다.


이들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유에 관한 학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과학에 관한 책이 아니다. 삶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책이다. 그것을 과학자들을 빌려 말하고 있을 뿐이다.


삶을 살아가는데 과학자와 비과학자를 나눌 필요가 없으니, 어떤 분야에서 업적을 이룬 사람이 지닌 자세는 다른 사람들도 배울 필요가 있다. 물론 배운다고 똑같이 따라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한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책이 아니라 삶의 자세에 대한 책이다. 읽으면서 그래 이렇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이 말이 성공은 운이 좌우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기술)이 좌우한다고 해석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


즉 누구에게나 운은 70%정도 있다. 삶의 성공 여부를 가리는데 운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 장소에 그 시대에, 그 사람들과 함께 어떤 일을 했다는 것, 그것은 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지는 않는다. 바로 기(技) 30%가 작동해야 한다.


즉 실력, 노력이 반드시 작동해야지만 성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공한 사람들은 운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력에 의해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 30%의 노력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실패한다면? 그것은 70% 운에 속한 일이다.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또는 다른 세대에게 넘기면 된다는 것. 그렇게 되기까지 30%를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밀어붙이면 된다는 것을 이 책에 나오는 과학자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됐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 청년들이 읽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서 - 홍세화와 이송희일의 대화
홍세화.이송희일 지음 / 삼인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세상을 떠난 홍세화 선생과 이송희일 영화감독이 만나 대담을 한 책이다. 총 여섯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논의를 했다. 두 사람 모두 진보라고 할 수 있으니,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보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때 말하는 진보는 정치권을 진보와 보수로 나눌 때 쓰는 말과는 좀 다르다. 두 사람 모두 우리나라에서 진보 쪽이라고 불리는 민주당을 진보라고 하지 않으니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


탈성장, 차별과 혐오, 죽음의 행렬, 한국 진보정치, 교육, 언론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마음은 답답해졌다.


이 책이 나온 것이 2022년인데 그동안 홍세화 선생은 돌아가셨고, 코로나는 끝났으며, 이 책에서 언급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어 우리나라 정치를 몇십 년 뒤로 돌려버리고 만 사건까지 일어났으니...


이들이 다룬 내용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즉 진보하지 않고 오히려 퇴보하고 만 현실에 씁쓸한 마음을 거둘 수가 없다.


홍세화 선생이 한 이 말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지 않나 한다. 비상 시국에 나돈 말들이 다 이런 선동의 말이지 않나 싶었으니 말이다.


'저는 한국 사회가 선동은 가능하지만 설득은 무척 어려운 사회라고 봅니다.' (227쪽)


설득을 하려면 우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지녀야 한다. 자신을 객관화 하고, 다른 사람도 역시 객관화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득을 하기 전에 자기 주장만을 펼치는 선동을 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설득을 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있는가? 교육은 오히려 일방적인 생각을 주입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오지 않았던가.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정답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찾아 써야 하는 그런 형식. 


이런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내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그것도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의 답을 찾고, 그것을 받아들여 남에게 강요하는 형태로 결정되지 않을까 한다.


이것이 바로 선동이 난무하는 사회다. 교육과 마찬가지로 언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우리나라 언론이 그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오죽하면 '기레기'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이런 기레기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언론이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데,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서는 선동이 아닌 설득이 필요하다. 자신들에 대한 비난도 참고 견디면서 다른 사람들을 진실에 다가가게 설득하는 일, 그것이 언론이 할 일인데... 언론이 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회는 그야말로 선동에 휩싸이게 된다. 이 선동에 의해 진실은 가려지고, 설득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따라서 두 사람의 대담에서 우리나라 정치 지형을 진보와 보수로 규정하지 않고, 홍세화는 이렇게 규정한다.


'우리는 두 정치세력에 포박당해 있는데, 하나는 '하면 안 되는 행위를 주로 저지르는 정치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해야 할 일을 거의 하지 않는 정치세력'이라는 생각이요.'(324쪽)


'하면 안 되는 행위를 주로 저지른 정치세력'이 어느 정당인지는 이 책을 읽어보지 않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정당은 달랑 둘이다. 원내 교섭단체를 결성할 수 있는 정당이 둘이니... 둘 중 하나겠지. 그러면 나머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정치세력'이 어느 정당인지도 알 수 있다.


꼭 이 구분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타당한 구분이다. 진보와 보수로 구분하는 것보다는 현실에 더 다가간 구분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전히 하루에도 몇 명씩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 표현이 스스럼 없이 발화되고 있는 이 현실에서, 성장 성장, 오로지 경제 성장이 목표라는 듯이 성장우선주의를 외치고 있는 이 사회에서 이 현실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정당이 바로 진보 정당이다. 그런 진보 정당이 있는가? 질문을 해야 한다.


진보 정치에 대한 대담이 이 책에 실려 있는데, 아마 읽기 불편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양 거대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들의 대담이 쓴 약이 아니라 헛소리, 구름 따먹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정치란 무엇인가? 나하고 생각이 같은 사람들하고만 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정치다.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명확하지 않은가. 바로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이때 다른 사람들을 다른 정당 사람들이라고 해도 좋다. 꼭 정당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시민들, 다양한 의견을 가진 시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 다음에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에 맞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대의민주주의다.


공론장을 형성하고, 공공성을 추구하는 의견을 따르는 것, 대의란 바로 이것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시민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포퓰리즘이라고 폄하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의견만을 밀어붙이는 정치인, 그들을 소환할 방법이 없다. 시민들의 뜻과 다른 정치를 하는 정치인을 소환할 수 없는데 어떻게 '대의 민주주의'가 되지? 우리들 의견을 대신하지 않고 제 의견만 고집하는 정치인을 견제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공론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공공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사회가 될 뿐이다. 대의 민주주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이 책에서 홍세화 선생이 말한 '국민은 자기 수준의 정부를 가진다.'(327쪽. 19세기 반동적 보수주의자 조제프 드 매스트르가 한 말이라고 한다)는 말, 명심해야 한다. 


즉 국민이 정부를 견제하고 견인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가 하는 대로 자신들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


제대로 국민의 뜻을 대의할 수 있는 정부, 그런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이 대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데, 특히 내가 지니고 있었던 관점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준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서로 다른 많은 생각들, 그 생각들이 부딪히고 부딪쳐 서로의 생각을 모아가는 과정, 그것이 공론장의 형성이고, 이러한 공론장은 공공성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할 것이다. 지금은 이런 공론장을 만들어야 할 때다. 두 사람의 대담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하수 2024-12-25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kinye91 2024-12-25 13:07   좋아요 1 | URL
다른 관점을 만나게 해주는 책이었어요. 그래서 제게는 의미 있는 책이기도 했고요.

숲노래 2024-12-25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지 말라는 짓을 하는 무리 하나와, 하라는 일을 안 하는 무리는, 둘 다 왼오른도 아니고 진보보수도 아니지만, 둘이 왼오른이나 진보보수인 척하는 모습이, 바로 우리 눈높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잣대이지 싶어요. 그래서 이 슬픈 우리 눈높이부터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우리 삶자리부터 스스로 바꾸어 가는 일을 여는 하루부터 이 나라를 바꿀 만하리라고 느낍니다.

kinye91 2024-12-25 17:01   좋아요 0 | URL
숲노래 님의 댓글을 읽으니 자신을 사람에 비춰보라는 경어인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그들 무리를 우리가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 삶자리부터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겠지요.
 

  청소년들이 시를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시적인 사회,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청소년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시를 읽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다른 사회보다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으리라.


  시란 내 마음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니, 마음과 마음을 잇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면 그 사이에는 평화가 싹튼다. 평화는 존중을 바탕으로 하고, 존중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시를 가까이하게 될까? 적어도 전국민이 한 편의 시라도 암송할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해야 만들어질까?


간단하다. 시를 좋아하게 하면 된다. 좋아하다보면 자연스레 읽게 되고, 읽다보면 외우고 싶은 시가 생기고, 그렇게 시를 외우는 사람이 많아지면 어, 나도 외워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고,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퍼져나가듯이 시가 사람들 마음에 번져나가게 될 것이다.


누구부터 시작해야 할까? 가능하면 어린 나이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린 시절에 좋아하던 것들, 어린 시절에 자주 만난 것들은 평생 그 사람에게 작용하기 때문에...


유초등 때 동시부터 시작해도 좋고, 초중고 때 다양한 시를 만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시를 좋아하게 해야 한다. 좋아하게 하려면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해야 한다. 


내 이야기. 우리들 이야기.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요즘 봇물 터지듯 나오는 청소년 시집이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시집 역시 시인의 세 번째 청소년 시집이다. 시인은 두 권의 청소년 시집을 내고 '이만하면 청소년들에게 시로 들려줄 말은 웬만큼 풀어냈겠더 싶었다'(4쪽)고 했다. 그럼에도 또 청소년 시집을 내게 된 것은 아직도 청소년들이 시인의 마음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청소년들은 서로 같으면서 달랐습니다. 또래들이 지니고 있을 법한 고민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다채로운 빛깔을 뿜어내곤 했거든요,'(4쪽)라고... 그래서 그러한 다채로운 청소년들의 모습을 다시 시로 풀어내고 있다.


이렇게 시인은 청소년 시집을 통해서 다양한 청소년들의 모습을, 다채로운 그들의 생각과 고민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결코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그런 청소년들의 삶을.


때로는 웃음을 머금게 하고, 어떤 시들은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도 한다. 그러다 시집의 4부에 실린 시들은 여전히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금도... 여전히... 계속... 그렇게... 남아 있는 마음의 빚. 슬픔을 시인은 끌어낸다. 끌어내 보여준다. 보여줌으로써 다시 그 슬픔을 안고, 그렇지만 이겨내고 살아가자고 한다. 읽어보면 안다. 어떤 시들인지...


       열리면 문이고 닫히면 벽이다


   자퇴서를 내고

   학교를 빠져나오던 날부터

   나에게 교문은 벽이 되었다.


   학생도 아니고 성인은 더욱 아닌 내가

   마음대로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많지 않았다.


   내가 학교를 버렸는지

   학교가 나를 버렸는지

   이제 와서 그런 건 따지고 싶지 않다.


   지금 내가 문밖에 서 있다는 것

   밀어도 꿈쩍 않는 벽들이 많다는 것


   길은 여러 갈래라지만

   그럴수록 고르기 어려운 법이어서

   어디로 발을 떼야 하나 고민할 때마다

   교문 안쪽의 세계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돌아볼수록 문은 멀여졌고

   어느새 있어도 없는 존재가 된 나는

   내가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찾는 중이다.

   벽이 문이 될 때까지 두드려 보는 중이다.


   들리니? 들리세요? 들리십니까?


박일환, 우리들의 고민상담소. 단비. 2024년. 29-30쪽.


이 시에 나오는 문과 벽이 어디 청소년들, 학교에만 해당될까? 우리들 삶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 사회에 문이 많은가? 벽이 많은가? 어떨 때는 문조차도 벽으로 만들어버리는 사회 아닌가? 


그런 사회에서 청소년들에게 시를 읽으라고, 시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외치는 것과 같다.


"들리니? 들리세요? 들리십니까?"


들어야 한다. 들리게 해야 한다. 들려서 벽이 문이 될 때까지 두르려야 한다. 그렇게 청소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벽을 문으로 만들어야 한다. 문들이 많이 생기게 해야 한다. 


문은 곧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니... 시를 사랑하게 하는 방법, 단순하다. 마음에 문을 만들고 그 문을 활짝 열고 서로의 마음이 이어질 수 있게 하면 된다. 그런 사회... 자연스레 시를 사랑하는 사회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