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시간에 생각 키우기 국어시간에 읽기
충북국어교사모임 엮음 / 나라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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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함석헌 선생이 그랬던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고전적인 정의가 있듯이 생각할 수 있는 힘, 그건 바로 인간을 규정짓는 중요한 조건이 되리라. 

그런데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 

그냥 생각해, 생각 좀 해 하면 생각을 할 수 있나? 

몇 년 전에 학생들의 사고능력이 떨어진다고, 학생들의 사고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논술을 강화해야 한다고 대학입시에 논술을 반영한다고 했었다. 논술을 통해 종합적 사고력을 키운다는 취지에서 시행되었는데... 

학생들은 이 논술을 위해 듣도 보도 못한 온갖 철학자들, 사회학자들의 글을 읽어야 했다. 아니 읽으면 좋은데, 그들에게는 시간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시간은 없는데, 내용은 알아야 글을 쓸 수 있고, 결국 그들이 택한 방법은 학원을 찾아가 요약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 사고력을 측정하겠다고 도입한 논술이 결국은 학생들의 암기력과 글쓰는 요령만을 평가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었다. 

결국 논술은 많은 대학에서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는데... 

그렇다고 논술이 필요없는 것일까? 아니다 논술은 필요하다. 학생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데는 논술이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삼다(三多)방법은 학생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교육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삼다를 실천하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조건은 학생들의 여유이다. 시간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의미에서 좋은 책이다. 바쁜 학생들에게 별도의 과제를 내주지 않고, 수업시간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 읽고 생각하고 내용을 정리하기 알맞게 구성이 되어 있다.  

또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이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중심으로 글을 엮었다. 이런 일이 있었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나도 한 번 내 주위의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구성이 나로부터, 사회, 역사까지 나아가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 소재는 원심형으로 더욱 깊고 넓게 나아가고 있으며, 글 하나 하나의 구성이 우선 읽고, 그 다음 생각하고, 직접 써 보는 쪽으로 되어 있어, 자연스레 삼다의 방법을 활용하게 되어 있다. 

이 밖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단지 생각하는 요령, 글쓰는 요령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어떤 삶이 옳은 삶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하는데 있다. 즉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더욱 바람직한 삶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이 점이 이 책이 학교 수업에서만이 아니라, 학교가 아니더라도 그냥 집에서도 읽을 수 있게 한다.  

자식을 둔 부모가 아이의 사고력을 키우게 하고 싶을 때 아이와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사족 : 한 가지 아쉬운 점..편집과정의 실수이겠는데... 244쪽의 조선일보 사설이 실린 날짜 

1969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1960년의 오타이겠지. 역사를 이야기 하는 부분인데, 연도는 중요하다. 4.19 전의 이야기이니, 69년일 리가 없고 이는 분명 60년이리라. 다들 한 번 살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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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식인의 길, 육두피아 - 한국의 인텔리겐치아, 육두품에게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정영훈 지음 / 팬덤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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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이들을 저자는 육두품이라고 한다.  

왕족이 아닌 사람들이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한계. 

결국 신분이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그 자리에까진 올라가지만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어떤 한계를 지닌 존재, 그것이 육두품이다. 그래서 그들은 시대와 끊임없이 불화하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이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어떤 이는 시대를 변혁하려고 하고, 어떤 이는 시대에 영합하려고 하고, 어떤 이는 시대에서 벗어나려 하기도 한다. 이들을 모두 육두품이라 칭하지만, 저자가 마음에 두고 있는 육두품은 아무래도 진보적인 의식을 지닌 육두품인 듯하다. 그리고 육두품들의 세상인 육두피아에서 그가 원하는 육두품들은 이 세 종류의 육두퓸을 모두 말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육두피아란 무엇일까? 

처음에 이런 육두품으로 세 명을 불러내고 있다. 

최치원, 최승우, 최언위 이들을 삼최라고 하고, 이들은 당나라에 유학을 하고 온 신라 말기의 지식인. 서로 삶이 달라 최치원은 은둔생활을, 최승우는 견훤의 편에, 최언위는 왕건의 편에 선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을 통해 육두품은 어떤 존재인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 때의 육두품과 21세기의 육두품에 대하여. 

여기서 한 가지 정말로 우리는 육두품이 되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육두품이라는 존재는 어떤 목표를 뚜렷이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 경제, 사회 분야든 자신의 일이 사회지도층의 일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꼭 상위 몇 %가 되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두가 육두품이 되는 사회를 육두피아라고 했는데, 이게 머리 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육두피아라, 모두가 지식인이 되는 사회라는 건가? 모두가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로 대우받는 사회라른 뜻인가? 이 개념에 대한 실질적 내용은 독자가 채워야 할 몫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음에는 육두품이라고 할 수 있는 정몽주, 정도전, 정약용을 불러내어 조금씩 논의를 구체화해나간다. 이들의 논의에서 21세기의 육두품은 '지식과 자본을 많이 가진, 그러면서도 풍부한 정신 세계를 향유하는 자'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지식과 자본을 많이 가진이란 말은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룬 사회, 제도를 구현해야 한다는 말이고, 풍부한 정신세계란 나만이 아닌, 인간만이 아닌, 자연과 우주와 인간을 아우를 수 있는 정신세계를 지닌 인간이란 뜻이리라. 결국 육두피아는 모든 국민이 경제적인 고민이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제도와,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제도가 갖춰진 사회에서 풍부한 영성을 지닌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면 육두품이라고 다같은 육두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육두피아에 살 육두품은 누구와 같은 더 구체적인 내용은 역시 독자가 채워야 할 몫일밖에. 

그 다음에 또 불러내는 세 명은 이익, 신채호, 박은식이다. 이들을 불러내는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의 정통성에 대해,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앞에서 정리한 내용에다 실현의 과정에 대한, 방법에 대한 생각을 덧붙이면 육두피아란 정통성과 정의가 넘치는 사회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토머스 모어, 사마천, 정도전을 불러내 육두피아에 대해서 더 자세한 논의를 하려 한다. 이들이 꿈꾸었던 세상과 지금 우리가 꿈꾸어야 할 세상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구, 조만식, 조봉암을 불러내 한반도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적어도 육두피아를 꿈꾼다면 남북문제를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을 불러내 남북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통일을 위한 노력을 어떤 식으로 해야하는지 이야기 하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다. 통일논의는 현재진행형이기에 우리 자신도 이 저자의 논의에 덧붙여 우리들의 논의를 첨가해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이 남 얘기가 아닌 우리 얘기가 되고, 어느날 갑자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결실이 된다. 이렇게 되어야지만 충격이 덜 할 테니까. 

끝부분은 언뜻 보면 사족같지만...저자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육도사를 불러내 함으로써 이 땅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세 명씩(마지막 장은 빼고) 불러내 이야기를 해서, 어느 한 주장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이들의 논의가 치밀하게 전개되지 못한 관계로 이들의 대화에 숨어있는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즉 많은 것이 나타나 있지 않기에, 대화를 통해서, 또는 등장인물을 통해서 작가가 꿈꾸는 육두피아가 어떤 것인지, 내가 꿈꾸는 육두피아는 어떤 것인지 덧붙여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는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 저자의 주장을 죽 따라가는 것이 아닌, 그건 아닌데, 아냐, 여기에 이런 내용을 더 붙이는 훨씬 좋을 거야 하면서 읽은 맛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즐거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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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을 각오하지 않고 예술을 할 수 있을까. 예전 예술가들의 생애를 읽다보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이 나오지 않는 예술가가 별로 없던데... 생전에는 배고픔에 시달렸으나 죽어서 유명해져 그의 작품들만은 엄청난 가격을 유발하는.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취미로, 또는 한 순간의 성공으로 배고픔을 면하고도 예술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아니 어떤 예술가들은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예술가들에겐 남의 일이 아닐 터이고, 자식들이 예술에 종사하겠다고 하면 부모들이 걱정부터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자 한겨레 신문의 한 제목 예술계통으로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 이야기.

"등록금 비싼데 작업실은 열악" "졸업 뒤 계획 제발 묻지 마세요" 

이게 마음에 잘 다가오지 않으면 이 만화들을 보자. 

최규석의 "생태습지 보고서" 그리고 "울기엔 좀 애매한" 

미대생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미대에 진학하려는 돈없고, 빽없는 학생의 비애를 너무도 현실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고 우중충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의 만화에는 나름대로 유머가 있다. 이 유머가 현실을 가리기만 하지도 않고, 오히려 현실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누구는 몇십억짜리 그림을 집에다 떡 걸어놓고 산다는데, 예술가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 그게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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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대표 미셸 씨를 강제 출국조치하겠다는 기사가 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해 우리나라 경제에 이바지한 사람들.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들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대우하고 있는가? 

무슨 기계처럼 필요할 때 부려먹고, 더이상 필요가 없다면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것이 과연 선진국일까? 

선진국 운운하기 전에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 이것 자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원주민이 아니라, 선주민이란 생각을 지녀야 하고, 이 땅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우리와 똑같은 권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로 와서 온갖 수모를 당하는 사람들. 

그들은 이주노동자이기 전에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몇 년 전 마음 아프게 읽었던 찬드라 씨 얘기.. 이게 아직도 반복되고 있다니... 

나라의 국격 운운하기 전에.. 우리 먼저 이주노동자 운운하기 전에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임을, 즉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는 태도를 지녀야겠다. 

이 책들 읽어보자. 그러면 쉽게 이들을 강제출국시킨다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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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잃게 된다. 

내 몸의 주인이 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몸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어진다. 

오직 의사의 말에 순응하는 말 잘듣는 순한 양이 될 뿐이다. 

일리히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 병원이 진짜 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제도로 인해 병이 아닌 것들도 병으로 인식된다는 얘기겠지. 

몸을 기관으로 해부하고 어떤 기관이 잘못되었는지를 진단하는 병원.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갈 문제도 심각한 질병으로 분류하고 치료를 안 하면 큰 문제가 발생하는 양  병원은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전체로서의 나는 신체의 각 부분의 나로 분해가 되고, 결국 나는 하나의 기계에 불과해진다. 

가기 싫지만, 가지 않을 수 없고,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하지 못하는 거대한 권력. 그것이 바로 병원이다. 

언제끔 나는 내 몸의 주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 몸의 권리를 내가 행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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