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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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에 대해서는 이름은 들어봤다. 그냥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라고. 우주에 블랙홀들이 있고, 이 블랙홀들이 다른 별들도 빨아들인다고. 그렇다면 블랙홀에 들어가면 종말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블랙홀이 수많은 별들을 빨아들인다면 그 크기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 아닌가 하는 생각. 하지만 블랙홀이 있다면 화이트홀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블랙홀로 들어가 화이트홀로 나온다라는 상상만 했을 뿐이다.


진짜 화이트홀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화이트홀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고 봐야 하는데...


과학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다. 과학 중에서도 천문학에 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방대한 우주 또는 광활한 우주라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별을 보면 마음이 좋아지듯이 천문학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고 있는데...


이 책은 화이트홀에 대한 책이다. 그런데 화이트홀에 대한 책이지만 블랙홀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블랙홀과 화이트홀, 내 상상에서는 입구와 출구라고 방향이 정해진,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 존재였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방향은 반대이지만 블랙홀의 입구가 화이트홀의 출구가 되니, 두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진행이 되는 방향이 달라지는.


이 책에 의하면 블랙홀과 화이트홀은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즉 화이트홀일 때는 화이트홀이고, 블랙홀일 때는 블랙홀이어야 한다. 방향은 두 방향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은 불가역적이다. 이 방향 저 방향이 될 수 없다.


또한 특정한 크기 이상으로 작아질 수 없고, 또 커질 수도 없다. 블랙홀의 크기보다 화이트홀의 크기가 작다. 블랙홀에서 화이트홀이 되는 순간 열로 에너지가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주에는 블랙홀도 있지만 화이트홀도 있다. 적어도 이 책에 의하면 그렇다. 그리고 이런 블랙홀과 화이트홀 내부를 우리는 볼 수 없다. 우리는 지평선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지평선을 가지고 블랙홀과 화이트홀 모두를 안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우주에는 우리가 모르는 물질들이 있는데, 이를 지금은 암흑 물질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이 암흑 물질이 어쩌면 화이트홀이지 않을까 하는 가정을 하고 있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데... 그렇다면 우주의 빅뱅은 블랙홀에서 화이트홀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암흑 물질의 일부는 어쩌면 수십억 개의 작고 섬세한 화이트홀로 이루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블랙홀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잠자리들처럼 우주를 가볍게 떠다닐 화이트홀 말입니다.' (181쪽)


전문적인 용어보다는 쉽게, 문학적으로 논지를 풀어가고 있어서,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과학책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데, 구체적인 수학 공식같은 것을 배제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읽어도 여전히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존재를 알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를 맛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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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추워지고 있다. 최근 서울역에 간 적이 있었다. 서울역 지하보도에 노숙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많이 추울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들에게는 여전히 자신의 집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더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자신이 머물 주거공간이 없다는 것. 인간이 생활하는데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의, 식, 주' 중에 벌써 하나가 없다는 것은 생활의 결핍이다. 그런데 집이 없다는 것에서 그칠까?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레 앞의 두 가지도 따라다닌다.


  먹을거리를 장만하기 힘들다. 무료 급식소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음식을 찾아먹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주거 문제는 곧 식생활 문화와 연결이 된다.


집이 없고, 먹을거리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옷은 어떤가? 옷 역시 그들에게는 구하기 힘든 물건이 된다. 옷도, 음식도, 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느 곳에서는 옷과 음식이 버려지고, 집을 수십 채 보유한 사람도 있다. 


사회적 양극화를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을 보면 체감할 수 있다. 몇 호 전부터 빅이슈에 옷을 나누는 캠페인 광고가 실리기 시작했다. 쓸모 있는 옷이지만 자신에게는 필요가 없는 옷을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자는 운동.


이런 운동으로 '의식주' 중에서 의를 어느 정도는 해결하려 하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고. 여러모로 바람직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호 [빅이슈]에서 다룬 흑백요리사,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이들의 음식 대결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또 다양한 음식을 알 수 있는 기회도 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삐딱한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과연 노숙인들은 맛볼 수 있을까? 이런 화려한 요리 경연대회에 가려져 그런 음식에 대해 알아도 맛볼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떨까?


물론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소설을 보면, 또 [빵과 장미]를 보면 없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음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래서 이번 호에서 '흑백요리사'를 다룬 것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데, 이런 요리를 어떻게 하면 없는 사람들에게도 향유할 기회를 줄 수 있을까 하는 글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터무니 없는 상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흑백요리사들에게 무료급식소에서 그들이 경연에서 선보였던 음식을 돌아가면서 요리해 제공하는 봉사를 하게 하는 방법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방송에는 내보내면 안 되고, 조용히 자신들의 요리를 한번도 맛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맛볼 기회를 제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날이 추워지니 이런 엉뚱한 상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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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SF게임 - 건너편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무튼 시리즈 69
김초엽 지음 / 위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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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에서 내가 관심 갖고 있는 작가는 김초엽과 천선란이다. 조금 다른 결의 소설을 쓰는 작가로는 한정현이고... 물론 다른 작가들에게도 관심이 있지만, 최근에 이들의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천선란은 자신의 성장과 디지몬을 연결지어서 [아무튼, 디지몬]을 썼고, 김초엽은 SF게임과 관련지어 [아무튼, SF게임]을 썼다. 둘다 자신의 성장과 관련이 있는 대상을 골랐는데, 디지몬이 애니메이션이라면, SF게임은 그러한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분야에 속한다. 그럼에도 현실과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준다는 공통점은 있다.


SF게임이라고 했지만 그냥 게임이라고 해도 된다. 게임은 현실과 다른 세상에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현실에서 잠시 떼어놓고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 그 속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게임이다. 게임의 종류가 워낙 많아서 몇몇 종류로 딱딱 나눌 수는 없지만, 그 중에 SF게임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김초엽이 SF작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작가에 SF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다.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이미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을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 내가 살지 못하는 삶을 다른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소설 속 세상이니, SF작가라고 해도 되겠지만, 그냥 작가라고 해도 된다. 많은 소설 중에 그러한 분야의 소설을 쓸 뿐이니...


그렇다면 SF게임은 무언가. 역시 다른 세계 속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에는 내가 개입할 수 없지만 게임에서는 내가 개입할 수 있다. 물론 게임 속 인물이 '나'는 아니지만, '나'를 대리한다. 그래서 '나'는 게임 속의 인물을 통해 다른 삶을 살아간다. 다른 행위를 한다.


그 행위를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다른 게임을 찾아 계속 나아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래서 '게임 중독'이라는 말을 하고, 게임을 금지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게임은 스포츠가 되었다. 세계 대회도 있고, 게임을 전문적으로 하는 게이머들도 있는 세상이니.


또한 게임을 통해서 삶의 방향을 찾기도 한다. 그냥 게임 속에 파묻혀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소수다. 다수의 사람들은 소설이나 다른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듯이, 게임을 통해서도 무언가를 느끼고 배우게 된다.


김초엽 역시 그랬다. 성장하면서 게임 속에 빠졌던 자신의 시간이 결코 낭비가 아니었음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꼭 게임을 끝까지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끝을 봐야만 게임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니... 이제 김초엽은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한다. 물론 선정적이고 지나치게 폭력적인 게임 (사회적 통념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아동 성폭행 게임 같은 것. 그런 게임이 출시될 리가 없다는 사회적 합의는 있다고 보니)도 있기는 하지만, 그 게임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냥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다, 그러니 해서는 안 된다, 또 중독이 되어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만두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함의를 찾고 그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요즘 게임을 분석하는 책도 나오고 있다고 하니, 게임을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분석하고 논의하고 함께하려는 모습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김초엽은 게임에서는 패자부활전이 있음을, 즉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그러한 점이 우리 인생에서도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게임을 통해서 한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가 아니라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또다른 기회임을 생각할 수 있다면 게임은 삶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게임에 자신을 완전히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게임도 바깥에서 바라보는 자세를 지녀야 하겠지만.


즉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처럼 언젠가는 책 속에서 빠져나와야 하듯이, 게임 역시 빠져나와 바깥에서 볼 수 있는 관점, 그러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양한 게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작가 김초엽의 생각, 삶이 함께 녹아 있어서 재미 있게도, 또 여러가지를 생각하면서 읽은 책이다. 


이 '아무튼' 시리즈를 빌려와 말하고자 한다. 아무튼 우리는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을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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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남북은 긴장 상태다. 정말로 유전이라는 것을 느낄 정도로,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있다.


  한때 긴장이 풀리기도 했었는데, 서로 교류도 됐었는데, 남한에서 개성으로 출근하기도 했고, 금강산에 수학여행을 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때 만들어 놓았던 길도 다 파괴되어 버렸다고 하고, 남 나라 전쟁에 군대를 보낸다, 무기를 보낸다 하고 있으니...


  언제 이 긴장이 폭발할지, 절대로 그러면 안 되는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런 긴장 폭발은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이젠 불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


  한 민족이라고 하지 않나. 통역 없이 대화를 할 수 있지 않나. 남북은. 그러니 다시 대화를 해야 한다.


만남 만큼 긴장을 푸는 데 좋은 것은 없다. 자주 만나야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는 일을 막을 수가 있다. 


자주 만나야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고,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래야 긴장보다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평화롭게 지내면 우리 마음 속 서정성이 회복된다. 서정성의 회복. 이것은 우리 마음을 평화롭게 하기도 한다.


북한은 사회주의 문학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을 노래하는 시들이 없을 수가 없다.


이 시집은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북한에서 발표된 시들 중에서 서정성을 드러낸 시들을 엮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서정성이 없을 수가 없으니, 북한의 문학에서도 짙은 서정을 노래한 시들이 있고, 이 시집을 통해서 그러한 정서를 만날 수가 있다.


무엇보다 번역 없이 시를 만날 수 있으니, 시의 의미가 곡해될 일이 별로 없다. (물론 낱말이 다르게 쓰이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이것이 대화를, 또 시를 이해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이 시를 보자. 어디에서 누가 발표했는지 가리고 보면 남북 어느 시인이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서정은 남북 모두에 공통된다.


   사람이 나이들면서

                        - 송명근


사람은 나이들면서

자주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게 된다

이마의 주름들속에 묻힌

회억(회상, 회고)의 갈피를 펼쳐

아마도 남은 나이라도 서둘러

잃은 것 봉창하려는(보상하다) 몸부림 아니라

한창나이 젊은 시절

피끓어 일 많이 하던 시절

자주 뒤돌아보며 채찍질했더라면

한생에 얼마나 더 멀리 왔으랴

때늦은 후회는 지나간 밤의 꿈과 같다지만

때맞춤한 자책은 인생의 지름길 안내자라네


김철학 엮음, 북한의 대표적 서정시. 한빛. 1996년.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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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디지몬 - 길고도 매우 짧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아무튼 시리즈 67
천선란 지음 / 위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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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빠져들게 하는 존재들이 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무엇이든 한 가지에 푹 빠져 헤어나오질 못할 때가 있다. 왜 그런지 모른다. 그냥 빠져든다. 그 빠져듦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 생각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빠져듦이 워낙 강렬해서 이성의 힘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 천선란에게는 디지몬이 그랬다고 할 수 있다. 무언인지 모를 외로움에 빠져 있던 천선란에게 다가온 디지몬. 천선란은 자신에게도 그런 디지몬이 왔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디지몬은 디지털 세상에 존재하는 것.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만날 수 없는 존재를 꿈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는 만날 수 없는 존재를 꿈꾸기에 이곳에서 저곳을 상상할 수 있고, 또 이곳의 힘듦을 이겨낼 수도 있다.


이곳의 힘듦을 이겨내지 않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또한 내 삶임을 다른 세상의 존재들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작가 천선란이 성장담이라고 봐도 된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된 지금까지의 일들을 디지몬과 엮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디지몬을 꿈꾸던 때에서, 디지몬에 나오는 인물들과 자신의 삶을 연결지어 이야기하고, 그들의 문장이 '용기, 우정, 사랑, 지식, 희망, 순수, 성실, 빛'(32쪽 주)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 자신이 마음에 들어했던 인물과 그 인물의 문장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렇다. 작가는 디지몬의 세계에서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발견했다고도 할 수 있다.


때론 슬픈 장면이 나오는데, 그 슬픈 장면이 작가 천선란이 쓴 작품과 겹치면서 아, 이래서 작가가 이런 작품을 썼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디지몬들이 지닌 문장들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지녀야 할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몬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라고 하지만 어른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작품이고, 천선란 같은 민감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과 연결지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어린 시절에 빠져들었던 그 무엇이 단지 어린 시절의 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우리들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책의 뒷부분에 가면 천선란은 자신에게 온 또다른 디지몬을 이야기한다. 실제 디지털 존재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의 엄마를.


그런 엄마와 함께하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는 작가의 모습에 뭉클하기도 했다. 그래, 어려운 상황이라도 그 상황 속에 있는 나는 유일한 존재고, 그것은 나의 유일한 경험이니까.


그것이 바로 나니까,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작가 천선란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면 좋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왜 천선란의 작품이 따스함을 품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기도 했고. 


그러면서 나에게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일까도 생각해 보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 내 삶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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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23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인듯요^^
누군가에게는 좋은 것이 있고,,, 위안이 되는 것이 있고,,, 어린시절 빠졌던 것은 더욱 깊게 기억되죠

kinye91 2024-11-24 14:5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이 ‘아무튼‘ 시리즈를 읽으면서 내게 영향을 주었고, 또 지금도 제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