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빅이슈]다. 자신만의 한 해를 돌아보는 기사들도 있고, 다행히 살아갈 곳을 찾은 여성 홈리스 이야기도 있어서, 연말이 조금 따스해지기도 한다.


  추운 겨울날. 추위를 조금이나마 녹일 수 있도록 해주는 잡지가 [빅이슈] 아니던가.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래, 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야말로 12월은 노벨상 주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축제여야 할 기간. 한강 작가를 축하하고, 다른 작가들도 축하를 받고, 그리고 여러 책들을 알리고 읽는 행사를 하는 주간이었으면 했는데...


한강 작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를 한 단계 더 올리는 그런 과정으로서 노벨 문학상이 작용해야 하는데...


이런 축제에 찬물을 끼얹는 집단이 있었으니... 자신은 힘이 없어서 그랬다는 말은 하지 말자. 암묵적인 동의, 반대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반대를 하지 않은 것은 동의이고, 동조이다. 부끄러워 해야 한다.


그 전에는 자신들이 이 나라를 운영한다고 큰소리를 떵떵치더니, 막상 위기가 닥치니 나 몰라라 하는 꼴은 졸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결코 국정을 운영한다는 사람이 할 소리, 할 행동은 아니다.


이들만이라도 제대로 정신이 박혀 옳은 소리, 바른 행동을 했더라면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혼란스러워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치 한강 소설에 나오는 상황을 재현하기라도 한 듯, 그런 큰뜻이 있었을리는 만무한 이들이 여전히 언론에 나와서 큰소리를 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자들을 이제는 따르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이미 많은 것을 경험했다. 문화적 소양 또한 높아졌고... 언론사들에게 소식을 맡기지만은 않는다. 자신들이 직접 소식을 실어나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선다. 수많은 사람이 이 추운 겨울에 거리로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나라, 문화적 수준이 높아진 나라다. 이런 국민의 수준을 정치권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민을 무슨 기억력이 나쁜 사람들로 매도하는 자들이야말로 수준 이하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진정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이런 작자들과 반대 편에 서 있는 잡지가 [빅이슈]다. 사람들을 분노로 열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따스하게 하는 잡지. 그러한 [빅이슈]가 있어서 이 추운 겨울, 어느 정도 화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았으리라. 책을 읽고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리라. 그러니 모든 것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해석하고 실행했겠지. 그것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생각도 하지 않고, 그것이 국민들의 정서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파악도 하지 않고.


이런 자들 때문에 노벨상 주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를 비롯해 문화예술인들이 축제를 벌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것에 화가 난다. 이 화를 누를 수 있도록 상황이 해결이 될 것이라 믿고.


이번 호에 이렇게 책에 대한 글들이 있었는데.. 좀더 즐거운 마음으로 책에 대한 글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한 해 동안 [빅이슈]를 읽으면서 때로는 따스한 온기를, 때로는 시원한 청량함을 느꼈다. 내년에도 이런 역할을 [빅이슈]가 계속 해주기를 바라면서, [빅이슈] 판매원들과 편집진, 그리고 필자들, 또한 읽는 독자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 모두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 잘 맞이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낯선 이야기는 우리 곁에 있다 - SF와 인류학이 함께 그리는 전복적 세계
정헌목.황의진 지음 / 반비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소설은 낯선 이야기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분류한다. 


'SF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로 정의된다고 딜레이니는 설명한다. ...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는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건'이 포함된다.  ... SF는 일견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현실에 잠재된 가능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11쪽)


그렇다.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그것이 SF소설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낯선 이야기가 된다. 이 낯선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 책은 이런 의미에서 인류학과 SF소설을 결합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인류학 논의를 활용한 SF 다시-읽기를 통해 SF가 제공하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인류학의 연구 대상인 현실 세계의 변화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려 한다.'(14쪽)는 말로 이 책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즉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과 사회를 인류학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그것이 지금 우리 인간이 살아가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SF소설을 인류학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는 SF소설을 우리 곁으로 더욱 가까이 데려오는 역할을 한다.


'SF와 인류학은 미래를 향한 상상이라는 공통적인 지향점을 지니고 있다. SF가 미래에 관한 픽션이라면, 인류학은 미래를 위한 논픽션이다.' (13쪽)


이런 논점에서 SF소설은 우리들에게 삶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을 미리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나온 소설들을 보라. 상상 속의 세계지만, 그 세계를 통해 우리는 우리 세계를 바라보고, 우리 세계를 다른 관점에서 판단하고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게 하려 한다.


다룬 작품들을 보자. 스타니스와프 렘이 쓴 [솔라리스],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옥타비아 버틀러가 쓴 [블러드 차일드], [킨],  테드 창이 쓴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네 인생의 이야기', 르 귄이 쓴 [어둠의 왼손], [빼앗긴 자들], 배명훈이 쓴 [타워], 김초엽이 쓴 [파견자들]


외계 문명과 조우하는 인류부터 유토피아나 남성 인간이 다른 종의 아이를 낳는 일, 인종 차별 사회, 바꿀 수 없는 미래를 안다는 인식의 문제, 다른 종들과의 공존까지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소설들이다. 이런 소설들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이것이 우리 인류가 살아가는 사회의 어떤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작품을 먼저 읽고 이 책을 보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책을 읽으면 소설과 학문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고, 우리 사회에 있는 낯섬을, 즉 다름을 배제로 읽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다름은 배제가 아니라 융합일 수 있음을, 그러한 융합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의 모습임을 인류학과 SF소설을 결합한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느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 인간의 최후 - 세컨드핸드 타임, 돈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0년대에 소련이 해체되었다. 러시아와 그외 다른 나라들로. 한때 페레스트로이카라고 해서 소련을 개혁한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기존 공산당의 집권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시기. 고르바초프. 그가 등장해서 사람들에게 공산주의를 개혁한다고 했다. 기존 스탈린 식의 독재가 아닌 진정한 공산주의를.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소련은 해체되었고, 소련에 속해 있던 나라들에서는 내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민중들의 삶은?


과연 나아졌을까? 이 책에 나오는 한 사람의 말이 가슴에 파고든다.


"그때는 참 살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참 살기 무서워졌어요." (518쪽)


공산주의가 민중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데 실패했다. 먹을거리 확보에도,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데도, 아마도 여기에는 별다른 이론없이 동의할 것이다. 만약 공산주의가 풍요로운 생활을 유지했더라면 지금 공산주의 국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현실에는 도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공산주의 이념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독재정권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유형을 떠나거나 죽임을 당했다. 또한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했다.


그럼에도 강한 독재권력이 정권을 유지했다. 공산주의라는 명목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페레스토이카로 새로운 경향이 생겨났다.


이때 과거 공산주의 정권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쿠테타를 일으킨 적이 있다. 소련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때. 그렇지만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고, 이들에 의해 쿠테타 세력은 물러가고 말았다. 옐친이 부상하고 고르바초프의 몰락이 시작된 때다.


그 다음 여러 나라로 분리되었다. 각 나라에서 함께 살던 사람들이 서로 쫓아내고 죽이는 일들이 벌어졌다. 자본이 들어왔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했고, 지식인들은 쫓겨나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했다.


소수의 부자들이 생겨났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 다음은? 


한번 진행된 역사를 되돌리기는 어렵다. 자본주의화된 나라는 다시 공산주의로 가기 힘들다. 그래서 러시아는 이제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소련에서 독립한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고, 여기에 여전히 독재정권이 있는 나라들도 있고.


이 책은 페레스토리이카 이후 소련의 모습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그들의 말을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


스탈린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자본주의를 열렬히 추구하는 사람도, 여러 독립국가에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던 사람도 모두 이 책에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


이것이 바로 소련 해체 이후의 삶들이다. 그런 삶 속에서 공산주의 때는 가난으로 살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자본이 지배하고, 또한 자본과 결탁한 다른 존재들이 삶을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소련이 해체된 지 30년이 지나가는데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들은 다른 공산주의적 인간, 즉 붉은 인간의 최후 이후에 어떤 인간으로 살아야 할지 합의를 보지 못했다. 합의는 커녕 소수에 의해서 흐름이 만들어졌고, 대다수는 그냥 끌려다녔을 뿐이다. 


그 혼란의 현장이 바로 이 책에 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자부하는 우리나라,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자랑하는 우리나라, 하지만 우리가 겪어왔던 독재의 시기... 그 시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 그리고 지금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을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게 된다.


우리 역시 이들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기에.. 그런 혼란이 지금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기에... 그래서 읽으면서 자꾸 우리 역사를 생각하게 됐다. 스탈린에 박정희를... 그 후 민주화 이후에 벌어진 신자유주의를... 민중들의 삶을...


사상 초유로 비상사태도 아닌데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를 불법으로 여긴 시민들이 나섰고, 비상계엄은 해제되었다. 소련의 해체기에 쿠테타가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몰려가 쿠테타를 무산시켰던 이 책의 이야기가 남 이야기가 아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다니.. 그래도 우리는 이 책에 나온 사람들처럼 사분오열되면 안 된다. 이 국면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 점에 대해서 이 책은 여러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퀴닝 - 꽃게잡이 선원에서 돼지농장 똥꾼까지, 잊힐게 뻔한 사소한 삶들의 기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1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퀴닝(Queening)'


처음 들어보는 낱말이다.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이 새로운 말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한데... 퀴닝이라? 그냥 낱말을 들여다보면 여왕이 있다. 그렇다. 이 낱말은 체스에서 졸이 상대편의 마지막까지 도달했을 때 하나의 말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때 여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 퀴닝이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즉 신분의 상승이다. 이는 자신의 처지를 극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쓸 수 있는데... 이 책은 원래 '퀴닝'으로 나오지 않고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고 한다. 개정판을 내면서 저자가 의도했던 대로 '퀴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하는데...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과연 '퀴닝'이 있을까? 예전에 가난했던 집안의 아이가 고시에 합격해서 신분을 바꾼 사례를 들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법학전문대학원이 되어버렸으니,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상승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힘든 일을 한 사람들이 그 일의 대가로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 사회도 이러한 '퀴닝'이 가능한 사회가 되겠지만, 저자가 마지막에서 '인간이 남의 돈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선, 졸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일생 졸로 머무르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나는 조금 두려워진다'(440쪽) 했듯이,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하게 사는 삶이 유지되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 역시 마음이 좋지 않다.


이 책의 저자가 나중에 쓴 책부터 읽었다. 그 책을 읽고 자신이 직접 체험한 노동에 대한 이야기기에 더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결코 노동을 미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자신을 좋게만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저자가 먼저 쓴 노동에 대한 책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동사의 멸종]보다 더 생생한 노동의 현장, 저자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것이 꼭 저자만이 겪는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최저임금이 간신히 보장되는 노동 현장에서도 계급이 있다는 사실. 그것도 외국인 노동자, 특히 동남아나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다는 사실. 한국인인 저자가, 그것도 젊은 한국인인 남성 노동자인 저자가 겪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보다도 더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


그것을 알고 있는 저자도 어떨 때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멸시하는 말을 하고, 그들을 막 대하고 있다는 사실. 머리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다 같은 노동자라는 사실이 막상 현장에서는 작동되지 않고 그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모습이 이 책에 적나라하게 나와 있으니...


또한 힘든 노동을 경시하는 그 노동으로 편리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런 사람들에게 질리다 못해 결국 그들을 막 대하는 저자의 모습이 "뭐 저런 노동자가 다 있어?"라고만 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막바지에 처한 사람들의 몸부림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저자가 한 말에 동의한다. 정치인들, 한번 이런 노동현장에 화서 일해보라고... 돼지 농장에서 돼지분뇨를 날라보라고... 또 꽃게잡이 어선에 타서 꽃게잡이를 해보라고, 요즘은 셀프 주유소가 많이 생겼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한 손님들로 늘 북적이는 주유소에서 일해보라고, 아니 지금도 우리나라에 만연하는 기계공장에서 일해보라고...


예전에 '삶의 체험 현장'이라는 방송이 있었는데, 유명인이 가서 하루 체험을 하고 일당을 받아오는 방송이었다. 이들은 방송에 나온다는 점을 감안했는지 일당도 꽤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책을 보면 그것은 방송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저임금도 못 되는 돈을 주는 경우가 많고, 노동 현장은 가혹할 정도로 열악하다는 것. 여기에 사회구조를 비판하기보다는 바로 옆에 있는, 그것도 나보다 조금이라도 힘이 없다면 그들을 무시하고 막 대하는 쪽으로 변해가는 그런 모습은 절대로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이런 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현장이다. 그러니 이런 책은 우리 사회의 노동현장을 가감없이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을 지탱하는 그런 노동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졸이 아니라 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어도 졸이 졸로만 존재하는 사회는 아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 우리는 어쩌다 아픈 몸을 시장에 맡기게 되었나
김현아 지음 / 돌베개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도 의료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의대 학생수 증원을 놓고 벌어진 갈등이, 전공의들의 사퇴로, 또 의대생들의 휴학으로, 그리고 의사국가고시의 거부로 이어지고 있다. 갈등은 지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해결될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이런 때 의사가 쓴 책을 읽는다. 의사이기 때문에 의료 현실을 직접 경험하고 있으니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으리라 믿고, 또한 그러한 문제점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면 좋을지를 어느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과 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관점을 다를 수 있음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의료 정책에 현장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는다면 문제는 더 발생할 소지가 있다.


이 책을 쓴 김현아 교수는 류마티스 내과 교수라고 한다. 오랫동안 의사로 활동해 왔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느꼈던 문제들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항들은 이 책을 읽으면 되는데, 가장 큰 문제의식은 시장이 우리나라 의료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의료 민영화를 거부하는 나라인데, 의료가 시장에 잠식당하고 있다고?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에 속하는 삼성의료원과 현대아산병원이 어디 소속인가? 거대 재벌 소속 아닌가. 이들 재벌이 자신들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그 병원을 운영하는가?


아니다. 이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첨단 장비를 이용한 검사비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약을 처방받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환자 입장에서는 정확한 검사를 받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지출해야 할 비용이라고 하겠지만, 이런 검사와 치료를 공공의료가 담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히려 중증을 치료하는 병원은 사적인 기업이 운영하는 병원이 아니라 공공의료병원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의료 비중은 10%정도라고 한다. 다른 선진국들이 약 30%정도라고 하니, 공공의료는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의대 정원 문제는 단지 의사수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의료를 확충하느냐 아니면 의료를 시장에 넘기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시장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대형병원 의사들이 하루에 만나는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대형병원에 가면 예약을 하고 가도 근 1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가 달랑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진료받고 처방받고 나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료의 시장화다. 의사들이 이렇게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야 병원이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하니... 건강보험에서 진료수가가 낮은 것에도 원인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지금 제도에서는 진료수가를 올려도 환자를 진찰하는 시간이 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병원이 이익을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가 말한대로 의료는 우선 인간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과 죽음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것. 완벽한 정상 몸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질병에 걸릴지는 본인도 의사도 모른다. 하지만 첨단 기계를 이용해 검사를 하면 병에 걸릴 인자들이 나오게 된다. 그런 인자가 자신의 몸에 있다면 그때부터 마치 병에 걸린 듯 치료를 받으려 한다.


그러나 과연 몸에 있는 인자들이 모두 질병으로 발현되는가? 아니다. 수많은 인자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질병으로 발현된다. 발현되는 경우보다 안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1차 병원에서 진료받고 꾸준히 상담하면서 자신의 몸 상태를 지켜보는 의사가 있다면 상급종합병원에 가는 것보다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의사들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역시 자본주의의 한 구성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사들과 시민들이 대립할 이유가 없다. 의사들 역시 당연하게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요청해야 한다.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수가 너무 많으면 적정한 진료 환자수를 정하자고 해야 한다. 스스로 과잉 검사를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살인적인 업무 환경을 고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만큼 환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고 주장해야 한다.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하고, 충분한 진료 시간을 확보해야 하며, 진료나 치료가 아닌 다른 일로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의료가 시장에게 잠식당하지 않는다. 이는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사람들도 명심해야 하지만 당사자인 의사와 국민들이 협심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 수가 있게 된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의료 문제... 그런 중에 읽은 이 책. 이 의료의 문제가 의사들의 이기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제도와 환경이 함께 마련되어야 의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의사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주도적으로 제시하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자고 하면 국민들도 납득하고, 서로에게 더 나은 의료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한 책이다.


덧글


얼마 전에 읽고 써놓은 글인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전국민을 놀라움과 두려움, 당혹감에 빠뜨린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가 6시간만에 해제되었다. 절차를 지키지도 않았다는 문제, 지금이 과연 계엄령을 선포할 시기인가 하는 문제가 심각하지만... 이렇게 무시무시한 언어로 협박이라고 느낄 수 있는 표현을 했으니, 과연 의사들이 이 포고령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합니다.


과연 해결할 의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절차를 밟기 힘들 때 대통령이 긴급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헌법 조항을, 세상에 대통령이 스스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려 비상 시국으로 만들다니... 이것이 과연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할 일인지.


누가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지 12월 3일 밤... 그날, 일을 겪은 국민들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작 당사자가 전혀 모른다는 것이 문제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