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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향모를 땋으며 - 토착민의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 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니콜 나이트하르트 그림, 이채현 옮김, 모니크 그레이 스미스 각색 / 북스토리 / 2023년 12월
평점 :
학교 교육을 생각한다. 학교 교육이 자연과 얼마나 가까운가? 아니,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학교 교육은 자연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
자연은 격리가 아니라 함께함이다. 함께하면서 주고받는 관계, 그것이 자연이다. 또한 자연은 다 다름이다. 달라야 한다. 똑같은 것들이 모여 있으면 지속하기 힘들다. 그래서 자연은 서로 다른 종들이 모여서 전체를 이룬다. 하나라고 하지만 하나가 아닌 여럿이 모여 있는 하나, 그것이 자연이다.
그렇담 학교는 어떤가? 자연에서 떨어져 있다. 학교는 격리되어 있다. 담장과 교문으로. 특히 우리나라는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인해 이제는 '학교방문예약제'도 실시하고 있다. 교육의 3주체를 학생-학부모-교사라고 하면서(이에 대해서는 많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주체가 학교에 들어오려면 특정한 절차를 밟게 만들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과도 어울리지 않는 제도이지만, 이런 제도로 인해 학교는 더더욱 격리되어 있다.
또다른 주체인 학생과 교사를 보자. 이들 역시 학교라는 공간에 들어오면 정해진 시간이 되지 않으면 나갈 수가 없다. 나가려면 특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없는 공간이 바로 학교다. 세상에 어떤 자연에 이런 경계, 격리가 있단 말인가.
더 심하게는 학교 안에서도 격리가 이루어진다. 구획이 있어서 서로 단절되어 있다. 교실과 교실, 특별실과 특별실, 또 교무실도 교무실 별로 격리되어 있다. 격리가 일상인 공간이 바로 학교다. 여기에 자연과의 격리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학교는 자연과 동떨어진 학교다.
말로는 자연에서 배우라고 하면서, 자연 속에서 지내야 한다고 하면서 자연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지닌 학교에서 정반대로 교육하고 있는 곳이 학교인데... 다름이 어디 있는가? 판에 박은 듯 같은 모습의 학생들을 양산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곳이 학교 아닌가.
창의성, 개성 운운하지만 사실은 공통성을 기반으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 창의성과 개성 아닌가. 아직도 교복을 입히고 온갖 규칙을 적용하고 있는 곳이 학교니까.
왜 학교가 생각났을까? 바로 이 책이 학교이기 대문이다. 토착민의 지혜가 담긴 교과서이자 그 지혜를 배우고 실천할 수 있게 하는 학교.
아메리카 대륙의 토착민인 저자가 사라진 토착민의 지혜를 찾고, 그들의 생활방식을 찾으며 지금 현대인들의 생활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생활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향모'를 매개로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과 하나되어 사는 삶. 그것은 결코 빈곤한 삶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풍요로운 삶이다. 우리는 풍요를 추구하지만 풍요를 추구하는 소비 속에서 오히려 더 빈곤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즉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을 선물이 아니라 상품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상품으로 받아들이면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서로 주고받는 호혜성이 사라지고 일방적인 개발로 인해 파괴만이 남는 현실, 그런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은 토착민의 지혜에서 찾아야 한다고.
이것이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이들의 생활이 과학으로 증명될 수 있음을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냥 미신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공생의 과학임을.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풍요라는 말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우리가 풍요를 다르게 받아들어야 한다. 넘치는 것이 풍요가 아니다. 필요에 맞게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풍요다. 이런 풍요는 자연과 동떨어져서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할 때 이룰 수 있다.
저자가 말해주는 '섬기는 수확'을 보자. 지금은 남기기 위해서 즉 이윤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잉여를 추구하지만, 그것은 결국 부족을 초래할 수밖에 없음을, 수많은 개발을 통해서 지금 우리가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음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 '섬기는 수확'은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섬기는 수확에는 상품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개념이 우선한다.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결정하고, 사고가 행동을 유발한다면, 선물이라는 말과 상품이라는 말은 엄청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수확'을 얻음이라고 한다면 현대인들 중 누가 '섬긴다'는 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섬긴다는 말을 하면 그때 얻는 것은 상품이 아니다. 선물이다.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고, 또 감사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갚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받은 만큼 갚는다는 행위. 이미 생명 자체가 다른 생명 또 다른 존재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말이니, 그 빚을 갚으려고 노력해야 우리 생명이 가치 있게 된다는 생각. 그것이 전통 토착민의 지혜라고 한다면, 그런 지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지구라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함께 삶이 이 책에 다양한 식물들,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물론 죽이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생명의 생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그 점을 명심하고 생명을 취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이 해야 할 행동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학교에서 교재로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부터, 아니 교사들부터 이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토론했으면 좋겠다. 인공지능 교과서가 아니라 획일적인 교과서가 아니라, 자연과 격리된 학교가 아니라 이렇게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이런 책을 교과서로, 함께, 학교 밖으로도 나가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그런 학교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그런 학교에서 이런 책으로 교육을 받는다면 지금처럼 감수성이 메마른 존재들이 사회의 윗층을 차지하고 있어도 그들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