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너무 더웠다. 폭염 일수뿐만이 아니라 열대야 일수에서도 다른 해를 넘어섰다.
단지 폭염과 열대야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더위였다. 추석이 지났어도 더위는 한풀 꺾이지 않았으니...
처서부터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모기도 기승을 부릴 때가 지났는데, 여전히 덥고, 모기도 많다. 이제야 조금 수그러들었다.
기후가 변해도 너무 변했는데, 이러다가는 매해 올해가 가장 시원했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나 하는 두려움도 있다.
더이상 남 일이 아닌, 기후 변화, 기후 재앙이다. 폭염이나 열대야가 심해지면 더욱 고통받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더위, 생명을 유지하기 힘든 더위일수도 있다. 이럴 때 이들을 지키는 것이 무엇일까?
경제? 아니다. 정치다. 정치는 그래서 중요하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아닌가.
민주주의가 정착한 나라에서는 가난하다고 해서, 없다고 해서 더위나 추위에 목숨 걱정하는 일은 없다. 아예 그런 환경을 만들지 않는다. 그런 환경을 만들지 않고, 서로가 함께 살아가고자 실시하는 정치가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거꾸로 적용해보면 가난때문에 기후 변화로 인해 목숨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이는 공동체라는 기반이 해체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민주주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기후 재앙을 해결하는 것도 '정치'이고, 기후 재앙으로 인해 생명에 위협을 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도 '정치'이며,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는 것도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초고령사회가 되어 노인문제가 불거짐에도 걱정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정치'고, 후쿠시마 오염수를 비롯한 핵발전 문제도 '정치'고 점점 고사되어 가고 있는 농촌 문제를 살리는 것도 '정치'다. 그러니 [녹색평론] 이번 호에 실린 글들은 모두 '정치'와 관련이 되어 있다.
하긴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 '정치'라고 하면 '민주주의'를 떠올린다. 민주주의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니, 이는 우리가 동의하고 있는 정치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가 제대로 작동해야지만 기후, 전쟁, 초고령 사회 등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과연 그런가? 어떤 형태의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하는가? 지금처럼 '대의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녹색평론]의 답은 '아니다'다.
'대의'는 대신한다는 의미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주인이 된다는, 정치의 주체가 된다는 의미지, 자신의 권력을 남에게 양도한다는, 그래서 양도받은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여 이번 호에서 다시 '시민의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숙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또는 쉽게 말해서 '추첨'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해서 말이다.
일명 '제비뽑기'라고 하는데, 무작위로 뽑힌 사람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다양한 의견을 들은 다음, 서로 토론을 통해 논의를 좁혀가고 의견을 최종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자는 것. 시간이 걸리고, 논쟁이 길어질 수도 있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결정을 하고 집행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기후' 문제에 대해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결정이 나올 수 없고,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전쟁을 찬성하는 결정이 나올 수 없다. 마찬가지로 노인이나 농촌 문제를 어느 지역, 어느 세대의 이익을 위하는 쪽으로 의견을 정해질 수도 없다.
그러니 '시민의회' 또는 '숙의, 추첨 민주주의'를 도입, 시행해야 한다고 한다. '정치'가 바로 서야 다른 문제들에 바른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다.
어떤 정치여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숙의가 필요하겠지... 그런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녹색평론]이고.
이번 호를 읽으면서 농촌, 또 초고령사회라는 문제에 대해서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늘봄 학교'라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저녁 7시 정도까지 머무르게 하는 정책이 실시 중인데, 이것보다는 오히려 부모들이 일찍 퇴근할 수 있게 노동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과 비슷하게, 농산어촌에 폐교들이 많은데, 이 폐교들을 마을 사람들이 언제든지 와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
농산어촌에 주로 노인들이 많이 사는데, 폐교를 그냥 방치하지 말고, 여기에 진료소를 마련하고, 또 각종 시설을 만들면, 가령 운동장에는 텃밭, 기술실에는 목공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는 재료들, 가사실에는 요리를 할 수 있는 재료들, 도서실에는 책을, 또 빈 교실에는 각종 놀이 기구들을 갖추고, 간단한 카페나 음식점을 만들어 여기에 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해 늘 그곳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게 하면, 언제든 노인이든 아이들이든 청년들이든 학교에 들러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한다면, 노인들이 갇혀 지내는 삶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아이들은 노인들과 함께 지내니 돌봄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청년들도 할 일이 있으니 농산어촌에 머무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여기에 간호법이든 의료법이든 바꿔서 간단한 진료 및 처방은 학교 진료소에서 할 수 있게 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의약분업이 되기 전에 가벼운 질환은 약국에서 진단받고 처방을 받았듯이, 학교 진료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게 한다면 일차 진료는 마을에서 해결할 수 있고, 또 마을 돌봄(노인과 아이들)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대도시 집중을 막고, 농산어촌도 살리고, 초고령사회에서 발생하는 노인 문제, 돌봄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고, 의료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 물론 가야할 길이 너무도 멀지만...
농산어촌에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는 사회-문화-경제 기반 환경도 마련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적어도 폐교가 된 학교를 마을의 생활-문화 중심지로 만들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모아 정책을 마련하는 '정치', 그런 정치를 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아닐까 한다.